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64
3부 582화(1464화)
26.
운남왕이 성도로 압송되고 운남군은 전군의 선두에서 성벽으로 내몰린 끝에 궤멸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그 만행을 보면서도 제지하지 못했던 한일 양군 장수들은 그 소식에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만사는 사필귀정입니다. 아무리 신분이 높다고 하여도 도를 지나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처벌하니, 서나라 관군도 최소한의 도리는 살아있군요.”
“착각하지 마시오. 운남왕은 광동 백성을 노략질한 죄가 아니라 임의로 전장에서 이탈한 죄로 붙잡힌 거요. 광동 백성들을 노략질하는 건 악 대도독이 거느린 군사들도 마찬가지요. 누가 누굴 처벌한다는 거요.”
공성전이 시작된 지도 거의 한 달이다. 그동안 공성전에 별 쓸모가 없는 서나라 기병들은 주변을 돌며 신나게 약탈을 벌였다. 악종기는 꼭 필요한 물자 외에는 빼앗지 말고 반항하지 않는 백성들을 해지지 말라고 지시했다지만, 그게 제대로 지켜 질 리 없었다. 서나라 기병은 대부분 준가르나 토번에서 왔다. 어차피 광동인들과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난폭한 기병들이 광동 백성들을 자기 동포처럼 대할 리가 있겠는가. 학살과 방화를 대놓고 저지르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사천에서 온 사천인 병사들도 광동인들과 말이 안 통하는 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진남군 내에 두어 명 쯤 있는 대명동 출신 군관들이 사천인들과 말이 더 잘 통할 지경이다.
“대명동에서는 지금도 사천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조상게서 쓰시던 말이니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배워서 쓰지요.”
대명동에 살아도 군역은 치른다. 집과 농토에 매겨지는 전세와 호세를 대명공부에 낼 뿐, 그 외에는 일반 한인과 같은 의무를 수행한다. 군역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개중에는 더 높은 지위로 출세하기 위해 무과에 응시하고 관직에 오르는 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권훤은 일부러 이 대명동 출신들을 발탁해서 서나라 본영을 오가는 연락관 일을 시켰다. 이들은 서나라 군영을 드나들며 보고 들은 바를 권훤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소관들이 보니, 그래도 서군에 군량이 부족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수로를 통해 내려오는 군량이 대부분 무사히 도착하고 있사옵니다.”
서강에서 활동하던 수적(水賊)-악종기는 이들이 광동군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들은 서군의 토벌 때문에 그 세가 많이 위축되었다. 이제는 굳이 주변 백성들을 약탈하지 않아도 군량을 공급할 수 있는데도 서나라 기병들은 여전히 주변 백성들을 약탈하고 있다.
“서나라 때놈들이 광동 백성들에게 무슨 짓을 하든 상관 말도록 하세. 나중에 그 날리를 수습하는 것도 그놈들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니까. 그보다 마 정위, 서군이 파는 참호는 상태가 어떤가?”
정위 마승충(馬勝忠)은 대명동에 정착한 사천 출신 명나라 여장군, 진양옥의 후손이었다. 장조 시절에 사천 병사 2천과 함께 대명동에 정착한 진양옥은 한참을 홀로 살다가 노년에 양자를 들여 남편 마천승의 무던-사천에서 가져온 흙으로 봉분을 쌓고, 사천에서 가져온 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사천의 풍경을 꾸민-을 돌보게 했는데, 마승충은 그 양자의 후예다.
“소관이 가서 보니, 파는 양태가 영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벽에다 잔가지나 널빤지로 짠 가벽(假壁)을 붙여 벽에서 흙이 흘러내리지 못하게 막지도 않고, 참호 바닥에 고인 물이 빠지도록 도랑도 파지 않았습니다. 그저 도수로 파듯이 파고 있으니 그게 무슨 참호입니까?”
마승충은 마침 공병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군이 파는 참호의 미진한 부분이 더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비판이 이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광동 지방은 비가 많이 내리고, 불산성 주변은 지대가 낮고 땅에서 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까닭에 성벽 밑에다 파성뢰조차 묻지 못할 지경인데 기껏 파는 참호도 그다의로 파고 있으니, 어찌 적이 포격을 가할 때 제대로 몸을 피하겠습니까.”
제대로 된 공성용 참호를 만들려면 훈련을 제대로 받은 공병들이 나서서 각도를 계산하고 세심히 파야 한다. 대훈군은 참호 끝에 수차를 설치해서 바닥에 고이는 물을 밖으로 퍼내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서군은 강제로 끌어낸 농민들을 시켜 막무가내로 파고 있다. 수차는커녕 배수로도 없다. 그러니 그 결과물이 참호가 아니라 물이 들어찬 농수로 수준인 것도 당연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성벽을 향해 직선으로 팠다. 공성이 늦어지니 마음이 급했던 모양인데, 그러다가 정통으로 맞은 포탄 한 발에 역군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 뒤에야 서군도 비로소 갈지자로 참호를 파고 있지만, 여전히 허술하기 짝이 없다. 참호로 파성뢰(破城雷)는 지뢰의 일종이다. 적의 성벽 바로 아래까지 굴을 파고 그 밑에 화약을 묻어 터트려서 성벽을 내려앉게 하는데, 이를 가리켜 파성뢰라고 지칭한다.
“허나 우리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요즘 적군은 우리 쪽으로도 반격을 기도하고 있으니, 대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게.”
아군 참호가 성벽에 다가가자 광동군은 홍이포보다 큰 대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적어도 30근은 될 것 같은 포탄을 쏘는 거포였다. 다만 그 사거리는 홍이포보다도 훨씬 더 짧았다. 문수도 몇 문 되지 않아서 한 시간 안에 모두 제압되었다. 권훤이 보기에, 광동에서 직접 주조한 듯한 그 거포는 제작 기술이 부족한 탓으로 포탄을 멀리 쏘지 못하는 듯했다. 이를테면 화약을 많이 넣으면 포가 터진다거나. 그래서 대한군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국 참고 기다리다가 겨우 포문을 연 게 아니겠는가.
그 커다란 포탄이 직격하면 아군이 판 참호도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권훤은 중포병대에 특별히 지시를 내려두었다. 그 거포가 혹시 도 눈에 띄면 그놈부터 최우선으로 제압하라고 말이다.
“공부참모, 우리 참호는 이제 얼마쯤 남았소?”
“닷새쯤 더 작업하면 목표한 곳까지 닿을 듯합니다. 그러면 바로 대완구를 설치하고 성을 포격할 수 있을 겁니다.”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시오. 저들도 우리 참호가 다가오는 걸 보고만 있 지는 않을 테니.”
광동인들은 이 참호가 완성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광동왕이 고용한 유주 용병들은 참호가 갖는 위력을 잘 알고 있을 터, 분명히 혁습을 시도할 게 분명했다.
“대감, 일본군 진영에 나가 있는 연락관들에게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일군도 공성전에서는 더 많은 화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화포를 증강했다고 합니다.”
권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된 일이라고 평했다. 일본군이 전력을 강화하는 만큼 대한군도 수고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7.
요시히데는 흐뭇한 표정으로 방열하는 포대를 바라보았다. 자기 밑에 새로 들어온 12문에 달하는 32은(?, 파운드) 중포(重胞)를 보 니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군이 보유한 대완구라는 구포만큼 트지는 않지만, 성내에 포탄을 날리는 데는 문제가 없는 구포도 12문이나 받아왔다. 일거에 공성포 전력이 두 배가 됐다.
이 많은 대포는 모두 해군에서 빌려왔다. 해군을 책임지는 오오카 다다스케는 요시히데가 보낸 요청을 받고 마땅찮은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이쪽이 청한 대로 따라주었다.
「우리 육군이 가져온 대포는 본격적으로 공성에 쓰기에는 너무 작소. 전선에 실은 포를 일부 탈거하여 포수와 함께 빌려주시면 고맙겠소.」
「우리 해군도 포가 필요합니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우리 보고 무장을 해제하라고 하십니까?」
「수전은 이미 다 끝나지 않았소. 맞싸울 광동 수군이 없는 걸 뻔히 아는데 함포를 잔뜩 싣고 있으면서 대체 누구한테 쏠 셈이오? 차라리 우리에게 좀 빌려주시오. 귀공이 우리에게 포를 빌려준 공은 내 쇼군께 꼭 말씀드릴 터이니.」
이런 서한이 몇 차례에 걸쳐 오간 끝에 다다스케가 겨우 요청에 응했다. 아무래도 출신의 격에서 차이가 크다 보니, 마땅치 않은 요구라고 해도 끝까지 거부하기는 좀 곤란했으리라. 다다스케는 고케닌(御家人), 요시히데는 막부의 로쥬인 군마 마쓰다이라 가문 아닌가.
다만 이 32은 포는 제대로 된 육상용 포가가 아니라 해군용 포가에 얹은 대로라 한군이 보유한 같은 급의 포보다 사거리가 짧다. 구포도 해전에서 상대 함선의 갑판을 뎔킬?해안포대를 공격하는 용도로 탑재한 물건이라 한군의 본격적인 공성포 보다는 위력이 약하다. 처음에 원정군을 조직할 때부터 이런 문제를 고려해서 포병을 편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원정 경험이 없는 막부에서는 야전에서 회전을 벌이는 경우만 상정하고 가져가기 편한 야포만 잔뜩 들려서 보냈다.
요시히데도 불산성의 거대한 성벽을 보고서야 자기가 가져온 야포로 저 성을 공격하는 건 턱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본국에 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고 다시 논의를 거쳐 결정한 뒤 보내는 포를 받으려면 몇 달이 걸린다. 그때쯤에는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해군이 가진 포는 다다스케가 승낙만 하면 바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요시히데는 다다스케에게 편지를 보내 포와 포수를 빌려 달라고 요청했고, 마침내 그 성과를 얻어냈다.
“좋아. 이제 운남에서 온 똥 덩어리를 우리 앞에 던진 원한은 잊어주도록 하지.”
좀 더 일찍 받아왔으면 광동 놈들의 거포에 피해를 덜 받았으리라. 놈들은 일본군이 파는 참호가 거포 사거리 내에 들어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포격을 시작했다. 그 거탄에 맞아서 공병대와 광동인 역부(役夫)들이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남문을 공격하던 한군도 같은 공격을 받았지만, 그쪽은 32은 포로 응사해서 얼마 안 가서 그 거포를 제압해버렸다. 하지만 일본군이 보유한 12문 포는 그만한 위력이 없었다. 아직도 그 거포는 참호를 파는 공병들에게 포탄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포를 보충했으니 그것도 얼마 안 남았다. 특히 구포. 구포를 써서 성벽 위에 있는 광동군의 거포와 수비병들을 타격하면 적은 무너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 이 정도면 동문 일대에 있는 광동군을 제압하는 데는 부족하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나리.”
이번에 이렇게 교훈을 얻었으니, 다음번 원정 때는 이런 실수도 줄어들 거다. 한군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지금처럼 뛰어나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다 익히고 배우면서 나아지는 거다. 고문관들에 따르면, 앞으로 엿새면 구포를 설치할 수 있는 거리까지 참호를 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군은 나흘 뒤면 그 작업이 끝난다고 하니, 남문 쪽에서 먼저 성에 근접하여 공격을 개시한 뒤에 일본군이 동문에서 공격하게 되는 셈이다.
“분명히 사상자가 다수 발생할 걸세. 해군에 서한을 보내 의관들도 좀 빌려달라고 해두는 편이 좋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한군에게 배울 건 싸우는 재주만이 아니었다. 군의관과 군의병을 넉넉히 두어서 다치거나 병든 군사들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체계 역시 배워둘 만했다. 신병을 가르치기보다는 부상한 고병을 회복시켜 다시 전장에 내보내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은가. 꼭 필요한 제도였다.
28.
첫 포성이 울린 지 34일째. 오늘도 낮에는 성을 둘러싸고 네 방향에서 포성이 치열하게 울렸다. 갖가지 중량의 철환이 날아들어 성벽을 때렸지만 불산성의 두꺼운 성벽은 상이라도 되는 듯이 그 타격을 모두 버텨냈다. 가장 튼 포탄도 흠집밖에 내지 못했다. 성벽 안쪽으로 날아와 터지는 건 한군이 쏘는 대화전밖에 없었다. 대화전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불덩어리가 사방으로 흩부려졌지만, 불산성을 지키는 광동군도 이제 그 불길에 무척 익숙해졌다. 기름 먹은 천조각이 주변을 불태우기 전에 모래를 뿌리고 흙을 덮었다.
성벽 위에 있는 광동군 포수들도 치열하게 포를 쏘아서 응사했다. 사방을 포위한 토벌군 본진에까지 포탄이 닿지는 않았지만, 참호를 파는 공병과 역군들은 그 포화에 맞아 상당한 손실을 냈다. 참호를 부수기 위해 새로 주조한 화포가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남문 문루 위에 선 장장익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선 스페인인 용병이 자랑스러운 태도로 가슴을 내밀었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네들 말대로 하기를 잘했군.”
장장익 자신을 포함해서 광동군 장수들은 야전은 많이 치렀어도 공성이든 수성이든 성을 둘러싼 싸움은 거의 경험이 없다. 그래서 불산성으로 들어온 다음부터는 작전에서 용병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올라갔다.
“공성전이건 수성전이건, 구포는 꼭 필요합니다. 작년 겨울에, 저희가 제안했을 때 곧바로 만드셨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가르시아라고 하는 이 용병은 포술에 일가견이 있었고 필리핀에서 한군과 싸워본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광동에 고용되어 오자마자 농성전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구포를 주조하라고 주장했지만 장장익은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통 화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왜 양군이 참호를 파서 성벽으로 접근하는데 일반 화포는 놈들을 타격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두 방향을 공격하는 사천군까지 참호를 파 접근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장장익은 남문 쪽에서 부서진 거포를 녹여 구포를 주조했다.
“자네 말마따나 진작에 이렇게 할 것을 그랬네. 덩치만 크지, 적에게 별 타격도 주지 못한 그따위 추물 따위에 미련을 가졌다니.”
그 거포는 일격이면 성도 무너드린다고 성붕포(城崩砲)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장장익이 품은 큰 기대에 부응하기는 커녕 겨우 반시진 만에 한군의 포에 맞아 바로 망가져 버렸다. 정말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적은 우리 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참호를 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한 번은 치고 나가셔야 할 겁니다.”
“물론일세. 오늘 밤이야.”
장장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없었던, 대규모 반격 시도다. 사실 그동안 반격을 삼갔던 건 광주에 있는 장장헌이나 후송군이 구원하러 왔을 때 응할 수 있는 전력을 남겨놓으려는 의도가 컸다. 하지만 이제 적이 파는 참호가 코앞까지 왔다. 그 안에 구포가 들어앉아 성내에 포탄을 퍼붓기 전에 한 번은 반격을 시도할 때가 됐다.
“밤중에 뛰어들어 난전을 벌이면 아무리 한군이 강해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자네들 말을 믿도록 하지.”
사방의 성문을 일시에 열고 나가 네 방면의 적을 동시에 친다. 어느 한쪽만 치면 나머지 놈들이 방어를 강화할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내보내는 병력은 각 성문당 2만 명으로 정했다. 병부상 육수정은 무리한 반격보다는 계속 성벽을 지키며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자고 했지만, 장장익은 그 의견을 물리쳤다. 한군이 쏜 대화전에 맞아 궁궐까지 일부 타버렸는데, 뭘 얼마나 더 기다리란 말인가.
삼경(三更), 가장 밤이 깊고 모두가 잠들 시간에 불산성의 4대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그리고 요란한 포성과 함성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함성을 지르는 군사들의 물결이 사방으로 뿜어나와 적진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