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16
3부 634화(1516화)
18.
올해는 풍년이다. 지난 4년 동안 텅 빈 곳간을 몽땅은 아니어도 반은 채울 수 있을 만큼 작황이 좋다. 이렇게 농사를 잘 지었을 때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예무부에서는 하늘과 종묘에 감사 제사를 올리는 일을 잊지 않도록 하라.”
“예, 폐하.”
나 혼자만 안 믿으면 뭐 하나. 만백성이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하늘의 은혜를 굳게 믿고 있으니 백성들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야지. 비가 안 내리면 기우제를 지내고 농사가 잘되면 감사제를 지내고. 그리고 여유가 생겼으니 개인적으로 헛돈도 좀 쓴다. 이럴 대라면 좀 특이하고 비싼 음식 같은 거 먹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오늘 연회는 특별하다. 가끔 먹었던 황소 통구이 같은 건 비교가 안 되는 신기한 음식이 연회장 한가운데 떡하니 올라왔다. 몸뚱이는 이미 찜, 탕, 구이 등으로 요리를 다 마쳐 본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온갖 양념과 고명을 얹은 악어 머리는 알아볼 수 있었다.
“참으로 용을 먹는 기분입니다.”
“옛사람들이 남긴 글에서 용은 물에서 가장 센 영물(靈物)이라 하였습니다. 악어는 실로 물에서 가장 센 짐승이고, 진짜 용과 비교하면 오직 뿔과 수염이 없을 뿐이니 어찌 용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찬탄을 금치 못했다. 옛날 로마나 중국에서도 그랬지만,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진귀한 음식을 내놓는 건 주인의 부와 힘을 과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태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에 나온 악어고기 요리는 아주 확실한 선택이다. 신기한 음식이라면 늘 눈빛이 달라지는 준이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니다. 준이는 요리를 맛보기도 전에 아쉬워하는 모습부터 먼저 보였다.
“악어를 잡아 각을 뜨는 광경부터 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악어를 요리할 때는 목을 뒤로 꺾어 죽인 다음 목을 가르고, 물을 가득 채운 대야 속에서 핏물을 뺀 뒤에 해체한다고 한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해서 딱히 아쉽지는 않은데, 준이는 무척 유감스러운 모양이었다.
“자고로 뭔가 먹을 때는 그 근원까지 깊게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자는 그저 태후께 올리는 귀한 음식이 어떻게 준비되는지 살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제야 생각났다. 준이 이놈은 고래 잡는 게 보고 싶다고 유귀국까지 간 놈이었지. 악어 도축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간단히 받았다.
“그게 보고 싶거든 다음에 주방에 가거라. 아직 댓 마리쯤 더 있으니까.”
악어는 현세에 강림한 용이라고 해서 홍제원에서 꽤 인기 있는 전시물 중 하나다. 키우던 악어가 폐사하면 강남에서 새로 사다 보충하면서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다만 폐사한 악어를 먹지는 않았다. 내가 즉위하기 전에는 그 껍질을 벗겨서 갑옷을 만든 사례-연이가 대전 앞을 지키는 내금위에게 입혔었다고 한다-가 있고, 경희궁 복도에는 폐사한 악어로 만든 박제가 놓여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 고기는 먹지 않았다. 요리해서 먹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판다가 그랬듯이 약재로 쓰기는 했다. 진짜 용골(龍骨)에 용육(龍肉)이라고, 내의원에서 매우 귀하게 여겨 보존하면서 황실 식구들에게 올리는 보약에만 넣었다. 그리 귀한, 용으로 취급받는 영물을 음식으로 먹는다는 생각을 누가 쉽게 떠올리겠는가. 악어 말고도 먹을 건 많으니, 나도 딱히 악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주산에 있는 외수사 관원들에게 태후마마 생신 잔칫상에 올릴 뭐 특이한 것 좀 보내보라고 했더니, 이놈들이 악어를 열 마리나 보냈다. 그것도 악어 전문 오리사까지 붙여서 말이다.
그 성의를 보니 보내온 걸 무시하기도 뭐해서 겸사겸사 상에 올렸다. 다른 이들의 반응은 만족스러웠지만 정작 연회의 주인공인 태후의 반응은 벌로 좋지는 않았다.
“주상, 이런 영물을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차마 젓가락을 대기 망설여지는군요.”
“태후마마. 영물이라 해도 한갓 짐승입니다. 지난번에 드신 대해우와 마찬가지이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고 드시지요.”
다행히 악어고기는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었기에, 맛을 본 태후도 크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다. 준이 같은 녀석이야 말할 것도 없다.
“태자, 태자도 어서 드세요. 맑은 국물이라도 드시고 몸을 더 보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의 뼈와 봉의 고기로 끓인 국이니, 필시 힘이 솟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태후마마. 열심히 먹겠습니다.”
은이도 아직 이런 자리에 나와 앉을 정도는 된다. 그래서 태후가 권하는 데 따라 용봉탕 국물을 조금 마시고 고기도 몇 점 입에 넣었다. 이 용봉탕은 악어와 공작새를 넣어 끓였다. 악어고기를 먹는다고 정말로 용의 기운이 솟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상자에 호랑이가 그려진 시리얼을 먹는다고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지는 않듯이, 악어를 먹는다고 뭔가 대단한 효험을 볼 수는 없다. 그저 좀 특이하고 진귀한 고기일 뿐이니까.
그래도 아예 안 먹고 초췌해지는 것보다는 낫다. 안 그래도 요즘 은이가 입이 짧아지는 듯해서 걱정이었는데, 악어와 공작새라도 먹고 기운을 좀 차리면 좋은 거지. 혹시 플라세보 효과라고 해도 그게 뭐 어떤가.
19.
본래 내가 세운 계획대로 하자면 올해는 은이에게 양위하고 나는 상황으로 올라가는 해가 될 예정이었다. 만으로 나는 70세, 은이는 43세니까 양위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시점이다. 그래서 은이가 서른을 넘으면서부터 대리청정을 자주 맡기며 여러 업무를 경험하게 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은이의 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탓에 양위라는 말도 꺼내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내가 건강이 나쁘고 은이가 튼튼해야 이제 나 대신 네가 이 나라를 좀 맡아 다스려다오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될 텐데, 상황이 정반대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대한에는 선대 임금이 양위한 선례가 없다. 태조와 정종, 단종의 양위야 사실상 권력을 빼앗기는 과정에 불과했다. 태종의 양위가 사실상 유일한 진짜 양위였다지만 그대는 아직 국가 체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때일뿐더러 시기도 이미 3백 년 전이다.
상황이 이러니 조정이고 중추원이고 양위에 동의할 리 없다. 지금 제위에 오른들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은이는 명목상의 임금일 뿐일 테고, 이제 18세 밖에 안 된 영이가 대리청정을 맡은들 실질적인 태황 노릇은 내가 계속하게 될 텐데 그게 무슨 양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하들 눈에는 그 상황이 내가 양위를 빙자하여 자기들의 충성심을 떠보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그러니 찬성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해서 죽어라 반대할 테고, 조정은 이 쓸데없는 논란으로 공전 상태에 빠져 모든 업무가 멈추는 혼란이 초래될 게 뻔하다. 그러니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내가 계속 나라를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이런 낯 뜨거운 요청이 올라오는 건 견뎌야 한다.
“폐하, 폐하께서도 이만 존호를 받으시옵소서.”
“존호를 받으시옵소서!”
정전-편전이나 침전이 그렇든, 정전(正殿) 역시 경희궁에서는 별도의 건물이 아니라 수백 명에 달하는 조신(朝臣)들이 일제히 내게 예를 올릴 수 있는 큰 회의실이다-에 도열한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인상을 찌푸렸음에도 그치지 않았다.
“그 문제는 아뢰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장조께서도 눈을 감으시기 전까지는 일체 존호를 올리지 못하게 하셨는데, 그대들은 어찌 나 같은 사람에게 존호를 받으라 하는가.”
장조 시절에 존호를 거절했던 이유는 신하들이 내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는 골이 보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생전에 무슨 존호를 올리느냐고 죄다 물리쳤고, 그러다 죽고 난 뒤에야 ‘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계통광헌응도융조경명신력홍공융업(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啓統光憲凝道隆祚景命神歷弘功隆業)’이라는 한 번에 외우기도 힘든 긴 존호를 받았다. 성이부터 형황 시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계속 존호를 덧붙인 결과물이다.
여기에 비하면 ‘소경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昭敬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라는 시호는 긴 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서 ‘소경(昭敬)’은 명나라가 내게 내린 시호라 연이가 칭제한 뒤에는 빠졌다. 지금은 나머지 부분인 ‘현문의무성예달효태황’에 존호를 덧붙여 불린다. 총 40자다.
“짐이 이제껏 한 일은 모두 옛 선현의 모방이라, 존호를 받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내가 장조로 살면서 존호를 안 받았다고 그 뒤로 모든 임금이 존호를 안 받은 건 아니다. 성이는 내 본을 따라서 생전에 존호 받기를 거부했지만, 연이는 칭제건원도 했는데 존호를 안 받는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라 존호를 받았다. 연이가 일단 선례를 만들자 그 뒤에 재위하던 임금들도 자연스레 생전에 존호를 받았다. 부황은 물론이고 허례허식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형황도 존호는 받았다. 그게 이제 나한테 온 거다.
“아니옵니다, 폐하. 그런 겸손하신 태도는 선비로서는 실로 칭찬받으실만하나, 이 대한의 태황으로서는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이 대한의 위엄을 천하에 떨치자면 폐하께서 마땅히 받으실 칭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내게 존호를 올리겠다는 소리가 처음 나온 건 계미남변이 끝났을 때였다. 그때는 그래도 조정 일각에서만 나온 소리였고 나도 젊어서, 닥치라고 하니까 바로 들어갔는데-‘성친왕의 본성’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아기 크던 시절이라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시간이 흐를수록 존호를 받으라는 압력이 점점 커졌다.
뭔가 사건이 있었을 때, 그리고 내가 모후와 태후에게 효도의 의미로 존호를 올릴 때마다 신하들은 내게도 존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매번 무질러 잘라 버렸는데, 올해는 이놈들이 작심하고 아우성을 쳤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해가 지난 기묘년(1699)이었으므로, 올해는 폐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신 지 무려 36년째가 됩니다. 장조께서 41년을 통치하신 이래 폐하처럼 오랫동안 이 나라를 안정되게 번영으로 이끄신 분이 없는데, 어찌 존호를 올리지 않겠습니까?”
내가 장조로써 다스렸던 기간은 26년뿐이었지만, 경성군이 다스린 15년을 합치면 41년이 되긴 한다. 그 뒤로는 성이가 18년, 연이가 24년, 부황이 28년, 형황이 21년을 다스렸다. 참고로 대한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는 5세에 즉위해서 48년 동안 재위한 황이다.
올해 들어서 이 존호 타령이 더 심해진 건 아무래도 내가 올해로 70세가 된 탓이 크겠다 싶다. 장조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리기 전에 살아있는 동안 존호를 올리려는 거겠지.
“조정에서 장문(章文)이라는 존호를 처음 올렸을 때, 선황께서는 보령이 이제 서른을 갓 넘으셨음에도 꺼리지 않고 받으셨었습니다. 그 뒤에 헌무(憲武), 경명(敬明), 원효(元孝) 등 존호를 올릴 때도 매번 약간의 겸양을 보이기는 하셨으나 오래 끌지 않고 받으셨습니다.”
올해 들어서 내게 기필코 존호를 올리겠다고 마음먹고 그 운동을 이끄는 주역은 예무대신 송희진이었다. 송희진은 예전에 집현전 대제학으로 있을 때도 내가 존호를 받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하던 전과가 있었다.
‘폐하께서는 금나라의 내전을 수습하여 천하의 질서를 잡으시고, 경인선 철도를 개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시고, 경희궁을 준공하여 황실의 위엄을 널리 떨치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존호를 올려 폐하의 위업을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때는 그 직후에 상희가 죽어서 국상 분위기가 시작되는 바람에 존호 타령은 그만 쑥 들어갔다. 그리고 송희진도 잠시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면서 한동안 그 움직임이 멈췄다. 그런데 올해 초에 예무대신으로 복귀한 송희진이 존호 바치기 운동을 재개했다. 조정에서 동조하는 이들이 다수 나서면서 여론도 확실하게 이끌었다. 역시 내가 고희를 넘겨-작년 내 고희연은 태후 때와 달리 아직 가뭄이 덜 끝났다는 핑계로 아주 간소하게 차려 먹었다-확실히 연로해지니, 혹시 죽기 전에 어서 존호를 올려야겠다고 몸들이 단 모양이다.
“폐하께서는 그 뒤로도 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 남기실 숱한 업적을 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 준호를 올리지 않는다면 신들이 불충한 신하로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될 터이니, 어찌 폐하께 부디 존호를 받으시라고 주청하지 않겠습니까.”
송희진의 선창에 12부를 이끄는 대신들은 물론이고 늙은 국상 민지원까지 가담했다. 주요 중신 중에서 송희진에게 동조하지 않는 신하가 하나도 없었다.
“…..알겠다. 그대들이 좋도록 정하라.”
마침내 손을 들고 말았다. 장조 때는 몸은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았으면서도 정신을 50대로 그랬는지 끝까지 싫다고 버텼는데, 이번에는 몸은 멀쩡해도 마음은 70대라서 그런지 결국은 져버렸다. 까짓 존호, 받고 말지 뭐.
내가 수락하자 신하들은 신이 났다. 그리고 그동안 머리를 쥐어짜서 준비한 온갖 문구를 늘어놓으며 이게 좋겠다고 서로 다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뒤 봤더니 이 여덟 글자로 낙착이 됐다.
“익문선무희경현효(翼文宣武熙敬顯孝)라고 함이 좋겠습니다.”
송희진이 앞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별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도록 정하라.”
여덟 자 장도면 적당히 넘어갈 만하다. 의미는 학교를 세워 학문을 권장하고 외적과 싸워 승리하였으며 국가의 중대사를 엄중히 살피고 효도를 확실하게 행하였으므로 이를 확실하게 나타낸다는 뜻이었다.
“지금 미리 받았느니, 훗날 짐이 죽은 뒤에는 시호를 더 덧붙이지 말도록 하라. 공연하게 길기만 하고 헛된 이름을 남겨 훗날 후손들이 비웃을까 저어된다.”
후세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내가 외우기도 어렵다. 임금쯤 되려면 역대 선황들의 존호 정도는 기본으로 외워야 하는데, 내가 장조의 저 빌어먹을 32자 짜리 존호를 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가. 그런 경험이 반복되는 건 절대로 사양하고 싶다.
20.
가을이 깊어가는 동안 남쪽에서 연락선이 왔다. 늘 올라오는 일상적인 보고 외에 두 가지 중요한 소식이 있었다.
“잉글인들이 무굴 조정에 보복을 개시했다고.”
델리에서 벌어진 학살극에 격분한 영국인들은 전력을 끌어 모았다. 본국에서 아직 별다른 방침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동인도회사가 보유한 함선과 병력만으로도 군사행동을 벌이기에 충분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무굴 조정이 있는 곳이자 학살 현장인 델리가 내륙 깊숙한 위치에 있다 보니 직접 군대를 들여보내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영국 측 거점인 수라트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델리로 진군하려면 3천 리 가까이 움직여야 한다.
“그리하여 아직 무굴 조정이 지배하는 해안 고을을 습격하여 약탈하면서 조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벵갈에 있는 저들의 상관에서도 군사를 움직여 동쪽에서 델리를 칠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무굴 정부는 마라타 동맹의 북진을 저지하는 데만도 벅차다. 그러니 그나마 얼마 안 남은 영토를 영국 측에 약탈당하느니 어떻게든 합의를 보는 게 나으리라.
“무굴 조정이 벵골 태수를 통해 전갈을 보내기를, 잉글국과의 사이에 중재를 요청했다고 하옵니다. 어찌 답하면 좋겠사옵니까?”
“무슨 답이 필요하겠느냐. 헛된 유언비어에 속아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였으니,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 피해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함이 옳으리라.”
그 뒤로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논란이 되었던 마라타 동맹군의 유럽제 화포는 프랑스제일 가능성이 컸다. 확실히 억울하게 당한 영국인들로서는 마땅히 무굴 조정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주천사에게 명하기를, 굳이 끼어들 필요 없으니 조언이나 하라고 전하라. 공연히 협상을 끌지 말고 어서 마무리를 지으라고.”
남쪽에서 올라온 두 번째 주요 소식은 조홀국 이야기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내란이 터졌다. 예상대로 정명완이 죽고 난 뒤에 왕위를 두고 벌어진 내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