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69
3부 587화(1469화)
4.
연주는 전쟁 중에는 내게 박문수를 돌려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매일 집안에 마련한 불단 앞에 엎드려 불공을 드리고 가끔 태후를 모 시고 원각사를 찾아가서 예불을 드렸을 뿐이다. 당연히 동대문 밖에 있는 새원각사 이야기다. 하지만 불산성이 함락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오자마자 당장 불공을 끝냈다. 그리고 혜련이와 함께 매일 아침 첫 기차로 제물포에 가서 종일 바다를 지켜보다가 마지막 기차로 집에 돌아왔다. 그랬더니 며칠 안 되어 이런 상소가 올라왔다.
“폐하, 공주께서 매일 기차를 이용하시는 바람에 철도도감에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공주께서 상민들과 같은 자리에 앉으실 수 없으니 그 칸을 통째로 비워야 하는데 이게 어쩌다 하루라면 몰라도 매일같이 열차 한 량을 빈 차로 움직이려니……”
“옥시 공주가 차를 타면서 찻삯을 내지 않기라도 하느냐?”
내 질문을 받은 사간원 소속 간관 윤승진이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아니옵니다. 시중드는 이 서너 명만 데리고 타시면서도 찻삯은 한 량분을 통째로 내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럼 공주가 딱히 못되게 굴지도 않았구나. 도대체 뭐가 문제냐? 여섯 명을 태우나 예순 명을 태우나, 철도도감이 벌어들이는 운임 수입은 똑같지 않으냐. 게다가 승객이 가득 탔을 때보다 차가 가벼워지니 석탄도 덜 들 게 아니냐.”
일단 딸내미의 역성을 들었다. 공짜로 타는 게 아니라면 철도도감으로서도 딱히 금전적인 손해가 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상 객차를 전세 내서 타는 셈일 뿐인데. 다만 사회적으로는 물의를 일으킬만한 일이기는 했다. 그렇지 않아도 늘 붐비는 기차를 타면서 열차 한 량을 독차지하는 건 말이다. 게다가 이런 말까지 나왔다.
“시보 몇 군데가 기사를 내었사옵니다. 공주라 하여 남들의 자리를 빼앗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이옵니다. 공주 자가께서 비록 돈은 낸다고 하시나, 그로 인하여 기차를 타려던 사람 쉰 명이 차를 타지 못하지 않사옵니까.”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철도도감 도제조 심기현을 불러 직접 지시했다.
“도제조는 들으라.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남들과 같은 자리에 타기 힘든 귀한 신분인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칸먁이를 지른 객차를 따로 운행하면 될 것을, 어이 한 가지 차량만 운행하여 이 사단을 만드는가.”
현재 운행하는 객차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60인승 보통 객차, 다른 하나는 유람용으로 만든 2츤 객차다. 이족은 좌석을 조금 여유 있게 배치해서 120인승이 아니라 100인승이다.
“일반 객차 꽁무리에다 칸막이를 쳐서 8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따로 만들어라. 그만하면 목수 두 사람이 하룻저녁만 일하면 다 만들 수 있을 터이고, 공주 때문에 객차 한 칸을 통째로 비울 필요도 없다. 평소에 일반 승긱을 태우는 데도 별 불편이 없으리라.”
이건 임시조치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래 세계 유럽에서 근대에 사용하던 객차처럼 4명이나 6명이 객실 하나씩 사용하는 객차를 만들어 1등칸으로 운행하면 된다. 아예 전세열차를 별도로 운행하거나 정규 열차 편에다 전용칸을 따로 달고 다니는 방법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주변에서 좋은 시선을 못 받는다. 나나 은이라면 몰라도 연주가 그런 일을 하면 말이다.
그 간단한 조치 덕분에 솟아오르려던 원성은 잦아들었고 철도도감은 운임을 더 받는 고급 객차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내게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막차를 타고 도성에 돌아온 연주가 바로 집으로 안 가고 경희궁에 왔기 때문이다.
“아바마마. 꼬박 1년을 아무 소리않고 기다렸사옵니다. 이제는 고령위를 집에 돌아오게 해주셔도 되지 않사옵니까?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죽을 고 생을 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부디 돌아오게 해주소서.”
연주도 처음에는 박문수가 곧 돌아오겠거니 하고 딱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혜주부 전투 소식을 듣고 나서는 더럭 겁이 난 모양이었다. 이제 충분하지 않냐며, 박문수를 그만 지 ㅂ에 보내달라고 애달프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런 호소를 보름 가까이 들었다.
“알겠다. 곧 돌아오게 하마.”
이런 대답으로 계속 결정을 미뤘지만, 이제 더 못 버티겠다. 박문수가 광동에 있을 만큼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그만 불러들여야지.
이미 언급했지만, 진남군 본진은 서나라 조정의 요청에 따라서 일단 내년 봄까지 광동에 계속 주둔한다. 그래서 박문수를 비롯해 본래 진위사 소속이다가 진남군에 편입한 군관 네 사람만 먼저 돌아오기로 했다. 둘은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10월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거다. 고령위만 부르는 게 아니라, 함게 서나라에 진위사로 갔던 무관들도 함께 불러오리라. 그러니 안심하여라.”
내 앞에 선 연주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더니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안도와 기쁨 때문에 우는 게 분명했지만, 갑작스럽게 울기 시작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전이옵니다. 공주 자가, 어서 울음을 그치시옵소서.”
다행히 함께 들어와 있던 혜련이가 얼른 연주를 달래서 수습했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혜련이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덕담을 건넸다.
“당연히 네 남편 단 정위도 돌아올 거다. 단 정위 덕분에 고령위가 무사했고, 전공도 많이 세웠으니 단정위도 그만한 포상이 있으리라. 행여 이 정교보다 뒤처지리라는 걱정 같은 건 하지 말거라.”
“송구하옵니다, 주상 폐하. 상이야 각자 세운 공에 따라 받는 것인데 어찌 소녀가 장수가 세운 공을 두고 왈가왈부하겠습니까.”
내 칭찬을 받은 혜련이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혜련의 남편인 세묜은 박문수를 따라다니며 보좌하느라 드미트리처럼 혼자 엄청난 공을 세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박문수를 지키고 위험한 처지에 빠지지 않게 한 것만 해도 얼마나 큰 공인가.
참, 이 정교(正校)는 당연히 보리스의 아들 드미트리를 말한다. 드미트리의 한명(韓名)이 이원응(李元雄)이다. 올해 나이가 만으로 스물일곱.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지라 군관도 못 되어 출세는 글러 먹은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이 몸으로 공적을 이뤄버렸다. 그러고 보니 세묜도 곰을 잡아서 은이의 목숨을 구하면서 몸으로 강무관을 통과해버렸지. 드미트리가 불산성 남문을 돌파한 공도 크기는 하다만, 황태자의 몸숨을 구한 공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 뒤로 어째 은이가 아니라 박문수만 따라 다니고 있긴 하지만.
하아, 은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우리 은이가 미주에서 곰 잡으로 다니던 그때만큼 건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5.
“올해도 또 풍년이라지요. 모두 아바마마께서 덕을 베푸신 덕분입니다.”
“선황께서 말씀하셨듯이 날씨는 덕과 상관이 없다.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느냐.”
핀잔을 들은 은이가 살짝 웃었다. 정원에 앉아서 한강을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한담을 주고받는 자리는 비교적 편안했다.
“신하들이야 임금의 비위를 맞추느라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만, 임금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날씨는 그저 천지의 섭리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 임금의 정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신하들과 다쿠기 싫어서 그냐저냥 넘기지만, 나는 본래 과학을 믿는 현대인이다. 게다가 천녀한테 ‘기우제 따위 지내봐야 천상에서는 신경도 안 쓴다’라고 확인사살도 당했다. 그런 내가 ‘임금이 덕이 없어 가뭄이 들었다’라는 따위의 말을 진지하게 들을 리가 있는가.
“하지만 백성들이 그리 믿고 있지 않사옵니까. 벌써 5년째 풍년이 들었고 외정에서도 큰 성과는 얻었으니 만민이 폐하의 선정을 칭송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허허,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그러느냐.”
서나라 내전 개입은 잘 마무리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들 앞에서 잘난 척하기는 아무래도 좀 쑥스럽다. 은이도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미소를 짓고는 슬며시 화제를 바꿨다.
“듣자 하니 서나라에서는 이번 난리를 계기로 번왕들을 다 폐한다더군요. 역시 분봉이란 함부로 할 것이 아닌 듯합니다.”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나머지도 얼마 안 거서 폐하겠지. 우리 대한의 열성조께서 황실의 일원을 번왕으로 봉하지 않으신 것도 이런 결말을 내다보셨기 때문이니라.”
반란의 핵심이던 광동왕부가 폐지된 거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광동왕부에서 벌을 피한 사람은 형의 목을 들고 투항한 장장헌과 그 일가족밖에 없었다. 박문수가 포로롤 잡은 광동왕부 부녀자 중에도 장장헌의 가족은 특별히 풀어주었다. 물론 벌을 피했다고 해서 광동에서 계속 살게 벼슬을 내려주거나 한건 아니다. 흥시제는 장장헌에게 일가와 함께 성도로 올라오라고 명했다. 성도에서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게 된 거다.
“아바마마. 혹시 그자는 난이 일어나도록 부추겼다가 적절한 시기에 광동왕의 등을 찔러 난을 진압하고 자신이 광동왕 자리에 앉은 생각이었던 건 아닐지요.”
“그랬을 수도 있지. 다만 자신이 계획한 바보다 사태가 더 급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미처 행동에 옮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장장헌이 정말 그런 속셈이었다고 가정하면, 광동군이 성도에서 온 관군과만 싸웠다면 그 계획이 성공했을 가능성도 크다. 관군은 ‘역도를 제거’한다면 싸움을 멈출 명분이 생기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광동왕부 자체를 적으로 삼았으므로 왕이 바뀌어도 의미가 없었다. 아마 장장헌은 복수하러 나선 우리 총구가 자신을 향하지 않게 하려고 참았으리라. 형을 배반하려는 계획을 정말로 미리 세워놓고 있었다면 말이다.
“운남왕부가 폐지된 거야 운남왕이 워낙 천치처럼 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어찌 귀순한 광서왕부까지 폐지된 것입니까? 진남대도독 악종기가 사면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지요?”
“너는 듣지 못했겠다만, 그 죄가 워낙 커서 어쩔 수가 없었느니라. 물론 서게가 번왕들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하고 있기도 했지만.”
악종기가 사면을 약속하기는 했다. 하지만 장장권은 운남왕과 마찬가지로 군령을 어겼다. 후송 형주군이 광동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북쪽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으면서, 형주군이 광서로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광서로 돌아가 버린거다. 심지어 그건 오보였다.
“장수가 군령을 어겼으니 어지 죄가 작겠느냐. 게다가 그자는 패륜의 죄까지 지었다.”
악종기가 공표한 바에 따르면 광서왕 장원호를 살해한 장본인이 바로 장장권이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니면 막 갖다 부 ㅌ인 핑계인지는 나도 모른다. 숙청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장장권에게 부왕을 죽일 동기가 있기는 했다. 장원호가 이번 내란에 임해서 원체 우유부단하게 굴었으니, 옆에서 보다가 속이 터졌을 공산은 충분히 있다.
게다가 악종기에게는 장원호를 꼬 그렇게 비참하게 죽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실제로 그 암살 사건 때문에 광서 전체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던가. 그 사건으로 누가 득을 보았는지 생각하면, 아무래도 나도 장장구너이 진범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처음에는 인척이라 해서 광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장장권이 관군 쪽으로 편을 바꾸면서 인질로 처지가 바뀌었던 광서왕부 부녀들이 대역죄인의 일족으로 또 졸지에 위치가 바뀐 거였다. 그래서 우리 전리품 신세가 되었고 말이다.
“광서왕의 세자는 보위에 탐을 내어 부왕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르고 그 죄를 아우에게 뒤집어씌웠으니 어찌 왕의 자리에 앉겠느냐. 이번에 서나라 황실이 대대적으로 내부 정리를 제대로 하는구나.”
여섯 번왕 중 가장 세력이 큰 세 왕이 일거에 쓸려나갔다. 남은 세 번왕 중에서 귀주왕은 이번 반란을 진압하는데 전력을 다해 나섰고, 섬서왕은 애초에 봉작이 번왕일 뿐이지 황제 밑에서 장수 노릇을 하고 있다. 둘 다 봉지도 작다. 당장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파주왕은…..그냥 생각이 없다. 아예 봉지고 뭐고 다 날렸으면서 여전히 주지육림에 빠져서 산다. 내가 흥시제였으면 광동왕보다 파주왕부터 쫓아냈을 것 같구먼.
“피해가 크기는 했으나, 서제는 꼭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보이옵니다. 그대로 둔 채 시간이 더 지났으면 여러 번왕은 점점 더 성도로부터 멀어졌을 것이고, 장차 아예 분립했을 공산이 크지 않겠습니까.”
나와 은이가 주고받는 대화를 옆에 앉아 듣고 있던 영이가 살짝 끼어들어서 자기 의견을 냈다. 버릇없는 ㄴ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공적인 자리도 아닌지라 나무라지는 않았다.
“네 말이 옳다. 우리 태손의 생각이 무척 깊구나.”
영이도 벌써 만으로 열셋이다. 보니 머리가 슬슬 굴러가기 시작한다. 장차 보위에 올랐을 때의 마음가짐 같은 것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가르칠 때가 되었다.
“장차 네가 임금의 자리에 올라도, 절대 형제나 지차 자손에게 분봉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서나라에서 일어난 난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필히 내란으로 이어지느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할바마마.”
디에고를 술루국왕으로 봉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내가 디에고를 내 적법한 아들로 공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황위를 계승할 권리가 아예 없으므로 그 머나먼 변방에서 번왕 노릇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승권을 가진 황족이 번왕 자리에 오른다면, 그건 분명한 내전이다. 미주왕이나 누손왕, 대남왕 같은 것들이 제위를 차지하겠다고 군사를 일으켜 한양으로 밀려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 갑자기 왜 장조 때 꾼 그 꿈 생각이 나는 걸까.
내가 이끄는 반란군 때무네 한양이 불다가가 되었던 그 꿈을 떠올리니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오늘 처리할 업무도 남았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 좀 불편해져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은 그만 가봐야겠다. 태자는 몸ㅁ을 추스르는 데 힘쓰거라. 어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느냐.”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 어서 낫도록 하겠습니다.”
은이는 요즘 음식을 잘 소화하지못하고 피로를 쉽게 느낀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거의 끊지 여러 해 되었는데도 몸이 딱히 회복되지 않았다. 요즘 은이가 마시는 술은 제사 때 입에 대는 제주(祭酒)밖에 없다. 내방으로 돌아오는데 왠지 한숨이 났다. 내 귀한 아들, 벌써 서른여덟 살이나 먹었어도 여전히 내 눈에는 어리기만 한 낸 아들이 나보다도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내 명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리하고 싶구나…..”
천녀 그 망할 년 혹시 안 나타나려나. 그러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내 이번 생에서의 수명을 은이에게 넘겨주고 보위도 넘겨주는 수명거래라도 시도해 볼 텐데. 하지만 아무리 한숨을 쉬어도 그 망할 년은 내가 죽기 전에는 안 나타나는 걸 알고 있다. 천녀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건 나한테 남은 수명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년을 만나도 내가 거래할 수명 따위는 하나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니 입맛만 쓰다.
이런 날이면 상희가 부럽다. 우리 아들이 아픈 모습을 안 봐도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