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61
3부 679화(1561화)
19.
생각해 보니 조홀국으로 새로 들어올 종교가 조로아스터교뿐인 것도 아니다. 인도인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니까 이미 들어온, 그리고 앞으로 들어올 노동자들도 대개는 힌두교도겠지. 그러면 조홀국에 새로 들어올 종교는 두 가지인 셈이다.
“본국에서 그러하듯, 조홀국에서도 새 백성들에게 믿는 바를 마음껏 믿게 허용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믿는 바를 가지고 지나치게 탄압하면 교도들이 반기를 드는 것은 동서고금이 알고 있는바, 사교(邪敎)가 아니라면 믿지 못하게 할 이유가 없다.”
황건적이나 백련교처럼 특정 종교가 중심이 된 반란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 조홀국에서 중국인들을 새로 들이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가 그거니까. 광동인이건 복건인이건 객가건, 중국인들은 그놈의 종교적 성격을 띠는 비밀결사 때문에 안심 할 수가 없다. 인반인인 줄 알고 이주를 허락했더니 실은 삼합회 조직원이었더라….. 이런 사례가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그놈의 삼합회는 범죄단체에다 반쯤 종교 결사적인 면도 있으니까. 아예 종교 집단인 백련교 같은 놈들도 있고. 아, 삼합회가 백련교 계열이었던가? 잘 모르겠네.
인도인들은 그런 면에서는 아주 안심할 수 있는 외국인이다. 왜냐고? 그야 녀석들이 믿는 힌두교는 애초에 종교를 중심으로 모두 단결해서 뭘 어쩌고 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 그렇다. 힌두교 내에서도 어느 신을 주신으로 삼느냐에 따라 패가 얼마나 갈리는데. 게다가 윤회에 따른 교리 문제도 있다. 현세의 괴로움은 다 네가 과거에 지음 죄 탓이고 다음 생에서 높은 카스트로 태어나서 좋은 삶을 누리려면 지금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힌두교 교리 때문에 웬만해서는 지배자한테 반항도 잘 안한다.
더구나 힌두교는 이슬람교처럼 타인에게 선교하려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자기들끼리 알아서 믿도록 놔두고, 그들의 종교적인 전통을 존중해주기만 하면 끝이다. 그 외에는 이미 다른 종족들에게 하듯 법에 따라 공평하게 대우한다면 반항 따위는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었지만, 외국에 나간 인도인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영국 식민 당국에 반기를 든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 딱 한 번의 예외를 빼고.
‘아직 간디는 없을 테니까.’
원래 역사에서도 영국은 인도인들을 전 세계 영국령에 보내 노동력으로 활용했다. 그리도 이 인도인들은 이주에 반항하기는커녕 이주한 나라에서 대영제국의 충실한 신민이 되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예외가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들을 규합해 맞섰던 젊은 간디의 사례다. 그나마 간디도 처음에는 충성스러운 대영제국의 신민이었다. 남아프리카 당국이 인도인에 대해 시행한 도가 지나친 차별 조치를 현장에서 목격하지 않았으면 민족운동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계속 빅토리아 여왕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남았으니라.
“폐하의 뜻을 꼭 조홀국왕에게 당부하겠습니다.”
예무대신 신현규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정중하게 허리를 조아렸다. 번국과의 관계 조율은 기본적으로 예무부 몫이니, 신현규는 이 문제에서는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잘해왔고. 문제는 내가 죽은 이후에도 출신이 다른 이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기조가 계속 유지되는 거다. 과연 괜찮을까. 후대 임금들이, 신하들이 계속 이렇게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은이를 두고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은이는 어려서부터 카자크 소꼽친구들과 남녀 구분도 없이 뒹굴면서 놀았고, 미주에 있을 때는 미주 토인 친구들도 있었다. 은이가 테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 옆을 지키던 양소목 같은 이도 있었다. 하지만 영이는 다르다. 대궐 동궁에서 태어났고, 주변을 메운 건 궁인들뿐이었다. 어려서 잠시 피접을 나갔다 오긴 했지만, 그래봐야 내 조카 영선공주의 집이었다. 공주인 당고모네 집은 세상을 공평하게 봐야 한다는 점을 체화(體和)하는 데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붙들어 앉혀놓고 계속 가르치는 거. 내가 하는 말이 머릿속에 박히다 못해 무의식의 차원에 고정되도록 계속 가르친다. 한인만 우리 백성으로 보고 중하게 여겨서는 대동양을 둘러싼 이 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고.
20.
“논어 안연편(顔淵篇)에서 이르기를, ‘사해지내 개형제야(四海之內 皆兄弟也)’라고 하였다. 태손은 이 말이 무슨 뜻이라고 보는가?”
이건 공자의 제가 사마우(司馬牛)가 송나라에서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자기 형을 걱정하여 ‘내게는 이제 형제가 없다’라고 탄식하자 동료 제자인 자하(子夏)가 건넨 위로의 말이다. 영이는 그 뜻을 바로 설명했다.
“세상 사람은 모두 내 형제이니, 외로워 말고 친하게 지내라는 뜻이옵니다. 할바마마.”
“그렇다. 일찍이 장조께서도 경조께 말씀하시기를, ‘임금에게 충성하고 우리 법과 풍속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면 모두 우리 백성’이라고 하셨다.”
내가 폐렴에 걸려 죽으면서 성이에게 남긴 유언이었지. 다민족국가로 가는 첫발을 내디딘 조선을 성이에게 물려주면서 내가 가장 걱정했던 문제 중 하나가 인종차별, 그리고 민족 간 갈등이었다. 현실적으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더라도 줄이기라도 해야 했다. 성이가 내 조언을 잊지 않은 덕분에 지금까지도 전반적인 관용의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대신까지 올라온 사람은 없어도 중견 관리 중에는 외국계 혈통도 종종 있다. 외인이라해서 차별하는 법률도 없다. 분야에 따라서는 외국계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꾸준히 공을 들여 관리해야만 유지 될 수 있다. 현재 대한의 다문화는 이들에게 반감을 품은 어느 임금이 이들을 축출하거나 강제로 동화시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끝날 수 있을 만큼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러니 그 필요성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
“장조께서는 ‘우리 본국 백성들만이 아니라 북방, 남방, 저 멀리 동방 야인들과 동서남북 이방(異邦)에서 이 조선에 살고자 오는 이들에게도 차별 없이 은총을 베풀라. 조선 백성이 어디 하늘에서 홀로 떨어졌더냐?’라고도 하셨다. 너도 그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 할바마마.”
그나마 영이가 자기 이복형인 원이하고라도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다. 사분지 일이라고는 해도 명백한 혼혈인 원이가 옆에 있으니, 혼혈을 비롯한 외부 혈통에 대해 무조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솔직히 말해 영이도 마음이 넓다. 원이는 자기 모친인 한 씨가 받아야 할 총애를 가로챘던 안나의 아들이니 그 모자를 다 미워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장차 내가 죽은 뒤에도 형제간에 분란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소손, 어지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비록 서형(庶兄)이라고 하나, 진황은 저와 피를 나눈 하나밖에 없는 형이 아닙니까. 핏줄이란 누구도 끈을 수 없는 천륜입니다.”
“네 말이 옳다. 그러니 바깥에서 들어온 백성들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법에 따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그들도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일손이고, 이 나라를 지킬 칼이며, 이 나라를 떠받들 기중이니라.”
노파심 때문인지 분명히 했던 충고인데도 하고 또 한다. 이게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니, 영이 녀석이 늙어가는 할아비의 푸념이라고 생각하고 귓등으로 흘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21.
지난봄에 있었던 청나라와 후송사이의 전투는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인 영향만 따져도 일단 두 나라 모두와 교역이 늘었다. 청나라에서는 대포 주문이 더 들어왔고 후송에서는 쌀 실은 배가 연달아 우리 쪽으로 돛을 올렸다.
“군기시에서는 요즘 쉬는 날도 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지.”
내 질문을 받은 육군대신 이계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폐하.”
군기시에서 올라온 서류 더미가 내 눈앞에 쌓여 있다. 청나라에서 온 주문 내역과 우리 쪽에서 집계한 생산 현황을 정리한 문서다. 이계신이 청나라 쪽에서 보내온 반응을 간단히 줄였다.
“대운하에 진입하던 후송 철갑선을 파괴한 우리 대포가 저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부터 더 많은 화포를 얻고 싶어 합니다.”
청나라도 각종 화포를 직접 생산한 지 꽤 오래되기는 했다. 유럽인 선교사들을 기용해서 홍이포를 생산한 것만 해도 거의 백 년은 됐으니까. 화북을 처지한 뒤에는 명나라 기술자도 기용해서 화포를 생산했다. 입관 초기의 대학살을 비롯한 한족 억압 정책 때문에 후송으로 도망간 기술자들도 많기는 했다. 하지만 살던 고향에 남은 기술자들도 꽤 있었고, 청나라 조정에서도 이 기술자들은 한군 팔기에 편입해서 팔기와 같은 급으로 대우해 주었다.
다만 경험과 기술에서 빚어지는 차이 때문에 청나라 대포는 우리 것보다 사거리가 짧고 위력도 약하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못 쓸 수준이라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대포와 비교해서 조금 약하다는 소리다. 청나라제 대포도 크게 강할 필요가 없는 보병용 야포나 공성용 곡사포로 쓰기는 괜찮다. 중국의 성벽은 두께가 수십 미터씩 되다 보니 어차피 직사포로는 겉면이나 좀 부술 수 있을 뿐이지,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공성전에서는 직사포가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후송에서 만드는 대포도 그 성능은 청나라 대포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므로, 그동안 이게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후송이 철갑선을 동원하고 청나라제 대포가 철갑선의 장갑을 못 뚫지만 않았어도, 청나라는 굳이 우리 대포가 필요해지지 않았으리라.
“마침 우리가 가뭄이든 상황이니 잘된 셈이다. 너무 무리가 되지 않는 한 저들의 요청에 맞추어 포를 만들어 보내주도록 하라.”
“예, 폐하.”
청나라 쪽에는 대포를 보내주고서 식량을 받는다. 그래서 이쪽은 육군 대신이 일차적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호송에는 은을 보내고 식량을 받는다. 그래서 이쪽은 육군대신이 아니라 재무대신이 처음부터 보고를 맡았다.
“송제가 사신을 보내 청하기를, 쌀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보내겠으니 값만 잘 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사정이 좋지 않으니 그만큼 태도가 겸손해지는구나.”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후송은 남양성을 공격하던 서쪽 전장에서 3만 명을 잃었고 대운하로 들어가는 동쪽 전장에서 2만 명을 잃었다. 사상자는 서족에서는 육군, 동족에서는 거의 수군이다. 수군의 안 좋은 점은 배가 침몰하면 타고 있던 수졸들도 떼죽음을 당한다는 거다. 운하로 들어오다가 격침당한 철갑선만 세 척이고 목선은 수십 척이다. 이만한 함대가 가라앉았는데 얼마나 많은 수졸이 시석에 맞아 죽고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었겠는가.
명 번이나 말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과라고 말할 수 있는 철갑선 격파는 순전히 우리가 보낸 대포가 거둔 성과다.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병력이야 다시 뽑으면 쉽게 보충할 수 있지만, 손실한 전선과 화포를 보충하자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탓에 쌀 수출을 늘리려는 듯하옵니다.”
“그렇겠지. 수출세는 후송 조정이 바로 챙길 수 있는 수입이니.”
후송이 수출하는 물품이 쌀밖에 없는 건 아니다. 우리한테 쌀 팔아서 후송 조정이 거두는 수출세 수입은 후송의 전체 경제 규모에 비하면 솔직히 껌값이다. 그저 올해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품목이 쌀인 걸 아니까 그걸 더 팔려고 하는 거지.
“지금 우리가 송나라에서 비단이나 차, 도자기, 설탕 같은 물건들을 사들일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싸우고 있는 쌍방과 모두 교역하는 게 좀 켕기기는 하지만, 다른 재주가 없다. 가뭄 탓에 식량이 급하게 필요하니 뾰족한 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는 무기는 한쪽 편에만 판다. 이만하면 양심적인 거지 뭐.
“구휼을 위해 식량을 들여오는 문제는 여기 태손에게 맡겨두었으니, 재무는 청과 송에서 식량을 얼마나 들여오면 좋을지 고려할 제반 사안을 정리해 태손에게 보고하라. 그 내역을 두고 태손과 의논하여 세부를 정한 뒤에 짐에게 올리라.”
“예, 폐하.”
영이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은 이렇게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 올해까지만 내가 맡아서 하고, 내년 봄부터는 웬만한 업무는 전부 영이에게 넘겨야지. 그 뒤로도 쌓인 이런저런 안건을 처리하다 보니 예무부에서 올린 보고서가 있었다. 이번 배편으로 하와국에서 올린 표문을 정리한 거였는데, 펼쳐보니 하와국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사냥한 멧돼지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지난겨울 동안에만 2백 두를 잡았다고? 허, 정말 고생이 많았군.”
“예, 폐하. 멧돼지를 사냥하는데 몰이꾼으로 나선 하와국 군사 중에서 죽거나 다친 이들만 무려 서른 명이나 된다고 하옵니다.”
“허허, 경험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지. 멧돼지를 잡다가 다치는 건 우리 본국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 아니냐? 하와인들도 계속 사냥에 나서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이런 말해서 안 됐지만, 그 고생이 끝이 아닐 거다. 멧돼지의 번식력을 생각하면, 지금 하와이의 산과 숲을 누비는 멧돼지가 적어도 2천 두쯤은 될 테니까. 그리고 그 멧돼지들은 올해 겨울에는 적어도 5천 두로 늘어나 있을 거다.
“폐하. 역시 호랑이를 좀 보내주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딱 한 쌍만 보내주면, 그놈들이 멧돼지를 잡아먹어 그 수가 크게 줄 터이니…..”
“아니, 그대는 왜 그리 호랑이에 집착하는가? 호랑이가 그렇게 좋거든 그대가 집에 두고 키우도록 하라. 내 응방에 명하요 대호(大虎) 한 마리를 하사하도록 하겠다.”
“아, 아니, 그게 아니옵고……”
전부터 하와국 멧돼지 이야기만 나오면 호랑이를 잡아 보내자고 하던 학부협판 곽현중이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른 신하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호 한 마리라고 해서 크게 부담을 느낄 일은 없다. 대호를 먹인다고 소를 잡을 필요도 없고, 그저 매일 개 한 마리만 먹이면 충분할 터이니.”
“폐하. 신이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다시는 하와국에 호랑이를 보내자 하지 않겠으니, 부디 신에게 호랑이를 하사한다는 분부는 거두어 주시옵소서.”
편전 바닥에 엎드린 곽현중이 창백해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 내가 호랑이를 넘겨주고 키우라고 할까 봐 겁이 난 모양이다.
“섬라국에서는 죄를 범한 신하에게는 국왕이 백상(白象)을 하사한다고 들었다. 어디, 우리 대한에서도 그 풍습을 본떠서 벼슬을 떼는 대신 호랑이를 하사하면 어떻겠는가?”
섬라국에서 국왕이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하사하는 건 너 보기 싫으니까 얼른 꺼지라는 뜻이다. 흰 코끼리는 상서로운 존재이므로 호화찬란한 우리를 짓고 최고급 먹이를 먹이면서 사육해야 하는데, 일반인은 도저히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확실하게 파산이다. 그렇다고 국왕이 내린 ‘선물’을 거부할 수도 없다. 거부하면 국왕을 모욕한 죄로 처형장에 가게 된다. 고로 희 코끼리를 선물로 받게 된 신하는 당장 챙길 수 있는 재산을 챙겨 몰래 야반도주하는 길을 택하고 만다. 애초에 국왕의 목적이 그거기도 하고.
“폐하. 사람을 괴롭힐 목적으로 짐승을 내리시다니 옳지 않은 일이옵니다. 분명히 농으로 하신 말씀이겠사오나 그 정도가 다소 심하니, 이제 그만하심이 어떨지요.”
“알겠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겠다.”
예무대신 신현규는 내 말이라면 벌벌 기는 것 같으면서도 용케 묘한 장면에서 용감하다. 자기 기준으로 볼 때 임금으로서 허용되는 행동 기준이 확고한 모양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때 나서서 제지할 수 있는 거겠지.
“하와국에는 포수를 더 보낼 건 없다. 대신 하와첨사에게 명하여 사냥 겸험이 많은 군사 수십을 뽑아 하와국왕의 사냥을 도우라고 이르라.”
멧돼지 사냥 같은 위험한 작업을 하려면 아무래도 그 일에 익숙한 사람이 필요하다. 전에 데려간 포수들로 부족하다면 현지에 있는 우리 군사들을 내보낼 수밖에. 그나저나….멧돼지 잡다가 죽은 하와국 전사들은 어느 저승으로 갈까? 하와국 전통 종교에 저승 개념이 있던가? 있겠지? 그런데 그럼 그 저승도 대한의 여러 저승에 포함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