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499
3부 617화(1499화)
7.
한때 천하포도청이라고 불리다가 다시 원래 이름을 되찾은 우포청은 전국 단위 수사권을 쥔 대한판 FBI 같은 관청이다. 본래는 좌포청과 함께 도성과 경기도의 치안을 관리했지만, 그 권한이 강화되면서 전국을 활동 범위로 삼는 기관이 되었다. 존래 조선에서는 경찰권을 각 고을 수령이 행사했다. 수령은 임금을 대리하여 행정권과 징세권, 재판권, 군권 등을 행사했으며,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권 행사는 행정권에 해당하는 합법적인 행위로서 수령의 권한에 속했다. 현재도 이는 그대로다.
여기서 문제는 고을 경계를 넘나들며 범죄 행각을 벌이는 질 나쁜 범죄자들이다. 각 고을 수령은 자기 임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므로, 도적들이 고을 경계선을 넘어가면 마치 닭 쫓던 개처럼 뒤꽁무니나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경계를 넘나드는’ 범죄자에는 잠상이나 화적패만 있는 게 아니다. 본래 역사보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 수준이 고도화되니 당연히 경제 사범이 늘었다. 대놓고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이야 흔하고, 주가 조작이나 위폐 제작ㆍ탈세ㆍ횡령 같은 죄를 범하는 놈들도 수시로 나온다.
우포청 순검대가 전자를 잡는 데 전문화되어 있다면 재무부 감찰원은 후자를 잡는 작업에 전문화되어 있다. 그 전신은 개성부 형방 예하 포편국(捕騙局)-사기꾼을 편사(騙詐)라고 하는 데서 유래-이지만, 재무부로 전속된 뒤로 각 분야 전문 수사관들이 추가로 모이면서 이쪽 분야에서는 대한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되었다.
우포청이 FBI라면 재무부 감찰원은 비밀검찰국(Secret Service) 정도 되겠다. 왜, 금주법 시대에 시카고를 지배하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탈세로 엮어서 감옥에 넣은 그 사람들 있잖은가. 물론 아직 시대가 시대니만큼 우포청이나 재무부 감찰원이나 19세기나 20세기 수준 수사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양쪽 다 현재 대한의 사회 수준에서 모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인재를 모아놓았고, 그만큼 많은 죄인을 붙잡아 법무부 법정에 세우고 있다.
“아무리 잡아내고 벌을 주어도 비슷한 죄를 짓는 이들이 자꾸만 나타나니, 인간의 본성은 혹시 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옵니다, 할바마마.”
법무부에서 올라온 재판 기록을 나와 함께 읽던 영이가 탄식했다. 비슷한 나이에 똑같은 문서를 읽은 은이는 ‘이놈들을 모두 육시를 내야 한다’라며 분개했는데, 부자간이라고 해도 그 성품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 이런 데서 드러났다.
“순자가 성악편(性惡編)에서 이르기를, 인간의 본성이 애초에 악하여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하고자 하니 그것이 곧 선이라 하였습니다. 할바마마, 군주의 자리에 있는 자는 다스리는 백성이 악하다고 생각하고 다스리는 수밖에 없는지요.”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맹자는 모든 인간은 그 본성이 선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문제에 관해 퇴계와 고봉 사이에 오간 논변에 관해서는 너도 읽었으리라.”
“예, 할바마마.”
퇴계(退係)는 이황, 고봉(高峯)은 같은 시대 학자였던 기대승의 호다. 경성군은 그들 두 사람을 무척 아껴 우대했다지만, 나하고 만난 적은 없다. 내가 눈을 떴을 대는 이미 둘 다 죽은 뒤였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워낙 명성 높은 대유(大儒)였던지라, 그 이름들은 지금도 굳건하게 위상을 지키고 있다. 이들이 벌인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글 중 하나다.
영이도 은이처럼 이 글을 읽었다. 당연히 이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인간의 본성은 선한 듯하다, 악한 듯하냐.”
“소손의 생각에는…..인간의 본성은 역시 선하며, 이를 드러나게 하려면 끊임없이 가르쳐서 본래 가야 할 길은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잠시 고민하던 영이는 결국 맹자의 손을 들었다. 전에 은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은이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옳은 길로 가도록 계속 지도하고 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가르쳐야 한다는 목적에서는 일치하지만, 가르치는 동기는 다른 셈이다.
“폐하, 조회 시간이 다 되었사옵니다.”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의 차이에 관해 영이와 토론하는데 대전 내관이 조심스럽게 옆에 와서 아뢰었다. 탁상 위에 놓인 시계를 보니 확실히 시간이 다 되었다.
“남은 이야기는 내일 하자꾸나. 너는 경연 시간이 다 되었으니 서둘러 동궁으로 가보거라. 네 스승들이 기다리겠다.”
“예, 할바마마.”
‘동궁’이라고 해 봐야 완전히 다른 궁전은 아니고 그저 별채다. 다만 습관이라는 게 그리 빨리 바뀌지 않다 보니 이름은 동궁이라고 붙었다. 내 침실을 여전히 ‘침전’이라 하고 내가 신하들과 함께 국사를 논하는 회의실을 여전히 ‘편전’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이도 혼인하기 전에는 동궁 한편에 따로 침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원에 별채를 하나 새로 지어 태손궁으로 쓰고 있다. 태손빈인 유씨는 작년에 첫딸을 낳았고 지금 둘째를 배고 있다, 연말쯤 출산할 것 같은데, 과연 아들이려나, 딸이려나.
그나저나 애들이 요즘 하는 경연은 경연관이 두 배라서 부담도 두 배일 텐데 잘들 하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경연관들을 대전으로 불러서 수업 상황이나 좀 물어볼까. 일단 오늘치 국사부터 처리해 놓고서 말이다.
8,
도승선 이순홍이 서류를 잔뜩 얹은 쟁반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순홍은 이형준의 적자 쪽 손자로, 과거에 괜찮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맨 위에 있는 상소를 내가 손으로 가리키자 이순홍이 답했다.
“한성판윤 이용직의 상소이옵니다. 좌포청 문제로 폐하께 호소하고 있사옵니다.”
“또 좌포청인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원래 좌포청은 우포청과 함께 도성과 경기도의 치안을 유지하다가 전국을 관할로 삼는 광역 치안유지 기구가 되었고, 그러다가 다시 도성만 담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건 다 무인지변 때문이다. 무인지변 당시 반군의 주력이 된 존재가 한성부 나졸들이었다. 실질적인 전력은 수어청이 가장 강했다지만, 수적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낸 기관이 한성부였다. 그래서 한성부 순라군 자체가 폐지되고 한성판윤 대신 법무부가 직접 통제하는 좌포청이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는 반란 방지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쓸모가 있는 조치였다. 하지만 시정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문제에서는 상당한 비능률을 초래했다. 역대 좌포도대장 태반이 한성부와의 협조 따위는 개나 먹으라는 듯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성판윤은 경조윤(京兆尹)이라고도 불리며, 품계도 각부 대신과 같은 정2품이다. 하지만 포도대장 역시 협판급인 종2품이다 보니 겨우 한 단계밖에 차이가 안 난다. 게다가 지시도 안 받는 사이인지라, 한성판윤이 포도대장에게 힘을 못 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한성판윤을 상관 대하듯이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좌포도대장이라면…..오군대총관 장붕익이 대한북병사에 오르기 전에 잠시 그 자리에 있었을 때 정도밖에 생각 안 난다. 그 외에 다른 포도대장들은 한성부를 소 닭 보듯 무시하는 사례가 태반이었다. 장붕익이 포도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은 도성 내에서 검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이 있던 시기기도 하다. 그때 나는 상희가 죽은 직후라 멍해있어서 그런 일에는 딱히 관심도 가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그동안은 무인지변의 전례가 있어 한성부에 군사를 두지 않았으나, 이미 그 끔찍한 일이 터진 지도 30년이 넘었으니 같은 일이 또 터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사료 됩니다.”
벌써 30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무인지변은 여전히 황실과 조정의 치부 중 하나다. 340년 역사에서 단 한 번 일어난, 황족이 일으킨 진짜 역모였다. 이렇게 말하면 무인정사와 계유정난은 뭐냐고 하겠지만, 대한의 공식 역사 서술에 따르면 그 두 사건은 역모가 아니다. ‘사직을 안정시키고(靖社), 난리를 안정시킨(靖難)’ 의거였다. 그러니 무인지변이 황실과 연관된 첫 역모다.
그러니만큼 가담자에 대한 처벌도 일반 민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철저했다. 반란에 참여한 한성부 순라군, 금화군, 수어청은 모두 해체되었다. 장졸들은 그 직책과 책임에 따라 처형, 유배, 해직되었다. 일부가 천축에 보내져 새로 세운 공으로 죄를 사면 받았을 뿐이다.
순라군의 공백을 메우느라고 좌포청이 한성에 눌러앉았지만, 한성부 산하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혹시 한성부가 또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계속 법무대신 직속으로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이 우려가 현실이 된 적은 없었다.
“폐하, 이제는 한성부에 그 책임과 권한을 돌려주도록 하시옵소서. 이제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일도 없고, 설사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해도 도성 안팎에 주둔하는 충용한 군사들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신하들이 줄지어 한성부 측의 입장을 옹호했다. 사실 나도 한성부와 좌포청이 충돌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탓에 이제 슬슬 경찰권을 한성부에 돌려줄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던 참이라,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지난 30년 동안 한성부는 아무런 말썽도 없이 짐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대들이 말했듯이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제는 좌포청을 한성부 밑에 넣어도 될 듯하다.”
좌포청을 다시 예전 임무로 돌리고 한성부 산하에 순라군을 재창설하는 건 논외다. 양쪽 다 헛짓거리일 뿐이다. 30년 동안 그 일에 익숙해진 포도관과 포교, 포졸 수천 명이 있는데 뭐 하러 새 조직을 만들어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 삽질을 한단 말인가. 다만 한성부 내에서 좌포청의 위상은 과거 순라군보다 확 올라갈 듯하다. 본래 순라군은 정6품 형방 방장 밑에 있었건만, 좌포청은 협판급인 종2품 포도대장이 지휘하니까 말이다. 포도대장은 한성판윤 바로 아래에 있는 좌윤, 우윤과 동급이다.
“도성은 천하 고을 중 으뜸이니, 그런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사옵니다. 한성부에서 좌포청이 순순히 협조하지 않아 곤란하다는 상소문을 그동안 한두 번 올린 것이 아니온데, 폐하의 성지를 받들어 그 문제를 이제 끝낼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옵니다.”
국상 민지원을 비롯하여 다른 중신들 모두 찬동했다. 법무대신 신윤성은 자기 권한이 줄 생각을 하니 달갑지는 않은 듯했지만, 구태여 반대하지도 않았다. 좌포청이 한성부와 따로 놀면서 벌어지는 비효율을 자기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한성부와 좌포청에 조서를 내려 한성판윤과 좌포도대장을 불러들여라. 당사자들에게 한 차례 더 의견을 듣고, 필요한 사안을 준비하여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성부에서도 이 건에 관해 뭔가 생각이 있으리라. 허나 좌포청에서는 날벼락일 것이고. 그러니 의견은 일단 들어보도록 하자. 뭔가 조정할 부분이 또 있겠지.
9.
올해도 비는 충분히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재작년만큼 가물지는 않았던 터라 올해 수확은 그럭저럭 나왔다. 곡물 외에 잡곡이나 서류, 수입한 양곡까지 보태면 굶주리지 않고 백성들이 겨울을 넘길 수준은 된다.
“금군 개편 작업이 완료되었사옵니다.”
삼군부 도총사 권훤과 오군대총관 장붕익을 비롯한 장수들이 모인 삼군부 회의에서 금군 개편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그동안 3천 명 선에서 유지되던 금군을 1만 명으로 확대하는 대대적인 개편이다.
“그동안 5경에 있는 별궁을 지키는 일은 각 지역 병영군이 맡았습니다. 허나 별궁이라고 해도 엄연히 황궁일진대, 마땅히 금군을 두어 지키게 함이 옳습니다.”
“옳은 말이다.”
동경 대구부, 서경 요양부, 남경 전주부, 북경 함흥부, 상경 평양부. 5경에는 모두 별궁을 하나씩 두었다. 각 별궁에 새로 편성한 시위대 소속 보병과 기병 1개 대대씩을 두고, 도성 내에도 1대 대대씩을 둔다. 이 인원이 총 6,480명이다.
도성 내에서 내 근접경호와 더불어 궁궐 세 곳과 종묘를 지키는 친위대는 보병과 기병 2개 대대씩으로 편성해 놓았다. 이 병력이 2,200명이다. 기존에 내금위와 겸사복에 속해있던 병사들은 모두 친위대 예하로 전속되었다. 이국적인 외모로 의장대 역할을 맡아 외부 행사에 주로 투입되는 백위대는 보병과 기병이 각 1개 대대씩으로, 전체 인원은 1,350명이다. 기존에 외금위와 백위영에 속했던 병사들이 모두 백위대로 합쳐서 혼합 편성되었다.
기근으로 인한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데 병력을 확대한 건 일종의 경기 부양 조치이기도 하다. 금군으로 채용된 이들은 녹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장병 7천 명 정도 봉급이 더 나간다고 해서 우리 재정에 갑자기 큰 타격이 올 것도 아니다.
“군관을 포함해서 고병 25만 3천 명이 26만 명으로 늘어날 뿐이니…..”
물론 금군은 경군이나 지방군보다 봉급을 더 많이 받기는 한다. 하지만 그래봐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방에 내려가 있는 시위대의 기강이 헤이해지지 않도록, 엄히 살피겠습니다.”
“고맙소. 하지만 경이 그런 일에 직접 나설 건 없으니, 아랫사람들에게 맡겨두시구려.”
금군을 총지휘하는 대한근위대총사에는 내 둘째 처남 민지상이 앉았다. 민지상은 은퇴한 지 오래긴 하지만, 어차피 이 자리는 명예직이니까 상관없다. 가장 핵심이 되는 지휘관은 친위대장이다. 세 대장 모두 계급은 종2품 부장으로 같으나, 친위대장이 가장 선임이다. 하지만 그동안 금군에서 지켜온 관례에 따라 숙직은 세 사람이 교대로 하며, 전체 금군 지휘권도 세 사람이 번갈아 행사한다. 반란을 막기 위해서다.
“그대들이 수고가 많았다. 그동안 가뭄 때문에 군사들의 훈련이 제약을 많이 받았으나, 곧 비가 제대로 내릴 듯하니 올해 겨울부터는 다시 강무(講武)와 습진(習陳) 등 훈련을 제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언제든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두는 것이야말로 무인의 도리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겨울에 하는 군사훈련….이라면 역시 사냥이지. 은이는 못 가겠지만 영이라도 데리고 가서 군사들을 살펴야겠다. 그게 임금이 할 일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군무를 챙기고 겨울에 나갈 사냥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다른 쪽에서 사냥을 나가 짐승을 잡겠다던 또 다른 사람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사자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폐하, 강녕왕이 입궐하여 폐하를 뵙고자 하옵니다.”
“들라 이르라.”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찌 알았으랴? 강녕왕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서른 마리나 되는 멧돼지를 산채로 끌고 왔을 줄을.
재무부에 속한 수사기관은 감찰원입니다. 어제 어사대라고 나간 건 실수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독자분들께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