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54
3부 672화(1554화)
5.
요즘 인력과 물자를 대량으로 소모하면서 장기간 이어지는 전쟁….하면 역시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이겠지. 러시아와 폴란드도 참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전선은 역시 오스트리아 방면이니까.
총사령관 카를 대공도 늙은 모양이다. 20년 전, 젊을 때만 해도 오스만군을 휩쓸었고 몇 년 전에는 밀라노도 탈환했는데, 이번 전쟁에서는 영 힘을 못 쓰는 모양이니 말이다.
“이 참에 루스 족에서나 달단인들을 정벌하면 좋겠구나.”
예전에 표트르에게 들은 크림반도 원정 이야기 생각이 난다. 표트르가 러시아를 개혁하기 전, 정권을 잡고 있던 표트르의 이복누이 소피아가 치적을 쌓으려고 크림 칸국을 공격해서 성과는 못 얻고 막대한 피해만 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 원정 실패 덕분에 표트르만 득을 보았다. 소피아와 그 애인 골리친의 무능함에 치를 떤 러시아인들이 급격하게 표트르 쪽으로 돌아섰으니까 말이다. 그 일이 없었다면 표트르가 권력을 잡기까지 최소한 몇 년은 더 걸렸을 거다.
그쪽에서 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러시아군도 이제 상당한 수준이다. 아직 서유럽에서 고용한 용병들이 지휘관이건 병사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차르의 깃발 아래서 차르를 위해 싸우는 한은 문제가 될 게 없다.
“도이치 황제는 아직 무탈하다던가? 그쪽도 이제 환갑일 텐데.”
‘도이치’라고 하면 신성로마제국을 가리키는 다른 말이다. 합스부르크 영지만 통칭할 때는 ‘황제령’이라고 한다. 고로 요제프 1세를 우리식으로는 도이치 황제이자 황제령의 영주라고 표기하게 된다.
“익문사에서는 그에 관해 별다른 보고가 오지 않았습니다.”
의무대신 권이성이 보고했다. 거참, 요제프 1세도 참 오래 사네. 대체 언제 죽지? 요제프 1세가 죽어야 카를 대공이 황제가 되어 조카들이 아니라 자기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자기 후계자로 만들어 합스부르크 영지를 물려주려고 기를 쓸 텐데. 혹시 카를 대공이 이번 전쟁에서 요제프 1세보다 먼저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십중팔구 요제프 1세의 딸 중 하나가 합스부르크 가문을 잇는 후계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아는 역사 상식 하나가 또 완전히 꼬여버린다.
예전에 장조 때 상희하고 대화하다가 나온 이야기였던가? 나는 나로 인해 역사가 최대한 덜 바뀌기를 희망했었다. 그래야만 내가 장래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기가 조금이라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조심이 별 의미가 없는 수준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원래 역사에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가 마구 들어섰다. 일본에서는 쇼군의 혈통에 노 부나가의 피가 섞여 천하제일의 권위를 가진 명문이 되어버렸다. 유럽에서도 왕통이 몇 개나 달라졌다.
영국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원래였다면 끊어졌을 표트르의 적통 핏줄이 아주 무난히 이어졌다. 프랑스는 천연두와 홍역으로 죽었을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스페인과 폴란드는 아예 왕자가 바뀌어 버렸다. 실제로는 없었던 가문으로.
이렇게 역사가 달라진 세계에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자가 달라지는 것 정도가 대수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가문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원래 역사에 근접한 형태로 세상이 굴러가고 사건이 일어날 테니까.
“폴수국에서는 여전히 국왕이 망나니처럼 굴고 있는가.”
“그런 듯하옵니다.”
거참, 원래 영사에서야 프랑스라는 유럽 제일 강대국의 국왕이니까 우리 15세가 놀아나도 그 돈을 조달했지만, 지금은 폴란드 국왕 아닌가. 그런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노는 걸까. 형인 루이 16세가 연금을 그렇게 많이 보내주나. 예카테리나가 계획을 이루려면 귀족들을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프랑스의 돈과 러시아의 군대라는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 폴란드의 왕좌는 돈과 군대, 둘 다 넉넉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둘 다 그 애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오스만과의 전쟁이 어서 끝나야 하리라. 그래야 알렉세이와 루시아 쪽에서 딸을 도와줄 여유가 생길 테니까. 예카테리나도 대오스만 전선에 나간 자기 군대를 되돌려서 국내에서 자기 무력 수단으로 쓸 수 있을 테고.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문제겠군.”
내가 계속 군자금을 보내줄 수도 없다. 군대 유지비라는 건 원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니까. 이제까지 두 번에 걸쳐 보낸 액수가 30만 냥인데, 아직은 주변에서 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계속되면 분명히 이제 그만하라는 소리 나온다.
“홍이 놈보다는 세련되고 합리적인 태도로 지적이 나오겠지.”
내가 예카테리나에게 제정지원을 하는 데 대해 처음으로 불만을 표한 게 홍이다. 하지만 내가 계속 폴란드에 돈을 또 낸다면 그놈이 끝이 아닐 거다. 그러고 보니 홍이 소식이 궁금하구나. 대전 내관에게 지난번에 울릉도에서 올린 보고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지난번에 온 거, 아직 답장 안했으니 다시 읽고 답장해야지
6.
홍이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인지라 울릉현령이 현지에서 감시 임무를 맡게 되어있다. 굳이 금위사가 나설 것도 없는 게, 몰래 감시할 때나 금의사가 유용하지 대놓고 감시하고 통제할 거라면 굳이 금위사를 쓸 필요가 없다. 을릉현령 김태경이 올린 표문을 보니, 홍이 때문에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는 모습이 빤히 보였다. 겨우 한 달 데리고 있었건만 문장 하나하나에서 고민이 절절하게 묻어 나왔다.
「….죄인 이홍은 신이 구해준 집이 초라하다 하면서 자기가 지낼 집을 스스로 마련하겠다 하였습니다. 일꾼을 제공해줄 수 없다고 하니 자기 사비를 쓰겠다며, 폐를 끼치지 않겠으니 염려 말라고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으로서는 도저히 이를 그냥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더니 며칠 뒤에는 직접 포경선에 타겠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신이 대경실색하여 죄인 이홍의 발목을 붙들고 말렸으나 ‘이것이 진정한 폐하의 뜻’이니 막지 말라면서 막무가내로 배에 올랐사옵니다.
신은 막으려 하였으나 막지 못하겠기에 어쩔 수 없이 선장에게 청하여 죄인을 딱 한 번만 태워달라고 하였습니다. 뱃일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한번 체험해보면 당장 내릴 줄로 알고 한 일이었사온데, 신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사옵니다. 죄인이 사흘 만에 항해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이러는 게 아니겠사옵니까.
‘바다에 나가 고래를 잡는 일이 참으로 호쾌하고 즐거우니 이는 뭍짐승을 잡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바마마의 깊으신 뜻이 여기 있었으니, 나는 앞으로 훌륭한 창꾼이 되어 더 큰 고래를 ?으리라. 그대, 현령은 내가 바다에 나가는 동안 내 집을 짓는 일을 살펴 달라.’
엄연히 폐하의 관원인 소신에게 자기 집 짓는 일을 살피라고 하는 처사도 괘씸합니다만, 황실의 귀한 피를 타고난 이가 고래를 잡는 천하고 위험한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하니 신은 오금이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이것이 가당한 일이겠습니까?
폐하, 부디 죄인 이홍에게 직접 친서를 내리시어 지나치게 위험한 짓을 금하시고 폐하의 본의는 죄인이 이 섬에서 도리를 깨닫는 데 있었지, 포경꾼이 되는 데 있는 게 아니었다고 성지를 내려주소서. 신으로서는 도저히 죄인을 다스릴 수 없나이다….」
“현령이 홍이 그놈을 과소평가했구먼. 사흘 동안 잠을 안자고 술을 마시고 계집을 품에 안아도 멀쩡한 놈을 비리비리한 약골 샌님인 줄 알았으니…..”
홍이가 즐기던 유흥 중에는 사냥도 있었다. 말을 타고 짐승을 쫓는 건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그걸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는데 포경선에서 노 젓는 일 정도가 뭐가 어렵겠나. 홍이는 맏형인 은이 만큼이나 체력이 좋은 녀석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 자식놈 중에 약골 샌님은 하나도 없다.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권이도 구척장신에 활을 쏘면 열순에 40발 정도는 맞히는 솜씨를 자랑하니까 말이다.
글을 보니 울릉현령 김태경은 보기보다 깡이 센 인물이다. 아무리 홍이가 난리를 쳤어도 그렇지, 그 내역을 곧이곧대로 기록해서 바로 내게 보내는 것도 심지가 웬만큼 굳은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원래 조선에서 임해군이나 순화군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재물을 강탈하며 난리를 칠 때 어땠더라? 지방관들이 힘으로 막거나 선조에게 바로바로 보고를 올렸던가? 이건 원래 나도 잘 모르던 부분이라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제대로 안 했을 것 같다.
“승선, 답서를 쓰도록 하라. 저 보고가 올라왔을 때 바로 답하지 않았는데, 지금 답서를 써야겠다.”
입직승선 석종원이 급히 지필묵을 준비했다. 승선쯤 되면 분명 먹물 찍어 가면서 붓으로 글씨를 쓰는데도 웬만한 시람이 연필로 쓰는 것만큼 빠르다. 사관들은 더 빠르고. 나야 그동안 딱히 속기를 연습할 일이 없었으니 절대로 그만한 속도가 안 나온다. 그렇게 빨리 쓴 글씨는 나는 읽어보지도 못하겠더라. 분명히 초서체는 초서체인데 내가 읽고 쓸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다. 그거 쓴 놈들은 대체 어떻게들 알아보는지 원.
“울릉현령에게 명한다. 죄인이 감히 자기가 지낼 집을 스스로 짓겠다고 나섬은 자기 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지나친 처사이니, 엄히 다스려 짓지 못하게 하라. 다만 현청에서 지금 마련해놓은 집의 기둥과 서까래를 헐지 않고 개축하는 정도는 허락하겠다.”
귀양을 간 죄인이 집에서 생활비를 갖다 쓰는 정도는 제법 흔한 일이고, 불법도 아니다. 하지만 아예 집을 짓겠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게다가 홍이 이놈이 대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놓을지 알 수가 없으니, 집은 못 짓게 하는 게 옳다. 선친왕부에도 따로 사람을 보내서 전해야겠다. 그놈 울릉도에서 집 짓는 데 돈 보태주지 말라고.
“죄인이 포경선을 타는 것은 우배지에서 호구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보이니, 힘들여 막으려고 할 필요 없다. 일단은 뜻대로 하도록 놓아두고, 선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지만 살펴라.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친다면 마땅히 법에 따라 벌하라.”
그놈이 포경선 타는 건 내게 반항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아바마마께서 나를 무릉도에 가라고 하셨으니 무릉도 방식대로 살겠다!’라는 건데, 밥 빨리 먹으라고 재촉 받은 어린애가 반찬 없이 맨밥만 푹 떠서 와구와구 쑤셔 넣는 것과 이게 뭐가 다른가.
30대 중반에 접어든 놈이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처럼 반항한다니 웃기는 일이지만, 대놓고 뭐라고 나무라지는 않겠다. 어디, 제 놈이 반항해보겠다면 반항하라지. 나는 눈도 깜짝 안 할 테니까. 포경선 승선 자체도 괜찮다. 어차피 포경선에 타는 동료 선원들도 다 울릉도 선비들이니, 함께 생활하면서 몸으로 단련하다 보면 공부도 배우게 될 테고 그놈의 사고방식도 개조가 되리라. 포경선 승선, 내 눈에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폐하, 혹시 황자께서 사고를 당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구술한 편지를 잘 정서해서 내게 내민 석종원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홍이 그놈은 수영에도 능하니, 혹시 실수로 빠져도 다른 배가 건지러 올 때까지 물장구를 치며 잘 떠 있으리라. 공연히 걱정해줄 필요 없다.”
우리 포경은 아직 연안포경이라. 해안에서 이틀거리 이상은 잘 나가지 않는다. 그 말인즉 사고를 당하더라도 어차피 해안 가까운 곳에 배가 있다는 이야기다. 소식이 알려지는 것도 빠르고 구하러 나가는 것도 빠르다.
“허어, 짐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자식을 내 손으로 귀양 보내야 하는지.”
승선과 내관들이 보는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수많은 남의 자식들을 챙겨 돌보고 출세도 시켜 주었건만, 내 자식 중에 이런 놈이 나올 줄이야.
“폐하, 폐하께서는 수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만 하더라도 폐하께서 베푸신 배려가 없었다면 어찌 이 자리에 있었겠나이까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고맙다, 석 승선.”
석종원이 내게 이렇게 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석종원은 사실 아모국 귀족 석탈왜의 6대손이니까.
7.
장조 시절, 석탈왜는 아모국 추장과 백성들을 이끌고 일본을 상대로 맹렬하게 싸웠다. 그 결과로 아모국은 확실한 독립을 얻었고, 일본은 아모국에 개입할 수 없게 되었다. 아모국이 중립화되면서 우리 조선(대한)도 손댈 수 없게 되었지만, 그건 별거 아니었다.
일본을 몰아내고 난 뒤, 석털왜는 아모국에도 제대로 된 군주를 세워서 일본이나 조선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국가를 세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눈앞에서 가다온 일본인들의 위협이 사라지자 아이누 부족들이 곧바로 모래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석탈왜는 아모국 전역을 누비며 뛰어다닌 끝에 겨우 아모국 부족장들이 선거제로 국왕을 선출하는 데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국왕으로 뽑혀 10년 가까이 재위하다가 죽었다. 석탈왜가 쌓은 위업들은 노래가 되어 길이 남았다. 하지만 혼인이 너무 늦어서 그에게는 장성한 후계자가 없었고, 그기 쌓은 업적은 갈 길을 잃었다. 석탈왜 사후 아모국은 그냥 그저 그런 부족 연맹으로 흘러갔다. 석 씨 일족은 다시 일어나 아모국을 주도해 보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석탈왜의 후손이라고 해서 그 조상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보니 결국 다시 일어서지는 못했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 석탈왜의 자손들은 조선(당시)으로 이주해버렸다. 그리고 여기서 벼슬을 받아 아무국과의 외교를 담당하거나 평범하게 살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석종원도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길을 택한 사람 중 하나다. 승선이 평범한 벼슬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지. 그대는 혹시 아모국으로 돌아가 선조의 못다 이룬 끔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품은 적은 없는가?”
“폐하, 신은 오로지 붓과 책을 벗 삼아 지낸지라 아모국을 평정하고 그 왕좌에 오르는 것 같은 일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싸움일랑은 그 땅에 남은 이들이 하도록 버려두시고, 신은 그저 폐하께 충성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하소서.”
석종원은 ‘나는 폐하의 신하’라는 입장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래, 이쪽에 이주한 지도 백 년이 넘었으니 이젠 그냥 아이누계 한국인 가문이지 무슨 아이누 귀족이냐. 공연히 아모국에 개입하면서 얘들을 써먹을 생각 같은 건 안하는 편이 좋겠다.
뭐, 지금 아모국에 있는 유력인사 중에서만 찾아도 우리 손을 잡을 녀석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