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11
3부 629화(1511화)
축구는 술루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다만 축구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본국과 달리 상단이 아닌 왕실이다. 여기 본국에서 지내는 동안 축구에 흠뻑 빠진 두 왕자가, 자기들도 뛰어난 축구단을 가지고 싶다며 열심히 선수를 선발하고 시합을 벌인 덕분이다. 처음에는 술루로 이주한 한인 천주교도들 중에 축구를 즐기다가 간 사람들이 주로 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왕자들의 요청을 들어준 디에고가 술루군 각 연대에 ‘몸이 날랜 장병을 뽑아 축구 시합을 해보라’라는 명을 내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왕명으로 축구단이 구성되면서 술루 축구계는 문자 그대로 ‘군대스리가’가 되어버렸다. 각 연대가 시합을 벌여 이기는 쪽에는 왕실에서 온갖 포상이 나간다. 당연히 모로족 토벌에서 공을 세웠을 때 받는 상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다.
대한에서도 각 군영 간에 축구는 한다. 하지만 대한에서는 군대에서 벌이는 체육활동의 일환일 뿐이던 축구가 술루에서는 각 연대의 명예를 건 대결이 뵈어버렸다. 여기, 내 왼쪽 자리에 있는 내 맏손자-서손(庶孫)이지만-프란치스코 때문에 말이다.
“선수들이 뻥 하고 내지른 공이 구문(毬門)을 파고들면 가슴이 확 뚫리지 않으시옵니까, 폐하? 신은 그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사옵니다.”
옛날에는 자기도 가끔 공을 찼지만, 아무래도 직접 뛸 만한 재간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경만 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하기야 프란치스코는 구단주니까. 같이 안 뛰는 편이 선수들한테도 도움이 되리라.
“짐도 그런 기분을 느끼기는 한다.”
내가 좋아하는 종목은 사실 축구보다는 경마지만…..뭐 굳이 그런 이야기로 손자의 흥을 깰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부러 본국에서 한번 제대로 뛰어보겠다고 술루군 전 연대에서 가장 뛰어난 설수들만 뽑아 올스타팀을 만들어 바다를 건너왔는데 말이다.
프란치스코가 말하기를, 본국에서 흉년이 끝났으니 이를 축하할 겸 친선시합을 한번 하고 싶어서 특별히 바다를 건너왔다-물론 실제로 오기 전에 국서가 몇 번 오갔다-고 했다. 진짜 목적이야 신나는 원정 경기 한번 해보는 거겠지만, 뭐 어떤가.
“저희 선수들은 돈 때문에 뛰지 않습니다. 왕실에 대한 충성으로 뛰지요. 어디 보십시오. 그게 더 뛰어나다고 보여드릴 태니까요.”
“기대해 보겠다.”
구단주인 프란치스코가 관중석에 있는 내 옆에서 뽐내는 동안, 밑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감독 노릇은 장년의 스페인인 한 사람이 맡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고메스 정령이라고, 본래 필리핀에 주둔하는 서반아군 대위였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근위 2연대 연대장을 맡고 있는데, 판을 읽고 전술을 지도하는 역량이 뛰어나서 술루국 제일의 축구단장입니다.”
단주(團主)는 구단주, 단장(團長)은 감독이다. 현대에서 쓰던 용어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표기가 다르다. 코치 역할을 하는 인원은 접장(接長)이라 하는데, 이건 서당에서 훈장 대신 학생들을 지도하는 반장 역할을 하는 학생을 부르는 말과 같다.
그나저나 계미남변에서 스페인군 장교였던 사람이 축구팀 감독으로 한양에 오다니, 무척 재미있는 우연이다. 본인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격려하는 의미에서 시합이 끝난 뒤에 술이라도 한잔 따라줘야겠군.”
“뭉개 버려라!”
“서반아 놈들 따위, 송현구단에 상대가 될쏘냐!”
시합은 격한 함성과 함께 시작됐다. 함성을 들으니, 관중 대부분은 송현상단-각 기업을 상행, 공행 등으로 부르니 이제는 행단(行團)이라고 이름이 바뀔 법도 한데, 관습 때문인지 여전히 상단이라고 부른다-쪽에 돈을 건 게 분명했다. 하기야 술루 선수들이 얼마나 공을 잘 차는지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리라.
술루 축구단을 응원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술루인들이 교우(敎友)라고 해서, 성당에서 따로 조직한 응원단이 백 명쯤 나왔을 뿐이다. 여기에다 바실공주 이사벨라가 남편 권창과 함께 오빠를 응원하려고 나왔고, 이사벨라와 친한 연주가 박문수와 세묜, 혜련이까지 끌고 나와서 그 옆에 앉았다. 하지만 이 애들까지 합쳐봐야 상대편을 응원하는 군중이 서른 배는 되니, 깔끔하게 묻혔다.
체격은 스페인계와 메스티소들인 술루 선수들이 언뜻 보기에도 더 좋다. 하지만 훈련도감 출신 선수들이 많은 송현구단 쪽에서도 기본기와 체력에서는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압도적인 군중의 지지까지 있으니 그 기세는 더 볼만했다. 투쟁심이 마구 솟아올랐는지 양편 선수들은 심판이 호각을 불자마자 격하게 뒤엉켰다. 꼭 옛날 장조 시절 군영에서 처음 대항전을 벌이던 시절처럼 서로 걷어차는가 하면, 팔을 꺾는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심판이 호각을 불었다.
“무척 거칠구나.”
“송구합니다, 폐하.”
이해는 한다. 어전에서 벌어지는 시합이니, 패하기보다야 반칙을 범해서라도 이기는 편이 나을 테니까. 게다가 양쪽 선수들 모두 사실상 군인 아닌가. 더더욱 경기 양상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시작한 지 13분 만에 송현구단이 선제골을 넣었다. 내가 아는 놈, 훈련도감에 있을 때도 축구 솜씨로 날리는 존재였던 손경민이라는 선수다. 경기장 전체를 뒤흔드는 함성이 울리고 그중 특히 뛸 듯이 좋아하는 자들 수십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놈들, 손가 녀석에게 걸린 복표를 샀구나.”
복표야말로 축구를 비롯한 여러 경기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경기단을 보유한 각 상단은 경기장에서 내거는 광고, 매표, 복표 발행 수수료 등으로 매출을 올리는데, 여기에서 복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이 복표도 체계가 복잡하다. 어느 편이 몇 대 몇으로 이길지 맞히는 거야 기본이고, 방금 손경민이 한 것처럼 출전한 선수 중 누가 골을 넣을지 맞히는 내기도 있다. 사기 치기 정말 좋은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신나게 팔린다. 문제는 복표를 산 관중들의 열광적인 태도다. 돈이 걸려 있다 보니 자기 예상하고 다르게 경기가 굴러가면 고함과 욕설이 기본으로 나간다. 술병이나 뼈다귀도 그저 분노의 표시로 던지는 게 아니라 정말 선수를 맞히려고 던지는 놈이 허다하다.
던진 놈이 석전꾼이었는지-석전도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인기다-, 술병에 정통으로 맞은 선수가 머리가 깨져 실려 나간 사례도 있다. 경기를 주최하는 대한축구사(大韓蹴球社)-일종의 대한축구협회-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문제 관객을 퇴장시키면서 민사소송까지 걸지만, 이런 난동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저 후리건 놈들이 난동이나 벌이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옵니다, 할바마마.”
내 오른편에 앉은 영이도 손에 땀을 쥐고 이 경기를 관람했다. ‘후리건’은 ‘원숭이(?)와 스라소니(?)같은 건달(乾)들’을 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영어에도 hooligan 이라는 단어가 없는 시대인데 이 말이 그럴듯한 한자까지 붙어서 도는 배경을 알 수가 없다. 장조 시절에 내가 혹시 실수로 한번 쓴 단어를 누가 옆에서 듣고 퍼뜨린 걸까? 아니면 우리말인 ‘후리다’에서 파생됐다거나?
다만 오늘은 내가 있으니까 경기장에 대한축구사가 동원한 질서 유지 요원들 외에 좌포청 군사들까지 평소의 두 배나 깔려 있다. 이만하면 큰 소요는 없으리라.
“여보게, 비수공! 다음 시합은 우리 심왕부와 하세나! 우리 천하의 남쪽 끝과 북쪽 끝에서 온 이들끼리 한번 뛰어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하하, 전하. 일정이 많이 밀려 있어서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서리(書吏)와 논의해서 날을 잡아보겠습니다.”
내 오른편에는 영이만 앉아 있는 게 아니다. 원이를 비롯한 다른 손자들도 줄줄이 이쪽에 앉아 경기를 보고 있다. 심지어 이 시합에 관해 듣고는 평소보다 두 달이나 일찍 심양에서 올라온 준이까지 경기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다.
전반 28분, 송현구단이 또 한 골을 넣었다. 관중들이 신이 나서 열광했다. 준이도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프란치스코를 보면서 계속 자기 선수들과의 시합을 재촉했다.
“내 자네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상경하면서 축구단까지 데려왔지! 송현구단에게 선제점을 연달아 헌납할 정도라면야, 내 선수들에게도 해 볼 만한 상대겠는걸?”
심왕부 축구단도 준이의 여흥 중 하나다. 물론 준이는 사람이 공 차는 모습을 보기보다는 자기가 키우는 코끼리들이 벌이는 코끼리 축구 쪽을 더 좋아하긴 한다. 조련사가 탄 코끼리 12마리가 편을 갈라 벌이는 축구가 확실히 사람이 뛰는 것보다 장관이기는 하겠지.
대한축구사가 정한 규정에 따르면 11개 구단은 본국 13개 도 중 하나 씩을 연고지를 두고 거기서만 선수를 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심왕부 축구단은 엄밀히 말하면 외국 단체다 보니 그 규정에 적용을 안 받는다. 그래서 심왕부 축구단은 전국에서 마음대로 선수를 뽑는다.
그렇다 보니 대한축구사에서는 심왕부를 싫어하고, 그 소속 구단들은 심왕부와는 경기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심왕부 축구단은 주변 군영 장병들과 친선시합을 할 뿐이고, 축구사에 속한 구단들보다 한 단계 낮은 실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준이야 별 신경 안 쓰지만 말이다.
“어떤가? 우리 애들이랑 한판……”
준이가 포기하지 않고 재촉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경기장에서 욕설과 분노의 외침이 잔뜩 울려 퍼졌다. 무슨 뜻인지 보지 않아도 빤했다. 방심하지 않는 게 좋으리라며 프란치스코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 선수들이 한 점 얻었습니다, 전하. 이만하면 저희 선수들도 그리 뒤떨어지는 실력은 아니겠지요? 곧 뒤집힐 겁니다.”
전반 37분, 드디어 술루 선수 한 명이 송현구단 쪽 구문에다 공을 꽂아 넣었다. 관중들은 골을 먹자 구문지기(골키퍼)를 향해 옥지거리를 퍼부었지만, 대한축구사가 동원한 인원으로 통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직은 이기고 있으니까 그런 모양이다.
전반 45분-내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그동안 어떻게 이렇게 경기 시간이 맞춰졌다-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추가득점은 없었다. 그리고 20분 동안 휴식하고 나서 구문을 교체한 뒤에 후반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후반전에서는 프란치스코가 공언한 역전극이 벌어졌다.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한 술루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큰 몸을 무기 삼아 앞을 막는 상대를 몸으로 들이 받아 날려버렸다. 송현구단 선수들이 태클-‘공채기’라고 한다-을 거니까 휙 뛰어넘어버렸다. 두 다리 사이에 공을 낀 채로 말이다.
전반전 때는 비교적 얌전한 경기를 하면서 몸을 사리던 술루 선수들이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에 나를 포함한 관중들이 입을 떡 벌렸다. 프란치스코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두 팔로 팔짱을 끼다가 누구 옆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얼른 풀었다. 대신 한마디 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폐하.”
술루 선수들은 연달아 구문 앞으로 쇄도하면서 빗발처럼 슈팅을 퍼부어댔다. 송현구단의 구문지기가 미친 듯이 공을 쳐 냈지만, 걷어낸 공은 매번 중앙선을 넘어가지를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후반 18분, 마침내 술루 공격수 한 사람이 찬 공이 구문 구석을 파고들었다.
동점골이 터지자 경기장은 욕지거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전반전 때까지만 해도 경기장에 날아들지 않던 술병과 뜯다가 남은 닭과 돼지의 뼈다귀, 고구마 따위가 날아들었다. 황급히 앞에 나선 대한축구사 운영 요원-진중원(鎭衆員)이라고 한다-들이 관중을 진정시켰다.
“어허, 저놈들이 감히 아바마마 앞에서…..!”
준이가 역정을 냈다. 영이를 비롯한 손자 녀석들은 숙부가 앞장서서 화를 내가 도리어 그 행동에 맞장구를 치지 못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다른 아들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왔기 때문에, 집안의 항렬로는 준이가 여기서 가장 높다.
물론 저쪽에 연주에게 끌려 모처럼 함께 외출한 박문수가 앉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자리가 멀고, 삼촌과 고모부 중 누가 더 조카들한테 위력이 있을지는 불문가지 아니겠는가.
“아바마마! 당장 포졸들에게 저놈들을 때려잡으라 하시옵소서!”
내 뒤에 서 있던 좌포장 김진식-무인지변 때 예왕을 직접 체포한 그 포도관 맞다-이 움찔거리며 내 눈치를 보기에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좌포청이 나설 단계도 아니고, 심왕인 준이의 기색을 좌포장이 살필 필요도 없다.
“조용히 있거라. 아직 시합이 끝나지 않았다.”
내가 한마디 하자 준이가 입을 다물었다. 마침 그때 호각이 울리면서 시합이 재개됐다. 주변의 시선이 살곶이 벌판 한가운데로 쏠렸다.
“그래도 차! 차 넣어!”
“서반아 양놈들 따위 밟아버리라니까!”
2대2로 동점이 된 상태에서 관중의 함성을 들으며 속개된 시합은….커다란 공을 사용하는 석전이나 격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석전이나 격구도 종종 해서 더 그런가. 저 걷어차고 후려치는 난장판이 대체 어디를 봐서 축구인가 싶다. 하지만 도구를 쓰지도 않고 말을 타지도 않았으니까 축구는 축구다. 저기 날아가는 공도 손이 아니라 발에 차여서 날고 있지 않은가.
기가 막힌 건 지금 저 시합이 평소보다 조금 더 격할 뿐, 현재 대한축구사에서 운용하는 규칙으로는 시합을 중단시킬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웬만하면 이런 영역에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끼어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수가~!”
후반 28분, 술루 축구단이 세 번째 공을 구문에 차 넣었다. 준이가 신음을 토했다. 양편 선수들은 더 악착같이 뛰었다. 송현구단은 이 기세를 뒤집기 위해서, 술루 축구단은 그대로 굳히기 위해서. 아직 시간은 17분이나 남았고, 이만한 여유라면 아직 어떤 사건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양편 선수들이 미친 듯이 풀밭 위를 뛰었다. 두 치 남짓한 길이로 바짝 깎은 풀밭은 딱히 좋은 구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맨땅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그리고 결정타가 터졌다.
“야 이 쌍놈들아아아~!!!”
후반 41분, 마침내 술루 선수 한 사람이 네 번째 공을 구문에다 멋지게 차 넣었다. 오늘 승부에 쐐기를 박는 결정타였다. 당연히 경기장 전체에서 경악과 실망, 분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좌포장은 오늘 체포한 놈들을 모두 노역에 투입하라. 가설구장을 해체하고 말끔하게 싹 정리하는 일을 그놈들에게 시키겠다.”
“예, 폐하.”
술루 축구단이 4점째를 넣었을 때, 관중들은 아직 4분이 남았다는 것쯤은 안중에 없었다. 지금까지 전개된 경기 양상을 볼 때 남은 4분 동안 3점을 얻어 역전한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분노의 일성이 터졌다.
‘이건 사기야!’
‘내 돈 내놔, 이 도둑놈들아!’
술병, 뼈다귀, 신발, 그 외에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쓰레기가 경기장으로 날아들었다. 앉아 있던 의자를 두들겨 부숴 만든 각목을 들고 난입하는 놈들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당연히 좌포청 포졸들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나섰다. 아무리 ‘후리건’들이 시합에 지고, 내깃돈을 날려서 눈이 뒤집혔다지만 박달나무 몽둥이에 맞고도 제정신이 안 돌아오지는 않았다. 1시간 안에 상황은 모두 진정되고 구경꾼 대부분은 포졸들에게 쫓겨 도망갔다. 4백 명 정도만 붙잡혀 포승에 묶였다.
“일단 환궁하겠다. 술루 선수들에게는 내일 연회를 베풀 테니 오늘은 일단 쉬라고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자식, 손자들에게도 모두 저녁밥이나 같이 먹게 경희궁으로 오라고 했다. 프란치스코는 오랜만에 보는 누이동생네 가족들이랑 함께 타라고 하고 내 어차(御車)에는 연주와 혜련이 부부만 불러 태웠다.
“후리건들에게 둘러싸여 많이 놀랐겠구나. 고생이 많았다.”
김진식이 제때 포졸들을 보내 술루 쪽 관중석을 보호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늦었으면 후리건들이 그쪽에도 심한 행패를 부렸을 뻔했다. 정말 아찔하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좀 끔찍하기는 해도 무척 신이 나는 구경이었사옵니다.”
“그러냐, 다행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왠지 세묜이 무척 우울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추궁해 봤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실은, 술루국이 4대 2로 이긴다는 복표를 두 냥 어치 샀사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백이십 냥이 되었사옵니다.”
배당금이 60배?!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그런 횡재를 해 놓고 왜 그리 우울해? 그런데 어떻게 그 점수를 딱 맞춘 거야?
“고령위께서 왠지 그럴 것 같다시며 있는 돈을 다 털어 복표를 사라하셨는데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싶어 두 냥만 샀습니다. 후회막급입니다.”
내 눈이 자동으로 박문수에게 갔다. 박문수가 태평하게 받았다.
“먼 길을 오신 손님을 대하는 예의로 높여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령위는 복표를 얼마어치나 샀는가?”
설마 한 장도 안 사지는 않았겠지. 내 의문의 눈길을 받은 박문수는 태연하게 답했다.
“마침 있는 여윳돈을 다 털어 예순 한 냥 어치를 샀습니다. 기왕 믿기로 했으면 철저하게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박문수가 두 시간 만에 3,600냥이 넘는 돈을 땄다는 말이지? 만제. 괜히 연주가 이 시합이 재미있었다고 한 게 아니었다. 3,600냥이 공돈으로 생겼는데 무슨 경기가 재미가 없겠는가. 그만한 돈이 걸리면 개미가 기어가는 걸 구경해도 재미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