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85
3부 603화(1485화)
7.
전날 마신 술이 좀 과했는지 마리가 지끈거린다. 궁녀가 가져온 꿀물 한 그릇을 시원하게 들이킨 조형서가 고개를 한번 내젓고는 편히 자리를 잡았다. 태자가 찾아올 시간이었다.
“태자 전하 듭시오!”
“들라 이르라.”
태자 조호덕은 셋째 아들이다. 황후 소생도 아니었다. 자라며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조형서에게는 황후를 비롯한 여러 비빈에게서 낳은 아들이 11명이나 있었고, 그중에서 눈에 띄는 아들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후송의 역대 황제 중에 여색을 전혀 밝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조 조승복부터가 후궁에 70명이 넘는 비빈을 두었다. 그 몸에서 얻은 아들만 해도 서른 명이 넘었고, 후계자 자리를 두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시기에 서나라에서 그랬듯이 황자들이 대놓고 칼을 휘둘러 죽고 죽이는 내란을 벌이지는 않았다는 정도다. 왜 그랬냐고? 그야 다른 사람이 대신 경쟁자들을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황자들을 죽인 장본인은 바로 그들의 아버지, 태조 조승복이었다.
태조는 수시로 군대를 끌고 친정을 나갔다. 남진하는 건주군과 동진하는 서군, 아직 후송 조정에 복속하기를 거부하는 지방 토호 등 싸울 상대는 차고 넘쳤다. 조승복은 이런 적들을 상대로 미친 듯이 싸웠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물론 가끔은 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승복은 자기가 성장한 것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 자기 후계자를 키웠다. 황자들이 13세만 넘으면 가차 없이 전장으로 끌어냈다. 적장자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적장자였던 조인걸은 건주군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고, 그 아래 아들인 조인승은 동정호에서 수전을 치르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외에도 여러 황자가 부황을 따라, 혹은 홀로 일군을 맡아 출진하여 싸우다가 명을 달리했다. 진중에서 병사하기도 했다. 황제 자신이 친정에 나서는 걸로도 모자라 황자들까지 싸움에 끌고나가니 신하들로서는 몸을 사릴 재주가 없다. 조승복이 싸움에서 거의 패하지 않았던 데는 이렇게 솔선수범해서 진두에 서는 행동이 크게 한몫했다.
하지만 후궁에서는 난리가 났다. 황후를 비롯한 비빈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낳은 아들을 제위에 앉히려고 노리고 있었는데, 그 귀한 자식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황의 손에 밀려 싸움터로 내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나 내밀고 공적을 챙기는 자리라면야 환영이다. 하지만 황제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자기 아들들을 일반 군사들과 같이 사지에 밀어 넣었다. 군사들이야 환호했으나 비빈들에겐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부황을 따라다니며 전공을 많이 세울수록 제위에 가까워진다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공을 세우겠다고 설치다가 전사해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다. 그리고 보위에 욕심이 없는 비빈이라 해도 자기 자식이 전장에서 죽는 건 꺼렸다. 당연히 다른 황자들이 전장에 나가는 동안 자기 아들은 어떻게든 황도에 잡아두려고 기를 썼다.
태의를 매수해서 자기 아들이 갑옷을 걸치지 못할 만큼 약골이라는 진단을 받아내는 건 보통이다. 일부러 부황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를 짚는가 하면, 병약하다고 과시하기 위해서 침소를 아예 벗어나지도 않는 황자도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골병이 들기도 했다. 개중에는 다른 방식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는 비빈도 있었다. 군중(軍中)에 자객을 심어서 황제의 총애를 두고 다투는 경쟁상대의 아들을 암살하고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는 거다.
이렇게 진중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죽어 나간 황자가 열 명이 넘었다. 조승복이 죽었을 때 아직 어려서 싸움에 나가지 않은 황자가 여섯 명이었으니, 대략 4할이 비명횡사한 셈이다. 홍광제 조인선은 적삼자였다. 형들이 줄줄이 전사하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전공을 세웠고, 부황을 따라 종군하면서 군대 내에서 확고하게 기반을 쥐었다. 남은 황자 중에서 서열로도 가장 위였고, 실력과 인망이 있으니 태자 자리는 자연스럽게 조인선에게 돌아왔다.
스무 명이나 되는 형제들은 혈통과 실력을 겸비한 조인선에게 감히 맞서지 못했다. 암살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객이 도리어 조인선에게 당해버렸다. 암살을 교사했던 후궁은 사지가 찢겨 시장에 내결렸고, 그 소생 황자는 폐서인되어 일선에 군사로 보내졌다. 다만 조승복은 조인선을 태자로 봉한 뒤에도 서슴없이 조인선을 싸움터로 내몰았다. 그저 이제는 일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칼을 휘두르지는 않아도 되었을 뿐이다.
제위를 물려받은 조인선은 더 이상 친정에 나서지 않았다. 무관이 되어 각 지방에 내려가 있던 자신의 이복형제들에게도 황도로 돌아와 학문을 정진하는 데나 힘쓰라는 명을 내렸다. 나라가 세워진 지도 이미 35년. 이제는 후송도 제법 나라 틀이 잡혔고, 굳이 황실이 직접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랬듯이 전장에서 공적을 세워 군심(軍心)을 얻은 자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킬까 봐 우려한 탓이었다.
역시나 선뜻 명을 따르지 않는 형제들이 있었다. 조인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금군과 금의위를 동원해서 망설이는 태도를 보인 이복형제들을 몽땅 체포했다. 그리고 역적이라고 선포한 뒤 곧바로 참수형에 처했다. 그 일가붙이도 몽땅 폐서인해서 출궁시켰다. 그가 부황에게 배운 건 제위를 지키려면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선의 따위는 없으며, 믿을 건 내가 손에 쥔 힘뿐이다. 형제도, 자식도 믿을 수 없다. 당장 부황부터도 자신을 태자로 봉하고도 전장에 내보내지 않았던가. 물론 감시를 붙여서.
어쩔 수 없었다. 후송은 사방이 적이다. 부황이 모든 주변국에 입조해서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한 건 분명 패기 넘치는 행동이기는 했다. 하지만 외교적으로는 최악의 조치였다. 주변 여러 나라 중 단 하나도 응하지 않았을 뿐더러, 적대국만 잔뜩 늘었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안 된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 건주의 철기가 남쪽으로 달려 내려올지, 서나라 함대가 장강을 따라서 동쪽으로 짓쳐들어올지, 조선군이 해안에 상륙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누굴 믿다가는 만사 끝장이었다.
누구도 믿지 않다 보니까 나누지 못하고 쌓이는 울분은 술과 여색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부황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조인선도 비빈을 서른 명은 두었다. 아들도 열서너 명쯤 얻었다. 그래도 조인선은 부황처럼 자식들을 전장으로 내몰지는 않았다. 이제 나라 틀이 잡힌 건 사실이기도 했고, 부황 시절처럼 자주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식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대신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전공이 아닌 성적으로 자식들을 평가했다.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아들이 서장자였던 조광훈이었다. 조인선이 태자로 책봉되기도 전에, 부황을 따라서 출진했다가 우연히 만난 시골 향신의 딸에게 시침을 들게 했는데 그때 생긴 첫아들이다. 하지만 법도대로 하면 조광훈은 황후 소생 적자들보다 계승 순위가 한참 밀렸다. 여기서 기막하게 운이 트였다. 어느 여름, 두 적자가 하나씩 열병에 걸리더니 하나는 죽고 하나는 낫기는 했는데 열 때문에 천치가 되어버렸다.
황후는 ‘그래도 적자를 황제로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인선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천치를 제위에 올리다니, 말도 안 되는 망발이었다. 조인선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신하들을 모은 다음 서장자인 조광훈을 태자로 봉하고 제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황후와 황후의 본가가 반발했지만 조인선은 무시했다. 대신 자기 처가보다 더 격이 높은 가문의 딸을 태자비로 들여 조광훈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태조 조승복이었다면 이럴 때 처가 사람들을 서슴없이 싹 죽여서 처가를 멸문시켜버리고 후환을 없앴으리라. 하지만 조인선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확실하게 태자에게 후계자 자리만 넘어가면 될 게 아닌가. 부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제위에 오른 조광훈은 조부나 부친과는 다른 성품이었다. 이제는 무(武)가 아니라 문(文)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지난 2대에 걸쳐 철권으로 나라를 다스린 선대의 방침을 바꾸었다. 덕분에 신하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만 한 가지는 조부나 부친과 똑같았다. 조광훈 역시 미녀에는 사족을 못 썼다. 하지만 직첩을 내리고 온갖 보물과 특권을 안겨준 비빈의 숫자는 ‘고작’ 10여 명밖에는 안 되었고, 자식은 아들딸을 합쳐 단 8명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조광훈이 제위에 오른 지 단 4년 만에 총애하는 후궁 장씨와 동침하다 복상사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겨우 향년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재위한 기간도 짧으니 후궁도, 그 소생 자녀도 많을 수가 없다.
부황이 죽었을 때 적장자인 조형서는 겨우 세 살이었으므로 태자 책봉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후인 진씨는 자기 친정의 위세를 이용해서 여론을 조성, 적장자인 조형서를 어려움 없이 제위에 올렸다. 하지만 세 살 난 어린아이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태후가 섭정이 되어 대신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어린 황제가 권력에 관심을 덜 품게 하려고 일찍부터 미인들을 주변에 잔뜩 붙여서 여색에 빠지게 했다. 자기가 권력을 놓을 날을 늦추려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조형서는 모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보내주는 미녀는 마음껏 즐겼지만 거기 빠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후가 건주의 침공을 맞아 실수를 범하자 그 기회를 잡아서 친정을 선언했다. 마침 나이도 거의 성년이 된 참이었다. 그리고 온갖 난관을 겪었다. 조형서는 여색을 좋아했고 재위도 길었다. 그러면서도 직첩을 내린 비빈의 수는 열 명을 넘지 않았다. 지나치게 색에 빠져 판단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증조부와 조부는 후궁의 비빈들을 노리개로 취급하고 그 몸에서 나온 자손들도 도구처럼 다뤘다. 부친은 역으로 지나치게 이것저것 퍼주어 큰일을 낼 뻔했다. 다행히 일찍 죽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부황이 한황처럼 장수했으면 호부의 금고가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너무 지나쳤다. 그래서 조형서는 중용을 지키도록 노력하면서 자식들에게도 골고루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들만 해도 11명씩이나 되고 보면 모두에게 같은 만큼의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자인 조호덕이 조형서의 눈에 들어온 건 적장자를 포함한 두 아들이 병에 걸려 하나씩 요절한 뒤였다. 조형서는 그제야 이 셋째 아들의 꼼꼼한 성품을 새삼 깨달았고, 몇 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시켜본 뒤 황후 소생이 아닌데도 태자로 봉했다. 세밀한 부분까지 너무 지나치게 파고드는 점은 조호덕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홍사옥과 마치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던 첫째 조호승이나 지능이 확실히 떨어지는 통에 절대 나라를 다스리게 두면 안 될 사람이었던 둘째 조호열과 비교하면 단점도 아니었다.
만약 14세로 죽은 조호승이 무사히 장성해 황제가 되었다면, 홍사옥과 의견이 맞아 함께 중원일통을 다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형서가 생각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다음 대가 그동안 쌓은 과업을 지킬 순서라면, 조호덕은 적절한 관리자였다.
“그래, 건주에 양곡을 넘겨주자는 이유를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예, 폐하. 소자가 생각하기에 북적 놈들에게 곡식을 보 내주는 게 나은 이유는 그게 더 큰 피해를 예방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회하 이북 청나라 땅은 이번 가뭄으로 상당히 큰 손실을 보았다. 그 손해를 보충하려면 어디선가 양곡을 구해야 하는데, 곡식을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땅이 후송이다.
“그래도 놓아두면 그놈들은 필시 우리 땅을 노략질해서 부족한 식량을 벌충하려고 시도할 게 분명합니다. 차라리 그전에 미리 쌀을 주어 놈들이 얌전히 지내게 하는 편이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쌀값으로 말을 받아 전마도 보충하고 말이옵니다.”
“흠, 태자의 말이 틀리지 않구나.”
청나라에 흉년이 든 해면 국경에서 부쩍 충돌이 늘어난다. 후송이 사직을 일으킨 지 벌써 올해로 99년, 그동안 일이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추세가 확연했다. 놈들이 식량을 구하려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게 말이다.
“더불어서, 회하 이북에 사는 우리 유민(遺民)들이 폐하의 은덕을 깨닫고 비록 몸은 건주 오랑캐의 지배를 받을지언정 마음만은 부황께 바치도록 움직일 수 있는 방책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온 쌀인지 저들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데, 어찌 부황의 은덕을 모르겠습니까?”
“그게 태자 네가 말하듯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제껏 강남에서 화북으로 건너간 양곡이 몇 천만 섬은 될 텐데, 화북 백성들이 어디 짐을 따르겠다며 반란이라도 일으키더냐.”
화북 한족들이 오랑캐의 지배에 반발하던 것도 몇 십 년 전 이야기다. 놈들이 다소 숨통을 틔워주며 온정을 베풀자 곧바로 그쪽으로들 넘어가 버렸다. 심지어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호북을 입고 머리를 땋고 다닌다지 않는가. 기가 막힌 일이었다.
“화북 놈들은 이제 거의 오랑캐나 마찬가지다. 우리 백성이 아니다.”
조형서가 제위에 오른 지도 벌써 50년이 되었다. 그리고 청나라 황제들이 가혹한 통치를 완화하자 화북에 남은 한족들이 급격하게 태세를 바꾸는 꼴을 자기 눈으로 보았다. 그러니 청나라 내 한족들이 밀수한 쌀 따위에 감동하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헛된 기대는 하지 말아라, 태자. 우리 북벌군이 회하를 건너 개봉부를 함락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경까지 탈환하기 전에는 화북 백성들이 우리 편을 들어주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명심하겠사옵니다, 부황.”
조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조호덕은 이해가 빨랐다.
“하지만 태자 네가 제시한 첫 번째 이유는 옳은 말이다. 몰래 해야 하는 일이니…..금의위 쪽에 맡겨서 청나라에 쌀을 팔고, 군마를 들여오게 하면 되겠다.”
좋은 군마는 언제나 부족하다. 요즘은 불랑국인들이 배로 공급해주기는 하지만 관군에서 필요한 수량을 대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좋은 종마를 대량으로 구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 낫다.
“적이 흉년으로 고생할 때는 침공하여 무너뜨리는 게 원래 정석이건만, 그런 일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노략질당할 게 두려워 쌀을 보내려 한다. 참으로 서글픈 상황이 아니냐.”
조형서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호덕도 차마 부황이 한 말이 틀렸다고 짚지는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수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