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63
3부 681화(1563화)
25.
백성들이 나를 추앙하는 건 내가 이번 생에서 이룬 여러 업적 덕분이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큰 건은 역시 계미남변에서 거둔 승리다. 자고로 전쟁만큼 주변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계미남변은 우리 대한이 ‘서양 나라를 상대로’ ‘나라 밖에 나가서’ 거둔 첫 승리라 백성들에게 준 충격이 말할 수 없이 컸다.
유럽 국가들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어딘가 신비한 전설 속 나라 같이 보였다. 장조 시절에 처음 접촉할 때부터 독특했다. 용모부터 전혀 다르게 생긴 인간들이 생전 처음 보는 요상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찾아와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물건들을 내놓았으니까 말이다. 이제 교류의 역사가 백여 년이 넘고, 관리ㆍ학자ㆍ성직자ㆍ상인 등이 다수 유럽에 다녀왔고 그 실상을 알리는 책과 잡지 같은 출판물이 다수 나왔다고는 해도 유럽은 아직 백성들에게 중국이나 일본처럼 친숙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땅에 가서 싸워 이긴 거다.
물론 실제 전장은 유럽이 아니라 필리핀과 미주였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필리핀과 미주도 만 리 바깥 낯선 땅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 남쪽 땅이 낯설지 않은 사람은 해군이나 외수사에 속해 그 배를 타고 멀리 나갔다 온 사람뿐이었다. 외국 원정이라고 하면 을미동정이나 양응룡의 난 토벌 같은 것도 있지 않냐고 하겠지만, 우리 백성들 관점에서 본다면 을미동정을 옛날부터 하던 왜구 토벌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사고의 틀을 벗어난 원정이 아니었다.
양응룡의 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본토에서 난이 일어나 원병을 보내는 건 고려 말기에 홍건적 토벌에 최영이 출전한 전례가 있고, 고구려는 중국에 원병을 보내는 대신 수나라를 비롯한 여러 왕조를 공격한 반대 사례가 있다. 어쨌든 둘 다 친숙한 세계라는 거다. 하지만 우리 백성들이 생각하기에 필리핀, 그리고 누에바 에스파냐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친숙하게 받아들일 만한 ‘내 세계’가 아니었다. 그런 땅들을 우리 군사들이 공격해서 함락한 사건이 계미남변이었다. 좋은 의미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계미남변에서 승리한 임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내 이름은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불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극장에서 만세를 연호(蓮呼)하던 백성들의 사고는 그 바탕에 이런 역사적 사실을 깔고 있다.
“이것도 다 폐하를 받드는 그런 마음의 표시가 아니겠습니까.”
극장에서 나를 달래던 숙비 홍 씨는 대궐로 돌아온 뒤에도 위로를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시중에서 팔리는 소설책 수십 권을 가져다 쌓아서 내게 보여주었다.
“계미남변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책이 이토록 많습니다. 게다가 직접 싸우러 갔던 군사 숫자만 해도 수십만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일이 지금도 시중에서 회자되는 폐하의 가장 큰 위업이 아니겠습니까?”
“숙비의 말이 틀리지 않구려. 위로해주어 고맙소. 어디, 그 소설책들 내용은 어떤지 나도 한번 직접 읽어나 봅시다.”
맨 위에 놓인 책을 집어 펼쳐보았다. 어떤 시골 출신 청년이 초모에 응해 남정에 나선 뒤 스페인군과 싸워 다대한 군공을 세우고, 임금의 은총을 받아 훈장에다 대장군이라는 벼슬도 받고, 공주까지 하사받아 부마로 출세한다는 내용이었다. 책 무더기 위쪽에 있는 책들을 더 펼쳐보았다. 비슷한 전재가 몇 권 더 있었다.
“제목도 참 솔직하구먼. 《당세온달(當世溫達, 지금 시대의 온달)》 이라니. 이 이야기책들 내용이 전부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짐에게 공주와 옹주가 서른 명쯤 있어야겠는 걸.”
실없이 웃다 보니 문득 욱이가 집필한 소설들 생각이 났다. 욱이는 자기가 직접 참전했던 양응룡의 난을 비롯해서 여러 전쟁을 배경으로 십여 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 주인공은 죄다 양반 사대부가의 자제였다. 비록 어려서 버려졌거나, 몰락한 가문 출신이더라도 말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소설도 죄다 양반 집안 출신 젊은이들이 주인공이었다. 욱이 자신이 종친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하나의 예외도 없었다. 몇 작품 안 되는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들도 주인공이 서녀일지라도 양반의 핏줄인 건 똑같았다.
하지만 숙비가 가져온, 요즘 유행한다는 이 소설들은 대부분 주인공이 평민이었다. 본국 시골 출신이라면 보병, 북방 출신이면 기병, 해안가 출신이면 수졸로 싸움에 나가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개 군병으로 시작해 군관, 장수, 그리고 공후(公侯)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다만 주인공이 다 한인이라는 부분은 여전했다. 본국 시장에서 팔리는 책들이니까 당연한 설정이겠지만, 미주 토인이나 대남도 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겠사옵니까. 이런 이야기책을 서점에서 사거나 세책점에서 빌려서 집에 두고 읽는 이들은 대개 본국에 거주하는 상민들이니까요. 외지 토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글을 쓴다면 어지 읽는 이들이 공감하며 즐거이 읽겠사옵니까.”
“숙비의 말이 옳소. 지극히 옳은 말이오.”
문득 원래 세계에서 즐겨 읽던 웹소설 생각이 난다. 그 독자들도 남자든, 여자든 자기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형태의 주인공을 좋아했지. 이쪽 세상에서도 그런 건 마찬가지구나. 하기야 사람 생각하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하지 않은가.
‘5천 년 전에 작성한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라고 적혀 있었다지…..’
5천 년 묵은 잡소리는 일단 제쳐놓고….이런 소설 주인공들의 변화만보아도 장조 시절의 조선과 지금의 대한이 달라졌다는 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바뀌리라.
“미주 토인이나 대남도 토인들이 글을 익혀서 직접 책을 쓰게 되면 자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쓰지 않겠소? 그날을 불러오기 위해서라도 어서 토인들에게도 글을 가르치는 사업을 널리 진행해야 겠구려.”
현재로서는 대남도나 미주 토인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미주 토인 중에 오금족에 속한 일부 부족장들은 벼슬을 하사받아 관복을 입고 자식들에게 향교에 나가 글을 익히게 하지만, 그건 극소수에 한정된 이야기다. 체계적인 교육이 아니다. 대남도 토인들은 그나마도 없다. 산에 사는 토인들은 산속에다 자기네 자치지역을 만들어 살면서 조정에서 병력을 모집할 때만 산에서 내려온다. 이들은 공부에 아예 관심이 없다.
“신첩은 폐하께서 하신 일 중에 가장 훌륭하신 일이 학당을 세워서 배움을 널리 퍼트리신 일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아직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지 않겠사옵니까?”
숙비 홍 씨는 성경 욥기에서 나오는 구절로 내 학교 건설 사업을 칭찬했다. 역시 내 후궁 중 가장 현명한 사람답다. 내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맙소, 숙비.”
26.
‘창대해진’ 학교 사업의 결말은 우리 대한제국 영역 전체에서 보통교육 제도가 시행되는 것이리라. 미주 대령에서 발해만까지, 빙주에서 갈로도까지 대한의 황명이 닿는 모든 땅에서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고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말을 배우는 그때까지.
아,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말을’ 배운다고 해서 각 지방에 사는 소수 민족들의 문화를 말살하고 한식 생활을 강요하는 문화제국주의를 펼 생각은 없다. 각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자기들이 살고 싶은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언어나 문화를 탄압하지도 않을 거다. 다만, ‘관화(官話)’로서의 한어는 익혀야 한다. 그리고 출세하거나 학문을 익히고 싶다면 역시 한어를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일단 말이 통해야 공부도 하고 관리도 되지.
이는 이미 북도 지방에 사는 여진족들이나 구주에 거주하는 왜인들은 잘 아는 사실이다. 관직을 얻어 출세하고 싶다면 한어를, 덤으로 한자도 익혀야 한다. 그게 대한에서 요구하는 ‘배운 사람’의 수준이니까 말이다. 장차 이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첫 단계가 지금 한양에서 문을 연 소학당들이다. 처음에는 성내에 두 개만 열었지만, 올해 용산에 하나를 더 열면서 세 개가 되었다. 그리고 세 곳 모두 학생이 몰려 터져 나갈 지경이다.
“올해까지의 성과를 보니, 내년에는 경기도에서 학당을 몇 개 추가로 열어도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학무대신 이지권은 보고하면서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학교를 늘리고 학생을 늘린다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학무부 일을 맡은 대신으로서 정말 일하는 맛이 난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고을의 격으로 따지면 동경, 서경, 남경, 북경, 상경의 다섯 고을에 학교를 세우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사옵니다. 허나 학당 설립은 아직도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았고, 이를 조정에서 공들여 관리하려면 경기도에서부터 시행함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경기도 어디부터 시행할 생각인가?”
“다섯 유수부부터 시작함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동경은 대구, 서경은 요양, 남경은 전주, 북경은 함흥, 상경은 평양이다. 모두 부도(副都)로 삼을 만한 중요한 고을들이지만 도성에서는 멀다. 다섯 유수부는 개성, 강화, 광주, 수원, 인천이다.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해도 되는 사업이라면야 좀 멀어도 상관없다. 알아서 하라고 맡기면 된다. 하지만 이건 그럴만한 건이 아니다.
이지권이 부연했듯이 이제 막 시작하는 보통교육은 조정에서 계속 살피며 관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설치해서 그 효과를 보는 편이 편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학교를 더 늘리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교사 확보다. 지금 학부에서는 의원들이 각 도에서 주최하는 의시를 통해 의원 자격을 얻듯이, 훈도(訓導, 교원)도 각 도가 훈과를 실시하여 자격을 얻은 이를 선발하도록 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중앙에서 할 규모가 아니다.
“선발하는 숫자는 매년 조정하되, 학생들을 가르칠 스승을 뽑는 일을 일반 시험과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으니, 본래 재학하던 향교와 서원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이 우수하다고 추천을 받은 이들만 훈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면 좋으리라고 생각하옵니다.”
서류로 1차 심사를 하고, 2차 시험인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수령이 직접 참여하는 면접을 통해서 3차 시험을 본다. 그 정도면 교사 자리에 걸맞은 좋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으리라는 학무부의 계획을 보니 괜찮아 보였다.
“합격한 뒤에는 어찌 처분하겠는가?”
“의원과 같이 일정 기간은 의무적으로 훈도 일을 시키고자 합니다.”
의시에 합격한 이는 향의원(공중보건의)으로 3년간 자비로 복무하면 평생 의원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학무부에서는 훈과 합격자 역시 비슷한 무보수 복무를 조건으로 한 교원 자격을 주자고 했다.
“아니,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하다. 의원이야 환자에게 약값은 받으나 교원은 학생에게 받을 게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 교원을 채용할 때 녹봉은 마땅히 지급하고, 다른 방책으로 복역을 규정함이 옳다.”
학교를 운영하려면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다. 토지를 마련해 건물을 짓고, 모든 학생에게 지급할 교과서와 학용품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다 교사의 임금까지 지급하려면 상당한 부담이 될 게 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을 시키면 당연히 봉급을 줘야지.
“폐하. 훈과에 합격한 이들에게 합격세를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재무대신 조운홍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반문에 이런 설명이 튀어나왔다.
“본래 법으로는 의시를 굳이 보지 않아도 의원 노릇을 할 수 있으나, 근래 풍속은 의시에 합격한 이들만 의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백성들이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훈과 제도로 학당 훈도를 뽑게 되면 머지않아 선생 일에서도 훈과 출신자만 선호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고로 개인이 서당을 열거나 독선생을 들일 때도 나라가 검증한 실력자인 훈과 출신들을 선호하게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밑천을 받은 합격생들이 나라에 그 감사의 표시를 내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액수야 적절하게 조절하되, 다른 용처에 쓸 것이 아니라 각도가 학당을 세우고 운영하는 비용에 보태게 하면 퍽 좋으리라고 사료되옵니다.”
“오, 재무가 내놓은 발상이 참으로 좋구나.”
돈이라면 눈빛이 변하는 조운홍으로서는 어떻게든 자기가 쥐고 있는 국가 재정이 헛되이 소비되는 꼴을 막고 싶어서 내놓은 아이디어이리라. 하지만 이게 일종의 수익자부담이라고 생각하고, 합격자들이 내는 돈이 일종의 면허세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떤가?”
나는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관대한 군주이므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일단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제각기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재무대신의 의견이 괜찮은 듯하옵니다. 마땅히 득을 보는 자가 돈을 내야지요.”
“신은 반대입니다. 그러다가 대과에 합격한 관원들에게까지 평생 먹고 살 길을 얻었다는 핑계로 합격세를 걷으실 생각이옵니까? 나라에서 돈이 필요하면 쓸 만큼 쓰면 되는 것이지, 그 안을 채택하지 마시기를 권하옵니다.”
“신은 역시 보수 없이 3년에서 5년 정도 일하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관아에서 기숙하게 하면 녹봉이 따로 없어도 살만할 것입니다.”
“대감, 학생들을 가르치는 훈도가 관노들 사이에 끼어 먹고 자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이런 식의 논쟁이 벌어졌다. 참고 듣다가 짜증이 나서 호통이라도 한번 치려는 참인데 이 문제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이가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누군가 하고 쳐다보니 육군대신 윤시길이었다. 그리고 사뭇 생뚱맞은 제안을 올렸다.
“폐하, 신 육군대신 아뢰오. 다섯 유수부는 모두 대붕영 군영이 위치한 굿이기도 합니다. 대붕영 군사들에게 소학당에 자식을 보내 가르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신다면 군사들이 무척 기뻐하며 폐하께 만세를 외칠 것입니다.”
대붕영 군사들은 금군 수준의 봉급을 받지만, 그게 자식의 출세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애초에 공부와 별 인연이 없는 상민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기 자식들이 학문을 배워 높을 지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아니, 엄두를 못 낸다는 게 더 정확할까.
“하지만 그 자식들을 소학당에 다니게 하신다면 그중에 자질이 있는 자들은 학문을 더욱 익힐 생각에 사부학당이나 향교에 찾아가서 그 문을 두드릴 테고, 개중에는 대과에 붙거나 강무관에 들어가는 자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좀 무리한 전망이 아닐까 싶다. 소학당에서는 사서(四書)도 안 가르치는데 어찌 그 무거운 시험을 준비하겠는가.”
지금 개설한 소학당은 애초에 설립 목표부터가 일상에서 쓸 만한 정도의 실용적인 학문을 가르치는 거다. 대과 준비나 강무관 준비라니. 그건 좀 무리다. 다만 그와 별개로 군인 자녀를 위한 복지정책이라고 하면 그다지 나쁠 건 없다. 윤세길이 주장한 것처럼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조금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취업한다거나 할 때는 분명히 도움이 될 테니까.
“도성에서는 금군이나 경군 군졸들의 자식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대붕영에만 그런 특혜를 준다면 금군과 경군 군사들이 불만을 드러내지 않겠느냐?”
“도성에 학교를 더 열 때는 군졸들의 자식에게 우선권을 주시면 됩니다. 도성만이 아니라 변방에 나간 군사들도 자기네 고을에 학당이 생기고 자기 자식들을 먼저 받아서 가르친다면 환호할 것입니다.”
확실히 군사들로서는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도 괜찮은 일이다. 교육이라는 요소를 복지라는 명분으로 군인 가족들에게 추가로 투입한다면 우리 군사력도 확실히 눈에 띄게 향상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