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26
3부 644화(1526화)
24.
“경이 세운 공은 산처럼 큰데 이제야 겨우 이런 작은 작위를 상이랍시고 내리니 미안하기 짝이 없소. 짐을 용서하시오.”
“아닙니다, 폐하. 폐하의 신하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해왔을 뿐인데 어찌 상을 받겠습니까. 신은 지금 내리신 작위도 과분하옵니다.”
선이의 백일상을 앞에 두고 민지상과 주고받았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떠난단 말인가. 민지상은 무관 출신인지라 신체가 건강해서 잔병치레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생각한다면 민지상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눈을 감은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민지상은 지난 무술년(1658) 생으로 올해로 만 78세니까 말이다. 언제 세상을 떠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왜 하필 올해인가.
“악가백은 태자께서 눈을 감으신 뒤로 갑자기 기력이 쇠하여 바깥출입을 그만두고 방에서 소일하며 지냈습니다.”
“그러한가. 내, 조금 더 자주 악가백을 찾을 것을…..”
국상 민지원이 지친 표정으로 형의 마지막 나날들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장차 명군이 되리라 믿으며 아끼던 조카가 먼저 죽는 모습을 본게 민지상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다면서 말이다. 그러더니 무서운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폐하. 신도 그만 사직 상소를 올리게 하여주시옵소서. 출사한 지도 어언 수십 년, 이제는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된 듯하옵니다.”
민지원의 구부정한 등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민지원도 늙었구나. 일흔여섯, 민지상보다 겨우 두 살 아래다. 최석정이 죽었던 나이보다 1살 더 많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소 리 한 번 안 하고 묵묵히 조정을 이끌며 내 오른팔로소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국상으로 재직한 기간만 따져도 거의 7년, 부친인 민성윤이 그 자리에서 머물던 기간보다 더 길다. 그 동안 치른 수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최근에는 은이를 잃고 정신줄을 놓은 나를 대신해 사실상 나라를 이끌기 까지 했다.
“가납하겠다. 물러가서 악가백의 장례를 치르는 일에 신경을 쓰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게 큰절한 민지원이 물러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새삼 내 처가 민씨 일가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민씨는 황후의 일가에다 공신으로서 세도를 부릴 법도 하건만,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언제나 정도를 지켰다. 덕분에 내가 조정의 기강을 잡기가 더 쉬웠다. 이는 상희가 친정 식구들을 잘 단속한 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씨 집안 가풍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민성윤 본인은 물론이고 자식들, 손자들까지 법도를 지키며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 말이다. 정말 모범적인 외척이다.
몇 가지 급하게 처리할 안건을 마치고, 나도 영이와 함께 어차에 올랐다. 민지상은 백작 작위까지 받은 공신이면서 사적으로는 내 처남이었다. 마땅히 내가 직접 찾아가서 조문해야 할 일이다.
“악가백이 아니었으면 이 할아비의 오늘도 없었으리라. 너도 그 공을 알아야 한다.”
“예, 팔바마마.”
작호를 내릴 때는 계미남변 때 싸운 싸움터 이름으로 했지만, 민지상이 나를 위해서 세운 진짜 큰 공은 미주를 평정한 일과 무인지변이다. 어찌 그 사건들을 잊을 수 있겠는가. 무인지면 당시, 훈련도감 중군이던 민지상은 초전에서 예왕군의 예기를 꺾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큰 공을 세웠다. 만약 그때 도감군이 패했다면 내 미래는 없었으리라. 나와 상희, 아이들까지 전부 죽거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 벽지로 유배당했을 테니까.
영이는 내가 들려주는 민지상과의 옛 추억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할아버지의 옛날 모험담을 들으며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듯했다.
25.
정호찬이 조용히 내 찻잔에 차를 따랐다. 은이가 떠난 이후로 나도 술을 끊었기에, 의례 때를 제외하면 늘 술이 아니라 차나 커피를 마신다. 그래서 모임 장소도 술을 마시기 쉬운 권훤의 집이나 보리스의 집이 아니라 여기 정호찬의 집으로 했다. 정호찬은 올해 열겠다던 이사벨라의 환갑연을 내년으로 미루었다. 대신에 나를 위로하는 간략한 다석을 마련했다는 명분으로 나를 초대했다. 나 혼자만이 아니고 나와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운 세 사람도 함께다.
“이젠 정말 몇 사람 남지 않았구나.”
찻잔을 드는데 절로 탄식이 나왔다. 민지상이 눈을 감으니, 새삼 옛 친우들이 떠나간다는 슬픔이 엄습했다. 미주 시절까지 나와 함께한 이들 중 아직 남은 사람은 이제 여기 있는 네 사람뿐이라서다. 견서사 중에는 정호찬 한 사람만 남은 지 오래다. 4년 전에 탈라스가 떠난 탓으로 카자크 6형제 중에는 보리스와 바실라만 남았다. 민지상이 갔으니, 미주에서 추가로 합류한 이 중에도 이제 권훤 한 사람만 남았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도 이 네 명뿐이다.
여기서 현직에 있는 사람은 권훤 혼자다. 정호찬과 보리스야 진즉에 물러앉은 지 오래고, 바실리도 금군이 개편되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카자크 중 가장 막내였던 바실리도 이제 예순여덟이다. 그만하면 은퇴할 나이 아니겠는가. 권훤도 벌써 예순다섯이다. 슬슬 물러날 생각을 할 나이기도 하건만, 본인은 전혀 물러날 의사가 없다. 무관으로는 종1품 대장인 삼군부 도총사 이상 올라갈 자리도 없건만, 원수가 되기라도 할 생각인가
육군대신 자리도 많은 무관이 바라는 출세의 종착점 중 하나다. 하지만 권훤은 자기는 그 자리에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육군대신은 오군대총관이나 북병사, 남병사와 같은 정2품이 아니옵니까. 무관은 아무리 출세해도 정승이 될 수 없던 옛날이라면 혹 모르겠으나, 이제 세상이 바뀐 지 오래입니다. 굳이 더 낮은 자리로 청해서 갈 이유가 없지요.”
권훤이 성격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호찬이 편을 들었다.
“삼군부 도총사까지 지낸 장수가 육군대신이나 해군대신으로 가는 전례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다들 비변사 제조를 거쳐 바로 중추원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정호천의 말대로다. 육군대신으로 가는 이들은 오군대총관과 대한북병사, 대한남병사 중 한 자리를 지낸 뒤에 육군부로 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육군부 내에서 문관으로 승진한 끝에 능력을 인정받아 대신이 되는 자도 간혹 있기는 있다.
“뜻대로 하여라. 어차피 짐도 그대를 대신 자리에 앉힐 생각은 없었느니라.”
40년 동안 옆에 두고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권훤은 애초에 대신 같은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될 재목이었다. 무능해서가 아니다.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 유형의 인간이라서다. 자기가 내키는 일,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귀신같이 해치운다. 하지만 책상 앞에 진드근하게 앉아서 해야 하는 행정사무 처리 따위는 좀이 쑤셔서 견디기 못한다. 그래서 삼군부에서도 사무는 홍진오를 비롯한 휘하 참모들이 대부분 처리하고 권훤은 도장만 찍고 있지 않은가.
삼군부 일이야 군령(軍令)에만 연관되니 그런 식으로 일해도 된다. 하지만 군정(軍政)을 맡는 육군대신의 일은 그런 식으로 절대 제대로 안 굴러간다. 권훤을 육군대신에 앉히면 본인도 나가자빠질 거고 한 달도 못 가서 도찰원-옛 사간원-에서 탄핵 상소가 무더기로 날아들 게 분명하다.
“사람은 다 적재적소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신은 그동안 해온 일과 거둔 성과에 모두 만족하오니, 부디 폐하께서는 이를 고려해 주소서.”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비위를 맞춰도 무묘 배행만은 짐이 정해줄 수 없느니라.”
이룬 위업만 보면 권훤 정도면 무묘에 가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그건 나와 권훤이 둘 다 죽은 뒤에나 조정에서 논의될 문제다. 그러니 내가 장담하면 그것도 꼴이 우스워진다.
“무묘에 오르고 싶다면 태손에게 잘 보이도록 하여라. 그 아이가 결정권을 쥘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권권이 세운 공적이라면 무묘 배향 정도는 너끈히 가능하지 않을까. 장차 무묘에 배향할 후보자로는 강희재와 이홍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제 민지상도 추가될 수 있겠다. 권훤을 비롯해 아직 살아있는 다른 장수들은 지금으로서야 후보가 되기 어렵고 말이다. 다만 이홍원을 제외하고, 권훤과 장희재 같은 내 총신들은 공적과는 불문하게 무묘 배향 문제가 쉽지 않다. 바로 내 총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내가 이들을 무묘에 배향하라고 명령하면, 세간에서는 내가 개인적인 총애 때문에 이들을 무묘에 보냈다고 떠드는 놈들이 줄을 지을 거다. 그러니 그 결정은 영이에게 미루는 수밖에 없다.
“신들도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께 그 문제로 원망 같은 것은 전혀 품지 않았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권훤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헌데 그 옆에 있던 보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찻잔은 손도 대지 않고, 멀거니 그 안을 들여다만 보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전하가 그립습니다, 폐하. 태자 전하가요. 제가 목말을 태워드리면 제 추프-카자크식 변발-를 꽉 붙들고 어서 달리라고 호령하시던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카자크들이 목말을 태워주면 은이는 종종 녀석들이 변발을 잡았다.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손잡이 삼아서 말이다. 카자크들은 머리채를 잡힌다고 해서 은이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떨어지지 않게 잘 잡으라고 외치는 판이니 나도 그냥 두었다.
미주에서의 나날은 카자크들에게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급여는 많지만 사냥 말고는 할 게 없어서 좀이 쑤시는 한양에서와 달리, 수시로 전투가 있었으니 더 줄거웠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는 이들도 젊었고 말이다.
“양소목이 부럽습니다. 잘 도착했나 모르겠군요.”
“잘 도착하였겠지. 그러고 보니 미주에 간 동현이 이제 슬슬 귀항할 때가 되어가는구나.”
40년이 넘게 은이를 모신 양소목도 이제는 그 일을 놓았다. 그래서 지선성에 묻을 은이의 옷가지를 들고 미주에 갈 사람으로 특별히 양소목을 골랐다. 물론 이 일을 담당한 책임자는 품계가 있는 양반 출신 관리였지만, 옷을 직접 운반하는 역할은 양소목에게 주었다.
“잘 머물 것이다. 그리고 잘 지켜 주리라.”
은이의 옷을 묻은 무덤은 일종의 가묘(假墓)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지선성에는 은이의 준이의 태실도 있다. 양소목이 능참봉을 맡아서 이것들을 모두 관리하게 했고, 그 직책은 양소목의 후손들이 토지와 함께 세습하도록 했다.
“미주인들은 기억하리라. 태자가 자기네 땅에서 태어나 자랐고, 혼일지언정 고향에 돌아와 그곳에서 영면했다고 말이다.”
여태껏 대한에서 왕릉이 두 개인 임금은 없다. 하지만 갖다 붙이자면야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공자 위패가 없는 서원이 어디 있던가? 그리고 임금의 위패도 사방에 널려 있는데, 비명에 간 태자한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미주에 하나쯤 있어서 안 될 이유는 뭔가. 영이는 미주에 못 간다.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 대신에 나중에 선이가 미주에 가서 할아버지의 가묘에 참배하며 미주 백성들에게 친근감을 표하면 그것도 괜찮은 효과가 있으리라.
“옆에 있던 이들이 먼저 떠난다고 허전하다 하지 마시옵소서. 아직도 폐하 곁에는 소인이 있지 않사옵니까.”
정호찬이 유유히 차를 따랐다. 그리고 내게 위로하는 말을 올렸다.
“마음을 다잡으시옵소서. 태손께서 즉위하실 때까지는 태자 전하의 당부에 따라 폐하께서 만수무강하셔야 하지 않사옵니까. 게다가 신이 평생 쓴 일지를 읽을 때까지는 사셔야 하니, 더더욱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옵니다.”
“그대의 일지라. 그것이 정말로 있기는 한 물건인가?’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비아냥거리고 싶어졌다. 정호찬 이놈, 혹시 일지 따위는 제대로 쓰지도 않았으면서 날 곯릴 생각만으로 일지를 언급하는 건 아닐까?
“물론이옵니다, 폐하. 제가 죽는 날 제 아들놈이 들어다 폐하께 바칠터이니, 장차 다가올 그 날을 즐거이 기다려주시옵소서.”
“혹시 그대가 일지에 짐의 욕이라도 써놓았으면 어떡하지?’
“신을 부관참시하시면 될 일 아니겠사옵니까? 허나 자식들은 이미 다 혼인하였으니 신과 연좌하여 벌을 주실 수는 없으실 것이옵니다.”
정호찬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내 위협을 받아쳤다. 그 태연한 태도를 본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아, 이게 몇 달 만에 이렇게 웃은 건지 원.
26.
미주에서 돌아온 동현은 양소목이 무사히 도착했고, 내 명을 받은 미주대총관의 지시에 따라 은이의 가묘가 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물론 그 큰 배가 그 소식 하나만 달랑 싣고 온 건 아니었다.
“폐하! 태자께서 돌아가셨다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직접 조문하고 또한 지금 폐하께서 품으신 슬픔을 위로해야겠기에, 신이 이렇게 직접 건너왔습니다.”
동현을 타고 온 뜻밖의 손님은 하와국와 하상운이었다. 따지고 보면 하상운이 조문하러 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는 게, 하상운은 나이는 네 살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명목상으로는 은이의 사위였다. 장인의 상을 당해 직접 달려오는 게 당연했다. 은이가 죽었을 때 세 번국-하와국, 술루국, 조홀국-에도 당연히 부고가 갔다. 하지만 겨우 석 달에 불과한 장례 기간을 고려하면 진위사를 받기는 애초에 무리였기에, 현지에서 단을 놓고 향을 피우며 조의를 표하기를 바란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세 나라 모두 정중한 답장을 보내면서 각 현지에서 자기 방식대로 조의를 표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 ‘자기 방식대로’를 강조한 이유는 술루국에서는 은이를 위해 우리 식으로 위패를 놓고 절을 하는 대신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뭐, 그 정도야.
하와국에서도 이 지시에 따라 위패를 모시고 절을 했다. 그런데 최지원과 이종이 그렇게 끝내면 안 된다고, 하상운이 입조하여 직접 조문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래서 갈팡질팡하던 참에 미주에서 돌아오던 동현이 입항하자 결심을 굳히고 그대로 올라타고 온 거다.
“하와국왕의 성의가 참으로 가상하다. 고맙구나.”
하와국 왕가는 민씨네와도 인연이 있으니 마침 잘 되었다. 옛날 카우이가 한양에 왔을 때 민성윤의 집에서 꽤 오리 신세를 진 바도 있으니, 민지상의 조문까지 하고 가면 되겠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상운이 타고 온 건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다음 소식은 전혀 반갑지 못했다. 미주에서 장길산이 여전히 설친다는 보고였기 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