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25
3부 643화(1525화)
20.
조홀국에 지원국을 보내자는 방안은 별문제 없이 삼군부에서 통과됐다. 다만 내가 생각한 바와 달리 파견할 병력 중 일부라도 본국에서 선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럴 때 쓰자고 만든 군영이 대붕영입니다. 마땅히 대붕영 1개 연대를 조홀국에 파견해 경험을 쌓고 실력을 유지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군부 도총사 권훤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대한의 강역 어디라도 당장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대붕영의 본분이라면서 말이다.
“대붕영은 폐하의 위광이 대한 땅 어디라도 미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처음에 대남도 군사만 보낸 거야 조홀국의 아체 원정을 도우려는 의도였으므로 상관없었습니다만, 이번 원군은 명확하게 내란 진압을 도우러 가는 것이니 대붕영이 가야 합니다.”
내가 대붕영이 아니라 누손주 병력을 보내려고 한 건 그저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 였다. 같은 규모라면 누손주에서 보내는 게 당연히 돈도 덜 들고 빨리 보낼 수도 있으니까. 또한 온갖 열대병-장독(?毒)에 의한 병이라고 해서 우리 의학계에서는 장역(?疫)이라고 한다-에도 본토 병력보다 저항력이 강할터였다. 하지만 권훤은 생각이 달랐다.
“의관들을 넉넉히 보내면 병으로 쓰러지는 군사도 줄일 수 있을 터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따져 보시옵소서. 누손주 군사도 분명 폐하의 군사이긴 하오나, 본국에서 원군을 보내고 안 보내고가 조홀국 조야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입니다.”
권훤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미리 의논이 다 되어있었는지, 다른 장수들도 모두 동의하고 나섰다.
“도총사의 말이 옳사옵니다. 국본(國本)께서 그만 흉한 일을 당하신 터라 그동안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으니 늦은 것은 어쩔 수 없사오나, 이제라도 군사를 보내시옵소서.”
“1개 연대는 좀 많다 하더라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1개 대대 정도는 보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옵니다. 나머지는 폐하께서 명하셨듯 누손주 군사로 보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삼군부에 모인 장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붕영을 조홀국에 파병하자고 했다. 심지어 장조 시절에 명나라 군대가 우리를 도우러 왔던 일까지 거론하며 그 타당성을 옹호했다.
“경인왜란 때는 명군이 온 적이 없다. 을미동정 때 요동 마병 조금을 보내 원병이랍시고 생색만 낸 것이 번부 아니었더냐.”
“그렇기는 하오나, 그건 황제께서 군사를 보내겠다 하시니 장조께서 ‘우리 군사만으로 잘 싸울 수 있느니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하는 답을 보내셨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요컨대, 다른 나라를 보호하는 상국으로서 번국을 지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꼭 대붕영이어야 하는데. 그냥 누손주 군사들을 보내도 되잖아. 을미동정 때 명나라가 보낸 ‘원군’이 명나라 중앙군이 아니라 건주 기병들이었던 것처럼. 내 눈에는 장수들의 대붕영 파병 건의가 갈아놓은 칼을 휘둘러보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하지야 광동 출병이 벌써 6년 전이니, 본국에 있는 장수와 군사 중에 전공이 고픈 자들도 꽤 있겠지. 그래, 좋다. 보내주자.
“그대들의 뜻을 가납하겠다. 누손주에서 보내는 군사 2천과 별도로, 대붕영에서 자원하는 장졸들을 모아 1개 대대를 편성하여 화포와 함께 보내도록 하라. 그리하면 본국에서 번국을 어찌 생각하는지 드러낼 계기가 되리라.”
그동안 복국에서는 정기적으로 조홀국에 무기를 공급했다. 소총, 대포, 갑주 같은 장비를 수송선에 실어 보내주고 있다. 은이가 죽어서 파병을 논의할 계제는 아니었지만, 번국에서 난리가 났는데 진압에 쓸 무기 정도는 거저 보내줄 수 있었으니까. 이 정기편에 병력을 보낸다고 하면 어려울 건 없다. 1개 대대 규모 병력이라면 수송선 네 척 정도면 넉넉하다. 호송선 두 척 정도 붙여서 내려보내면 충분하리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렇게 낙착을 보았다. 누손주에서 2천 명, 대붕영에서 8백 명이다. 대붕영은 작년에 건 출동 준비 태세를 여태 풀지 않았으니, 1개 대대 정도 선발해서 보내는 건 금방이리라.
21.
조홀국에 들어온 예상치 못한 원병으로는 포르투갈 용병들도 있었다. 이들은 인도를 거쳐 조홀국에 들어왔는데, 자기들도 병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영국 동인도회사가 이 포르투갈인 병사들을 조홀국에 양보한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원군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축에 들어온 잉글국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대소 전선과 수송선을 합쳐 배가 마흔 척, 병력이 4천여 명이라고 합니다.”
델리 학살은 런던을 발칵 뒤집어 놓고도 남을 만한 소식이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영국인 및 현지 고용인들이 인도인들에게 학살당했으니 꼭지가 돌지 않으면 영국 정부가 아니다. 심지어 적대국과 싸우다 생긴 사고도 아니다. 영국인들로서는 동맹을 맺고 거래를 열고자 하던 상대한테 배신을 당했다. 보복하겠다고 군대를 보내는 게 당연하다. 지금 영국 본국이 따로 치르는 전쟁도 없으니 병력을 보내는 게 곤란하지도 않으리라.
물론 겨우 4천 명으로 3천 리를 진격해서 델리를 직접 위협하기는 좀 어렵다. 동인도회사 측에서 그동안 집결한 유럽인 및 인도인 병사 6천 명을 합산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오스만이 그렇듯, 무굴제국도 아직은 대국이니까 말이다. 흔들린다, 흔들린다 해도 무굴제국은 아직 델리를 위협하던 마라타 동맹군도 일단은 다시 밀어낼 만큼 군사력도 남아 있다. 겨우 1만 명으로 수라트에서 보급로까지 확보하면서 진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도 내부에서 원군을 얻어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철저하게 파악해둔 정보에 따라, 현지에서 협력할 세력을 찾아내고 말았다. 이들이 바로 저들이 얻은 두 번째 원군이다.
“식구교도들이 잉글군에 합세했다고 하였지.”
“예, 폐하.”
식구교(?邱敎)는 인도의 독자적인 종교인 ‘시크교’를 말한다. 이슬람교와 힌두교 양쪽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슬람교가 국교인 무굴제국에서는 이들을 이교도로 보고 탄압했다. 이로 인해 몇 차례나 반란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식구교도들이 잉글군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병력은 5만이라고 합니다. 그만하면 무굴국이 위협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외무대신 권이성이 바로 대답했다. 외무부뿐 아니라 다른 부에서도 두루 유능하다는 평을 받은 유능한 신하다.
“식구교도 정예병 5만이란 말이지…..”
오랜 탄압의 역사 때문에, 시크교도들은 21세기까지도 용맹한 사람들로 유명하다 지금은 무굴제국한테 탄압당한 원한도 멀쩡히 살아있을 테니, 영국으로서는 그 이상 가는 원군을 바랄 수 없으리라.
“잉글인들이 식구교도들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무굴 조정에서는 벌집을 쑤신 듯 소동이 벌어졌다고 하옵니다. 비로소 지난번 사변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일이 잘 해결된 듯하옵니다.”
“그러 길래 우리가 진즉에 화해하라고 권했을 때 일찌감치 했으면 좋았을 게 아니냐. 괜히 시간을 끌다가 배상금 액수만 오르지 않았는가.”
한두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 함대까지 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눈알이 튀어나올 만한 금액을 내놔야 하지 않을까. 델리에도 아직 그만한 돈이야 있겠지.
22.
짚고 넘어갈 일이지만, 영국의 아시아 진출은 어째 역사보다 꽤 빠르다. 이번 사건에서 수천 명이나 되는 병력을 제꺽 보내는 것도 그렇지만, 뉴홀랜드 방면 식민지도 벌써 인구가 5만 명을 넘는다. 이제는 누가 몰아내기도 쉽지 않다. 본래 뉴홀랜드는 자코바이트들을 갖다 버리는 추방지였다. 쫓겨난 스큐어트 왕가의 적손 제임스 3세를 국왕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들은 여전히 상당한 숫자였고, 영국 정부는 이들을 붙잡는 대로 처형하는 대신 뉴홀랜드에 보냈다.
이렇듯 처음에는 유형지로 시작한 뉴홀랜드였지만, 영국 정부가 남해 거품 사건의 뒤처리 방안 중 하나로 뉴홀랜드 개척을 결정하면서 사태가 맹랑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영국인들이 자코바이트 외에 일반 채무자가 농민들을 실어다 내려놓기 시작한 거다.
덕분에 지난 십여 년 동안 뉴홀랜드는 급속하게 영국령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먼저 배를 타고 건너온 자코바이트들은 뒤이어 건너온 영국 일반인들에게 파묻혀버렸고, 혹시 그곳이 반기를 들어 스튜어트파 독립국이 되지 않을까 했던 예상도 완전히 빗나갔다.
“참으로 잘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국왕에게 충성하는 신민들이 그 땅을 채웠으니, 공연히 싸움이 일어날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듯하다.”
파리에 있는 제임스 3세-영국에서는 명예혁명 이후 제임스라는 이름을 쓰는 왕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니 혼동할 우려 없어 좋군-는 지금쯤 퍽 아쉬워하고 있겠지. 한대는 자기 세력을 확대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내게 뉴홀랜드 공격에 협력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었는데. 제임스 3세를 비롯한 스튜어트 왕가 자손들은 여전히 왕관을 되찾겠다고 아득바득 기를 쓰고 있다. 밀사와 자금을 보내서 스코틀랜드와 아일ㄹ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나도록 부투기고,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외교적 지원을 청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하나같이 빛을 보지 못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밀사들은 붙잡히고 봉기는 실패 했다. 체포된 관련자들은 줄줄이 배에 태워져 뉴홀랜드로 추방되었다. 그리고는 황무지를 개척하느라 헉헉대는 삶을 살았다. 일상이 전쟁이나 다름없게 되고 보면 정치적인 문제 따위는 생각도 안 하게 되는 사람이 태반이다. 게다가 자코바이트는 뉴홀랜드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 중에도 소수로 전락했으니, 더더욱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 따위는 관심이 없게 되었다.
딴 한 가지 놀라운 건, 어떻게 벌써 이 먼 동양까지 이민선이 왕래할 만큼 영국에 인구가 남아도느냐는 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원래 역사에서 호주 이민이 본격화된 건 18세기 말이었다. 지금은 18세기 초, 뉴잉글랜드 식민지도 사람이 덜 들어찬 시대란 말이다.
‘역시 종두 때문인가?’
내가 영국에 갔을 때만 해도 영국인들은 대부분 종두를 예수회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그 약을 접종하면 소가 된다거나 예수회의 마법에 넘어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십 년이 흘렀다. 종두가 널리 퍼진 유럽 대륙에서 종두를 맞고, 소가 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영국에서도 종두법이 점점 퍼져나갔다. 영국에서는 예수회가 정식으로 활동할 수 없으니, 일반 의사들 손으로 말이다.
다만 이 의사들은 태반이 돌팔이 들이었다. 고로 효과 없는 가짜 종두가 넘쳐났다. 하지만 유럽에서 배워온 진짜를 시술하는 의사들도 상당수인지라 종두의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덕분에 천연두로 죽는 사람의 수는 대폭 줄었다. 이는 익문사 보고로 확인된 사항이다. 게다가 감자 보급도 빨라졌다. 원래 역사에서는 18세기 말이나 19세기에 가야 먹던 것이 우리 탓에 훨씬 일찍 보급되었으니까 말이다. 밀이나 보리보다 감자를 더 좋아하는 지경은 아니지만, 식량 공급이 늘어난 건 분명하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대개 감자를 사람이 직접 먹는 대신 돼지 사료로 쓴다지만, 그렇게 해도 식량 공급은 늘어난다. 일단 키우는 돼지 숫자부터가 대폭 늘어나지 않는가. 종두법과 감자 덕분에라도 영국 인구가 늘어났으니 뉴홀랜드 하나정도 추가로 개척하는 건 일도 아니긴 하겠다. 아니, 유럽 전체 인구가 원래 역사보다 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제국주의 시대, 서세동점의 압박도 그만큼 강해지리라는 소리겠지.
23.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가 오기전에 우리가 먼저 상대해야 할 건 중국이다. 어떡해야 지금처럼 중국을 세 조각 이상으로 갈라놓고 분열상태를 유지하게 할 수 있을까. 내가 기입하지 않았으면 지난번 내란으로 서나라는 두 조각이 날 뻔했다. 그리고 두 쪽이 난 서나라는 아주 간단하게 후송과 청나라에게 한 쪽씩 잡아먹혔을 거다. 그리고 나면 남북 양 왕조는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아주 치열한 싸움을 벌였겠지.
후송이 서나라를 공격하는 거야 우리가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청나라가 작심하고 말을 달려 사천으로 진군한다면, 과연 우리가 청나라를 칠 수 있을까? 서나라를 유지하려고? 지금은 후송이 청나라를 불구대천지수로 대하고 있으니 우리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항아리 속 게들처럼, 청나라가 서나라를 제대로 치면 후송군이 그 틈에 청나라를 공격해서 훼방을 놓을 테니까. 하지만 둘이 밀약을 맺고 서나라를 나눠 먹는다면 어떨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기 않느다. 건주 양국을 이간질해서 후금이 청나라를 치게 할 수도 없고, 준가르가 청나라 국경을 공격하게 공작할 수도 없다. 아니 잠….깐. 어라?
막 떠오른 착상이지만 의외로 괜찮을 수도 있겠다. 준가르라면 장안을 노리고 맹공격을 퍼부어 사천으로 들어가던 청군이 후퇴하도록 만들 정도의 힘은 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직접 준가르와 연계하면 안 될 듯하다. 할 도리도 아니고 들키기도 쉽다. 그보다는 서나라가 그 정도 외교력은 발휘할 수 있도록 평소에 주서사 편으로 조언을 약간 넣어두는 편이 좋겠지.
“어째 남을 속이고 뒤통수칠 궁리만 하는 나 자신이 싫구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정사에 관한 일은 모두 편전에 내려놓으시고, 여기 침소에서는 편하고 좋은 일만 생각하소서.”
내가 난데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옆에 누운 숙비 홍씨가 손으로 내 가슴을 문지르면서 나를 댈랬다. 부드러운 손길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은이가 죽은 지 몇 달 되지도 않아서 후궁 처소에 드는 게 너무 미안했지만, 너무 가슴이 아파서 혼자 잠들 수가 없다. 두 후궁 중에 아무래도 나처럼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홍씨 처소 쪽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숙비의 위로를 받으며 다시 누워 잠이 들려는 참인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내 잠을 깨우느냐고 짜증을 내려는 참인데 문밖에서 다급하게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근위대총사 악가백이 방금 숨을 거두었다는 연락이 왔사옵니다.”
“무엇이라? 악가백이?”
악가백(?可伯)은 근위대총사 민지상의 봉호다. 민지상이 세운 그간의 숱한 공을 기리는 의미에서 작년 말에 백작을 봉했을 때, 계미남변 때 아카폴토에서 스페인군을 대파한 일을 기념해서 이런 봉호를 내렸다. 민지상은 내 처남이면서 전우였다. 미주에서, 그리고 도성에서 함께 말을 타고 칼을 들고 싸웠었다. 그런 친구가 이렇게 떠나다니…..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다 떠나는가. 내 옆에는 이제 아무도 안 남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