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65
3부 683화(1565화)
30.
알레한드로가 지휘하는 술루국 파견대는 며칠 뒤에 출발하는 미주도선 편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북태평양 항로가 거칠어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보내는 마지막 배다. 술루군은 박문수 밑에 직할로 들어가는 표하군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그중엔 스페인인을 비롯한 유럽인과 누에바 에스파냐 출신 메스피소들만 참여했고 가서인이나 한인은 없었다.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에 익숙한 이들만 뽑았으니 당연한 일이니라.
이들은 모두 디에고가 신경 써서 뽑아 보낸 장교나 고참 부사관들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술 한 잔씩 따라주며 각자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출신과 경력이 참 다양했다. 스페인인 외에 포르투갈인이나 아일렌드인도 있었다. 여기서 다수가 용병으로 이리저리 떠돌다 술루까지 흘러들어온 이들이다. 나디르 샤에게 패해서 오람에서 쫓겨나 이쪽으로 온 포르투갈인들처럼 말이다. 그만큼 풍부한 세상경험을 갖췄고 싸움에도 능숙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부하들이고.
“그대들은 충성스러운 술루국의 군인으로서 술루의 주군인 짐의 신하이기도 하다. 신하를 맞이하는 주군의 의례로 그대들에게 주연을 대접하니, 모두 즐거이 마시고 힘을 내어 못된 도적을 잡기 바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양한 억양의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출신에 따라, 또 어떤 인생역정을 거쳤는가에 따라 다들 발음과 억양이 제각각이었다. 역시 우리 강역에서 가장 사구적인 성격이 강한 나라인 술루국 병사들답다. 이들은 다들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럴 법도 한 게, 장길산의 목에 걸린 상금이 이제 2만 냥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2만 냥이면 스페인 달러로 3만 달러에 상당한 액수다. 다들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기필코 엘 바스타르도의 머리를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임금 폐하 만세!”
“태황 폐하 만세!”
술기운이 오르자 여기저기서 서투른 한국어 대신에 그냥 대놓고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 아일랜드어로 지르는 고함이 튀어나왔다. 잔뜩 신이 난 그 모습들이 귀여워 보였다.
“그런 난 이만 돌아갔겠다. 이 자리는 볼내공이 맡아 수습하도록 하라.”
“예, 폐하.”
조금 더 젊었을 때 같으면 이들과 내가 유럽에 있을 때 이야기라도 나누면서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힘겹다. 이만 가서 쉬어야지.
31.
보호자인 숙부 알레한드로가 수하들을 거느리고 미주로 떠났어도 후안과 후작부인 남 씨는 한양에 남았다. 처음부터 한동안 머무를 생각으로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알레한드로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술루국은 우리 대한의 제후국, 즉 번국이다. 그 위치를 안정되게 우지하려면 본국에 많은 인맥을 유지해야 하고, 이런 방문은 그런 인맥을 형성할 좋은 기회였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인맥이야 당연히도 차기 태황과의 친분이리라.
“술루국의 가북후가 대한의 태손저하께 인사 올립니다.”
“뭘 그리 거북하게 구는 가. 편히 있게.”
프란치스코와 영이가 사촌이므로 후안은 영이에게 당질(堂姪)이다. 하지만 나이는 영이가 후안보다 겨우 다섯 살 연상이다. 그만큼 친근감을 품기 유리하다. 그래도 조금 더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두 사람만 마주 앉게 했다. 나는 조금 떨어져 앉았다.
“술루국은 우리 대한의 든든한 방패일세. 그런 귀한 나라의 세손이 찾아왔는데 어찌 내가 함부로 대하겠는가. 편히 이야기하세나.”
나와 디에고가 공식적으로 부자관계를 칭할 수 없다 보니 영이도 대놓고 후안을 조카로 취급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굳이 그런 걸 대놓고 표현하지 않아도 유대감은 쌓을 수 있다. 영이는 능숙하게 후안과 대화를 나누었다. 술루국 사정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아는 바를 화제로 활용해서 상대와 대화를 편안하게 이끄는 데도 무척 능숙했다. 내가 맡긴 업무를 맡아 처리하면서 태도에 자신감이 붙은 티가 났다.
“저하, 저하께서는 꼭 슬루국에서 십 년쯤 뿌리를 내리고 사신 분 같습니다.”
“그저 관심을 좀 두었을 뿐이지. 술루국은 우리 황실과도 깊은 인연이 있으니 굳게 살펴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네, 자,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목을 좀 축이게나.”
영이가 웃으며 후안에게 차를 권했다. 우리 대한에서 구할 수 있는 차 중에서 가장 좋은 작설차다. 영이는 아버지인 은이가 술병으로 죽은 뒤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대 제주(祭酒)를 음복하고 공식적인 연회에서 의례적으로 술잔에 입을 대는 정도는 하지만, 술을 안 마셔도 되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누가 권해도 말이다.
혹시 내가 권하면 마실지도 모르지만, 왜 영이가 술을 안 마시는지 뻔히 아는 내가 술을 억지로 마시도록 권할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영이한테 술을 마시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술루국에서도 웬만하면 술보다는 차를 마시도록 하게. 하는 그 향이 마시는 이의 정신을 고양할뿐더러 사람이 술에 취해서 저지르는 온갖 실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네. 그 실수에는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위험도 들어가지.”
“예, 저하.”
후안은 영이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꼬박꼬박 고개를 숙였다. 흠, 하지만 미주에 보내기 전에 내가 열어준 연회에서 알레한드로 이하 술루군 장교들이 술 마시던 광경을 떠올려보면 저 금주 권유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데. 디에고부터도 술을 꽤 마셨다. 은이나 홍이처럼 들이붓듯이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이었다. 아무래도 성친왕의……아니, 내 아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프란치스코도 어디 가서 술이 약하다는 소리는 안 들을 만큼 마신다. 그러니 후안도 아마 마찬가지일 텐데, 영이의 금주 권유가 과연 소용이 있을까.
“저하. 그런데 저하께서는 아내를 세 사람이나 거느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그 가운데 계시면서 중심을 어찌 잡으시는지 여쭈어도 될 는지요.”
“정처와 첩은 애초에 격이 다르니 중심을 잡고 말고 할 게 없지. 그런데 가북후는 아내가 후작부인 한 명뿐이지 않은가? 어찌 그런 것을 묻는가?”
후안이 얼른 대답하지 않고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폈다. 영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말고 내 눈치는 갑자기 왜 살피나 싶었지만, 조용히 시선을 피해서 못 들은 척했다. 그랬더니 조금 안심이 되는지 살그머니 진심을 털어놓았다.
“사실, 국왕 전하께서 짝지어주신 제 아내보다 마음에 드는 다른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 아가씨 족에서도 저를 좋아하고요. 그래서 고민이 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그러니까 지금 정부를 얻어서 바람을 피우시겠다 그 말인가? 도로테아 한 사람만 평생 바라보고 살았던 디에고가 알면 노발대발할 텐데. 아니, 당장 태손빈과 뜨거운 초콜릿을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을 네 부인 남 씨는 어쩔 생각이냐.
유럽에서 왕족이나 귀족들이 흔하게 정부를 두는 걸 생각하면 놀랍지는 않다. 프랑스에서 루이 14세가 거느린 정부 숫자는 1개 중대는 편성하고도 남을 정도 아니었던가. 스페인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술루국에서도 귀족 – 술루국은 스페인 귀족 작위를 인정한다 – 중에 정부를 둔 이를 찾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되려 본국에서 이주한 한인 가문들이 그 꼴을 보고 어처구니 없어하는 사례가 잦다고 들었다. 자기들은 교회에서 금한다고 첩도 안 들이는데 스페인인들은 대놓고 불륜을 벌이니까 말이다.
첩을 들이는 행위는 중혼(重婚)에 해당하므로 금해야 한다는 게 대한을 찾은 선교사들의 방침이었다. 그래서 천주교에 귀의한 가문들은 있는 첩도 내보내고 그 뒤로도 첩을 들이지 않았다. 정부, 아니 간부(姦婦)를 두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이웃에서 같이 살게 된 스페인인들은 한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신실한 삶을 살기는커녕 흔하게 정부를 두고 있었으니….이주한 한인들이 실망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탓으로 은근한 갈등이 있다고 들었다.
후안도 술루국에서 성장하다 보니 주변에 있는 스페인 귀족들의 생활을 보고 자라서 그런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역시 성격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이 크군, 아니, 그보다는 어쩌면 호색한이자 난봉꾼이었던 성친왕의 피가 2대를 뛰어넘어 발현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디에고가 ‘성친왕의 아들’이라서 저 성질이 저쪽에서 나온 걸까.
“흠, 그건…..상황이 전혀 다른데. 내가 가북후보다 9년 먼저 혼인하기는 했지만, 그 문제는 쉽게 답하기 어렵네. 내가 옆에 둔 여인들은 어쨌거나 우리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존재지만 그대들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
영이가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처음 따로 만나는 거나 마찬가지인 오촌 조카에게 이런 맹랑한 상담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후안으로서도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불호령만 떨어질 것 같아…..도저히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저하께서도 아시겠지만, 국혼이란 제 사랑보다 왕실이 얻을 정치적인 이익 때문에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
어라라?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면 어떡하냐. 영이 너는 그동안 태손빈 유 씨하고 사이좋게 잘 지냈잖아. 네가 고른 아내가 아니고 내가 간택한 태손빈이긴 하다만, 그동안 그 문제로 네가 불평을 꺼낸 적은 없다고 기억하는데. 갑자기 두 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들리지 않을 만큼. 자식들, 혹시 여자 문제로 문가 엉뚱한 모의라도 벌이는 건 아닐 테지?
그동안 내 자식들은 여자 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딱 하나, 홍이 녀석만 빼고 말이다. 다른 녀석들은 여자 문제로 내가 신경 쓰게 하지 않았다. 첩을 들여도 딱 한 명만 들이지, 둘을 들인 놈도 없었다. 후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억지로 둘을 들인 영이만 예외다. 그런데 그 안정된 상태가 다음 대에서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정부를 둘 궁리를 하는 증손자에, 그 심정에 공감하는 스물한 살짜리 손자라니.
“이놈들이 나중에 보위에 오르면 후궁에 줄줄이 미녀를 채워 넣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부황인 연가제만 해도 후궁이…..열 명쯤 되었던가. 우리 대한의 국세를 생각한다면 영이가 장차 후궁을 스무 명쯤 들인다 해도 별 타격은 없을 거다. 그 정도는 내수사 재정만으로도 충분히 부담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돈 문제와는 별개로, 내 자식이나 손자들이 그런 꼴을 벌이는 게 보기 싫은 것도 사실이다. 성친왕이 과거에 벌인 난봉질이 생각난다. 하지만…..
“….녀석들이 내가 죽은 뒤에 호색질을 한다면 내가 생전에 뭐라고 해도 막을 수 없겠지.”
결국 그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몇 달 남지 않은 나랏일 돌보는 데나 신경을 쓰자.
32.
이제 양력으로 11월, 슬슬 올해를 마무리할 때가 되어간다. 그러는 동안 유럽에서도 큰 사건이 하나 끝을 맺었다. 4년을 끌어오던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오스트리아 측의 굴욕적인 강화 제안, 즉 패배로 말이다.
「아바마마, 합스부르크는 정말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러시아는 튀르크에게 공격당해서 혼란에 빠진 오스트리아를 돕고자 자청해서 참전했건만, 저들은 우리와는 전혀 의논도 하지 않고 튀르크인들과 단독 강화를 맺었습니다. 정말 뻔뻔합니다.」
루시아는 편지에서 카를 6세를 향한 온갖 불만과 불평을 내뱉었다. 이번 전쟁에서 그동안 원한이 쌓이고 쌓인 원수인 크림 칸국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 땅을 정복할 생각이었는데, 오스트리아가 먼저 맺은 단독강화 때문에 그게 불가능해졌다고 해서다.
심지어 강화조약은 ‘오스트리아는 이번 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오스만 측에서 영유하도록 인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영토를 빼앗긴 오스트리아 쪽에선 당연히 사기가 떨어졌고, 오스만 쪽은 대대적으로 기세가 올랐다. 그 힘이 러시아 쪽으로 흘렀다.
「흑해를 장악한 튀르크인들은 크림반도의 타타르인들에게 계속 물자를 제공해서 저항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 방면에서 강화를 맺은 뒤로는 왈라키아, 우크라이나 방면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우리와 폴란드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러시아로서도 강화협상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유지하던 국경까지 군대를 물리고, 서로 배상금이나 영토 할양 없이 강화를 맺었다. 그래도 크림반도를 돌려준 대신 아조프는 손에 넣어 흑해로 나갈 발판을 만들었다.
「새 황제는 오로지 자기 딸에게 지위를 몰려줄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선거장에서 여러 제후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 거야 당연하겠지만, 특히 프로이센 왕세자를 다로 만나서 공을 들이는 태도가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루시아는 카를 6세가 프리드리히에게 허리라도 굽힌 것처럼 적었지만, 익문사 쪽 보고는 좀 달랐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밀담을 몇 차례 나눴을 뿐이다. 그 뒤에 프리드리히가 아주 열렬하게 카를 6세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때 선거전에서는 차마 말로 옮기기 힘든 주장까지 나왔었다. ‘카를 대공은 이미 나이가 많아서 제위를 오래 지킬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을 황제 자리에 올려야 한다면서 작센 선제후와 바이에른 선제후가 서로 자기가 제위에 오르겠다고 난리를 쳤다.
곧바로 세습되는 오스트리아 공을 제외한 다른 지위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로 뽑는 헝가리 국왕을 비롯한 여러 작위는 카를 6세가 아니라 요제프 1세의 딸들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 두 사람에게서 튀어 나왔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걸림돌이 튀어나왔다.
‘쓸데없는 소리 그치고 법도대로 합시다. 여기는 오직 카를 대공께서 제위에 오르실 만한 분인지 아닌지, 오직 그것만 따지는 자리입니다.’
나이도 젊은 프리드리히 왕세자가 이런 식으로 정면으로 카를 대공을 지원하고 나설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작센의 아우구스트, 바이에른의 카를 알브레히트 등은 애송이한테 정론으로 밀린 꼴이 되자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그 말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논란 끝에 황제로 선출된 사람은 결국 카를 6세였다.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적통 후계자고 보니, 고작 나이가 많다는 정도 단점만으로는 몰아낼 수 없었다. 이참에 처삼촌을 제위에서 몰라내려던 두 선제후의 계획은 이로써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황제 자리에 오른 카를 6세는 긴 전쟁으로 인한 피로에서 회복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자기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거야 자기도 잘 알 테니, 본래 역사에서처럼 계승권은 마리아 테레지아한테 있다는 국사조칙을 조만간 발표하겠지. 촉박하게 선포한 국사조칙이 과연 얼마나 주변의 동조를 얻을 수 있을까. 원래 역사에서 카를 6세도 국사조칙을 인정받느라 크게 고생했다. 그나마도 막상 물려줄 때가 되니까 다른 나라들이 줄줄이 오리발을 내밀었고, 그로 인해 터진 전쟁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다.
국사조칙을 승인한 나라들이 전부 약속을 지켰다면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그리고 7년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과연 이쪽 세계의 카를 6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