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59
3부 677화(1559화)
14.
장길산을 잡으러 가는 병력은 전투보다는 기마술과 추적에 능한 이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군영과 대붕영에 속한 정규군 기병보다는 우포청 순검대, 의금부, 금군 등에 속한 정예 기병들을 차출했다. 자원이 아니라 차출이다.
“폐하. 몇몇 군사들에게서 자기 말을 가져가게 해달라는 청이 올라왔습니다.”
“말 따위는 미주에도 얼마든지 있으니 가져갈 필요 없다. 게다가 황야를 며칠이고 달려야 할 텐데, 가면 어차피 말을 갈아타 가며 돌아다닐 거다. 공연히 아끼던 자기 말을 데려가서 다치게 하지 말고, 몸만 가라고 일러라.”
사람 2천 명과 장비를 보내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리는데, 공연히 말까지 함께 보내느라 고생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미주에 있는 우리 관마(官馬) 숫자만 해도 십만 필은 너끈하게 넘어가는데 왜 굳이 여기서 말을 가져가겠는가. 대규모 정규군을 투입한 원정이라면야 훈련된 군마를 충분히 데려가야 한다. 하지만 겨우 기병 2천에 불과한 소규모 – 기병 2천 기를 두고 소규모라니, 내가 통이 커지기는 했구나 – 원정대에서 필요한 말 정도라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편이 훨씬 낫다.
“말을 가릴 정도로 말 타는 재주가 없는 놈이라면 애초에 데려갈 가치가 없다. 그따위로 구는 놈들은 모두 명단에서 빼버려라.”
“예, 폐하.”
강제 차출인 만큼 보상은 훨씬 더 크다. 승선하는 날부터 토벌을 마치고 본국에 돌아오는 날까지 녹봉을 본래의 세 배로 지급하고, 도적을 생포하거나 사살했을 때는 특진과 상금을 두둑하게 내린다.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지급하는 보상금 액수도 상례보다 크게 높였다.
“성공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고령위 그대를 비롯한 장수들에게도 큰 포상이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그 도적놈을 꼭 붙잡기를 바란다.”
“네, 폐하. 기필코 그 도적놈을 붙잡아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겠사옵니다.”
이럴 때 잘 쓰는 말이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던가. 내가 하도 단호한 태도로 거절하는 바람에 박문수는 미주에 가고 싶다는 요청을 두 번 올리지 못했다. 그러던 참에 파견 명령을 받았으니,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꼭 그 도적놈을 끌고 와서 폐하의 어전에서 심판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그동안 그놈 때문에 큰 고난을 겪어온 미주 백성들이야말로 놈의 처형을 구경할 권리가 있으니, 미주에서 처형하라. 도성에는 그놈의 모가지만 잘라 오면 충분하다.”
장길산을 잡아다가 내 앞에서 처형한다면, 아마 임해군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는 능지형, 즉 백각형을 명하고 싶어질 것 같다. 우리 대한에는 당연히 기술가자 없지만, 후송에서는 아직도 멀쩡히 시행하는 형벌이니까 말이다. 청나라에서는 능지형을 시행하지 않는다. 아직도 여진족 기질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그런 시간 걸리고 귀찮은 형벌을 시행하지 않고 그냥 얼른 쳐 죽이고 끝낸다. 단순하게 교형이나 참형으로 처형하기는 아까운 중죄인이라면 산 채로 거열형에 처하기는 한다.
그런데 후송에서는 능지형이 여전히 현역이다. 반역죄나 강상죄, 연쇄살인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능지형 집행 대상이다. 그 죄상에 따라 최대 6천 번까지 칼로 살을 떠낸다고 알고 있다. 물론 산 채로 말이다. 그러니 내가 요청만 하면 바로 전문가가 날아오리라. 하지만 그런 혹형은 이제 없애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유혹이 될 만한 요소는 아예 내 눈앞에 나타나기 않는 편이 좋다. 처형은 미주에서 하도록 하고, 박문수가 모가지를 잘라서 들고 오면 한양에서는 남대문 앞에 매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번 출정에 데리고 갈 사람으로 혹시 생각해둔 이가 있는가?’
“없습니다, 폐하.”
박문수는 자신이 벼르고 벼르던 일을 맡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듯 했다. 꼭 누구랑 함께 미주에 갔으면 좋겠다는 발언도 안 한 정도로. 아니, 어쩌면 이건 내 선택을 믿는다는 의미도 되겠다. 하지야 내가 인선해둔 인원들이면 박문수가 불만을 표할 리는 없으니까.
“토포사 부장(副長)으로는 훈련대장 홍진오를 보내기로 하였다. 군무에 관해서는 완전히 믿고 맡겨도 된다는 우참정대신의 추천이 있었으니 함께 가도록 하여라.”
“예, 폐하.”
박문수 본인도 뛰어난 무장이다. 하지만 이번 장길산 토벌에서는 정치적인 업무도 많다. 미주총관부와 교섭하는 건 기본이고, 프랑스나 스페인 관리들과도 만나려면 퍽 바쁠 거다. 그러니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갈 부지휘관이 따로 필요하다. 홍진오는 계미남변 당시 유격전을 벌이는 스페인군 및 스페인과 원주민 반군을 토벌했던 경험도 있다. 이는 장길산 일당을 추적하는 데도 유용할 터였다.
“종사관으로는 부령 단세문과 더불어 우상의 차자인 정위 권창을 데려갔으면 한다. 창은 천주교도이고 서반아어도 능숙하니, 신서반아 부왕청과 교섭할 때 편리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폐하. 권 정위의 솜씨는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세묜이 따라가는 거야 당연하겠지. 그런데 천주교도이면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군관이 권창밖에 없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권창은 권훤의 아들이면서 바실공주 이사벨라의 남편인 내 손녀사위다. 아주 든든한 배경을 갖췄으니 이럴 때 득을 보는 거지. 부친인 권훤은 태연하게 자기 아들 이름을 출동 명단에 집어넣었다. 그것도 반쯤 문관인 군기대 군관을 도적을 쫓는 일선 중대장으로. 자기가 40년 전에 해냈듯이 미주의 황야에서 공을 세워서 출세의 기반을 잡으라는 의도였던 듯했다.
그 서류를 보고 처음엔 기함했다. 하지만 손녀사위라고는 해도 벌써 서른네 살이나 먹은 어른을 계속 어린애처럼 싸고돌 수도 없으니 일단은 도장을 찍었다. 다만 보직은 교체해서 박문수의 종사관으로 넣었다. 손녀를 졸지에 과부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박문수는 이들 세 사람 말고 다른 무관들의 명단을 보면서도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다들 자기 마음에든 모양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되도록 자주 모여서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겠습니다. 폐하, 좋은 장수들을 보내주시어 감사합니다.”
“임금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나저나, 그대가 미주에 도착하기만 해도 장길산이 그 도적놈이 급사 했으면 좋겠구나. 괜히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말하고 나서 아차 했다. 박문수에게는 전혀 듣기 좋을 말이 아닌데, 장길산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까 그만 입 밖에 내고 말았다. 다행히 박문수가 웃으며 내 말실수를 수습해주었다.
“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도착했을 때 보니 이미 그놈이 죽어 있어서, 배에서 내릴 필요도 없이 바로 돌아올 수 있으면 더 좋을 듯하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러면 토포군으로 나선 장졸들의 가족들도 모두 크게 기뻐할 터인데. 공주도 말이다…..그런데 고령위, 공주가 혹시 요즘 어디 아픈가?”
연주는 요즘도 열흘에 한 번씩 꼬박꼬박 입궐했다. 그런데 어째 올 때가 되었는데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 성격을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폐하. 집안일이 좀 바빴을 뿐이니 염려 마시옵소서. 그렇지 않아도 내일쯤에는 입궐하리라 하였사옵니다.”
“그런가. 알겠다.”
연주도 이제 어른이다. 그러니 옛날처럼 박문수를 외국에 보내지 말라고 울며불며 보채진 않겠지. 그럴 거라면 며칠 전, 박문수를 미주에 보낸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바로 득달같이 달려왔을 테니까.
15.
박문수가 문관이 된 지난 4년 동안에도 연주가 만족할 만큼 남편과 함께 있지는 못했다. 박문수가 워낙 출장도 잦고, 지방에 가서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연주가 박문수의 미주 출정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릴 때처럼 억지로 떼를 쓰는 대신 눈물로 호소하면서 자비를 청할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입궐한 연주의 태도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나랏일로 필요하다면 마땅히 다녀와야지요. 고령위는 아바마마의 장수인데, 어찌 소녀의 작은 욕심으로 집안에 붙들어놓겠습니까.”
예전과 다름없이 음식 보따리를 들고 입궐한 연주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담담한 태도에 내가 도리어 놀랐을 정도였다.
“괜찮으냐? 이번 출정은 그 도적놈을 잡을 때까지다. 고령위가 언제까지라는 기한도 없이 미주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숱한 장수와 군사들이 어명을 받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면 아낙들은 뒤에 남아 집안 살림과 자식들을 돌보며 지아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요. 소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박문수가 매일 집에 들어오지는 못했어도 며칠에 하루씩은 꼭 들어왔다. 연주로서는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박문수와 떨어지는 연습을 한 셈이 되었다. 아제는 여러 달씩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며 연주가 쓸쓸하게 웃었다.
“미주도 우리 땅이다. 광동과는 다르지 혹 네가 원한다면 미주 별궁에서 지내며 고령위가 토벌을 끝내기를 기다려도 된다.”
미주 별궁, 지선성에 있는 예전 성친왕저는 여전히 빈집으로 남아있다. 은이가 시찰하러 미주에 갔을 때 머무른 이후로 누가 정식으로 거처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연주는 그 집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연주도 부모의 젊은 시절 추억이 서린 그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한 적은 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면 선뜻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주는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따라간다 해도 저는 지선성에서 오매불망 홀로 기다려야 할 것인데, 그러면 도성에 있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또 순규가 낳은 손자들도 돌봐야 하고 살펴야 할 혼사도 있는데, 이 모자란 어미라도 곁에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연주가 낳은 다섯 자녀는 모두 훌륭하게 자랐다. 부모를 닮아서 모두 머리도 좋고 외모도 출중하다. 그중 장남, 장녀, 차남은 이미 모두 혼인했다. 순서로는 둘째인 장녀 지연이가 맨 먼저 3년 전 을묘년(1735)에, 장남인 순규가 재작년에, 그리고 차남인 형규가 작년에.
3년 연속으로 혼사를 치렀으면 웬만한 집은 기둥뿌리가 뽑힐 거다. 하지만 연주는 재산이 10만 냥이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이번에 혼사를 치를 애들은 박문수가 광동에서 데려온 광동왕부 출신 수양딸들이다. 비록 자기 배로 낳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연주는 이 아이들도 꽤 공들여 돌보았다. 친자식들처럼 명문가에 시집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혼처도 구했다.
“어디 그 애들뿐인가요. 넷째도 벌써 올해 열한 살이니 혼처를 물색해야 합니다. 매파도 만나보고 하면서 좋은 집안과 인연을 맺도록 노력해야지요. 그게 어미의 일 아니겠습니까, 아바마마.”
연주도 이제 내 앞에서 떼나 부리는 철부지 딸이 아니라 성숙한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드는 대화였다. 하기야 연주도 만으로 서른넷, 현대였으면 아직 결혼조차 안 했을 수 있는 나이지만 벌써 손자녀를 둘이나 둔 할머니가 되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소녀가 미주에 가버리면 나이 드신 아바마마의 말벗은 누가 해드리겠사옵니까. 정친왕 오라버니는 공부에 바쁘니, 저밖에 없지 않사옵니까.”
연주는 울릉도로 떠나버린 홍이나 서출인 이복 언니와 오빠들, 아직 살아있는 두 후궁은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평소에 연주가 그들과 사이가 딱히 나빴던 건 아니긴 하지만, 늙어가는 아버지의 애정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쩐지. 하지만 지금 기분이라면 정말 안 되는 거 빼고 다 해줄 수 있다. 웃으면서 손을 떼자 연주가 얼굴을 붉히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성균관에 다니는 저희 큰놈이 아직 대과에 붙지를 못했사옵니다. 이참에 아비를 따라서 미주에 다녀오면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혹시 종사관으로라도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옛날 충무대왕이 그러했듯이, 여차하면 그 애가 무관으로 전과하게 시키려고 합니다.”
“자질이 있다면야 무관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순규는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 아니냐. 성균관에 들어간 지도 이제 2년이니 아직 여유를 두고 공부해도 될 텐데.”
대과 합격자가 매년 100명씩 나오니 조선 때에 비하면 합격자가 9배라지만, 그래도 평균 합격 연령은 30대 중반이다. 17살에 성균관에 들어간 것만 해도 이미 대단하거늘, 대과에 겨우 두 번 떨어졌다고 벌써 포기한 것처럼 굴다니, 연주도 의외로 성격이 급하다.
“꼭 무관으로 만들 생각에서 드리는 부탁은 아니옵니다. 어차피 그 아이도 조만간 초모에 응해 향도로 복무해야 하는데, 이번에 종사관으로 출정하면 일반 군영에서 향도로 복무하는 건 면제되지 않겠사옵니까.”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기왕 하는 군복무를 장길산 토벌대에 참가하는 걸로 보내서 공적을 쌓고 나중에 공직에 올라갈 쌔 가산점을 얻겠다 그거지. 장길산 토벌은 국가적인 사업이니까 종사관으로 참가만 해도 확실히 공적이 될 거고 말이다. 게다가 종사관은 품계가 엄격히 정해지지 않아서 백두(白頭)라도 종사관이 될 수 있다. 내가 허락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본래 상피(相避) 문제가 있어서 부자가 형제가 같이 종군하기는 무척 어렵다. 혹시 나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사옵니다, 아바마마. 그러니 아바마마께 부탁을 드리는 것이지요.”
사실 이건 원칙이고, 현실에서는 아들이나 동생, 조카 등을 대솔군관(帶率軍館)으로 삼아 데리고 다니는 장수들이 비일비재했다. 이순신 같은 사람이나 아들들한테 제대로 된 직책 하나 안 주고 군졸처럼 데리고 다녔지, 다른 장수들은 편하게들 원칙을 어겼다. 하지만 박문수는 주변에서 너무 주목을 크게 받아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내 명으로 허락한다고 해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너무 대놓고 주는 특혜니까.
“보낸다고 해도 고령위의 종사관으로는 보낼 수 없다. 네가 정녕 각오가 되어있다면, 부장 홍 부장 밑에 들어가는 종사관으로 놓는 건 고려해 주마.”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아바마마. 감사합니다.”
연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까짓 일로 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