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32
3부 650(1532화)
9.
이사벨이 숨을 거둔 날은 양력으로 재작년 10월 7일이었다. 태후의 생일이라고 악어고기 요리를 차리고 잔치를 벌인 바로 전날이 이사벨의 제삿날이었다니, 뭔가 오묘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인연이다. 그래도 70세, 사인도 병이나 사고가 아니라 노환이라고 하니 호상인 셈이다.
“술르국왕이 친자이니 술루국으로 먼저 소식이 간 모양이군요, 주상.”
소식을 들은 태후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비록 자기하고 만나볼 인연은 없었다고는 하나, 이사벨은 엄연히 디에고의 친모로서 사사로이 동서라고 부를 만한 이였다. 게다가 태후는 디에고를 무척 좋게 보고 있으니, 감회가 없을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태후마마.”
이사벨은 새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멘도사 백작가에서는 이사벨의 부고를 어디까지 알려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술루에 있는 디에고에게만 알리고 내게는 따로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그게 당연하기도 했다. 멘도사 백작가는 역사가 깊다고는 하나, 일게 백작가에 불과하다. 내게 직접 편지를 보낼 엄두나 낼 수 있겠는가. 스페인 정부를 통해서 연락을 넣기에도 지나치게 사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사벨의 그쪽 자식들로서도-멘도사 백작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죽었다고 한다-어머니의 옛 애인 따위에게 굳이 연락해 죽었다고 알려줄 필요 따위는 느끼지 못했으리라. 이부형제인 디에고는 만나기도 했고 가문 사내들이 그 밑에서 일하기도 하니까 알려줄 만한 인연이 있지만, 나야 그들에게 해준 게 뭐 있는가.
디에고는 술루국 전역에 있는 성당에 종을 울려 애도를 표하게 하고, 이사벨을 위한 추도 미사를 올리게 했다. 그리고 내게 편지를 보내 알렸다. 비록 나와 정식으로 혼인한 사이는 아니나, 그래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어버지’에게 알리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주상도 마음이 편치는 못하실 겁니다. 서희와이 인연이 비록 짧았다고 하지만, 두 분 사이에 결실까지 있지 않았습니까.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지요.”
서희(西姬)는 황실에서 이사벨을 가리키는 비공식 호칭이다. 만약 이사벨이 나와 헤어진 뒤에 수절하고 있었다면 디에고가 나타난 시점에서 적절한 봉작을 내렸겠지만-대한으로 건너오지 않고 스페인에 머물러도 봉작을 내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본인이 재혼하여 새 삶을 찾아버렸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서희’로 칭했다.
만약 이사벨이 수절하고 있었다면….그래도 중전 자리와 태자 자리는 바뀌지 않았겠지만, 디에고가 확실히 내 서자로 인정을 받고 고작 백작이 아니랄 군왕까지는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을 거다. 그랬으면 그 아이의 삶이 훨씬 편해졌겠지. 다만 디에고 개인이 아니라 대한이라는 나라의 시각에서 본다면… 디에고가 군왕이 아니라 백작을 받은 게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디에고가 공적을 쌓으려고, 자기 후손들에게 좀 더 안정된 지위를 마련해주려고 동분서주한 덕분에 얻은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내가 생각도 안 하던 키니네 종자를 구해온 이가 바로 디에고다. 그리고 술루국을 맡아서 남쪽 변경을 평정하는 것도 디에고가 정식으로 군왕에 봉해졌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디에고가 군왕이 되었다면 현왕처럼 그저 사냥이나 하며 소일해야 했을 테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사방에서 견제하고 들쑤시니 도저히 편히 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조금 미안하고 안쓰럽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사는 게 술루국왕에게도 더 낫지요.”
그 점에서는 태후도 나와 생각이 같다. 디에고가 그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백수로 지내는 것보다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생을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어릴 대는 딱히 게으러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던 홍이가 자라면서 파라고가 되어버린 게 그 완전한 반례 아닌가.
게다가 태후의 말을 듣고 보니 디에고는 별로 편히 지내지도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 본국에서 벌인 결투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여기서도 긴장이 풀리면 똑같이 굴었을지 모를 일이다. 데에고가 한양에서 한 번이라도 칼을 뽑는다면 그대로 인생이 끝났을 거다
물론 칼부림 한번 했다고 죽지야 않았겠지.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을 거다. 아마 빗발치는 상소 공세 끝에 스페인으로 추방되는 결말을 맞았을 가능성이 제일 크겠다. 같은 걱정을 공유하던 태후가 살짝 화제를 돌렸다.
“그래, 주상께서는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술루국왕이 그래도 폐하를 생각해서 소식을 보냈는데 뭐라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눈 애초에 이사벨과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러니 별다른 감정이 있을 리 없지만…..그녀는 내가 양자로 받아들인 디에고의 친모다. 그것 하나만 해도 내가 이사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를 표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서희는 이제껏 봉작을 받은 바 없고, 앞으로도 내릴 수 없으니 황실에서 뭔가 해줄 수는 없습니다. 법도를 생각하면 제 이름으로 마포성당에 미사를 부탁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는 않을 듯합니다.”
내가 이사벨을 위해서 추도 미사를 봉헌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보기에는 이혼하고 재가한 부인의 제사를 내가 지내겠다고 우기는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정신 나간 놈으로 취급받을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허면 어쩌시려고요?’
“바실공주에게 알려주고 미사를 봉헌하게 해야지요. 그 참에 예물을 따로 보태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
내 서장손녀, 바실공주 이사벨라도 벌써 30대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아주 원숙한 부인이 되었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도로테아를 닮아서 인형처럼 예쁘던 그 소녀가 보이는 듯하다. 그 부모처럼 이사벨라도 남편 권창과 함께 독실한 천주교도이니, 할머니의 영혼을 천국에 보내기 위한 추도 미사를 망설일 리 없다. 나는 거기 예물이나 두둑하게 보태주면 내가 할 도리는 다하는 거겠지.
10.
주변 사람들이 자꾸 떠나자 문득 지나간 삶이 후회스러워졌다. 그동안 내가 소홀히 했던 사람들, 숙비와 정비 두 후궁이나 그 소생 자녀들에게 한결 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희와 상희 소생 자녀들을 더 사랑하고 이들에게는 관심을 덜 쓴 게 사실이니까. 딱히 구박하거나 냉대한 건 아니다. 후궁들 처소에도 골고루 들려고 노력했고,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는 후궁 소생 자녀들과도 함께 어울려서 책을 읽거나 놀아주기도 했고, 자라면 함께 사냥도 나갔다.
혼인해서 분가할 때도 섭섭잖게 한 재산 두둑이 떼어주었다. 출궁한 뒤에도 종종 대궐에 불러서 소식을 묻고 함께 연회를 즐기거나 선물을 나눠주곤 했다. 하지만 관심은 아무래도 상희 소생 자녀들보다 덜 갔다. 평소에도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생각했는데, 이사벨이 죽었다는 소식을 받으니 갑자기 그동안 내가 보인 태도가 새삼 미안해졌다.
“이 아비가 그동안 너희에게 서운하게 한 게 많았다.”
두 후궁과 그 소생 자녀들, 그리고 죽은 희비 박씨 소생인 활이까지 불러 조촐한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니 활이, 계, 희주까지 셋 다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내 다음 말을 듣고는 입까지 떡 벌어졌다.
“전부 내가 부덕하여 일어난 일이다. 이 부족한 아비를 너희가 용서 하거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바마마. 용서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 부디 말씀을 거두시옵소서.”
며느리인 기왕비 최씨, 회왕비 송씨와 사위인 파평위 윤성일도 당황했다. 자기들이 혹시 뭔가 잘못이라도 저질렀는지 곱씹는 얼굴이었다.
“폐하, 폐하께서 자식들을 소홀히 대하셨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사옵니다. 군왕이란 언제나 바쁘기 마련인데, 어찌 폐하께서 하신 이상으로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비 김씨가 급히 나를 위로했다. 숙비 홍씨도 마찬가지였다.
“폐하, 신첩은 물론이고 기왕도 단한 순간도 서운함이나 원망을 품어 본 적이 없습니다. 폐하의 아들로서 어찌 그런 불효막심한 생각을 품겠습니까? 그런 걱정은 전혀 하실 필요가 없으니, 이런 거북한 말씀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충효를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인 이 나라에서, 불효는 최악의 범죄중 하나다. 황족이라고 해도 불효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숙비는 내가 여기에서 뭔가 불편한 말을 한 탓으로 자식들에게 불효자라는 화살이 돌아갈까 봐 우려하는 듯했다.
“숙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짐이 그동안 기왕과 회왕, 의선옹주에게 좀 부족하게 대한 것 같아 사과하고 싶을 뿐이오. 부모라 하더라도 허물이 있다면 마땅히 자식에게 사과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군자가 아니겠소?”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동안 해온 행동이 바뀔지는 나도 장담을 못 하겠다. 나도 나이가 이미 일흔둘이나 되었는데, 지금 후회한다고 해서 고칠 시간이 있을까. 오늘 일도 일시적인 감정의 변덕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변덕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감정 가는 대로 행동해 보자. 내 양심에 작은 위안이라도 되려거든 그 수밖에 없으니까.
내게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 황망해 하는 아이들에게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그 동안 비가 좀 내리나 했더니 겨우 2년 만에 올해는 또 비가 별로 안 내려서, 그다지 풍족한 선물을 아니지만 말이다.
“가뭄이 들면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진다. 너희는 내 아들딸로서 백성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사옵니다, 아바마마.”
고개를 숙이는 자식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또 치솟았다. 지차 황자들은 임금이 될 수도 없고, 무언가 자기 뜻을 펼칠 활동을 하기도 어려우니 그 분풀이를 주색잡기로 하기 쉽다. 홍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활이나 계는 그런 짓도 안하고 집에 틀어박혀서 글만 읽으면서 평생을 살았다. 그냥 납작 엎드려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낸 이 아이들의 인생이, 내가 은연중에 ‘너희들은 조용히 살아야 한다’라고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니 더 미안했다.
‘하다못해, 욱이처럼 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도록 응원해줄것을…..’
상희가 키워서 그렇겠지만, 욱이는 맏형인 성이를 그렇게까지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성이 역시 욱이를 귀엽게 봐줬고-역시 그 청룡언월도 탓이었나-무슨 일을 하건 딱히 제동을 걸지 않았다. 자유롭게 살게 허락했다.
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줬어야 했다. 내가 나서서 권해야 했다. 하지만 내버려 뒀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버지로서 해야 하는 형식적인 도리는 빠트리지 않고 행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어떻게 자라게 될지 관심을 품고 보살피지는 않았다.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과거의 그런 행동이 뒤늦게 뼈에 사무쳤다. 연회를 끝내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다음 생에서는 어떻게 될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잊지 않고, 상희 소생이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같은 배려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고민스러운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11.
우리 대한의 서편에 있는 나라들, 청나라ㆍ후송ㆍ인도 등이 전쟁과 국상으로 혼란스러운 데 반해서 동쪽에 있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이에토시가 다스리는 일본도, 상경이 다스리는 유규도 평화를 누리며 국력을 증진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모두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려 안정시키시는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저희 폐하께서 임금께 고마움을 표하고자 손수 지은 시를 보내셨습니다.”
유구에서는 여전히 매년 두 번씩 사신이 온다. 조공품-자기들은 순전히 선의로 넘기는 선물이라고 주장하는-목록도 참으로 다양하다. 비싸고 귀한 것만 보내는 게 아니고, 뭔가 성의를 보일 수 있는 이런 물품들이 하나씩은 꼭 들어있다. 황제가 지은 시라거나, 황후가 직접 자수를 놓은 장식천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쯤 되면 정말이지 조공국이나 다름이 없는 관계다. 하지만 유구 조정은 우리 앞에서 할 건 다 하면서도 ‘칭신만은’ 못 한다고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뭐, 우리도 대놓고 요구하지 않은 지 오래긴 하지만 말이다.
“귀국이 보인 오랜 우의는 짐도 잊지 않았다. 외적이 귀국의 접경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대한의 천명이 살아있는 한 유효할 터이니, 걱정을 놓기를 바란다.”
이것도 내가 한 약속이었지. 장조 시절에. 그리고 이 약속에는 남이 유구를 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이 유구를 강점하려고 들지도 않을 거라는 내용도 포한되어 있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될 대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유구를 굳이 번국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다면 굳이 그 땅을 정복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유구에서는 우리 상행들이 농장을 경영하고 우리 해군이 이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한가.
억지로 유구를 친다면 유구인들의 저항은 물론이고 우리 위신도 칠수 된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강점하는 신의 없는 나라라는 비아냥이 대한을 상징하게 되는 건 사절하겠다. 내가 공들여 만든 이 나라는 적어도 겉으로라도 명분과 도리를 지키는 나라였으면 싶다. 유구를 지켜준다고 약속한 나라는 우리만이 아니다. 동쪽에 있는 일본 역시 나와 맺은 두 차례 조약에서 유구의 독립을 인정하고 이를 침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즉, 우리 대한이 유구를 병합한다면 조약 파기를 명분으로 일본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는가?”
“대군과 그 신하들이 상황을 따져 결정할 터인데 신들이 어찌 확언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정도입니다.”
주변국과 어떤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이는 훈련도감이 평시에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연구 과제다. 일본만이 아니라 모든 주변국이 대상이다. 심지어 혈맹이라고 할 수 있는 청나라나 후금과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까지 준비되어 있다. 이 비상사태 대응 계획은 백여 년에 걸쳐 우리 대한의 군제개혁을 이끈 훈련도감의 모든 경험이 녹아든, 그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삼군부 도총사 권훤은 이번 인사이동에서 그 훈련대장 자리를 홍진오에게 내주게 된 게 무척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 자신은 훈련대장은 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더 미련이 생기는 듯했다. 권훤도 이번에 자리를 옮긴다. 군사를 주로 담당하는 우참정대신이다. 전임자인 윤태원이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청하면서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권훤을 그 자리에 앉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정대신의 품계도 도총사와 같은 종1품이니 격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폐하, 신은 계속 무관으로 있고 싶었사옵니다만…..”
“그대가 비켜줘야 다른 장수들도 승진이라는 걸 해볼 게 아닌가. 도총사 자리를 독차지할 생각은 아니겠지? 어차피 참정대신 자리에서도 큰일은 양 군부에서 다 하고 그대는 조당만 찍을 터인데 뭐 어떤가.”
농담처럼 주고받은 대회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이렇게 변화를 주면서 또 나가 보자. 권훤도 나이가 들기는 했으니, 무장들도 세대교체를 해야지. 삼군부에서 대궐로 돌아와서 외무대신을 불렀다. 이에토시가 요즘 몸이 안 좋다고 하니, 내의원에서 좋은 인삼을 받아다 선물로 보내라는 지시를 내리고 러시아에서 보내온 서한을 받았다. 지금 대오서만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리는 루시아의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