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21
3부 639화(1521화)
7.
“섭생에 주의하지 않고, 술을 지나치게 마신 환자가 속이 상한 끝에 피를 토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지금 태자께서는 술을 끊은 지 여러 해가 되셨으나, 그전에 생긴 병이 몸 깊이 잠복한 지 오래라 그 증세가 심하여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허면, 나을 수 없다는 말인가?”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위병(胃病)을 낫게 하려면 음식을 조절하고 한온(寒溫)을 적당히 하며 마음을 맑게 가지면서 생각을 쉬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몸을 보하며 원기를 보충할 수 있는 탕약을 올릴터이니…..”
“토혈이 멈출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것이….장담을 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몸이 나아지기에 따라 아주 멈출 수도 있사옵고,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언제 또 토혈할지고 알 수 없다는 말인가.”
“송구하옵니다……”
동궁 바깥에는 내가 명한 대로 이용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도 있으니 바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고, 대전으로 따라오라고 해서 둘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위벽을 보호할 현대 의약품도 없고 수술할 수도 없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대한 최고 명의라고 할 내의원 태의에게서 치료법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나니 새삼 가슴이 찢어졌다.
이용원을 돌려보내고 나서 혼자 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너무도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 이번에 처음으로 아이를 잃는 건 아니다. 겨우 여섯 살이 되기 전에 홍역으로 죽은 홍씨 소생 전이도 있었고, 병이나 사고로 어려서 죽은 손자녀가 친손ㆍ외손 합쳐서 열 명이 넘는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하나하나 생각도 안 날 정도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은이만큼 나와 유대를 쌓은 자식은 없었다. 현대에서 젊은 아빠들이 흔하게 그러듯이, 함께 놀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안장 앞에 앉혀서 말을 타고 겨울이면 눈싸움을 했다. 지난 세 번의 생에서 낳은 어떤 아이들에게도 이렇게는 해주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임금으로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내 자식이지만 대하는 데 늘 격식이 있고 벽이 있었다. 내관과 상궁들이 돌보았고 엄선한 스승들이 그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만 그 아이들을 만나 아비 노릇을 했다.
그런 장벽 없이 편하게 키울 수 있었던 아이들이 세 번의 생애를 통틀어서 은이와 준이, 루시아뿐이었다. 하지만 준이는 어려서 그 기간이 짧았고 루시아는 더 짧았다. 정말 민가의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낸 아이는 은이 하나밖에 없었다. 은이와 함께 보낸 수많은 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미주에서의 그 귀엽고 예쁜 어린 시절, 형황 앞에서 천진하게 굴던 그 모습, 대궐이 싫다면서 연화방 집에 가고 싶다고 구슬프게 울던 얼굴, 눈싸움하다가 모후에게 함께 혼나던 날의 광경까지…..
돌이켜보면 은이에게는 참 미안했다. 황태자가 되고 싶어 하지도 않던 애를 내 욕심으로 궁궐에 데리고 들어왔고, 억지로 공부시켜 태자로 앉혔다. 다행히 재능은 있는 아이라 어디 뒤떨어지는 것 없이 다 잘 베웠고, 능력도 출중했다. 왕재(王才)라고 주변의 칭송도 받았다. 미주에서 태어났다는 건 귀국 초기에는 촌놈이라고 비웃음을 사는 약점이었지만, 태자가 되고 나니 미주 백성들까지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강점이 되었다. 미주에 순행 갔을 때 미주 백성들이 보인 열광적인 환영이 그 증거다.
하지만 은이가 그 자질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예전에 한양에 모였던 그 많은 태자와 세자 중 보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오직 은이 하나뿐이다. 그 파포태조차 잠시나마 대칸 자리에 올랐건만, 그때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났으나 은이는 아직도 태자다.
“미안하다…..정말 미안하구나. 이 못난 아비가 너무 오래 살아서…..”
내가 적당히 살고 눈을 감았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저 아이가 잠시나마 보위에 올라 자기 이름을 역사에 남겼을 텐데. 문종처럼 짧게 재위하더라도 분명히 재위한 것과 아예 보관을 써보지도 못하고 나중에 추존이나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르니까. 탁자 위에 엎드린 채로 밤새 울었다. 원하지 않던 아이를 대궐에 들인 게 미안해서 울고, 대궐에 들여 놓고서도 임금 자리에 앉게 해주지도 못해서 또 울었다. 병에 걸렸는데 낫게 해주지 못한 것도 미안해서 계속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새벽은 오지 않았다.
8.
은이가 피를 토했다는 사실은 대놓고 떠들 수 없는 소식이었다. 황테증손이 태어났다는-엄밀히 말하면 태증손으로 정식 책봉되기 전에는 원증손(元曾孫)이라고 부르는 게 법도에 맞긴 맞겠는데, 내가 선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증손 태증손하며 다녔더니 다른 이들도 그냥 죄다 태증손으로 부르고 있다-기쁜 소식과는 비교도 안 되는 흉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 1월 18일 아침에 내 앞에 나타난 여러 중신 중 적어도 일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를 쳐다보는 표정과 눈빛을 보건대, 대궐 내에 있는 연줄을 통해서 이 사건에 관해 정보를 입수한 게 분명했다.
“그대들은 간밤에 대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게구먼.”
“아, 아니옵니다., 폐하.”
신하들이 쩔쩔매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놈들과 공연히 기싸움을 하며 서로의 속을 들여다보는 그 과정조차도 너무나 힘들고 번거로웠기에, 그냥 내가 먼저 털어놓았다. 어차피 은이가 중병에 걸린 거야 조정 전체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태자의 용태가 무척 나쁘다. 태의가 말하기를, 오래 버티기 힘들 듯하다 하였다.”
편전에 나오기 전에 잠시 동궁에 들렀다. 은이 옆에서 버티느라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는 태자비 한씨와 새벽에 급히 환궁한 안나의 초췌한 안색을 보고, 아직 자는 은이의 파리한 얼굴도 보았다. 혹시 자다가 또 피를 토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다행히 기우였다.
그러나 언제 또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서 영이는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동궁에 머물면서 아비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도록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랏일을 배우라고 끌고 나와 여기 앉혀둬 봐야 머릿속에 들어가지도 않을 거고, 훗날 한만 된다.
“하지만 괜찮은 건 지금뿐이다. 언제 또 피를 토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그대들도 그리 알고 있도록 하라.”
내가 간단히 상황 설명을 끝내자 침묵이 밀어닥쳤다. 소식을 이미 알던 이들이나 모르던 이들이나, 다들 입을 열지 않고 눈치만 살폈다. 먼저 그 침묵을 깬 이는 은이의 친 외삼촌인 민지원이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옵니다. 지금 내의원에서 태의들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 도성에 있는 다른 의원들이라도 불러들여 태자께 올릴 탕약을 짓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내의원 태의들보다 나은 의원이 어디 있다고 불러들인단 말인가. 한성의학교에서도 가장 뛰어난 교수들은 다 내의원 태의를 겸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계속 임상 경험을 쌓지 않으면 실력이 퇴보한다. 옛날 허준 시대 어의들이 가끔 혜민서에 나가 빈민을 구제하며 치료 실습을 했듯이, 내의원에 있는 태의들 역시 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광혜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실력을 유지한다.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뒤에는 그저 하늘의 은총이 내리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대들이 짐의 아들인 태자를 걱정하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이 나라의 대신으로서 맡은 역할도 잊어서는 안 되리라.”
“하오나 폐하, 이 나라의 근본께서 중태이시라 하는데 어찌 소인들이 자리에 편이 앉아서 국사를 논하겠습니까?”
“그럼 그대들이 동궁전 앞에 몰려가 땅에 엎드려 빌면 태자가 벌떡 일어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이미 태의들이 최선을 다해 약을 달이고 있고, 원각사아ㅔ 사람을 보내 병이 낫기를 비는 불사도 청하였으며 마포성당에 미사도 청하였다. 그대들이 무엇을 더 하겠는가.”
그런 게 다 소용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천상에 있는 신적 존재들-정확히 누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이 지상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도, 이 세계가 ‘자연 법칙’에 따라 굴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도.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기우제는 아무런 기대 없이 순전히 백성들에게 약간의 안도감이라도 주려고 지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이 새끼줄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혹시 아는가, 관세음보살이나 성모 마리아가 일말의 자비심이라도 베풀어줄지.
지금 같으면 그 빌어먹을 천녀 그 년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빌 수 있다. 내게 남은 수명을 모조리 은이에게 넘겨주는 거래라도 하겠다. 그 년이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그 년이 이제껏 한 행동을 보면 그 대가로 다음 생에서 무슨 고생을 시킬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좋다.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당장 죽어가는 내 아들이 살아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정에서 그 문제로 난리를 치는 꼬락서니는 안 보고 싶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뿐더러, 처리 안 된 나랏일만 쌓일 뿐이니까.
지금 대한의 강역은 동서로 3만 리, 남북으로 2만 리에 달한다. 이 광대한 제국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그런 혼선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각부 대신은 어서 처리해야 할 현안을 꺼내도록 하라. 낭비할 시간이 없느니라.”
망설이는 신하들을 재촉했다. 일에 몰두하면서라도 조금이라도 이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잊고 싶었다.
9.
“동궁에서는 별 소식이 없는가.”
“없사옵니다, 폐하.”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계획은 실패였다. 분명히 정전이나 편전에서 국사를 처리하면서도 내 눈과 귀는 중신들과 그들이 가져오는 문서보다는 나무문 저편에 있는 내관과 상궁들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공연히 사람을 몇 번씩 동궁에 보내 상태를 살피고 오게 했다. 혹시 은이가 또 피를 토했다는 소식이 오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업무를 끝내자마자 바로 동궁으로 달려가 누워있는 은이의 손을 잡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듣고 침전으로 돌아와서도 불안했다. 내일 아침 은이가 깨어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폐하! 태자께서 또 피를 쏟으셨습니다!’
“당장 동궁으로 가겠다!”
처음 피를 쏟고 거의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던 두 번째 토혈이 제법 오래 나타나지 않기에 혹 이대로 상태가 안정되는 게 아닐까 하고 기대를 품던 참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출혈이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렸다.
“이번에는 다섯 홉 가까이 토하셨습니다. 이만한 출혈이라면…..”
태의 이용원이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로서는 은이를 살리려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냥 고개를 저어 몰러가라고만 명했다.
“어떡하십니까, 주상. 태자가 이런 변고를 겪더니…..”
태후는 차마 은이의 침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흐느꼈다. 은이가 피를 쏟고부터는 태후도 경희궁에 와서 머무는 중이다. 태후전으로 마련해두었으나 그동안 쓰는 사람이 없던 전각을 처소로 쓰고 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습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런 가슴 아픈 일을 겪으니….차라리 이 늙은 목숨을 던져 태자를 살릴 수 있다면…..”
태후도 나와 똑같은 말을 했다. 아들도, 딸도, 동서도, 며느리도 모두 먼저 떠나보냈는데 이제 다음 임금이라고 한껏 애정을 쏟던 조카까지 떠나보내게 되자 심리적인 충격을 견디기 힘들어진 거다.
“아닙니다. 태후마마께서 굳건히 중심을 지켜 주신 덕에 이 황실이 그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 마시고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애써 태후를 위로했다. 나도 태후도,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 그게 의무니까.
10.
한 달이 더 지났다. 은이는 두 차례나 더 토혈했다. 변은 늘 혈변이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안색은 늘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은이가 피를 토할 때마다 동궁이 발칵 뒤집혔다. 태후는 물론이고 형과 오라비의 안부를 걱정해서 입궁한 아우들도, 내 후궁들도 은이의 몸 상태에 촉각을 기울였다. 시중에서도 이 문제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은이는 꽤 인기가 괜찮은 태자였다. 최근에는 신병 때문에 바깥 활동을 거의 못 했지만, 그전에는 백성들 앞에도 자주 나서고 시혜도 많이 베풀었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으니까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성 백성들은 누가 따로 시키지 않아도 서낭당이나 불당에서 은이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렸다. 참으로 고맙게도 말이다.
이런 상태로 두 달이나 끌고 보니 외국에도 소식이 퍼져나갔다. 우리와 우호 관계인 여러 주변국, 심지어 후송에서까지 나를 위로하는 서한과 위문 선물이 왔다. 온갖 명약과 희귀한 약재가 쌓이는데, 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무슨 약을 쓴들 위장에 난 구멍은….. 미칠 것 같은 괴로움과 안타까움이 번갈아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편전에서 한참 국사를 돌보다가 문득 걱정이 치솟으면 사람을 보내 은이의 상태를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계속 지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끝이 왔다.
“폐하! 태자께서 또 피를…..!”
“앞서라! 아니, 비켜라!”
이번에는 절대 한가하게 누군가를 뒤따라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류고 뭐고 다 책상에 팽개치고 그대로 동궁전으로 뛰었다. 내관들과 상궁들이 헉헉거리며 내 뒤를 따랐다.
“아바마마!”
준이가 애타게 나를 불렀다. 준이도 소식을 듣고 심양에서 달려와서는 거의 열흘째 매일 동궁에 나와 형을 돌보고 있다.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아바마마! 태자께서….피를…..피를…..”
“들어가자!”
그대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정말 보지 않기를 원했던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
“우욱, 컥! 우에엑….!”
은이의 입에서 끝도 없이 피가 쏟아졌다. 태의들이 필사적으로 출혈을 막으려고 했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고, 태자비 한씨와 안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은이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태자마마, 태자마마!”
“이렇게 가실 수는 없사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없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든 한씨가 나를 보고 울먹였다.
“폐하, 부디 태자마마를 살려주시옵소서. 폐하의 뒤를 이어야 할 테자이옵니다. 죽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옵니다. 폐하, 부디…..”
살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릎에 힘이 빠졌다. 털썩 쓰러지듯이 은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지 안나가 흐느끼면서도 옆으로 비켜서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덕분에 내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은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바마…..마.”
“정신이….정신이 들었느냐?”
은이가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수염도 온통 피에 젖었다. 그런 상태로도 나를 향해 웃는 그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지….마시옵소서, 아바마마. 마흔넷이면 그래도 살 만큼 살았잖사옵니까. 세상에는….더 젊어서 요절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사옵니다.”
남들이 일찍 죽는다고 나도 일찍 죽어도 될 리 없다. 하지만 울음이 복받쳐서 은이가 한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대답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던 듯, 은이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다고는 하나….아바마마보다 먼저 가게 되었느니 실로 큰 불효를 저지르고 가옵니다. 아바마마, 부디 소자의 불효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소자에게 소망이 하나….있사옵니다.”
“무엇이냐?”
울음을 참느라 더 길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은이는 내가 깜짝 놀랄 소망을 자기 입으로 내놓았다.
“아바마마,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그리고 태손이 성군이 될수 있도록 더 가르치고 또 돌보아주소서. 소자에게 하셨듯이, 태손을 잘 가르쳐 성군이 되게 해주소서.”
“알겠다…..”
내 대답들은 은이는 기쁜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피가 또 입 밖으로 분출했다. 내가 입은 곤룡포게 피가 잔뜩 튀었다.
“태자야!”
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은이는 격하게 피를 토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이 축 늘어졌다. 고개를 뒤로 늘어뜨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은아, 은아!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나다! 아비다! 은아! 은아!”
눈은 아직 뜨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코에서 콧김도 나오지 않았다. 몸을 흔들어도 맥없이 흔들릴 뿐, 산 사람이 보이는 그 기척이 없었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식어가는 아들의 몸을 안고 끝없이 통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