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05
3부 623화(1505화)
21.
대한의 세수는 꽤 오랫동안 요즘쓰는 신냥으로 환산해서 2천만 냥을 유지했다. 더 걷을 수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징세액을 낮게 유지한 탓이 컸다. 애초에 대한은 유교가 중심이 된 국가였고, 가혹한 세금 징수는 환란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물론 나라가 대폭 커지고 인구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세수가 늘기는 했다. 하지만 국가를 이끄는 이들의 기본 관념이 이렇다 보니 꼭 필요한 액수 이상으로는 세금을 잘 걷지 않으려 했다. 흉년이 자주 든 탓에 감세한 해가 많았던 것도 한몫했다.
“허나 이제는 우리도 방침을 바꿀 때가 된 듯하다. 나랏돈을 써서 해야만 하는 일은 자꾸 늘어나는데 돈은 넉넉하지 않고, 계속 빚을 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정식으로 국채를 발행할 만큼 돈이 부족했던 시기는 계미남변 때뿐이었다. 그나마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얼마 안 거서 전부 조기상환으로 털어버렸다. 중추원에서 그건 계약을 위반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들어오는 바람에 조기상환 수수료를 추가로 주긴 했지만. 이번 기근에 대처하면서는 그렇게 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방에서 식량을 조달해 실어 오고 이재민을 해외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송방에 속한 은행에서 잠시 급전을 빌리거나 외상으로 일부 물품이나 용역을 받는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아사한 백성의 수가 불과 5천 명으로 그치지는 않았으리라.”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하지만 환난을 맞이하여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돈과 곡식을 바치는 습속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미풍양속이옵고, 권장해야 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만하면 나라가 어려움을 피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사옵니까?’
이번 기근을 맞아서도 그런 기부는 많았다. 미주에서 원씨 일가가 그랬듯이, 각 지역에서 부유한 토호나 지주들이 자발적으로 돈과 곡식을 내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조정에서는 그 보답으로 훈장과 표창장을 내렸고, 많이 바친 자들에게는 벼슬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납속책(納粟策)은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시생되던 관례다. 사회지도층인 사대부는 명예를 얻고, 평민은 벼슬을 얻어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하며, 천민들은 면천하여 신분에서 오는 굴레를 벗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더불어 국고를 아낄 수 있고 말이다.
“현재 걷는 세금으로도 백관(百官)과 만군(萬軍)에게 녹봉을 주고 국용(國用)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들이는데 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연히 세금을 올려 백성들에게 과한 부담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예무대신 이종한은 전통적인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그에 맞추자면 세금을 덜 올리면서 그럭저럭 형편에 맞춰 사는 게 맞기는 하리라.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제 다음 세기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빤히 보이는데 우리끼리 안분지족하고 살자는 말이 들릴 리 없다.
“예무. 맹자 양혜왕(梁惠王) 편에서 이르기를,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사지내기 족하면 그것이 곧 왕도(王道)의 시작이라고 하였소. 그러니 풍년이 들면 양식을 저장하고 흉년이 들면 그것으로 구휼하라 하였지. 그 일을 더 잘하려고 세금을 더 올리자는 거요.”
국가에 충분한 비축이 있으면 민간의 기부에 의존할 필요도 없고 송방 같은 행단(行團)에 손을 빌릴 필요도 없다. 민간의 기부야 훈장이나 작은 벼슬로 보상할 수 있지만, 수천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수만 냥 단위로 재물을 운용하는 행단에 그게 보상이 될 리가 없다.
돈과 곡식을 헌납하고 세도 안 받고서 배를 빌려준 데 대한 보상이 제대로 되려면 사업에 관한 특권을 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기부라고 해도 일이 일단 이런 방향으로 넘어가면 기부가 ‘사업을 따내기 위한 뇌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처리할 빚은 조금 지체해서라도 현금으로 깔끔하게 정산하는 게 낫다. 그게 서로 편하다.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 보자. 흉년에 조정에 돈과 곡식을 바쳤다는 이유로 송방 각 행단이 광산 채굴권, 교역 독점권, 철도 부설권, 토지 개간권, 벌목권, 포경권 같은 이권들을 모조리 나눠 가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제가 안 터질 수 없지 않은가.
“국고가 돈이 있어야 그런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소. 이것도 백성들을 위하여 생각한 일이니, 그대들도 따르기를 바라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런 중대한 안건이 그저 이야기 몇 마디 간단히 주고받았다고 결론이 나올 리 없다. 이종한 외에도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신은 여럿 있었고, 당연히 내 편에서 세금 인상에 찬성하는 대신들도 있었다. 재무대신 성시진이 단연 선두였다.
“대감들은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하면 나라 곳간만 가득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진다고 하시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주장이올시다. 역으로 백성들이 풍요하고 국고에 들어오는 재물은 없다고 생각해보시오. 그러면 다음 기근 때 구휼은 무엇으로 하시겠소?”
“평소에 비축을 열심히 하고 예와 도리를 아는 백성들이 스스로 바치는 전량을 보태어…..”
“그건 대감께서 너무 헛된 소망을 품으신 것이올시다. 이번 기근에서 백성들 입에 들어간 구휼곡 중 6할이 국고와 민고(民庫)에 있던 비축이고, 주상께서 명하여 나라 밖에서 구해온 곡식이 3할을 넘었소이다. 백성들이 낸 납속(納粟)은 나머지 1할도 채우지 못했지요.”
이 부분도 납속책에 계속 기대를 걸 수 없는 큰 요인이다. 본래 납속책은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아래쪽에 있는 이들이 신분을 상승하는 수단이었다. 벼슬을 얻어 양반이 되려고, 면천되려고 나라에 재물을 바쳤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문과만 해도 과거 합격자 수가 9배로 늘었다. 무과나 잡과나 채용 인원이 늘었다. 심지어 의원이 되어도 양반으로 인정받는다. 양반이 되는데 필요한 난이도가 원래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졌다.
천민 지위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비 1명당 1년에 은 50냥에 달하는 막대한 노비세를 본국과 속령을 가리지 않고 부과하니, 신분상의 노비는 사실상 씨가 말랐다. 지금 남은 진짜 노비는 정말 대갓집에서 시종 겸 측근으로 부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제 거의 모든 백성이 법적인 신분상으로는 양민이니 굳이 면천하고자 재물을 바치려는 이는 없다. 지금 겪는 생활환경이 마음에 안 들면 만주나 미주, 대남, 필리핀으로 가버리면 그만이다 보니 사회적 억압도 원래 역사보다 상대적으로 덜하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백성들이 납속에 참여하는 기세가 원래 역사에서보다 아무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아직은 꽤 많은 부자나 지주들이 포상으로 양반이 되고자 기꺼이 재물을 내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세금을 적절히 걷어 나라 살림을 든든히 다져야만 합니다. 물론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 재물을 바치는 건 무척 아름다운 행동이기는 하나, 어찌 나랏일을 처음부터 백성들이 돕기를 바라며 한다는 말입니까?”
납속으로 들어오는 재물은 어디까지나 변수로 취급해야 하며, 기본적으로는 국가 예산을 써서 구휼을 비롯한 모든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증세는 필수다. 성시진은 자기주장을 강경하게 내세우며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도 않은데 세금을 올리는 건 전혀 적절하지 않습니다. 훗날 그 필요가 심각할 때 비로소 세금을 올리는 것이 옳습니다.”
“대감. 지금 폐하께서 맹자를 인용하지 않으셨습니까? 맹자가 이르기를, 풍년이 들었을 때 저장하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감께서 하신 말씀은 평소에 풍년이 들었을 대는 실컷 낭비하도록 놓아두다가 흉년이 들면 그때 징세하라는 말이니, 어찌 합당하겠습니까?”
이외에도 수많은 발언이 오갔다. 이미 말했듯이, 어차피 바로 결론이 날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오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손, 한 마디도 놓치지 말고 모두 들어두어라. 짐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건 따르지 않는 이들이건 모두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주장을 끌어내고 있다. 양쪽 모두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으며 전거(典據) 또한 있으니, 너 또한 알고 이해해야 한다.”
“예, 할바마마.”
그저 신하들을 윽박지르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통치 행위라고 할 수 없다. 내게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파악하고 나 역시 논리와 전거로서 이를 받아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내가 혼자 알고 있는 미래지식의 경우에는 그게 안 되지만,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해야 한다. 시키는 대로 얌전하고 차분하게 신하들의 논쟁을 관전하는 영이를 보려니,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던 은이 생각이 난다. 그놈은 얌전히 듣기만 하지 않고 논쟁 도중에 수시로 불쑥 끼어들어 궁금한 부분을 바로 질문하거나 자기 의견을 밝히곤 했다.
이에 반해 영이는 궁금한 것들은 기억해두거나 적어뒀다가 나중에 서연관들에게 묻거나 내게 묻는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부자간의 성격 차이를 알 수 있는 또 한 장면이었다.
22.
세금 인상 문제는 조정에서 중추원으로 옮겨가서도 계속 논쟁거리가 되었다. 재무부에선 세금을 올리더라도 백성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더 주기 위해 농지에 매기는 전세와 주택에다 매기는 호세는 올리지 않고 주세와 연초세, 인지세를 올리자고 했는데 이게 또 문제였다.
“계미남변 때야 당장 전비가 필요하니 주세와 연초세가 올라도 다들 참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을 치르는 것도 아닌데 술과 담배에 세금을 매기면 어지 백성들이 이를 받아들여 기꺼이 돈을 내겠습니까?’
전에도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지만, 중추원은 퇴직한 고관들과 각 행단에서 대표로 나온 이들의 목소리가 크다. 이들이 많이 손대는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양조업과 연초판매업이다 보니 한결 더 반대가 컸다. 퇴직한 고관들이 술과 담배 장사를 많이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태반이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다. 자기 땅에서 수확한 곡식으로 직접 술을 빚어서 팔거나, 담배 농사를 직접 짓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 주세와 연초세를 올리겠다는 계획에 펄쩍 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지원을 등에 업은 재무대신 성시진은 이 노신들의 반대 따위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당당하게 이렇게 맞받았다.
“주세가 비싸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되고, 연초세가 비싸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됩니다. 누가 술병을 억지로 목구멍에 꽂아 술을 들이 붓고 담뱃대를 콧구멍에 쑤셔 넣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중국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중국에서는 한무제 때부터 술, 철, 소금을 전매했는데, 국가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호당 얼마씩 할당량을 내려서 술과 소금을 강제로 사도록 했다. 필요하지도 않은 많은 양을, 더구나 비씬 값으로 말이다. 그 관습이 그대로 내려오는 만큼 현재의 중원 삼국도 모조리 소금을 전매한다. 염상 출신 조상을 둔 후송 황실조차도 소금 전매를 지속했다. 그나마 호당 얼마씩 강제로 할당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우리는 소금을 전매하지도 않고, 술이나 담배를 할당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3년에 걸친 기근으로 국고가 텅텅 비는 경험을 하고, 넉넉한 여유자금을 비축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재무부는 강경했다. 성시진은 설탕 제조의 부산물 취급을 받아 주세가 매우 싼 당밀주에 주세를 추가로 매겨 세수를 올리는 등, 현재는 3백만 냥인 주세를 두 배로 늘리자고 했다. 연초세는 결당 30냥에서 40냥으로 올리고, 인지세로 각종 행정서류 발급에 세금을 물린다.
여기서 경제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상공업 관련 세금을 깎아주지 않고 모두 제대로 걷는다. 그러면 세금 수입이 단박에 25%가 증가, 신냥으로 3천만 냥에 달하리라는 게 재무부 측 추산이었다. 성시진은 내 지원을 받아 증세론을 강경하게 밀고 나갔다. 증세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중추원의 회의적인 의견도 거부하는 재무부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 전술을 바꿔 시중 몇몇 시보에 논설을 심었다. 상대편의 여론전 시도를 본 재무부도 똑같은 수단으로 반격했다.
“우리는 조보에 논설을 실어라! 내무부는 우리 편이니까.”
재무부가 세금을 더 걷으면 당연히 내무부에도 고물이 떨어진다. 또한 내무대신 송연명은 나도 증세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협조 요청을 받고 바로 조보국에 증세가 필요하다는 논설을 쓰게 했다. 몇몇 시보가 또 이쪽 편에 섰다.
장조 시절만 같았어도 여론전의 주도니 수단은 상소였으리라.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다 보니 신문이 여론대결의 주된 수단이 되었다. 상대편 신문에 반박문을 투고하는 선비들도 많다. 물론 그렇다고 내게 올라오는 상소가 아예 사라진 건 또 아니다. 어쨌든 양측의 대결은 묘당과 중추원, 상소와 신문의 논설란을 통해 치열하게 벌어졌다. 국문으로 발간하는 신물들도 많다 보니 일반 백성들도 자연스럽게 지면으로 이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도성 안팎은 물론 전국에서 이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그래도 전세와 호세는 안올릴 거라니까 괜찮지 않은가? 관청에서 문기를 받을 대마다 돈을 내야 한다지만 우리가 관청에서 문기 뗄 일이 있기나 한가.”
문기(文記)는 보통 ‘땅문서’ 내지는 ‘집문서’라고 부르는 그 물건이다. 토지나 가옥 따위의 소유권을 증명하며, 보통은 문서 자체를 거래한다. 관에서는 문기를 발급하고 그 소유자를 양안(量案)과 호안(戶案)에 기재하여 전세와 호세를 징수한다.
“하지만 이 사람아! 주세가 오르면 당장 이 당밀주도 매일 두 잔 마시던 걸 한 잔밖에 못 마신다고! 주세가 두 배로 오른다잖아! 그리고 이 담배는 또 어쩌고!”
품팔이군인 듯한 네 사람은 국밥과 술사발을 앞에 놓고 주세와 연초세가 올라가면 자기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는 아무래도 결론이 안 나는지, 옆에 앉아 조용히 개장국을 먹는 늙수그레한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쇼! 댁은 어지 생각하쇼? 술이랑 담배에 세금이 더 붙는다는데!”
노인은 입에 문 음식을 우물거리며 웅얼거렸다. 발음이 좀 뭉개지기는 해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라님이 필요하시다니 어쩌겠소. 그런가 보다 해야지.”
“술값, 담뱃값이 오르는데 그래도 좋단 말이오?”
사내 중 하나가 팔을 뻗어 삿대질 했다. 술기운이 올랐는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하지만 상대 노인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뚝배기를 들어 국물을 들이켰다.
‘안 좋으면 어쩌게. 용산에 뛰어가서 양반님네들처럼 지부상소라도 하시겠소?’
몇몇 유생들이 세금을 올려 백성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며 경희군 정문 앞에 엎드려서 상소를 올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임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승선을 시켜 그 상소문을 받아 가지도 않았다. 임금의 의중이 증세로 기울어졌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사내는 노인의 지적에 미처 반박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옛날하고는 달라졌어도, 무지렁이 상놈인 자신이 양반님네들처럼 상소를 올릴 수는 없었다.
“그짝이 상감께 직소할 수도 없을 테니, 내가 대신 설명해 주리다. 주세가 두 배로 오른다 해도 말이오, 이 한 푼짜리 술이 두 푼이 되는 게 아니오. 당밀주는 남만에서 오는 본 술에 물을 타서 팔거든? 그 본술 한 통에 한 냥 붙는 세금이 두 냥이 되는 거요.”
“그럼 술이 한 푼에서 두 푼이 되는 게 맞잖아, 이 미친 노친네야!”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노인은 태연한 태도로 설명을 이어 갔다.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야지. 그 본술 한 통에 물을 타면 그 짝이 지금 마시는 이 사발로 3천 잔이 나온단 말이오. 그런데 주세 한 냥이 올랐다고 당밀주 한 잔 값을 두 배로 올려? 세금 한 냥 올랐다고 술값 서른 냥을 올린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될 것 같소?”
그제야 사내의 얼굴에 이해했다는 빛이 떠올랐다. 확 밝아지는 그 얼굴을 보면서 노인이 설명을 이어 갔다.
“담뱃값도 마찬가지니, 혹시 나중에 연초세 운운하며 담뱃값을 두 배로 올리는 장사치가 있으면 바로 포도청에 신고해 버리시오. 그 못된 장사치 놈은 당장에 치도곤을 맞을 테고, 그 짝은 관에서 포상금을 받을 테니까.”
“아이고, 알겠소! 아주 근심이 확 펴네! 술이고 담배고 하던 대로 해도 되겠구먼! 고맙소! 노인장이 이 무식한 놈을 살려준 은인이오!”
네 사내는 신이 나서 중노미를 불러 술을 더 따르라고 했다. 빙그레 웃으며 그 광경을 본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사자 그 옆에 있던 일행 두 사람 중에 미주인처럼 생긴 장년 사내가 은전 두 닢을 꺼내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국밥 세 그릇과 청주 석 잔 값이었다.
“폐하, 너무 자비로우십니다.”
김국표가 조용하게 속삭였다. 나도 조용히 답했다.
“밖에서는 그냥 나리라 부르라고 하지 않았느냐.”
김국표도 어느새 환갑을 넘었다. 칼솜씨야 여전하지만, 환갑노인 한 사람만 데리고 밖에 나다니면 주변이 하도 시끄러워서 김춘호도 호위로 데리고 다닌다. 조금 떨어져서 따라오는 김춘호도 이제 마흔이 가까운 나이다.
“여기는 아무도 안 듣습니다, 폐하. 아까 그놈은 너무 무엄했습니다. 폐하께서 한마디만 하셨으면 소인이 그놈을……”
“됐다. 그놈이 자기 입으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놈을 때려서 뭘 하겠느냐.”
미복을 입고 잠행을 나온다는 것부터가 일반인 대우를 받을 각오를 하는 거다. 무종 때도 길거리에 나갔다가 숱하게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었던가.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다지가 다 해결해 주긴 했지만, 장조 대는 임꺽정과 나가니 싸움이 일어나지를 않았고. 그대처럼 젊지도 않은데, 칠순 노인이 다 돼서 싸움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창피한 일이다. 그냥 조용히 환궁하면 됐지, 뭘 더 하나.
그보다는 주세 부과에 관한 백성 하나의 오해를 풀었으니 그게 더 바람직하다. 적어도 저 네 사람 주변에서는 주세 대문에 술값이 두 배가 되리라는 뜬소문 같은 건 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