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53
3부 671화(1553화)
3.
사대문에서 일어나는 교통체증 문제는 확실히 쉬운 문제가 아니다. 홍영시가 언급했듯이 8차선 도로인 태평로는 수레 1대만 겨우 지나가는 남대문에서 일단 막히기 때문이다. 일반 교통량만 해도 많은데 남대문 역에서 들어오는 철도마차까지 있다. 증기기관차가 많이 보급되었음에도 여전히 도성 시가지를 마차가 달리고 있는 건 그놈의 석탄 매연 때문이다. 철도가 들판을 달릴 때는 다들 반색했지만, 막상 시커먼, 매연을 푹푹 뿜는 증기기관차가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간다고 하면 다들 기겁했다.
‘증기기관차가 불똥을 날리며 왕래하면 도성 내에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도성에서 다니는 철도마차는 수시로 서야 하는데 기차는 너무 자주 서면 연료를 낭비하며, 만약 누가 치여 사고가 난다면 쇳덩이인 기차에 치였을 때 피해가 더 클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매연보다 말똥이 낫다’로 줄일 수 있다. 말똥이야 주워 모아 퇴비로 쓰거나 초석밭에 갖다버리면 그만이지만, 석탄재가 섞인 시커먼 연기는 그저 주변을 더럽히기만 할 뿐이고 다른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명분으로 내세운 여러 주장도 나름대로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정말 기차를 서울 시내에서 운행하려면 철로가 지나가는 구간의 도로를 싹 다 걷어내고 기반을 다진 뒤 도로와 철로를 전부 새로 깔아야 한다. 그 돈을 들일 만큼 긴급한 사업은 아니었다.
어쨌든 도성으로 오는 서북선 열차는 남대문 역에서 승객들을 잔뜩 쏟아놓는다. 관서에서 육로로 도성에 오는 사람들은 예전 같았으면 서대문을 이용했겠지만, 요즘은 그쪽에서 오는 여행객 태반이 기차를 타고 남대문 역으로 온다. 남대문 역에 내린 승객들은 도보로 걷거나 철도마차나 일반 합승마차 – 쉽게 말하면 버스 – 등을 이용해서 도성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본래 남대문을 지나는 통행량까지 합쳐지니 그 혼잡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도성 백성들 및 인근 지역 백성들은 동대문이나 서대문, 그리고 다른 소문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당연히 그 문들도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지금 상태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거야 분명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것이냐가 문제였다.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그냥 남대문을 헐어버리고 – 이거, 일제가 서대문에서 한 일이다 – 길을 내는 거지만, 그런 주장은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집현전에서는 남대문을 계속 유지한다는 전제로 논의한 끝에 내게 세 가지 기획안을 올렸다.
▶1안. 남대문 옆 성벽을 일부 헐고 도로를 낸다.
▶2안. 기존 남대문을 헐고 훨씬 크고 웅장하게 개축한다.
▶3안, 기존 남대문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크고 웅장한 새 남대문을 짓는다.
일단은 남대문만이지만, 그거야 남대문 앞이 가장 혼잡해서일 뿐이다. 남대문을 처리하고 나면 동대문과 서대문도 순차적으로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길을 연다. 그래야만 이 도성에 드나드는 교통로에서 교통체증이 사라진다. ‘당분간은.’
기획서를 받아 읽어보니 셋 다 나쁘진 않았다. 아니, 세 가지 다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고 이해하기 쉽게 작성해놓았다. 역시 수백 년 동안 유지해온 국가정책연구소인 집현전답다.
“제시한 방언이 모두 이치에 닿고 또한 합리적이다. 집현전 학사들이 고생이 많았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 칭찬을 받은 홍영시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왜 저럴까. 내가 평소에 그다지 칭찬에 박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잘한 일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칭찬도 하고 상도 주는데.
“다른 대신들에게도 설명하라. 그 뒤에 다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집현전에서 제출한 세 가지 방안은 모두 장단점이 확실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공사비는 당연히 1안이 가장 적게 든다. 공사 기간도 가장 짧다. 대신 볼품도 가장 없다. 그래서 1안에 대해서는 선택의 문제가 있을 뿐, 딱히 논의할 부분도 없다. 2안은 천하제일 대국이 된 우리 대한의 위용을 널리 알릴 수 있다. 다만 새 성문을 어떤 구조로 만들지 설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개의 작은 성문을 갖춰 차선마다 하나씩 이용하게 할지, 서너 차선쯤 통과할 수 있는 거대한 문을 만들지 등.
“공무부에 문의했더니, 수레 넉 대가 지나는 문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가.”
우리 전통 축성술로는 못 한다. 성벽에다가 그런 커다란 문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으니까. 애초에 성문을 쳐들어오는 적을 맞아 요새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큰 문은 방어전을 치를 때 약점밖에 안 된다. 명나라 때 지은 북경성만 해도 그렇다. 남대문보다 훨씬 큰 그 커다란 문루에 뚫려 있는 성문은 정작 우리 남대문하고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도 그렇게 커다란 성문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아예 문루 없이, 커다란 홍살문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얼마든지 크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학무대신 이지권이 냉큼 끼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홍살문(紅箭門)은 붉게 칠한 나무기둥 위에 가로대를 얹어서 만드니 까, 확실히 간단히 싸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남대문으로 쓰기에는 전혀 안 어울린다.
“홍살문은 왕릉이나 궁궐, 서원, 절 등지에서 입구를 표시하는 문이 아닌가. 대로에 세울 문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우리 한인들한테야 홍살문이 성스러운 곳에 들어간다는 표시이긴 하지. 하지만 나는 한양 전체를 성지처럼 취급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외국인들한테는 대체 저 나무 기둥은 뭐냐는 소리밖에 못 들을 거라는 점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홍영시에게 설명을 계속하라고 했다.
“공부에서 말하기를, 성당 본당을 지을 때 하듯이 커다란 홍예를 세우면 큰 문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짝을 달아 여닫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싸움이 벌어진다면 별 쓸모가 없을 거라고 하였지요.”
홍예(虹?)는 아치를 말한다. 아치 구조로 잘 만들면 확실히 수십 미터 폭으로 문을 만들 수 있긴 할 거다. 시간과 예산만 넉넉히 퍼붓는 다면. 문루도 올릴 수 있으리라. 너무 크지만 않다면. 그리고 그렇게 큰 문은 전투용으로는 글러 먹었다는 거야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허나 지금 있는 남대문을 헐기는 아쉽다. 태조께서 만드신 문이 아니냐.”
진짜 본심은 이성계가 만든 거라서가 아니다. 조선 초에 만든 유물이라서지. 이게 3백 년 뒤에는 성문도 성벽도 엄청난 유물이 되는데 그걸 내 손으로 부수고 싶겠는가. 장조 시절에는 계미자, 갑인자 같은 낡은 구리활자나 낡은 화포도 고철로 녹이지 못하게 하고 창고에다 쌓아둔 – 이번 생에 임금이 되고 나서 확인해봤더니 그거 아직도 창고 구석에 잘 보관해놨더라 – 나다. 그런데 내가 내 손으로 남대문을 철거하라는 명을 내릴 리가 있나.
“예, 그래서 세 번째 안이 나왔습니다.”
3안은 1안과 3안을 합친 셈이다. 현재 남대문 서편에 새 남대문을 만든다. 설계는 2안에 따라 새 문을 건설할 때와 같다. 거대한 문 하나를 만들든, 작은 문 여럿을 만들든 말이다. 공사비는 2안과 3안이 별 차이가 없으리라고 했다. 2안에 따라 남대문을 허물어도 성벽 일부를 같이 허물어야 통로가 유지되니까 말이다. 3안이야 공사 중에는 기존 남대문을 계속 이용하면 된다.
공사가 완료된 뒤의 유지비는 당연히 3안이 2안보다 많이 든다. 관리해야 할 시설물이 두 개가 됐으니 당연히 유지비가 늘지.
“자, 이제 대제학의 설명은 다 들었다. 그대들은 이중 어느 안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각자 의견을 말해 보라.”
성벽에 손을 아예 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로서는 어느 안이든 지지하기 궁색할 수밖에 없다. 한참을 눈치를 보는 꼴을 보다 못한 내가 이미 지나간 일은 다 됐고, 원활한 교통을 위해 성벽에 손을 댈 수밖에 없으니 의견을 내라고 하자 그제야 말이 나왔다.
“수시로 가뭄이 이어지는데, 굳이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폐하께서 정 도로를 만드신다면, 집현전에서 낸 1안에 따라 성벽을 조금 끊어 길을 내는 정도로 그치소서.”
“나라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남대문을 개축하는 건 좋으나, 태조께서 세우신 문을 허는 것은 나라의 근본을 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은 세 번째 안이 좋을 듯하옵니다.”
“아닙니다. 무릇 집이나 벽은 세월이 흐르면 낡게 마련이고 낡은 것을 헐어 새롭게 짓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태조께서 지으신 대궐 전각들도 이미 몇 차례나 중수(重修)한 바가 있는데, 어찌 사대문이라고 그리하지 못하겠습니까?’
“남대문 두 개가 나란히 있으면 공연히 비교되어 더 좋지 않을 듯합니다. 새 성문을 양식(洋式)으로 지을터이니 더 대비되어 어색할 듯합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만 남기소서.”
세 안 모두 몇 명씩 지지자가 붙었다. 돈과 시간이 다 절약된다는 점에서 1안을 지지하는 신하들이 가장 많았고, 2안과 3안은 엇비슷했다. 장차 동대문과 서대문도 똑같이 개축하게 된다는 전제가 있고 보면, 2안과 3안은 확실히 비용 문제가 크다.
“폐하. 일단은 성벽을 먼저 터서 백성들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 그 뒤에 국용(國用)에서 여유가 생겼을 때 천천히 개축 여부를 논의하심이 어떻겠습니까.”
국상 이광좌가 조심스럽게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말이 절충안이지, 실은 그냥 1안을 채택하자는 거나 마찬가지다.
“신도 국상의 말이 옳은 듯하옵니다.”
“신도 그렇습니다.”
눈치를 보던 신하들, 무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고 망설이던 신하들이 줄줄이 이광좌 편에 붙었다. 나도 딱히 랜드마크를 또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없던 참이라 그쪽 의견에 한 표를 던지기로 했다. 내 이름이야 경희궁만으로도 길이 남을 게 아닌가.
“지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 일단 성만을 새로 짓지 않는다고 했을 뿐이지, 앞으로도 하지 않는다고 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집현전에서는 세 방안 중 어느 방안이 나라에 가장 큰 보탬이 되고 백성들에게도 도움이 될지를 계속 연구하고 정리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6차선 도로가 통과할 수 있는 거대한 서양식 남대문 같은 게 들어서면 확실히 대단하게 보이긴 할 거다. 하지만 원래 문이 훨씬 작고 초라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은 문제기는 하다. 역시 기존 남대문을 그대로 두고 성벽만 좀 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우리 조정에서는 남대문 개축 문제보다 순위기 밀리는 일이지만, 나라 밖에서는 무척 큰 사건이 한 달 전에 있었다. 그 사건에 관한 보고가 익문사와 외무부에서 올라왔기에, 펼쳐 읽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새 송제는 부친이 왜 만년에 수십 년 동안 전쟁을 포기하고 조용히 살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학습이 더 필요하겠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한 건 괜히 한 게 아니다. 봄이 되자마자 청나라를 치겠다면서 북정에 나선 후송의 대군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후송군은 두 방향에서 공세를 펼쳤다. 좌군은 양양에서 북상해서 남양을 노렸고, 유군은 수도 남경에서 운하를 따라 움직여 강소, 즉 삼국지의 서주를 침공했다. 청나라보다 인구와 물자가 모두 충분한 송군은 이런 식으로 두 방면에서 공세를 펼칠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우연히도 남양에는 청나라 쪽에서 공세를 시도하려고 정예병 수만 명을 보내둔 참이었고, 강소에서는 몇 대에 걸쳐 구축해둔 방위선이 훌륭하게 효과를 발휘했다. 남양을 공격하러 돌라가던 후송군 6만은 앞을 막은 청군 4만 명에게 저지당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회전에 끌려 들어간 대가로 병력 절반을 잃었다.
동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나라 수군을 압살하면서 운하를 따라 북으로 올라오던 후송 함대는 매복하고 있던 청나라 포대와의 포격전에서 상당한 손실을 내면서 진격이 멈췄다. 심지어 철갑선까지 한 척 침몰했다. 막대한 손실이었다.
“모두 우리가 보내준 대포 덕이옵니다, 폐하.”
“모를 일이다. 그 정도로 후송 철갑선이 약할 줄은 몰랐다.”
후송 수군이 보유한 철갑선을 격침한 건 우리가 미안한 감을 담아 청나라에 보내준 24근 중포였다. 철판을 씌운 선체는 청군의 웬만한 포격은 다 튕겨냈지만, 이 24근 포만은 막지 못했다. 잇달아 날아든 포탄이 선체 측면에 구멍을 뚫자 안에서 불길이 솟았다.
“청제가 글을 보내 이토록 감사를 표하니, 참으로 잘된 일이옵니다.”
“이웃으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했을 뿐이다. 감사받을 것도 없다.”
증기기관 안 준다고 기분이 상한 것 같던 청나라다. 하지만 이번에 북진을 시도하는 후송 수군을 물리치는 데 우리가 보내준 대포가 크게 한몫했으니, 다시 태도를 바꿔 우호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나저나 송제는 아직 젊구나. 좀 더 수양하여 인내심을 쌓아야 할 모양이다.”
조형서도 그랬지. 모후를 뒷방으로 몰아내고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시도했던 일 중 하나가 청나라를 공격하는 거였으니까. 물론 청나라 쪽에서도 쳐들어와 반격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조형서는 진지하게 북진통일을 시도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많은 싸움을 치렀겠는가. 하지만 조형서는 숱한 실패를 겪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후송이 중원을 통일하려면 당장은 어렵고, 힘을 기르면서 훗날을 기양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형서는 ‘정복 승리’보다는 ‘문화 승리’를 추구하게 됐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조호덕은 북진을 시도했으리라. 그 아비의 젊었던 시절처럼.
“지금 송나라 황제는 갓 즉위하여 의욕이 넘치는 탓에 무리를 크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 크게 혼이 났으니 앞으로는 적절히 자제하겠지.”
그나마 완전히 패하기만 한 건 아니고, 청군을 상대로 백중세로 싸우거나 공격에 성공한 후송 장수들도 있기는 있었다고 한다. 다른 부 대들이 패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했을 뿐이지. 뭐, 전쟁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런 작은 승리 때문에, 송제가 혹시 다음에는 성공할지 모른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재차 원정을 시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할 테면 하라지. 무모한 전쟁을 계속하면서 나라의 재물과 군사들의 생명을 허비하는 건 명백하게 그 군주의 잘못이다.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후송이 청나라와 싸우느라 병력과 물자를 계속 소모한다면 우리한테 돌릴 여유는 그만큼 줄어들겠지. 우리로서야 환영할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