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76
3부 59화(1476화)
19.
“자, 여기 술 한 잔 받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허허, 너무 그러지 마시오. 우리는 처남.매부 사이인데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오.”
생각난 김에 처남들과 따로 주연을 한번 열었다. 현직 국상인 민지원과 5년 전에 퇴직한 둘째 처남 민지상을 불러서 말이다. 큰처남 민지훈은 안타깝게도 작년에 눈을 감았다. 분위기를 좀 더 즐겁게 하려면 이들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정호찬과 보리스, 탈라스, 바실리, 조경신도 불렀다. 현직 백위영장인 바실리를 빼면 모두 퇴직한 올드보이들이다.
“이렇게 모이니 무인년 때 일이 생각나옵니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지요.”
조경신이 웃었다. 그도 어느새 환갑을 막 넘긴 나이, 불타오르는 잠저를 탈출하며 연이어 화살을 날려 주변을 에워싼 반군들을 쓰러트리던 젊은이도 이제는 후덕한 몸에 머리가 허연 노인이 되었다.
“그때는 국상께서도 걱정이 크셨지요?”
“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그저 집에서 떨고만 있었소이다. 여기 형님만 군사를 거느리고 폐하를 따라 싸우셨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날 밤에 함께 목숨을 걸었던 사이다. 조경신의 선창으로 그때 일을 떠올리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직접 나가 싸우지는 않았다지만, 내 처남들도 죽을 뻔한 건 사실이었다. 장희재가 재빨리 호위병을 보내 민씨네 저택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반군이 민씨네를 들이칠 위험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내 처가가 위험을 벗어난 건 다음 날 해가 뜨고서였다.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도원수 권 대감이 있었으면 할 이야기가 더 많았겠지요.”
광동에 가 있는 권훤도 그때 동대문 수문장으로 있으면서 출세의 발판을 잡았다. 권훤이 돌아오면 꼭 다시 모여서 한잔하자며 둘째 처남 민지상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참장은 요즘 뿌듯하겠구려. 장남이 대공을 세웠으니.”
“감사합니다, 대감. 다 폐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민지상의 칭찬을 들은 보리스가 허허거리며 점잔을 뺐다. 저 녀석도 예의를 차리는 삶을 배운 지 45년이 되니 저런 너스레도 떨 줄 아는 구나. 물론 목소리가 작아지지는 않았다.
“동생들은 똑똑한데 맏형이라는 놈이 강무관도 못 들어가는 돌대가리라 걱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싸움질이라도 좀 할 줄 알아서 앞길을 챙기니 다행입지요.”
보리스는 자식이 꽤 많다. 미주에서 맞은 전처 소생이 1남 2녀, 후처인 장옥정 소생이 2남 2녀다 덤으로 장옥정이 시집올 때 데려온 예왕 소생인 의붓딸까지. 물론 딸들은 시집을 간 지 오래고 장옥정 소생 아들 둘은 다 강무관을 나와 군관으로 복무 중이다. 그러고 보니 그 장옥정도 벌써 만으로 쉰다섯이다. 도성 전체를 뒤흔들었던 젊은 시절의 미모는 이제 많이 바랬지만, 같은 나이대 부인네들 중에서는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인이다.
“그나저나 권 대감은 대체 어떤 미인을 낚았답니까.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광동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미녀중에서도 최고를 권권이 골라잡았다는 소문은 이미 도성 안팎에 다 퍼진지 오래다. 권훤네 집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별 신경 안 쓴다. 문관이건 무관이건 도성을 떠나 지방에서 근무할 때 관기나 민기와 정을 통하는 건 흔한 일이다. 권훤 역시 이미 그런 전력이 수차 있는지라, 권훤의 처가 딱히 눈꼬리를 치켜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적당히 관계하다 떼어놓고 오는 것과 아예 집으로 데려오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도 딸 같은 나이의 미인을 말입니다.”
“게다가 권 대감은 부인이 독실한 천주교도라 집에 첩을 들이기 어려울 텐데 말이지요.”
술자리에서 제일 좋은 안줏거리중 하나가 남의 뒷이야기 아니던가. 왁자지껄하게 권훤의 첩 문제를 두고 떠들다가 조경신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혹시 그 서녀(西女)가 천주교도라 노비 신세에서 구해주려고 일부러 고른 건 아닐까요? 집에 데려와 부인에게 맡기면 측인지심에서라도 잘 돌봐줄 테고 말입니다.”
정말 엉뚱한 이야기였기에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다. 포르투갈 상관이 있는 마카오 때문에 광동 지역에 천주교 신자가 일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설마 그런 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리가 있겠는가.
실컷 웃고 나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미주에서, 또 아직 자유로운 잠저 시절에 겪었던 여러 사건에 관한 추억이 이어졌다.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었다. 상희와 올렝카가 있던 시절, 내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건강하고 귀여웠던 시절이다.
“우리 앞으로도 가끔 모여서 그때 이야기를 하세나. 오늘처럼 술잔도 나누고. 옛이야기를 나누니 참으로 즐겁구먼.”
“폐하. 신은 인제 그만 빼주시옵소서. 신의 나이 이미 팔순입니다. 집밖에 나와 다니기도 힘드니, 부디 집에서 손주들과 소일하며 편히 지내게 하여주십시오.”
정호찬이 태연한 표정으로 삐딱한 소리를 했다. 본의가 뻔히 보여서 피식 웃었다.
“누가 들으면 짐이 그대를 괴롭히려고 불러낸 줄 알겠구려. 그리 느긋한 태도로 수화주를 홀짝이고, 숟가락으로 심어 알젓을 퍼먹는 사람이 내 부름에 응하기 힙겹다고 하면 그 말을 누가 곧이듣겠소?”
수화주(水火酒)는 증류주인 화주(火酒) 중에서도 최고로 순도가 높다. 마치 맑은 물처럼 보이고 진짜 물처럼 맛도 향도 냄새도 없으면서 불을 붙이면 붙을 만큼 독한 술이다. 사실, 이거 보드카다. 보드카도 원래 ‘생명의 물’이라는 뜻 아니었던다. 원래 북방에서 만드는 화주는 감자나 싸구려 잡곡을 원료로 해서 빚는다. 도수는 높으나 맛은 형편없고 그래서 값도 싸다. 괜히 군대에서 병사들한테 보급품으로 주는 게 아니다.
그런데 표트르가 보내준 카자크 병사 중에 보드카를 잘 빚는 인원들이 있었다. 그놈들 중 후금 내전에 종군했다가 다쳐서 군대를 그만둔 녀석들이 호구지책으로 술장사를 시작했고, 자기들이 빚은 술을 ‘수화주’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다만 시중에서 큰 인기는 없다. 앞서 말했듯 향도 없고 맛도 없어서 호주가(好酒家)들은 그따위 물건이 무슨 술이냐고 혹평한다. 하지만 남몰래 마셔야 하는 학생이나 군인들한테는 향이 없어 숨기기 쉬운 보드카가 아주 인기가 좋다. 일종의 틈새시장을 뚫은 셈이다.
심어(심어)는 첩갑상어다. 즉, ‘심어 알젓’은 바이칼호나 흑룡강에서 어획한 철갑상어알을 소금에 절여 만든 캐비어를 가리킨다. 이것 역시 캐비어에 익숙한 카자크 출신 전역병들이 제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철갑상어 알젓 자체는 원래 조선에도 존재했다. 한반도 토종 철갑상어의 알로 명란젓처럼 만들었는데, 철갑상어가 작아서인지 딱히 맛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카자크들이 북방산인 큰 철갑상어의 알로 만든 알젓은 훨씬 맛있었다. 그래서 바로 녀석들을 내수사로 영입했다.
“폐하. 신이 바깥 행보가 쉽지 않은 것과 심어 알젓이 맛이 좋은 건 서로 상관없는 문제 아니옵니까? 신하 된 도리로서 폐하께서 내리시는 술과 음식을 사양하는 건 실로 큰 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면 웃고 넘기는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만난 5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호찬은 늘 유들유들하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
“그 귀한 알젓을 계속 맛보고 싶으면 짐이 호출할 때 제꺽 입궁하게나. 그러면 그 알젓을 사발로 퍼줄터이니.”
캐비어가 비싸고 귀하다고 하지만, 내 최고의 총신에게 배부르게 먹여 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려고만 하면 이순신의 집에 설고를 보내줬듯 캐비어를 보내줄 수도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정호탄이 아무래도 캐비어만 받아먹고 얼굴은 내밀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폐하, 기왕 이런 자리를 만드실 거면 동궁에 있는 양 공도 부르지 그러셨습니까?”
“부르고야 싶네만, 그 사람은 태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네. 동궁에서 먹고 자며 늘 태자의 신변을 돌보니, 어찌 술이나 마시자고 부르겠는가.”
양소목도 분명 미주에서부터 따라온 이쪽 그룹이긴 하다. 하지만 양소목은 ㉰씬?은이를 수행하며 그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얼굴이나 보자고 부르기 미안할 만큼 말이다.
“자, 이번에는 태자가 어서 몸을 추스를 수 있기를 빌며 다들 조용히 한잔하세나. 대한의 훗날이 태자에게 달려 있으니 말일세.”
언이의 건강을 비는 건배가 조용히 오갔다. 술잔을 내려놓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김 상군.”
“예, 폐하.”
언제든 명을 받들 준비를 하고 기다리던 지밀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자네도 어주 한 잔 받게.”
“폐,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밀상궁이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것도 내 나름대로는 확실히 생각해보고 한 일이었다.
“자네도 여기 이씨는 이들처럼 내 잠저 시절부터 함께 지내던 사람이 아닌가. 이건 태자를 위해서 마시는 술이니, 거북해하지 말고 받게나.”
김 상궁은 33년 전, 내가 미주에서 막 귀국했을 때부터 옆에 둔 사람이다. 형황이 보내준 내수사 노비였는데, 무척 착하고 성실했다. 게다가 얼굴도 예뻐서 나와 상희가 무척 아끼는 아이였다. ‘연화(蓮和)라는 이름도 지어줄 정도로 말이다.
노비 신분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풀렸지만 대궐에 들어온 뒤에도 상희는 이 아이를 옆에 두고 무척 신임했다. 상희가 여태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이 아이를 제조상궁으로 임명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말이다. 나도 궁녀 중에는 이 아이를 가장 믿고 있을 정도다.
“거북해하지 말고 받게나.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자네를 잘 알고 있으니, 자네가 지금 짐이 내리는 술을 받는다고 하여 방자하다고 여길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야. 받게. 어명일세.”
지밀상궁은 엄청나게 주저하면서 술잔을 받았다. 그리고 잔을 살짝 입술에만 대고는 얼른 일어서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갔기에 너털웃음을 웃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처남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20.
외척이란 참 양면적인 존재다. 군주와의 사적인 인연으로 세도가가 되어 국정을 농단하는 사례도 있지만, 군주의 친위세력으로서 왕권을 얻고 다지는 데 공헌하기도 한다. 굳이 다른 나라 사례를 들 것도 없다. 원래 역사의 조선만 해도 그 두 가지 사례가 전부 있다. 전자의 최악의 사례가 19세기 내내 이어진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일 것이고, 후자로는 태종 이방원의 집권을 도운 여흥 민씨 세력이 있다.
다만 후자의 여흥 민씨는 자기 공헌에 대한 대가를 받아 권세를 누리지는 못했다. 외척이 발호하는 꼴은 절대 안 보겠다고 결심한 태종이 작정하고 처가를 두들겨 부쉈기 때문이다. 태종의 장인이던 민제는 화병이 나서 죽었고, 네 명이나 되는 처남들은 몽땅 처형당했다. 태종은 자기 처가만 박살 낸 게 아니었다. 개국공신이었던 세종대왕의 처가 청송 심씨도 박살을 냈다. 그런 강경한 조치 덕분인지는 모르겟으나 조선은 백여 년 동안 외척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종때 문정왕후의 파평 윤씨가 득세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문저왕후가 사라졌다. 그 뒤로 외척이 딱히 정치적인 주도권을 쥔 적이 없다. 역대 임금들이 다들 확실한 정통성을 쥐고 제대로 권력을 승계하니 친위세력 확보를 위해 외척을 중용해야 할 필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척이 설치는 건 결국 임금이 그 쪽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나도 민씨 집안에 기대긴 했지만-성친왕 그놈이 옛날에 해놓은 수많은 패악질 탓으로 하도 지지하는 세력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다행히 장인인 민성윤도, 세 처남도 모두 인격적으로 존중할 만한 사람들이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말이지 로도 맞은 처갓집이다.
그래도 임금의 외조부와 외숙부들이 조정 실세라면 외척 세력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은이가 보위를 이어받기 전에 이미 외조부는 죽었고 외숙부들도 하나는 죽고 하나는 은퇴했고 마지막 하나도 은퇴할 때가 되어간다. 민씨 가문이 국정을 농단할 위험은 낮다. 다음 대에서도 외척이 설칠 위험은 크지 않다. 내가 일부러 은이를 세력 없는 집안으로 장가를 보내지 않았던가. 어디 은이뿐인가? 영이네 처가도 세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둘 다 명문가이기는 해도 황실의 지원 없이 혼자서는 절대 못 일어설 집안들이다.
“폐하, 그래도 명색이 태자 전하의 사돈인데 적당한 벼슬을 내리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알겠다. 마침 경기감영을 옮기는 사업이 순조롭지 못하니, 이건도감(이건도감) 도제조를 맡기면 되겠구나.”
태자의 사돈, 즉 영이의 장인은 별벼슬이 없으나 그 부친인 유명홍은 외무대신까지 지낸 사람이다. 그만한 배경이 있으면 감영을 옮기는 일정도는 감독할 수 있으리라. 그동안 경기감영은 서대문 밖에 있었다. 하지만 원래 설치되어 있던 곳은 수원이고, 도성 바로 옆으로 온 건 세조 대다. 그래서 논의 끝에 다시 수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 작업이 지금 진행되는 중이다.
감영 이전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건, 수원에 있던 기존 읍성을 완전히 허물고 다시 쌓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짓는 수원 화성은 경기감영 소재지이자 유사시에 서울 남부를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서, 그동안 축적한 축성 기술이 총동원될 예정이다. 안에 행궁도 짓는다.
“행궁은 지나치게 호화롭지 않아야 한다. 올라온 시방서를 보니 그럭저럭 만족스러운데, 혹 공사 도중에 자재를 바꾸어 더 호화롭게 꾸민다거나 할 필요 없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승선들에게 지시를 다 마치고 나니 그냥 뒤로 누워 쉬고 싶어진다. 하지만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으니 그럴 수도 없다.
“북방 지역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사업은 잘 되고 있는가.”
질문을 받은 도승선이 정중하게 답했다.
“내무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양강(兩江) 이북에 있는 만주 땅은 흑룡강 이북 북변을 제외하고 6개주로 나뉜다. 이를 양강 이남처럼 13도로 나눈다는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한 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내무부에서 표를 올려 고하기를, 요서주는 건주 양국과 접하는 특별한 지역이니 그대로 존속하고 나머지 5개 주만 10개 도로 재편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옵니다.”
“알겠다. 그저 그 과정에서 혼란이 없도록 주의하라.”
만주에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도를 설치하고 군현을 우리 식대로 두어야 완전히 본토의 일부로 흡수할 수 있다. 행정체계나 기타 등등을 다르게 하면 할수록 만주는 우리하고 다른 땅이라고 공언하는 것박에 안 된다. 만주에 사는 원주민들이 그곳 환경에 따른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거야 그자들의 삶이니까 우리가 뭐라고 할 필요 없다. 하지만 법률과 행정은 우리 본국과 같이하며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만주는 우리 한민족의 고토이자 앞으로도 떨어트릴 수 없는 대한의 영토니까.
지금도 원주민들은 군역을 통해 자신이 대한의 백성이고 임금의 신하임을 확실히 깨닫고 있다. 앞으로 군역 외에 보통교육도 실시하게 되면 한층 더 깊은 소속감을 지니게 되리라. 아직 그게 되려면 좀 멀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