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49
3부 667화(1549화)
17.
“전쟁은 없을수록 좋은 겁니다.”
로버트 월폴이 영국 정부를 이끄는 수상(수석 장관) 자리에 취임한지도 벌써 18년이다. 월폴은 국왕 조지 2세의 굳센 신뢰를 배경으로 해서 확고한 지도력을 발휘했고, 전통적으로 적국이었던 프랑스에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은 우리의 부와 자유를 파괴합니다. 우리 적들이 힘으로 우리의 부와 자유를 빼앗을 조짐이 보인다면 우리도 무기를 들어야겠지만, 먼저 전쟁을 도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도 추악한 범죄자들을 옹호해서 말입니다!”
월폴은 스페인과 싸우자고 주장하는 강경파 의원들에게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은 스페인령 남아메리카에서 밀무역을 벌이다가 스페인 해군이나 세관에 붙잡혀 배를 뺏기고 상품을 몰수당한 영국인 선주와 선장들의 복수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분명 정부에서는 스페인과의 조약에 따라 밀수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익에 눈이 먼 밀수꾼들은 멋대로 스페인령을 누비고 다녔다. 범법행위를 하다가 잡혔으면 스페인 법률에 따라서 벌을 받는 게 마땅하건만, 뻔뻔스럽게도 영국 정부에 복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월폴로서는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법과 질서를 어기는 범죄자들 주제에 국가의 보호는 무슨…..월폴은 꿋꿋하게 평화를 주장했다. 지금 영국은 전쟁을 이미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인도 말이다.
“지금 인도에서는 우리가 상당히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두 개 주를 장악했고 무굴제국 정부는 약속대로 두 주에서 우리에게 행정권과 조세 징수권을 부여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행정권을 쥔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영국 정부가 직접 총독을 비롯한 행정관을 인도까지 파견하지는 않았다. 군대를 보내지도 않았다. 실제로 점령지에서 행정권 행사를 맡은 건 동인도회사고, 마라타 동맹과 싸우는 지상군 역시 동인도회사가 고용한 용병이 대부분이다. 처음 젤리로 진격할 때야 영국 정부가 파견한 정규군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작전이 종료된 뒤, 영국 정부는 정규군 대부분을 뉴홀랜드로 보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뉴홀랜드 수비를 강화할 목적에서였다. 인도에는 봄베이와 실론을 지키는 부대만 남았다.
현재 마라타 동맹군과 싸우는 건 유럽인 및 인도인 용병들로 이루어진 동인도회사군이다. 이들이 고용한 인도인 용병은 대부분 시크교도다. 시크교도들이 무척 용맹한데다, 무굴제국 정부군을 상대로 함께 싸운 뒤 상당한 유대관계가 생긴 덕분이다. 게다가 무굴제국 정부군이 영국-시크교 연합군에게 참패하면서 전력이 무척 약해진 것도 시크교도들이 동인도회사 용병이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무굴제국은 시크교도들을 탄압해 왔는데, 그 군사력이 격감하면서 탄압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해군은 여전히 인도 방면에서 동인도회사의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마라타 동맹에 무기를 넘기는 프랑스 선박을 나포하고 있다. 무굴제국 정부로부터 위탁받았다는 명목인데, 한때는 프랑스가 무굴제국과 더 가까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다행히 프랑스 재상인 드 플뢰리 추기경이 우리처럼 평화를 추구하고 있어서 인도에서의 분쟁은 인도에서 끝내고 유럽으로 끌고 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추기경도 벌써 80세가 넘었습니다. 조만간 프랑스와도 다시 노골적인 적대관계로 돌아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월폴은 프랑스와의 분쟁이 재개될 위험을 강조하며 스페인과의 평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월폴이 속한 휘그당만 그를 따를 뿐, 토리당은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리당은 오늘 위원회에 내보낼 회심의 증인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로버트 젠킨스 씨!”
위원장이 호명하자 가발을 쓴 사내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웨일스 출신 뱃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젠킨스는 스페인에 대한 원한을 품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의원 제위 여러분! 야만적인 스페인인들은 우리 국왕 폐하의 권위를 무시하고 우리 영국 국기를 모독했습니다! 정직한 선원인 저는 억울하게 스페인인들에게 붙잡혀서 귀를 잘렸고, 그 악당들은 존귀하신 국왕 폐하까지 모욕했습니다!”
젠킨스는 7년 전인 1731년 4월에 서인도제도에서 ‘정상적인 교역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스페인 해군에 붙잡혀 억울하게 왼쪽 귀를 잘린 사연을 비통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자기가 몇 번이나 정부와 의회에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는지 하소연했다.
“자, 보십시오! 이게 바로 제 귀입니다!”
젠킨스는 연단 위에서 가발을 벗고 귀가 잘려 나간 자리를 사람들 앞에 드러냈다. 그리고 옆구리에 끼고 온 단지 속에서 소금에 묻어두었던 살 조각 하나를 꺼내 치켜들었다. 심하게 쪼그라든 모양이 꼭 말란 육포 조각 같았다.
언뜻 보면 그게 사람의 귀가 맞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호전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윌리엄 피트 같은 사람들은 휘그당이면서도 월폴을 배반하고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스페인을 응징합시다!”
“놈들이 우리 국기와 국왕 폐하를 모독했습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월폴도 저지할 수 없었다. 토리당은 조지 2세에게 스페인을 응징하자는 청원을 올리자는 안건을 투표에 부쳤고, 하원에서는 찬성 257표에 반대 209표로 승인했다. 수상으로서, 월폴은 이 결과를 국왕 앞에 들고 가야 했다.
“알겠습니다. 폐하께 올리지요.”
물론 이 투표가 바로 선전포고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국왕의 승인을 받아 스페인에 괴교 경로를 통한 항의부터 넣게 될 거다. 협상에서 별로 진전이 없으면 전쟁으로 넘어가겠지만, 월폴의 생각에도 요즘 영국에 감정이 많은 스페인 측이 굽히고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프랑스 쪽도 불안한데 스페인까지…..’
월폴이 마차에 오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겨우 30대로 접어든 젊은 프랑스 국왕은 요즘 아주 패기가 만만했다. 어린 병아리가 젊은 수탉이 되더니, 이제 암탉의 품을 헤치고 나와 주변 세상을 둘러보면서 꼿꼿하게 볏을 세우고 있었다.
18.
루이 16세는 10대, 20대 시절만 해도 대부분의 나랏일을 재상인 드 플뢰리 추기경에게 맡겼다. 루이 16세의 교육을 맡기도 했던 드 플뢰리 추기경은 민생의 안정과 국력의 비축에 ㅇ중점을 두고 국정을 이끌었다. 그 단적인 사례가 폴란드 왕위계승전쟁이다. 루이 16세는 동생이 폴란드 국왕에 뽑히도록 도왔다. 그렸으면서 막상 폴란드 왕위를 놓고 전쟁이 터지니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때 빠진 이유 중 하나도 재상인 플뢰리 추기경의 만류였다.
물론 처음에는 왕세자인 도팽 루이가 홍역에 걸려 죽는 바람에 전혀 정신을 쏟을 계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회복된 뒤에도 루이 16세는 자기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재상이 된 추기경의 만류 때문이었다.
“막대한 전비를 쓰면서 우리가 직접 오스트리아와 싸울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85세, 말 그대로의 백발노인이 된 추기경은 차분하게 젊은 국왕을 설득했다. 루이 16세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폴란드와 가까운 러시아에서 군대를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요. 폐하께서는 군자금을 보내셨으니 그만하면 폴란드 국왕 폐하를 위해 하실 도리는 다하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도움은 이제 끝내고 싶단 말입니다, 재상.”
루이 16세가 즉위한 지도 벌써 18년이 되었다. 그동안 국왕은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다. 섭정인 오를레앙 공작이 벌인 전쟁은 적당히 끝내버렸고, 새로 시작한 전쟁은 없었다. 전쟁을 벌이지 않으니 백성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국고에는 여유가 생겼다. 올해에는 무려 2천만 리브르에 달하는 재정 흑자가 생겼을 정도다.
문제는 국왕인 루이 16세가 전쟁을 벌이고 싶다는 거다. 폴란드 왕위계승전쟁 때만 해도 아직 어렸던지라 스승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루이 14세 폐하 같군.’
드 플뢰리 추기경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루이 16세는 의도적으로 증조부인 태양왕 우리 14세의 언행을 흉내 내곤 했는데, 서른 살을 넘기면서는 그게 아주 몸에 배고 있었다. 추기경은 루이 14세가 살아있을 때, 그때는 부르고뉴 공작이던 루이 16세의 가정교사로 베르사유에 들어왔다. 그때 여덟 살에 불과했던 루이 16세는 이미 나중에 자기도 증조부와 같은 위대한 군주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드 플뢰리 추기경은 루이 14세의 통치가 별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끝이 없는 전쟁과 사치는 위대한 프랑스의 영광을 드높였을지는 모르나, 프랑스 국민한테는 정말로 큰 부담을 안겼다. 월폴과 마찬가지로, 추기경도 평화가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부르고뉴 공작이 증조부를 너무 추종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확실히 실패한 듯했다.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재상. 그건 어디까지나 다음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과정이잖습니까? 적과 싸워 이기지 않으면, 장엄하고 화려한 궁정으로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위대한 프랑스의 영광을 전 세계에 떨친단 말입니까?”
루이 16세가 증조부를 본뜨고 싶어 하는 건 전쟁만이 아니다. 베르사유 궁전도 대대적인 보수와 증축을 통해 한층 더 장엄한 궁전이 되었다. 그리고 이 궁전의 화려한 연회장 안에 드나드는 숱한 미녀들을 상대로 환락을 즐겼다. 역시 자기 증조부처럼 말이다. 증조부와 똑같이 생활하는 게 꿈이었는지, 루이 14세가 했던 것처럼 자기 애인들을 매일 아침 왕비에게 보내 문안 인사도 시켰다. 막상 왕비를 이런 삶을 살게 될 것을 각오했는지 별로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인사를 오면 받았다.
이런 식으로 궁궐을 증축하고 애인들을 늘리다 보면 당연히 돈이 든다. 그랬음에도 최근 정부 재정은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플뢰리 추기경이 얼마나 유능한 행정가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증조부님의 시대처럼 위대한 프랑스가 되려면 싸우고 또 이겨야 합니다. 그때를 위해서 힘을 모으는 게 이닙니까?”
영원한 평화 따위는 없다. 그리고 싸우지 않으면 군대는 약해진다.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강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 고로 싸워서 이기려면 전쟁이 필요하다.
“지금 영국과 스페인은 사이가 좋지 않으니, 분명 두 나라 사이에서 전쟁이 터질 겁니다. 그 틈을 이용해 영국에 선전포고하면 비교적 쉽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인도에서도 충돌하고 있으니 명분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드 플뢰리 추기경은 그래도 아직은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며 국왕을 눌러 앉혔다. 요즘 계속 재정이 흑자라고 해도 아직 정부에는 18억 리브르나 되는 빚이 남아있다면서 말이다. 그나마 10년 전에 비하면 그동안 2억 리브르는 줄어들었다. 강담하기 힘든 이자 부담을 줄이려고 조금씩은 갚은 덕분이다.
“알겠습니다. 당장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군대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나라 금고가 가득 차면 그때는 꼭 출병하겠습니다.”
“그때가 오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루이 16세가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추기경은 너무 겁이 많았다. 전비? 그거야 도시 몇 개만 얻어도 전리품과 이후 세입으로 보충되는 거 아닌가. 왜 그리 두려워하는지. 하지만 추기경은 20년 넘게 자신을 보좌한 스승이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인연만으로 따져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기처럼 증조부를 존경하는 조선의 기사왕도 자기 스승은 끔찍이 모셨다던데, 자기가 그 정도도 못 해서야 되겠는가.
19.
이번 전쟁도 벌써 4년째로 접어들었다. 적을 제대로 몰아내지 못하다보니, 총사령관인 카를 대공의 얼굴에서는 수심이 떠나지 않았다.
“대공 전하,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역시 전황이 너무 나쁜 탓에….. 송구스럽습니다.”
“아닐세. 그냥 속이 좀 좋지 않아서…..”
부하 장교들이 걱정하는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카를 대공은 적당히 넘겼다. 지금 자기가 왜 속이 좋지 않은지, 그 진짜 이유를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싸움이 벅찬 건 맞다. 튀르크 군은 아주 작정하고 쳐들어왔는지 병력도 더 많은데다 물자 보급이나 작전 지휘 등에서도 철저하게 준비한 티가 났다. 그에 반해 이쪽 동맹군들은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믿었던 동맹인 러시아군은 크림 칸국 공격에만 매달려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폴란드군도 적이 폴란드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서 적의 주된 공격 방향인 트란실바니아 방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지지부진한 전황은 곧바로 두 번째 걱정으로 넘어갔다. 화려한 승리를 거둬야만 주목을 받고 지위를 올릴 수 있다. 그래야 다음 대 황제를 뽑기 위한 사촌누이들 사이의 경쟁에서 자기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조금이라도 유리해지게 할 수 있다.
“전하. 여기 전황보고입니다.”
“오, 로트링겐 공이 아닌가. 거기 앉게.”
맏사위인 로트링겐 공 슈테판이 나타났다.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뜻밖에도 서로가 첫눈에 반하는 바람에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와의 사이는 매우 좋다. 카를 대공은 혹시 합스부르크 가문을 물려받지는 못하더라도 딸이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인생을 보내리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왕이면 영특한 딸에게 합스부르크 가문을 물려주고 싶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으려나.
“튀르크군의 움직임은 이렇습니다.”
로트링겐 대공은 열심히 적의 동태를 보고했다. 사령부에 있는 장교들은 골똘히 설명에 집중했다. 4년째로 접어드는 이 전쟁을 끝내려면 올해는 꼭 전기(轉機)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자면 작은 기회라도 놓칠 수 없었다. 오스만에게 타격을 입히려면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지를 두고 장교들이 부단한 논의를 이어가는 중에 갑자기 밖에서 소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회의를 방해받은 카를 대공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입구 쪽을 보는데 장교 한 사람이 급히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빈에서 급전입니다!’
급히 들어온 장교가 경례했다. 그리고 대체 무슨 소식이기에 그리도 급하게 뛰어오느냐는 질문을 받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놓았다.
“폐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당장 빈으로 돌아오시라고 합니다.”
“뭐, 뭐라고?!”
카를 대공을 비롯해 배석하고 있던 장교들 전원이 아연실색했다. 요제프 1세가 죽었다고? 이 전쟁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