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96
3부 614화(1496화)
1.
내가 기억하기로, 원래 역사에서 폴란드 왕위계승 전쟁이 터진 데는 루이 15세 탓이 컸다. 스타니스와프 1세의 사위였던 루이 15세가 자기 장인이 영토 없는 왕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상해서 장인을 폴란드 국왕으로 복위시키려고 했다고 말이다. 물론 카리스마가 없는 루이 15세의 개인적인 욕심만 가지고 전쟁이 일어났을 리는 없다. 프랑스 정부에서 폴란드 왕좌에 친프랑스 인사를 앉혀서 오스트리아를 괴롭히려고 생각한 고관들이 많았던 탓도 컸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쨌든 스타니스와프는 선거에서 이겼고, 다시 폴란드 국왕이 되었으나 스웨덴을 싫어한 러시아와 프랑스를 싫어한 오스트리아가 힘을 합쳐 아우구스트 3세를 밀었다. 아우구스트도 이들에게 지지를 얻느라고 온갖 선물과 약속을 뿌렸다. 마침내 양 세력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지만 스타니스와프는 왕위를 지키지 못했다. 애초에 이 계획을 꾸민 프랑스 고관들의 목적은 오스트리아를 조금이라도 더 괴롭히는 데 있었지, 스타니스와프를 진지하게 폴란드 국왕으로 앉혀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선전포고가 이뤄진 뒤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기는 했다. 하지만 스타니스와프가 애타게 구원을 기다리는 폴란드에는 단 한 명의 병사도 보내지 않았다. 전투는 이탈리아와 라인강 일대에서만 벌어졌다. 결국 스타니스와프는 러시아군에게 간단히 쫓겨나고 말았다. 양쪽 모두 제대로 작정하고 시작한 전쟁이 아니었던지라 전투는 곧 교착상태에 빠졌다. 딱히 타개책이 보이지 않자 양측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중재에 따라 전쟁을 끝냈다. 왕위는 아우구스트가 차지하고, 스타니스와프는 보상으로 로렌 공국을 받는 타협안이었다.
그 뒤로 폴란드는 쇠락의 길을 걷다가 세 차례에 걸쳐 주변국에게 분할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 운명을 피하게 해줄 생각으로 루시아에게 ‘네 딸이 폴란드 왕비 자리에 가면 어떻겠니’라고 권한 건데…..일이 왜 이렇게 번진 걸까.
「…..아바마마께서도 당연히 앙주 공작이 이기리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도 저도 우리 딸, 차레브나가 당연히 왕비 자리에 오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 어리석은 셰임의 귀족 놈들이 그 못난 스웨덴의 하인배를 국왕으로 뽑지 않았겠습니까…..」
루시아의 편지로 파악하니 저쪽 사정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아니, 앙주 공작이 뇌물을 30만 리브르나 뿌렸다면서. 게다가 알렉세이는 국경에 군대를 2만 명이나 보내 뒀고. 그러면 폴란드 귀족들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앙주 공작을 거부한 이유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36년 전 콩티 공이야 어디까지나 부르봉 방계였고 왕이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지만, 앙주 공작은 현재 프랑스 왕위계승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고위 왕족이다. 프랑스 본국에서 받는 지원이 자릿수가 다를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돈과 군대로 귀족들을 찍어눌러 절대권력을 확립하고, 폴란드에서 세습제를 정착시켜 셰임의 지위를 떨어트리려고 한다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기는 하다. 안그러겠다고 아무리 약속해도 허언으로밖에 안 보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놓고 떨어트려 버리면 뒷감당을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그 후과가 어떠할 지 빤히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폴란드 귀족들이 자존심을 세운 후폭풍은 컸다. 대기하던 러시아군이 곧바로 국경을 넘어 바르샤바로 진격했고, 스타니스와프를 지지하는 귀족들과 전투를 벌였다. 오스트리아는 이 사태를 보고 맹비난을 퍼부었고, 자기도 군대를 폴란드로 들여보냈다. 결국 두 나라는 선전포고를 했다. 이게 양력으로 작년 11월 말의 일이다. 5개월 전이다.
“정작 불랑국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프랑스도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는 했다. 하지만 그건 러시아보다 두 달이나 늦은 올해 1월이었고, 루시아가 이 편지를 보낸 2월 4일까지 프랑스군이 의미 있는 군사행동을 했다는 소식은 전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겨울이니까.’
당연히 루시아의 편지는 사돈댁인 프랑스 왕실에 대한 짜증과 분노로 가득했다. 이게 다 자기 친동생한테 왕좌를 마련해주려고 시작한 일 아니냐며, 형이 되었으면 당연히 전력으로 도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루이 16세를 힐난했다. 루시아로서야 보일 수 있는 반응이지만…..
“황후가 이리 노하는 모습을 보고 차르가 놀랐을 듯하다.”
“신이 보기에도 그렇사옵니다.”
박문수가 조용히 고개를 조아렸다. 내 측근 중에 가장 최근에 이쪽 식구들을 만나보고 온 사람이 박문수다 보니, 이런 자리에 동석시키기는 가장 자연스럽다.
“허나 차르도 황후를 그만큼 귀하게 여기기에 바로 군사를 내어 공주가 즉위하도록 도운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루스군이 그리 빨리 폴수국으로 진입하고 앙주를 국왕으로 추대했겠나이까.”
알렉세이의 명령에 따라 폴란드로 진입한 러시아군은 앙주 공작 지지파였던 폴란드 귀족 3천여 명을 소집했다. 그리고는 새로 투표를 진행하여 만장일치로 앙주 공작을 새 국왕으로 선출했다. 이게 작년 10월 중순에 있었던 일이다.
“왜 이렇게 성급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스타니스와프가 등극하도록 두고, 차기를 노렸어도 되지 않는가.”
내가 알기로 스타니스와프는 지금 56세다. 이 양반이 원래 역사에서 몇 살에 죽었는지는 몰라도 그만하면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을 텐데, 그동안 조금 더 기다리면서 폴란드 내에서 친불파와 친러파를 육성하는 시간으로 삼았어도 됐잖은가. 앙주 공작은 이제 겨우 23세니 시간도 넉넉하다. 솔직히 표를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젊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폴란드 귀족들이 보기에, ‘이 애송이는 본국에서 휘두르는 꼭두각시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이번 선거는 경험이었다고 치고 스타니스와프에게 넘겨주더라도, 좀 더 원숙하고 과단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자신을 갈고닦았으면 스파니스와프 사후에 열릴 다음 선거에서는 훨씬 유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 10년만 기다리면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일은 이미 일어났으니……”
알렉세이도 엔간히 자기 마누라한테 쥐여사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앙주 공작이 선거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군대에 진격 명령을 내렸겠지. 아무리 걔가 내 딸이라도 그렇지, 그 상남자 표트르의 아들내미가 어떻게 루시아한테는 오금을 못 펴는지 신기할 나름이다.
“폐하, 어찌하시겠습니까?”
질문이 나왔다. 대답할 것도 없는 일이라 그대로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기는 뭘 어쩐단 말이오, 외무. 비록 이번에 새로 등극한 폴수국왕이 내 외손녀 사위라 하나, 폴수국은 세상 반대편에 있으니 어찌 도와줄 방법이 없지 않소.”
루시아의 편지는 분명 내게 온 사신(私信)이다. 하지만 중요한 인접국인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했는데 그에 관한 사안이 조정에서 공유되지 않으면 그것도 곤란한 일인지라 편전에서 그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찌 대응할지를 논하고 있다.
앙주 공작을 폴수국왕으로 칭하는 건 알렉세이 쪽의 입장을 따랐기 때문이다. 알렉세이가 첫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명분으로 선거를 새로 해서 사위인 앙주 공작을 새 폴란드 국왕 루드비크 1세로 선언하지 않았던가. 우리야 어차피 남의 일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별 이의 없이 그쪽 발표를 따르고 있다. 앙주 공작이 이제 폴란드 국왕이다.
“소식이 오가는 정도라면 두 달 만에 오갈 수 있지만, 다른 도움을 주기에는 너무 멀잖소. 게다가 본가가 불랑국 왕실이고 처가는 루스국 왕실이니, 딱히 다른 도움이 더 필요하지도 않을 거요.”
걱정이야 당연히 된다. 꿋꿋하게 폴란드에 머물고 있다는 예카테리나의 안부도 걱정이다. 알렉세이와 루시아가 완전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오라고 불렀는데도 안 가고 있단다.
‘여기가 바로 제가 다스려야 할 나라예요. 제가 여기를 버리고 가면 누가 저를 여왕으로 인정하겠어요?’
이런 답장만 보내고 폴란드에 머물러 있는 딸 때문에 루시아는 속이 터졌다지만, 나는 그 배짱이 놀라웠다. 과연 저건 누구 피일까. 내 피일까, 표트르 피일까. 표트르도 배짱이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상남자였으니까 말이다.
“일단, 조정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할 일이 없도록 하시오. 폴수국은 우리나라 땅에서 만 리나 덜어진 이국(異國)이니, 어찌 우리가 일일이 상관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회의를 끝내고 침전으로 돌아왔다. 다만 박문수는 데려왔다.
“지금 루스에서 무엇이 가장 긴요할 것 같은가? 역시 돈이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앞에서 말했듯이 박문수는 러시아에 직접 다녀왔고, 거기서 꽤 오래 머물렀다. 현지에서 어떤 자원이 가장 가치가 있는지 잘 안다.
“돈을 보내주시면 그쪽에서 알아서 물자를 구할 겁니다. 용병도 고용할 수 있을 테고요. 공연히 동토(凍土) 건너에 짐과 사람을 보내느라 애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총이건 화약이건 식량이건,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굳이 여기서 말에 실어서 보내느라 낑낑거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던지라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옳은 말이다. 여봐라, 김 상궁. 당장 내수사 전수에게 전갈을 넣어 대령하라 명하라.”
“예, 폐하.”
시립하고 있던 연화가 허리를 깊게 숙여 절을 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다시 박문수에게로 고개를 돌리니 박문수가 막힘없이 진언했다.
“굳이 금은을 직접 보내실 것도 없습니다. 도중에 도적의 습격을 받을 위험함 크니, 훨씬 안전한 수단을 쓰심이 좋겠습니다.”
“짐은 잉글국 동인도회사가 발행한 어음을 보낼 생각이다.”
“실로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일단 10만 냥 정도 보낼까. 그만하면 영국 돈으로는 2만 5천 파운드쯤 된다. 그 정도면 예카테리나가 적당히 요긴하게 쓸 수 있으리라. 외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인 셈 치면 그렇게 부담되는 액수도 아니고.
“그만하면 적당한 액수일 듯하옵니다. 국왕의 본국인 불랑국에서 당연히 더 부담해야 할 것을, 폐하께서 다 떠맡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박문수가 한 말이 옳다. 앙주 공작 쪽의 군자금은 루이 16세가, 그리고 알렉세이가 대는 게 당연하다. 나야 이번처럼 성의만 보이면 되는 거고. 그나저나 참 다행이다. 올해는 작년처럼 작황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수확이 괜찮을 것 같으니 10만 냥이라는 큰돈을 외손녀 전쟁하라고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2.
지난 3년 동안은 좀 힘들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비가 안 내릴 수 있나 말이다. 그나마 우리가 철저히 대처한 덕에 경신대기근이나 을병대기근 수준으로 피해가 나오지는 않았다. 강과 우물에서 퍼낸 물을 농업용수로 돌리고 식량을 최대한으로 수입한 덕분이다. 두 가지 방법으로 최소 소요량을 어떻게든 맞추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도록 노력한 덕분에 아사자는 거의 없었다. 본국 13도와 북방 6주에서 집계한 아사자 수를 다 합쳐도 삼쳔여 명이 안 된다. 그만한 기근에 이만한 피해면 선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희생이 적다고 하여 가볍게 여겨서는 절대 안 된다. 이 종이위에 적어놓은 숫자 하나하나는 그저 숫자가 아니라 전부 사람이니라. 다들 부모처자가 있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생로병사를 겪는 사람이란 말이다.”
“알겠사옵니다, 할바마마.”
영이도 어느덧 만으로 17세다. 이제는 강무 때도 당당하게 갑옷을 입고 군사들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나를 닮았다고 칭찬할 만큼 외모도 부쩍 자랐다. 은이는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영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정에서 내가 신하들과 회의할 대도 종종 동석하게 해서 보고 들으며 배우도록 안배하고, 가끔은 의견도 말하게 한다.
“폐하, 태자께서 엄연히 자리에 계시는데 태손께 그리하심은 좋지 않을 수가 있사옵니다. 부디 조금 자제하시고, 태손께서는 편전에 들기보다는 시강원에서 공부에 좀 더 열을 쏟게 하소서.”
“내 간관들의 지적을 유념하겠노라.”
도찰원-사간원을 작년부터 도찰원(都察院)으로 개청했다-에서 올라온 상소에는 그저 간단히 답했다. 저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닌 게, 보위란 원래 물 흐르듯 아랫대로 내려가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그게 거꾸로 흐르면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태자(세자)가 아직 살아있는데 태손(세손)에게 보위가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영조가 원래 역사에서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도세자를 살려두고 정조에게 왕위를 남긴다면, 사도세자가 무슨 패악질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까. 만약 사도세자가 왕위를 내놓으라고 하기라고 했으면 정조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을 거다. 그래서 영조는 사도세자를 정식으로 처형하지도 않고 폐위하지도 않고 지극히 애매모호한 수법으로 죽게 한 거다. 그래야 자기 마음에 드는 세손에게 보위를 넘길 수 있으니까.
나도 은이에게 자연스럽게 보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은이가 도저히 낫지를 않으니 초조함만 더해진다. 은이는 기근 동안 경기도 일원을 돌면서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무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또 건강을 해쳤다. 피를 토한다거나 할 정도의 중병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활동은 못 한다. 기근에 지친 백성들을 위무할 대도 하루 돌아다니면 사흘은 쉬어야 할 정도였다.
요즘은 내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올때를 제외하면 거의 동궁 안에 누워서 지낸다. 그렇게 활동적이던 아이가 그렇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솟아 참기 힘들다.
“하바마마.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옵니까? 용안이 우수에 차셨사옵니다.”
“아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었다.”
은이가 아픈 만큼 영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를 확실한 후계자로 키워내야만 은이도 자기 뒤를 걱정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 간관들이 이건 예가 아니라고 난리를 치는데도 무시하고 영이를 편전에 들이는 거다. 이런 생각은 은이도 같다. 그래서 자리에 누워서나마 경연을 시행하고, 그 자리에 영이를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같이 수업에 임한다. 당연히 양쪽 경연관들이 함께 들어와서 경연을 진행하고, 수업의 부담도 두 배가 된다. 그래도 영이는 꽤 잘 버티고 있다.
“폐하, 하와국에서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렸사옵니다.”
“그래, 읽어보라.”
내 친구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친한 동생 같았던 카우이가 죽은 뒤로도 하와국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3대 국왕 자리에 오른 하상운(카이헤코아)도 왕 노릇을 꽤 잘하고 있다. 최지원이 열심히 가르친 덕인지 글도 꽤 잘 쓴다. 그런데 이번 국서는 좀 엉뚱했다. 문체 말고 내용이 말이다.
“멧돼지를 열 마리쯤 보내달라고?! 대체 그런 건 뭐하러 달라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