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64
3부 682화(1564화)
27.
윤시길이 내놓은 안은 별 돈이 안들면서도 직업군인인 일반 병사들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복지 대책이었다. 형평성 문제가 좀 제기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장차 모든 아동을 소학당에 다니게 할 것이니, 고병(雇兵)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조금만 기다리면 차례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친 특혜도 아닙니다.”
“그 말이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군관들이야 굳이 자식을 소학당에 보낼 필요가 없다. 아비가 직접 가르치든, 사당에 보내 배우게 하든, 독선생을 두든, 이미 다들 알아서 절하고 있으니까. 그래야 자신이 이미 이룬 출세를 자식에게도 대물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반 병졸들은 그런 인식이 약하다. 자식의 출세를 꿈꾸더라도 기껏해야 자기하고 똑같이 군졸로 입대해서 전공으로 진급하기를 바라는 정도다. 전장에서 공을 세운 군사들이 현지임관으로 군관이 되는 사례가 없지는 않으니까.
고로 소학당 우선 입학권은 군관들보다는 직업군인인 고병들에게 더 혜택이 되는 조치가 맞다.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 군인이 되건 안 되건 말이다.
“경기감영에서는 다섯 유수부에 새로이 학당을 열 준비를 하고, 공고를 내서 훈도를 뽑을 훈시를 연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 일단 향시이기는 하나, 교원도 역시 벼슬이니 응하는 이가 적지 않으리라.”
조정에서 몇 가지 논의가 더 오간 끝에 훈시도 대과에 응시하는 자격을 주는 초시(初試)와 같은 급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훈과(訓科)가 아닌 훈시(訓試)가 되었다. 똑같이 도에서 주최하는 의원 가격 시험도 의시(醫試)라고 하니까 말이다. 같은 급의 시험이라고 훈시 합격자가 대과 복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는 건 아니다. 대과에 응시하고 싶다면 초시를 별도로 쳐야 한다. 그런 제한을 안 두면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죄다 2년 동안 수업은 제대로 안 하고 대과 볼 준비나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관직에 이미 올라 있으면서도 또 과거를 보는 건 이미 율곡이 선례를 보였듯이 흔한 일이긴 하다. 처음 관직에 나섰을 때 시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서 단박에 더 좋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건데, 지금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복시 응시 자격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엄연한 차이다 여지가 적으면 더 적을수록 본직에 충실하지 않고서 다른 마음을 먹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래서 이건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훈시를 초시와 같은 급으로 인정을 해도 똑같은 시험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다섯 유수부를 시작으로, 경기도에서 학당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그때 가서 다른 22도 지역에도 학당을 짓기 시작한다. 각 도에서 부,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의 순서로 가며 학당을 지어가면 될 것이다.”
학교를 설립하기에 편리한 큰 고을에서부터 짓는다. 큰 고을일수록 제정에도 여유가 있고 학생을 모으기에도 효율적이니까. 나중에는 산줄기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에도 계속 학교를 짓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그 일은 이쯤이면 대략 마무리가 되었고……남대문 쪽은 정리가 다 되어 가는가?”
“예, 폐하.”
현재의 남대문은 교통로로는 너무 좁으니 헐고 통로를 만들자는 안건은 논의 끝에 일단 1안, 남대문 자체는 그대로 두고 그 서쪽 성벽만 일부분 허무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성벽 자체를 허는 비용부터 덜 들기도 하지만, 그다음 과정에 드는 비용이 훨씬 더 많았다.
“헐어낸 성돌은 다른 데 쓰지 말고 새 출구 앞에 보루를 짓는 데 보태도록 하라.”
“명심하고 있사옵니다.”
성벽을 허는 넓이는 8차로, 즉 수레 8대가 나란히 지나갈 정도 촉으로 했다.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태평로가 그대로 남대문 밖으로 나가는 셈이다. 자연히 남대문 밖에 있는 도로도 그에 맞춰 넓혀야 한다. 용산에서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기존 도로는 4차로였으니까, 도로변에 잔뜩 들어서 있던 점포와 가옥을 철거해서 도로 폭을 맞춰야 했다. 여기 들어가는 토지 매입비와 공사비가 막대하다.
경희궁을 출발해서 광화문까지 가는 이 도로가 완성되면, 길이가 대략 15리(6km) 정도 된다. 폭이 8차로에다 길이가 15리나 되는 이 도로에서 개선식과 같은 시가행진을 하면 그 모습이 실로 장관이겠다.
“태평로를 경희궁까지 그 폭 그대로 이으려면, 밀어내야 할 민가가 수천 호가 넘습니다. 올해 안에 다 할 규모가 아니니, 조금 여유를 두고 진행하겠습니다.”
공무대신 민겸제는 이 대사업을 두고 의욕에 불차고 있었다. 무인년 대화재 당시 남촌을 통째로 재건한 장성준의 위업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남대문 바깥, 용산으로 이어지는 신촌까지 가는 구역을 통째로 재개발하는 일이다. 의욕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수천 채에 달하는 가옥을 옳기고 도로를 크게 넓히는 중대한 일이다. 장차 우리 도성이 천하의 중심으로 웅비할 날을 대비하기 위함이니, 백성들의 구휼을 겸하여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라. 한성부와 협조할 일은 잘 맞추도록 하라.”
이런 큰 사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성문 재축 따위에 돈을 쓰고 싶을 리 없다. 성문이야 나중에 언제든지 지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뭄이 터진 김에 이런 대사업을 하는 건 구휼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규모가 많이 크다. 동대문과 서대문 쪽 성벽까지 터서 길을 내는 건 역시 남대문 쪽 공사가 완료된 뒤로 미뤄야겠다.
“예, 폐하.”
내 처조카라 그런 게 아니고, 민겸제는 정말로 유능했다. 이번 사업을 잘 처리하면 장차 정승 번열에 오르고도 남을만하다. 아직은 조금 젊으니까, 다른 대신 자리를 두어 개쯤 더 경험하게 한 뒤에 참정대신으로 올리면 적당하겠지. 다만 그건 나보다는 영이가 맡을 일이지 싶다. 지금은 벌써 양력으로 10월, 올해도 거의 지나가지 않았는가. 내년부터는 영이에게 나랏일을 맡길 생각이니, 민겸제를 정승의 반열에 올리는 것도 – 영이에게는 민겸제가 진외종숙(부친의 외사촌)이 된다 – 영이가 맡아서 하는 게 적당하겠다.
28.
성문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성벽을 일부 헐고 그 잘린 단면을 깔끔하게 정돈할 뿐이다. 보니, 공사는 그리 오래 끌지 않았다. 도로 폭을 맞추는 작업은 내년 봄부터 하기로 했고, 지금은 새 출입구와 원 도로가 연결되는 자리의 건물만 몇 개 헐어서 살짝 맞춰만 놓았다.
“성문을 출입하기 편해지기는 했으나, 장조 폐하의 개선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 옆으로 지나가게 된 게 조금 아쉽습니다. 폐하께서는 어떠신지요.”
“짐도 그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새로 열린 남대문을 통해 한양에 들어온 첫 손님은 디에고의 둘째 아들인 알레한드로와 디에고의 장손, 즉 내 증손자 후안이었다. 알레한드로도 어느새 서른이 되었다.
“가북후는 신접살림을 사는 재미가 어떤가.”
“부끄럽사옵니다, 폐하.”
후안 – 한명은 이정원 – 은 임인년(1722) 생이니까, 올해가 만으로 열여섯이다. 혼인하기 적절한 나이다. 대를 이어야 하는 세손이니만큼 조금 서둘러 결혼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가북후(加北侯)는 세손인 후안이 열여섯 살이 되면서 디에고가 내린 작위다. 술루 왕실의 법도는 한국식과 스페인식이 혼합되어 있어서, 세자와 세손에게도 별도의 작위를 내린다. 가북(加北)이라는 이름은 수도 이사변 북쪽에 있는 카부칸(Cabucan)이라는 섬에서 따왔다.
“아바마마께서 좋은 아내를 구해주신 덕분에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세손빈인 남 씨입니다.”
디에고는 자식들의 혼사 문제로 꽤 고민을 많이 했었다. 장남인 세자 프란치스코와 장녀 이사벨라는 본국에서 배필을 얻어 본국과의 연계를 단단히 했다. 프란치스코는 세자빈으로 이형준의 현손녀를 맞았고, 이사벨라가 혼인한 권창은 권훤의 아들이다. 하지만 차자 알레한드로와 차녀 다니엘라는 모두가 술루에 거주하는 스페인인 유럭자들과 연을 맺었다. 대한 본국과의 연을 끊지 않으면서 술루 왕가가 가지고 있는 스페인의 성격을 잊지 않고, 현지에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관계였다.
한 대는 현재를 확실히 다지는 혼인을 했으니 다음 대의 혼인에서는 술루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디에고가 고심한 끝에 고른 혼인 상대가 천주교 신안 때문에 복국에서 술루로 이주한 한인 명문가, 의령 남 씨의 일가였다.
이 집안은 경조 시기에 일찌감치 천주교에 입교한 독실한 신자였다. 술루국이 세워지자 한동안 고민한 끝에 가산을 정리해서 술루로 이주했을 정도다. 그런고로 대개 상민인 일반 가서인들보다 압도적인 위세를 가지고 있다.
“태황 폐하의 용안을 뵙사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내 증손주며느리인 남 씨는 술루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고 예절도 발랐다. 얼마나 공을 들여 키운 딸인지 보기만 하면 알 수 있을 정도다. 용모도 꽤 곱다. 올해 초에 디에고가 혼인을 알리며 보낸 표문에 따르면 후안보다 한 살 어리다.
“좋은 세손빈을 맞았으니 술루국도 앞으로 크게 번영하겠구나. 자, 짐에게 올리는 인사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창덕궁으로 가서 태후마마께 인사를 돌리거라.”
“예, 폐하.”
젊은 신혼부부 두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올렝카와 처음 만나던 시절의 젊은 나를 보는 듯하여 문득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29.
후안과 남 씨를 창덕궁으로 보내고, 보호자 격으로 조카 부부를 데리고 온 알레한드로와 함께 잠시 잡담을 나눴다. 법도를 따지자면 알레한드로도 태후한테 인사를 드리도록 보내는 게 옳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손자와 내가 먼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사실 다른 후보도 있었습니다. 남 씨 가문처럼 본국에서 건너온, 옛날 장조 폐하 시절에 펠리페 2세 폐하의 명으로 대한에 건너온 가문 출신으로 좋은 처녀가 하나 있었지요.”
“그래? 그런데 어찌 남 씨 집안 소저를 세손빈으로 골랐는가?’
그 시절 건너온 가문 중에는 임금을 위해 백 년이 넘게 충성한 과거를 외면하지 못하고 한양에서 계속 머무른 집안이 다 많다. 그러나 일부는 술루국으로 이주했다.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고 같은 선조를 가진 군주 밑에서 일하고 싶은 건 무리가 아니다. 세손빈의 본가인 남 씨 집안도 같은 신앙을 가진 군주를 모시고 싶다고 술루로 갔으니, 이들 역시 다를 게 있겠는가.
어떻게 보자면 이렇게 술루로 떠난 천주교도 집안들을 일종의 배신자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이주를 막지 않았다. 막기는커녕 힘을 다해 도왔다. 술루국이 하루빨리 자리를 잡으려면 유능하고 세력 있는 집안들을 많이 보내야 했으니까.
“저희는 대한의 제후국이니까요, 폐하. 저만 해도 서반아에는 가본적도 없습니다. 대한을 저희 종주국으로 여기는 이상, 어느 쪽을 더 가깝게 여겨야 할지는 명백하다는 게 국왕께서 남기신 말씀이었습니다.”
디에고는 자기 고향인 스페인을 그리워하는 한편으로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이었다. 스페인계 가문과만 혼인하면 술루국은 점점 대한 본국과 거리가 멀어질 테고, 그래서는 저 험한 남방에서 생존할 수 없다. 대한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혼인이다.
하지만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 후안의 동생, 세 살 아래인 세르히오 – 한명은 이세원 – 는 스페인계 가문에서 아내를 얻게 되리라고 했다. 왕실에서 스페인계를 너무 외면하면 그쪽이 불만을 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까 말씀드렸듯이 본국과의 유대지요. 그래서 조홀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일도 정성껏 도왔습니다. 우리 모두 폐하의 은총을 받으며 함께 움직이는 형제니까 말입니다.”
술루국에서는 조홀국 내란 진압에 총 3천여 명을 파견했다. 그리고 2할 정도의 전사자를 냈다. 전란 기간이 꽤 길었던 데다, 적의 규모가 워낙 압도적으로 다수다 보니 피해가 컸다. 여기에 질병으로 일한 희생도 꽤 있었다. 다만 전과도 엄청났다. 보고에 따르면, 술루군이 죽인 반군만 해도 2만 명은 된다고 했다. 포로로 잡은 반군과 부녀자는 3만 명에 달했고.
조홀국왕 정주신은 원군을 보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술루군이 붙잡은 포로 전원을 디에고에게 넘겼다. 노예로 남길 테니 마음대로 처분하라고 했는데, 디에고는 그중 힘세고 건강한 남녀 5천 명만 골라 술루로 데려가고 나머지는 전비를 대느라 바로 팔아버렸다.
“그런데 폐하, 서운하옵니다. 어찌 그런 즐거운 일을 벌이면서 저희를 쏙 빼놓고 시작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무슨 즐거운 일?”
잠시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었다. 근래 딱히 뭐 즐거운 일을 한 게 없는데…..?
“엘 바스타르도, 장길산 토벌 말이옵니다. 고령위에게 군사를 맡겨 내 보내실 정도면 저희 술루에도 출병령을 내리셔도 됐을 텐데, 빼놓으시니 서운할 따름입니다.”
박문수가 토포군을 거느리고 제물포를 출발한 게 거의 석 달 전, 토카부치를 떠나 완전히 동쪽으로 떠난 게 두 달 전이다. 바람만 제대로 불었으면 지금쯤은 덕진성에 도착했으리라. 물론 토벌을 시작하려면 지선성까지는 배를 타고 내려가야 하지만.
장길산이 날뛰는 소식에 관해서는 술루국에서도 알도 있다. 비결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연락선 편으로 건너가는 조보를 꼼꼼히 읽고,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건너오는 마닐라 갈레온 편으로 소식을 접했을 뿐이다. 다소 겸연쩍은 기분이 되어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아…..그거야 그대들이 멀리 있다보니 부르기가 좀 난감하였지. 놈이 저지른 악행이 하도 심해 토포군을 급히 편성하느라 술루군까지 부를 생각을 미처 못 하였다. 더구나 그대들은 지난 조홀국 출병으로 인해 많이 지쳐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도 칙서를 내리셨으면 신을 비롯해 폐하께 충성하는 용맹한 군사들이 기꺼이 나섰을 것입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알레한드로는 어려서부터 점잖은 성품이었던 형 프란치스코와 달리 심한 장난꾸러기였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그런지 사람이 바뀌어 이토록 의젓한 모습을 보이니 새삼 감개무량한 기분이다. 자기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인 홍이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홍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토포군이 울릉도에 잠시 기항하니 박문수를 찾아와서 배에 태워달라며, ‘도적을 잡아 죄를 씻겠다’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의도야 어떻건, 허가도 없이 유배지를 벗어나다니 될 말인가.
그나마 박문수가 잘 타일러서 도로 주저앉히고 얼른 출범했다고 했다. 그놈, 계속 고래나 잡고 있을 것이지 왜 뜬금없는 짓은 한 건지.
“신과 신의 군사들은 서반아어도 능숙하고, 싸움에도 익숙합니다. 부디 이제라도 장길산을 잡는데 합세하여 폐하께서 베푸신 은덕을 조금이라도 갚게 하여주소서.”
알레한드로가 데려온 술루군 병사는 서른 명이었다. 알레한드로의 주장에 따르면 술루군 전체에서 누에바 에스파냐 정세에 가장 밝은 장병들을 골라 뽑았다고 했다.
“알겠다. 그대들의 청에 따라 미주에 보내주기로 하마.”
그래, 이렇게 가고 싶어 하는데 못 보낼 것도 없다. 겨우 서른 명뿐이라 해도 일단 가면 머릿수만큼 도움이 되겠지. 게다가 스페인어와 스페인 풍습에 익숙한 이들이니, 스페인군 쪽에 사절로 보내거나 하기에는 권창보다 훨씬 나을 거다.
휴우,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번에는 장길산 그놈을 꼭 잡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