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7
1부 147화
– 19 –
“추후로 각 관장이 자기 관내에 귀양을 온 죄인을 예방하는 행위를 금한다. 그 출신이 어떠하건 죄인은 죄인일 뿐인데, 어찌 관장이 죄인을 찾아 예우한다는 말이냐!”
조선시대를 통틀어보면 유배를 가야 했던 이들 중에 정말로 죄를 지었다고 할 만큼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들도 많다. 18년이나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 25년이나 각지를 떠돈 윤선도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는 진짜 죄를 지었다기보다 조정 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에 패한 때문에 일종의 추방형을 받은 사례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 귀양이 풀려 중앙정계로 복귀할지 모르고, 지방관들 입장에서는 중앙정계에 끈을 만들 수 있는 귀한 기회니만큼 여러 면에서 배려하곤 한다.
문제는 인사를 가거나 물자를 제공하는 수준을 벗어나서 ‘동조’를 하는 경우다. 내가 보기엔 이번 역모도 갑산부사가 완원군에게 지나친 ‘배려’를 하면서 사태가 급격하게 커졌다.
만약에 갑산부사가 완원군 주변을 엄격히 단속했다면?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며 편지까지 전하는 사태를 사전에 저지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를 방치하고 끝까지 옹호한 덕분에 갑산부사 자신도 목숨을 잃고 가족은 북변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선비를 예우함은 수령으로써 마땅한 도리이옵니다. 귀양을 온 죄인이라 해도 그동안 이룬 학문조차 사라지는 법은 없으니, 귀양지에서 사람을 만나 어울림은 굳이 제약하지 마소서.”
이렇게 정면으로 내 명령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내 처남밖에 없다. 아, 불러오지 말 걸 그랬나. 다른 대신들도 필요하면 쓴소리 잘만 하는데.
“귀양을 가서 훈장 노릇을 하거나, 고을 선비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을 살림을 책임지며 죄인을 통솔해야 하는 관장을 만나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말이다. 임금 대신 고을을 다스리는 관장이 임금이 벌한 죄인과 어울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촌구석으로 귀양을 간 선비들이 글이나 학문을 가르치는 건 뭐 그 지역의 전체적인 교양을 끌어올리는 일이니 좋다. 악명(?) 높은 조광조 같은 경우에도 무오사화 때 자기 동네로 귀양을 오게 된 어떤 사람한테 학문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 그게 누구더라?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서 조광조는 누구한테 학문을 배워 어떤 성격을 가지려나. 무오사화 건으로 걸려든 자들은 모조리 울릉도에 갇혀 있으니 조광조를 가르치지 못할 테고, 누구한테 배우고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나중에 과거 보러 오거든 뽑아서 한번 내 스타일로 잘 키워 볼까? 유능한 행정관료로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면 스승은 바뀌어도 기질은 그대로여서, 아무도 다루지 못하는 거친 말같이 되려나.
“사복시 제조가 하는 말이 일리가 없는 바는 아니나, 이번 역모에서 갑산부사가 완원군과 손을 잡고 가담한 정황이 명확한 이상 관장이 죄인과 소통하는 행동은 금함이 옳다. 양식이나 거처를 구하는 데 있어 도움을 주는 정도는 가하나, 직접 만남은 앞으로 절대 금한다!”
작년 역모사건 이후로 역모와 연관을 지을 수 있는 사안에서는 반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왕조국가에서 역모만큼 큰 죄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헌데 올해는 봄인데 왜 이리 날씨가 찬 것이냐. 곧 4월인데 이리 추워서야 농사가 제대로 되겠느냐? 권농을 위해 월초에 대규모 특사까지 했는데 어이 이리 춥단 말이냐? 계속 날이 차니 곡식이 냉해를 입을까 걱정이 된다.”
죄인을 풀어준다 해서 농사가 딱히 잘 될 리는 없다. 다만 기껏해야 잡범에 불과한 자들을 굳이 잡아놓고 있으면서 행정비용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농촌에 약간이나마 일손을 보태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까놓고 말하면 내 자비심을 보이는 쇼지 뭐.
굳이 이유를 더한다면 오늘내일 하는 인수대비의 건강을 기원하는 불사의 일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뭐, 일종의 방생이랄까.
“전하, 올해는 4월에 윤달이 있어 계절이 조금 늦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크게 염려치 말고 마음을 편히 드시옵소서.”
“그러한가. 그렇다니 다행이로다.”
이쪽 세상에 온지 10년째인가? 그래도 아직 이 음력 달력이 익숙해지질 않는다. 하루 정도 붙는 것도 아니고 한 달이 통째로 붙는 윤달도 그렇고.
“왜국에서 또 사신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비전주 평호우진 비주 태수(肥前州 平戶寓鎭 肥州 太守) 원의(源義)가 또 토산물을 보냈습니다.”
그건 또 누구야. 아 생각하기도 귀찮다. 어차피 안 만날 건데.
“알겠으니 섭섭지 않게 동래부에서 잔치나 열어 주어라.”
이번 달에만 아마 네 번째지 싶다. 이 태수 저 태수가 보내는 선물에 대해서 답례품을 챙겨 보내고 잔치를 베풀어주자면 사실 이쪽은 적자다. 조공무역이라는 게 원래 그렇긴 하지만.
“며칠 뒤 살곶이에서 하기로 한 열병식은 준비가 잘 되고 있느냐?”
임사홍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건 군무고, 마땅히 병조판서가 나서야 할 일이니까.
“도총관 박원종이 맡아 충분히 준비를 갖추었사옵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믿겠다.”
원정을 결정하고 나서 반 년 가까이 연습시켰다. 웬만큼은 숙달이 되었겠지.
– 20 –
살곶이 벌판이 깃발과 함성으로 가득 찼다. 깃발이 움직이는데 따라 대열을 이룬 군사들이 신속하게 대형을 변환했고, 그에 따라 진형이 형태를 바꾸었다. 이열횡대로 나란히 선 조총영 군사들 뒤에서 내금위 출신 군관이 호령했다.
“발포!”
탄환은 미리 재어놓았다.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자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수백 정의 조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연이어 울리는 총성과 함께 표적으로 세워놓은 널빤지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다음 사격을 위해서 군관이 호령했다.
“세총(洗銃)!”
발사한 후에는 총열 내에 낀 탄매, 화약찌꺼기를 닦아내야 한다. 바로바로 닦아내지 않으면 나중에 작동불량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화약(下火藥)!”
줄지어 선 군사들이 기름종이로 된 탄포를 이로 찢고 총구에 발사용 화약인 신약(身藥)을 부었다. 아, 13단계나 되는 조총 사격과정을 일일이 따라가면서 구령에 따라 하나씩 읊으려니 이것도 지친다. 그냥 움직임으로 따라가자.
조총수들은 총구에 부은 화약을 삭장(朔杖, 꽂을대)으로 다지고, 총구 가운데로 원추형을 한 미니에탄을 떨어트려 넣었다. 구경보다 작은 미니에탄은 굳이 꽂을대로 눌러주지 않아도 총열 밑바닥까지 바로 내려갔다. 그 위에 기름종이 뭉치가 들어가 탄환이 흘러내리지 않게 했다.
그 다음은 점화용 화약접시에 점화용 화약인 선약(線藥)을 붓는 과정이다. 불이 잘 붙도록 고운 가루로 된 선약을 통에서 접시에 붓고, 총을 흔들어서 선약이 화문(火門)을 통해 심약과 섞이게 한다.
선약이 쏟아지지 않도록 화문을 닫는다. 불이 붙어 있는 화승을 용두에 끼운 뒤 다시 화문을 열자 발사준비가 끝났다. 여기까지 대략 1분이 조금 안 되게 걸렸다. 군관이 호령했다.
“준적인(准賊人), 발포!”
실전이라면 달려오는 적병을 향해 쏘겠지만 지금은 훈련 중이다. 총구는 이번에도 전방에 세워져 있는 널빤지를 향했다. 그 위에는 야인과 왜구의 화상이 그려져 있었다.
일제히 불을 토하는 조총소리가 또 한 번 주변을 울렸다. 화상을 그려 놓은 널빤지에는 또 수많은 구멍이 뚫렸다. 바람이 불어서 초연이 사라지고 ‘적군’이 뚜렷하게 보일 때쯤 군관이 마지막으로 호령했다.
“거창, 돌격!”
“이야아아아!”
마지막 구령이 떨어지자 조총을 쏘고 난 군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손에 들린 조총 끝에는 길이가 한 자는 족히 되는 소켓식 총검이 빛을 내고 있었다. 마지막 탄환을 쏘고 난 뒤 대기하는 동안 장착한 것이다.
백 보 앞에 있는 ‘적진’에 도착한 군사들은 줄지어 있는 널빤지 적군들을 연달아 총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모든 널빤지가 부서지자 그 자리에서 군사들이 환호했다.
“좋아. 많이 숙련되어 있구나. 하지만 장전 속도가 너무 오래 걸린다. 지금보다 좀 더 빨리 장전할 수 있도록 연습을 더 시켜야겠다.”
어린갑으로 무장하고 이 시범을 총괄하고 있는 박원종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나도 30초 안에 재장전을 마친단 말이다! 명색이 조총수라면 나만큼은 해야지!
“다음 과정을 진행하여라.”
장대 위에서 기다리니 방금 시범을 보인 부대는 물러가고 새 부대가 등장했다. 삼열횡대로 늘어선 군사들은 신호기가 휘날리자 신속하게 탄환을 쟀다. 모두 장탄을 마치자 인솔군관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 1열에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전방으로 총을 쏘았다.
방아쇠를 당긴 병사들은 지체 없이 자기 뒤에 있는 두 명을 지나서 맨 뒤로 갔다. 그리고 즉각 탄포를 찢어 총구에 화약과 탄환을 넣고 사격 준비를 했다. 2열, 3열에 있던 조총수들이 차례로 총을 쏘고 뒤로 왔을 때 1열은 두 번째 탄환을 날릴 준비가 끝나 있었다.
약 10여분 만에 1열부터 3열까지의 각 조총수들은 미리 예정한 대로 3번씩 총을 쏘았다. 쉼 없이 날아드는 탄환에 맞아 표적이던 널빤지는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음, 좋다. 이리 연속으로 탄환을 퍼부으면 어떤 적이 범접할 수 있겠느냐.”
삼단철포라고 많이들 말하지, 조를 나눈 연속사격. 3발을 한꺼번에 쏘나, 한 발씩 차례로 쏘나 똑같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만, 연속으로 날아드는 탄환이란 게 주는 위압감이란 건 무시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전술도 훈련을 하도록 했다.
“모두 전하께서 베푸신 성덕입니다.”
박원종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군례를 올렸다.
“저들도 모두 전하의 군병이니 전하께서 내리신 총을 들고 어찌 열심히 쏘지 않겠습니까.”
박원종은 지난번 대마도 원정 때 당한 창피를 이번에 갚겠다는 듯, 정말 악착같이 훈련에 임했다. 내가 들어보니 사수가 표적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면 피가 나고 알이 백이도록 연무장 바닥을 굴렸다고 한다. 얼어붙은 바닥을 구른 사수들은 이를 갈기 마련이었고.
“그럼 다음 차례입니다. 여봐라, 신호기를 올려라!”
기라졸이 신호기를 흔들자 연속사격 시범을 보인 조총수들이 또 물러났다. 이번에 나타난 건 목제 포가에 올라앉은 소형 야포 3문이었다.
“전하께서 명하신 바에 따라 제작한 야포이옵니다. 이제부터 차례로 철환, 조란환, 차대전을 발사하겠사옵니다.”
이 야포는 보병전에서 화력지원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었다. 포이(砲耳)를 달아 바퀴가 달린 유럽식 포가에 얹었는데, 이 포가는 발사각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무게는 90근(48kg), 포가를 합쳐 봐야 200kg도 안 되기 때문에 사람 몇 명만 있어도 끌고 다닐 수 있다.
최대사거리는 차대전을 쏠 때 1km 가량이다. 철환은 그 ⅔쯤 날아가는 것 같고, 정확도는 좀 더 떨어진다. 산탄인 조란환은 100개를 한꺼번에 쏠 수 있는데 사거리는 가장 짧다.
사실은 뭔가 멋지고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적당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크고 엄청난 이름을 붙이기에는 포 자체가 너무 작아서 안 어울리고. 그래서 그냥 야포라고 부르게 했다.
조선에서 불랑기를 크기에 따라 1호에서 5호까지 제작했던 일을 생각하면서, 나중에 더 큰 야포를 배치하면 진짜로 야포2호라고 부를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올해는 갑자년이니까, 그냥 갑자야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좋다. 이걸로 하자.
내가 포 이름을 생각하는 사이, 시범을 보이러 나온 야포들이 잇달아 불을 뿜었다. 차대전 한 발이 명중하자 한 자 두께에 달하는 널빤지가 그대로 관통되면서 쪼개졌다.
철환은 줄지어 세워놓은 통나무들 중 하나를 맞혀 넘어뜨린 다음,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좌충우돌했다. 볼링공이 핀을 날리듯 철환에 맞은 통나무 기둥들이 넘어갔다. 산탄인 조란환 세례를 받은 허수아비 일군은 사방으로 지푸라기를 흩날리며 전멸해버렸다.
강력한 화력에 놀란 조정 중신들의 탄성이 장대 위아래에서 터져 나왔다. 나도 솔직히 시범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조총 보급에 먼저 신경을 쓰느라 대포 쪽은 늦게 관심을 두었는데 제법 쓸 만한 결과품이 나왔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포와 총을 함께 사용하여 적진을 공격하겠습니다.”
마지막 시범은 중군이 조총과 야포로 적진을 제압하는 사이 좌군과 우군이 양쪽으로 펼쳐 적을 반포위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기동과 사격,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원활하게 전개되었다. 반격하는 적이 없으니 실전적인 훈련이랄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수고하였다. 오늘 열병에 참석한 군사들에게 상급을 나누어주고, 술과 고기를 주어 실컷 먹고 마시게 하여라. 그리고 며칠은 푹 쉬게 해주어라.”
저 군사들 모두 생전 처음 총을 잡았으리라. 그런데 겨우 반 년 만에 저렇게 능숙하게 총을 다루는 걸 보니, 박원종이 그동안 얼마나 군사들을 굴려댔을지 알 만하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원종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군례를 올렸다.
“예, 전하.”
“방어책이 부족한 듯하다. 명나라 군대는 몽골과 싸우면서 수레를 이용한 방벽을 만들어 큰 효용을 보았다 하던데, 우리는 그런 방안을 생각지 않느냐?”
어떤 훈련이든 가장 중요한 절차는 사후강평이다. 군사경험이 있는 대신들과 함께 둘러앉아 오늘 훈련 결과를 놓고 토의하며 개선점을 찾았다.
“우리 총이 비록 4백 보 떨어진 적을 쏠 수 있다 하나, 적 기병이 질주해 오면 그동안 고작 한 발을 쏠 수 있을 뿐이다. 삼연사를 한다 해도 쏠 수 있는 탄환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총창 하나를 믿고 조총수들을 기병과 싸우게 할 수는 없는 터, 다른 수단이 있어야 하리라 본다.”
니마차 원정에서 활동할 주력은 기병이다. 하지만 보급기지를 확보하고 치중을 운반하는 건 보병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요지를 점거하고 적 기동을 제한하는 역할도 보병이 맡게 된다. 그렇다면 여진 기병들이 이들을 기습하는 상황도 상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명군은 대개 들판 한가운데서 적과 조우했기에 적이 다가옴을 보고 수레를 움직여 방벽을 구축할 여유가 있었습니다만, 우리 군사들이 움직일 북변은 숲과 산이 많아서 대비할 시간이 짧습니다. 또한 길이 없어 말과 역군(役軍)이 주로 치중을 나르겠기에 수레도 없습니다.”
특진관 성준이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왕년에 북방을 제패한 노장다운 태도였다.
“적이 우리 치중을 해하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 기병으로 하여금 보급로 주변을 오가면서 적도들이 근접하지 못하게 함이 낫습니다. 우리 조총군이 오늘 낮에 시범을 보였듯이 대오를 구성해서 적과 싸울 일은 많지 않으리라 보이옵니다.”
하긴 여진족들은 대군을 편성하기도 쉽지가 않다. 저들은 여러 부족이 힘을 합쳐야 대군을 편성할 수 있는데, 약탈원정을 할 때는 연합군 편성도 쉽지만 공격을 당할 때는 어렵다. 여러 부족들이 힘을 합쳐 싸우기보다는 각자 가족과 재산을 챙겨 도망칠 궁리부터 하기 때문이다.
“신이 보기에 오늘 도총관이 보인 시범은 야인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오를 갖추어 맞선 적과 대진(對陣)한 상황에서의 싸움을 상정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야인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은 아군이 대오를 형성할 틈도 없기 쉽습니다.”
역시 성준은 노련한 장수다. 아니, 야인들과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다 떠올릴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대감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까지는 조총을 능숙하게 다루게 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기본적인 진법과 총 다루는 연습에 노력을 쏟아 그리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야인 토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북변의 특성에 맞춘 조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원종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성준을 비롯한 여기 있는 신하들 중에는 평락사 멤버는 없다. 이들에게 저 조총대가 상정하고 있는 진짜 가상적은 명나라 철기나 왜군 장창병대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소.”
변명이 통한 모양이다. 성준은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조총수를 충분히 확보하기 전까지는 창으로 무장한 군사들을 조총수 앞에 배치하여 적이 근접할 때를 대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조총에 총창을 꽂았다 하나 창보다는 길이가 짧고, 기병이 달려오면 제대로 저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극균의 지적이었다. 하긴, 유럽에서도 초기에는 화승총병이 창병에게 엄호를 받았다지? 조선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임진왜란 후기 삼수병 제도를 실시했을 때도 창과 칼을 쓰는 살수가 포수를 엄호했다고 국사시간에 배웠고.
“특진관의 말이 옳다. 도총관은 정예한 창수를 골라 조총수와 함께 편성하도록 하라.”
“예, 전하.”
그래, 이런 분위기 좋다. 도로를 정비하라거나, 도성 길거리의 오물을 깨끗이 치우라는 지시 따위는 필요한 조치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하지만 전쟁은, 정복은…남자의 로망 아닌가!
솔직히 남자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지야 않겠지만, 꿈 정도는 꿀 수 있지 않은가.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가을에는 출병한다. 제발 그동안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일어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