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98
3부 616화(1498화)
5.
원래 세계에서, 영국에서 처음 철도를 부설할 때 보면 시작하고 몇 년 걸리지도 않았건만 수십, 수백 km씩 노선이 죽죽 늘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평양까지 가는 노선이 이제 겨우 확정된 상태다. 경인선이 상업운행을 시작한 지 12년인데 말이다.
“지주들이 선뜻 땅을 내놓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임금이다. 명색이 사대부들의 우두머리다. 그런 내가 일제가 군용 철도라는 명목으로 경부선과 경의선을 부설할 때처럼 종잇장 하나로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잘 설득해서 내놓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논밭이나 택지 같은 경우에는 철도도감에서 적절한 매가(賣價)를 제시하거나 대토(代土) 제공, 주권 지급 같은 수단으로 쉽게 교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정지에 묘지가 있는 경우에는 교섭이 말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여기는 대한, 유교가 지배하는 나라였다.
“막무가내로 조상의 무덤을 파헤칠 수 없다고 하는데, 아무리 잘 설명하려고 해도 도저히 설득이 먹히지를 않는 경우가 잦사옵니다.”
지난 5년 동안 철도도감을 이끈 도제조 심기현이 머리가 팍삭 센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 문제와 비교하면 연주가 객차 한 량을 독차지하고 다닌 일 정도는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지극히 무엄하고도 불충한 언사이오나, 개중에는 ‘철도가 지나간다고 황릉을 이장하지는 않지 않사옵니까? 일개 백성이라고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조의 무덤은 우리 문중에서는 황릉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사옵니다.”
“무지한 놈 같으니.”
그놈 말이 맞으려면 철도가 황릉을 피해서 돌아갔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계획 중인 철도 노선에는 황릉 인근을 지나가는 구간이 애초에 없다. 그래서 ‘무엄한 놈’이 아니라 ‘무지한 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달랐다.
“폐하! 아무리 무지한 백성이라 하여도 감히 그런 무엄한 언사를 입에 담은 자를 용서할 수는 없사옵니다! 하물며 사대부라는 자가 그런 언사를 입에 담았다니, 절대로 용서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당장 죄인을 극형에 처하시어 황실의 위엄을 보이소서!”
“옳습니다. 극형에 처하셔야 하옵니다!”
여기저기서 그 건방진 놈을 처형하라는 소리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강경론도 마땅치 않았다. 안 그래도 철도 대문에 불평하는 이들이 아직 있는데 철도 건설에 반대하는 놈이라고 잡아 족치면 그때는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지 않는가. 아, 철도 대문에 불평하는 자들의 명분은 다른 게 아니다. 경인선 부설 때도 그랬듯, 땅이 흔들린다ㆍ기차 소리가 시끄럽다ㆍ주변에 불을 내면 어떡하냐ㆍ내 땅을 내놓기 싫다 등등이다. 감히 조상의 무덤을 옳길 수 없다는 자들이야 맨 마지막 부류에 포함이고.
이미 경인선 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조보와 시보가 연이어 기차의 효과를 기사로 실어 홍보하고 있어도 이런 반대론자들은 여전히 꽤 있다. 뭐, 20세기도 아니고 18세기니까 사회 전체가 기꺼이 철도 건설을 환영하는 게 도리어 더 이상한 일이리라.
“국상, 국상은 어찌 생각하시오?”
국상 민지원은 대답하기 전에 내 표정부터 살폈다. 함께 보낸 세월이 수십 년, 내 낯빛만 보면 내가 지금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낼 만한 사이다. 역시나 그가 꺼낸 대답은 내 심중을 정확히 꿰뚫었다.
“용서하시옵소서, 폐하.”
“용서하라고.”
“예, 폐하. 표현이 다소 도를 지나치기는 하였으나, 결국은 자기 조상을 섬기는 효심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러니 벌하더라도 가볍게 하시고, 앞으로는 그처럼 무엄하게 굴지 말라고 경고를 내리시는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이 문제는 사실 제대로 파고들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임금에게 무엄한 언사를 건넨 거야 당연히 잘못한 거지만, 그 기반에는 임금의 행동이 일반 사대부와 같은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벗어나도 상관없는지를 따지는 문제가 깔려 있으니까.
‘이거 딱 예송논쟁 아닌가.’
원래 역사에서의 예송논쟁에서 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는지를 두고 싸운 것도 하잘것없는 일이 아니었다. 전에 제상에 올리는 배 꼭지 방향 문제로 논란이 터졌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때도 언급했지만, 효종의 정통성이 걸려 있었다. 민지원은 민성윤의 아들로, 당연히 임금의 지위에 대한 사고는 그 부친을 따른다. 그리고 민성윤은 산당의 영수였던 송시열의 제자다. 당연히 이들이 보기에 임금을 다른 사대부들과 같은 단에 둔 저런 발언은 본질적으로는 잘못된 말이 아니다. 표현이 조금 지나칠 뿐이다.
더구나 나는 지금 공연히 상황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 챘으니 민지원이 안심하고 저런 말을 꺼낼 수 있는 것이고.
“아닙니다, 폐하! 어찌 황실의 일을 일반 잡인과 똑같이 취급할 수 있사옵니까. 혹시 장차 부설할 철도가 황릉 권역을 범한다고 하면 마땅히 노선을 틀어 지나가게 해야 함이 당연한 도리인데, 당연한 것을 가지고 그리 무도한 언사를 범함은 실로 대역죄를 범한 것이옵니다.”
예무대신 이종한 같은 이의 주장이 관학파 중에서도 좀 더 철저한 근황이라고 할 수 있는 남인(南人)의 의견이다. 이에 반해 북인(北人)은 관학파이면서도 이런 문제에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외무대신으로 있다가 좌참정대신이 된 이광좌가 좋은 예다.
“황실을 존숭하면서 그 예를 지극히 높임은 따로 강조해서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일입니다. 철로를 부설할 때 황릉을 피해 가야함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를 굳이 공표하여 시끄러운 자들이 입에 담게 만드는 건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옵니다.”
남인과 북인이 나뉘는 기준은 출신 기관이다. 남인들은 대부분 국자감(성균관) 출신이고, 북인들은 집현전 출신이다. 아무래도 후자가 좀 더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 산당 출신을 기반으로 하는 서인까지, 조정에는 크게 세 당파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들도 사람이니만큼 자기랑 가까운 파를 좀 더 챙기게 마련이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그래도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지는 않는다.
원래 역사에서도 각 당파가 늘 서로를 죽일 듯 당쟁을 벌인 건 아니었듯이, 이쪽 세계의 당쟁도 적당한 정책 대결 및 파벌 싸움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조 이래 역대 임금들이 확실하게 절대 권력을 쥔만큼 신하들이 전횡할 기회가 없어서였겠지 싶다. 당장 나만 해도 신하들이 뭔가 패거리를 지어 엉뚱한 짓을 구밀 기미가 보이면 그냥 두지 않는다. 형황도 그 약한 몸으로도 신하들을 휘어잡는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해치웠다. 그런데 무슨 붕당이고 당쟁이겠는가.
“철도를 놓는 일은 국가의 큰일이라. 그대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자가 지금 그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니냐. 도제조, 그리하여 결국 그 가문의 묘소는 옮겼는가?”
“예, 폐하. 지관(地官)을 구하여 새로 명당을 잡아주고, 이장에 필요한 비용까지 대주어서 겨우 이장하게 하였습니다.”
심기현이 그런 고생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철도도감에서 그런 식으로 이장해준 무덤이 수십 기(基)는 족히 되리라고 했다. 후손이 나타나지 않는 무연고 묘지는 간단히 이장해서 공동묘지를 조성했다.
“이리 남의 무덤을 파헤치게 했으니, 훗날 짐의 이름이 폭군으로 남겠구나.”
“폐하, 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폐하께서 이루신 위업이 한둘이 아니온데 어찌 나라를 위하여 한 일 때문에 그런 망령된 소리를 하는 자들이 있겠습니까? 그런 자들은 역적이라 할 수밖에 없으니, 마땅히 극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신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의자에서 내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이거 참, 입식 생활을 하는 양식 궁전으로 옮긴 지 몇 년이 되었어도 저 버릇은 없어지지 않는구나. 그냥 탁자 위에서 고개만 조아려도 될 텐데.
“그대들의 뜻은 알겠으니 그만 일어나 의자에 앉도록 하라. 아직 의논할 안건이 남았으니, 회의는 계속해야 할 게 아닌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지만 말이야 바른말 아닌가. 성친왕 시절의 개인적인 악행에 더불어서 말년에는 이유야 어쨌건 강제로 남의 무덤까지 파냈다. 이만하면 야담에서 악의 우두머리가 되기에는 충분한 조건 같은데. 철도가 얼마나 유용한지는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6.
현재 철도가 경인선이 개통 상태고 사북선이 공사 중이라고 하지만, 지금 전국에 철도가 정말 그 두 가닥뿐인 건 아니다. 그건 중요한 간선 교통망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국부적인 화물 및 여객 운송을 실시하는 짧은 노선이 적어도 10여 개 이상 존재한다. 대개는 탄광에서 석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운반하기 위한 노선이다. 탄광에서 가까이에 있는 나루터까지 깔려 있던 마차철도에서 말을 기관차로 바꾼 정도다. 이것만으로도 시장에 공급되는 석탄이 대폭 늘었고, 가격도 꽤 낮아졌다.
열기창 소재지인 평양, 대구, 해삼위에서도 이게 증기기관차 제작 및 선로 부설을 조금씩 시행하고 있다. 당분간 서북선 기착지가 될 평양에서는 당연히 남쪽으로 내려오는 선로를 깔고, 해삼위와 대구에서는 지역에서 나오는 산업 생산품과 원자재를 운반할 선로를 깐다. 그리고 이번 기근을 거치면서 조정 내에서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 합의된 사안이 있다. 바로 민간에서의 증기기관 제조 및 정비 허용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동안 신의 전임이던 공무대신 김대정이 폐하께 여러 차례에 걸쳐 상소를 올린바 있습니다.”
전임 공무대신 김대정은 3년 동안 이어지는 기근을 못 버티고 끝내 올해 초에 사직하고 말았다. 그 후임으로는 공무부 협판이던 최신일이 올라왔다. 그리고 조정에서 격렬한 논의 끝에 김대정의 청에 따라서 시행하게 된 증기기관 시장 개방에 관한 보고를 이어갔다.
“네 곳뿐인 열기창과, 그에 속한 공인(工人) 수백 명만으로는 기근을 맞아 전국에 산재한 수천 개나 되는 증기기관을 일이이 확인하고 점검 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비록 반발이 다소 있기는 하였사오나,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생각하옵니다.”
문제는 이미 전부터 있었다. 신규로 생산한 증기기관이 많아질수록 정비 수요도 늘었으나 그쪽 작업에 투입할 인력은 늘 부족했다. 게다가 탄광과 공장에 있는 기관이 우선이다 보니 농업용 수차를 돌리는 기관은 수리가 몇 달씩 밀리고 했다. 퇴직자들을 고용해도 모자랐다. 평년에는 그래도 어떻게 넘어갔는데, 기근이 터지면서 난리가 났다. 당장 물을 퍼 올려야 하는데 기관이 안 돌아간다는 호소가 빗발쳤다. 평소에 관리를 제대로 안 한 탓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김대정이 나가떨어진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다.
결국 공부에서는 도저히 관의 힘으로 이를 다 처리할 수 없으니 민간에서 기관을 만들고 또 수리할 수 있게 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당연히 조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다.
‘무종께서 기관을 만드신 이래, 타국에 절대 기관을 넘기지 말라 하신 바 있습니다. 헌데 이를 민간의 야장(冶匠)들이 멋대로 두들겨 만들게 하신다면, 분명 외국으로 흘러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흘러나갈 것이 두려워 싸안고만 있고 제대로 만들어 쓰지 못한다면 그 기술은 대체 무엇 대문에 있는 것입니까? 무종께서 남기신 유훈이 실로 중요하기는 하나, 당장 우리가 불편을 겪고 있으니 어찌 계속 지키겠습니까. 무종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선대의 유훈을 꼭 지켜야 한다는 파와 사정이 어려우면 부득불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파가 격론을 벌였다. 당연하겠지만 전자는 대개 남인, 후자는 북인과 서인이었다. 여기에서 한 마디 의견을 밝혀 보라는 내 명을 받은 영이도 한 마디를 보탰다.
‘민간의 야장들이 기관을 만든다 해도, 열기창에 있는 것과 같은 정교한 기계는 사용하지 못하고 간단한 틀과 공구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 고작일 겁니다. 그러면 열기창에서 만들듯 정밀하고 센 기관은 만들지 못할 테니, 유출된다 해도 약하고 적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작기계를 쓰기 힘든 민간 공장에서는 저출력의 소형 기관을 만드는 게 고작 아니겠냐는 의견은 일리가 있었기에 여러 신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공작기계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자들이 합류할 가능성을 빠트렸지만, 그때 영이는 겨우 열다섯이었으니 이해할 만하다. 태손까지 손을 들어주었으니 당연히 후자가 이겼다. 나도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를 한참 벼르던 참이었으니, 조정의 총의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기꺼이 공무부의 신청을 승인했다.
물론 사영 열기창-사기창(私器廠)이라고 줄여 부르면 어감이 좀 이상하겠지?-을 열고 싶은 자들은 알아서 시설과 자본을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기근으로 시중에 돈이 부족해진 상황임에도 여기 투자하겠다는 자들이 줄을 지었다. 최신일이 그 보고를 했다.
“지금 전국에서 사영으로 열기창을 열겠다는 신청이 쉰 건 가까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열기창에 복무하다가 퇴직한 이들이고, 전주(錢主)는 제각각이긴 한데 재무부에서 그 뒤를 캐 보니 대부분 송방 쪽에 연결된 자본이었습니다.”
“이 기근 중에 여윳돈을 쥔 자들이 그놈들 말고 누가 있겠느냐.”
일반인들은 기근, 즉 불경기일수록 씀씀이를 줄인다. 물론 돈을 버는 쪽은 이처럼 남들이 곤란할 때를 이용해서 잽싸게 돈을 굴리는 사람이다. 지금 증기기관에 투자하려는 녀석들도 모조리 그런 놈들이고.
“폐하. 이미 결정하였든, 아무리 작고 사소한 기관이라고 해도 나라 바깥에 팔아먹지 않을 자들에게만 사업을 영위하게 허락하셔야 하리라 사료되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팔지 않는다고 해도 조만간 유주에서 기관을 사 올 수 있게 된 테니, 기왕이면 그전에 우리 기관을 쓰게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전에 언급하지 않았던가. 영국에서는 이미 뉴커먼이 개발한 증기기관이 나와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이다. 프랑스에서도 자체 개발한 증기기고나이 완성 직전이다. 그러면 그 두 나라는 자기네가 만든 기관을 곧바로 외국에 팔기 시작할 거다.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다. 그때 동아시아 시장을 지키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미리부터 우리 기관을 널리 뿌려 시장을 선점해두는 편이 낫다. 영이 말처럼, 어차피 고성능 기관은 우리가 앞서 나가니까.
“신청한 공행 중 자본 조달 계획이 확실하고 기술자를 넉넉히 확보한 건실한 곳 중심으로 10개소만 우선 허가하라. 나머지는 운영되는 모습을 공무부가 감독하면서 추후 확대 여부를 정하도록 하고, 다만 나라 바깥에 파는 건 이미 논의했듯이 아직 금지하는 쪽으로 하겠다.”
공행(工行)은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회사를 말한다. 물건을 거래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면 상행(商行)이다. 은행(銀行)은 은, 곧 돈을 거래하니까 ‘은행’이다. 아무나 증기기관을 만들게 허락할 수 없는 건, 부실한 증기기관은 언제 폭탄으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걸 몸으로 겪은 경험자 아니던가. 앞에서 언급한 시장 선점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금지하는 건 두 가지 이유다. 둘 다 조정에서의 격렬한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이다.
첫째, 국내에서도 기관을 제작하고 정비할 수요가 부족한데 수출은 뭔 수출인가.
둘째, 어차피 유럽이 당장 아시아에 기관을 수출할 것도 아닌데 굳이 기술적인 치트키라 말할 수 있는 증기기관을 팔아먹을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당장에 종형탄을 쓰는 강선총도 절대 반출이 안 되는데, 증기기관을 수출하자는 말이 조정을 통과할 턱이 없지 않은가.
조정에서는 두 번째를 특히 중시했다. 나로서는 좀 아쉽지만, 만약에 수출을 허용하자고 우겼다면 조정에서 증기기관 시장 개방 건이 통과되는 어려웠으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최신일도 이를 잘 알기에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명백하게 금지했는데 증기기관을 밀수출하다 걸리면? 그야 영업 허가 취소에 감옥행이지. 우포청과 재무부 어사대가 할 일이 또 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