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79
3부 697화(1579화)
29.
몽캄 후작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가 처음으로 방문해 보는 ‘동양의 도시’는 참으로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벽돌이나 돌로 지은 건물을 드물었다. 성내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으로 벽을 발랐다. 지붕은 짚을 말아 덮은 초가지붕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중요해 조이는 건물에는 기와를 얹었다. 프랑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조선식 기와다.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옷차림도 신기했다. 프랑스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에 읽었던 쇼몽 후작의 회고록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면직물과 견직물, 마직물을 즐겨 있으며 가죽옷은 거의 입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곳 주민들은 가죽옷을 입은 이들이 많았다. 모양도 차이가 컸다.
그 화려하고 다양하다던 남자들의 모자도 보기 힘들었다. 간단한 두건만 두르거나 짚이나 짐승의 털로 만든 간소한 모자를 쓴 이가 많았다.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금과 구슬, 새털로 장식한 화려한 모자를 쓴 조선인은 별로 없었다.
“외모도 다르군요, 각하. 쇼몽 후작이 자기 책에 적은 바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키도 크고 피부가 무척 흰 편이라 유럽인에 가깝다고 할 정도였는데, 여기 유타성 주민들은 피부색이 검붉고 키가 작은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야기가 무척 다른데요.”
알렉상드르 슈발리에 드 쇼몽 후작은 본래는 해군 제독 출신으로, 루이 14세 시절에 조선 주재 대사로 파견되었던 사람이다. 지금 조선 임금이 대공이었던 시절에 프랑스에 찾아와서 고문단 파견을 요청했는데, 동방에서 동맹을 확보할 생각에 루이 14세가 선뜻 허락했었다.
쇼몽 후작은 후배 제독인 클로드 드 포르뱅 백작이 이끄는 함대와 함께 조선에 건너갔다. 그리고 여러 해를 현지에 머무르면서 조선 정부와의 외교 교섭 및 조선 해군의 전력 강화와 관련되는 업무를 수행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귀국한 뒤에는 《국왕 폐하의 명으로 동방의 땅 조선에 건너가서 여러 해 동안 머무르면서 대사로서 임무를 수행한 쇼몽 후작이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조선과 조선인들에 관한 신기하고도 다양한 이야기들》 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쇼몽 후작이 쓴 이 책은 지금도 조선 사정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통한다. 프랑스 내에서만 팔리는 것도 아니라 영어와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 외국어판으로도 출간 돼 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조선에 관한 책 중에는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거야 어떨 수 없지. 쇼몽 후작은 조선 본국에 체류하면서 조선 왕족과 귀족들을 주로 만났지만 여기는 조선 본국이 아니라 속령이잖은가. 쇼몽 후작이 기록한 키가 크고 피부가 흰 조선인들은 분명히 왕족이나 귀족들일 것이야.”
조선인들이 실은 유럽인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도록 만들었던 조선 임금이 대표적인 예다. 하얀 피부에 쭉 뻗은 코,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등으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백인으로 종종 오해받았다. 물론 지금은 꽤 나이가 들어 여전히 혼동될 정도 외모는 아니라고 한다. 이런 계급에 따른 피부색 차이는 조선인들한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도 신분이 높거나 부유한 이들은 평민들과는 달리 피부가 창백할 만큼 희다고 한다. 그래봐야 이들은 조선인들보다 키도 작고 눈도 작고 콧대도 낮지만 말이다.
“게다가 여기는 본국이 아닌 식민지지. 누벨 프랑스에도 프랑스인만 있는 게 아니라 무척 많은 토인과 혼혈인이 살지 않는가? 여기 사는 조선인들도 마찬가지일 걸세. 우리 눈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옷과 모자가 초라한 자들은 하층민들과 토인들, 혼혈인들이겠지.”
라 파르 후작은 말고삐를 잡은 채로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몽캄 후작도 그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뒤처질 부분이 없는 나라일세. 쇼몽 후작의 책은 나도 읽었지만,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에 관해 조선군 장교들과 프랑스어로 토론할 수 있었다는 구절을 보고 기가 막혔지. 게다가 저들이 만드는 온갖 기계는 또 어떤가.”
프랑스에서는 이제 겨우 실험적인 증기기관을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백 년도 전부터 실용적인 증기기관을 생산한다. 그리고 날씨와 상관없이 바다를 향해하며 사람과 짐을 나르고 있다. 연료 보급 문제 때문에 원거리 항해는 어렵다지만, 증기선도 연근해에서는 충분히 쓸만한 물건이다. 그래서 프랑스도, 영국도 각자 증기선을 만들어보려고 끙끙거리며 노력하고 있다. 조선인들이 제때 팔아줬으면 안 그래도 됐겠지만, 아 파니까 직접 만들 수밖에.
“조선은 엄연히 우리와 급이 같은 나라일세. 그러니 조선 임금의 사위인 보스토크 백작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정중하게 처신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 회담 장소인 조선 행정관의 관사로 향했다. 본국에서 데려온 정예 총사대 1백 기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30.
대한과 프랑스는 모두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두고 있다. 경계를 맞대고 있으니만큼 종종 용건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 직접 만나는 거야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의 몫이지, 미주대총관이나 누벨 프랑스 총독 같은 이들이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이는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지방관이 자기가 맡은 지역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굴도록 놓아두면 반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두 나라 모두 지방관의 권한에 제약을 두었다.
이번 회담만 해도, 양국 대표는 지방관이 아니라 군주가 보낸 특사다. 장길산 토벌이라는 특별 사례가 아니었으면 이런 식의 회담 같은 건 열리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어쨌든 십여 년 동안 북아메리카 서부를 휩쓸며 세 나라 관헌들의 골치를 썩인 장길산이 드디어 잡혔다. 마땅히 서로 축하하고 도 축하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 큰 도적을 드디어 체포하셨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백작. 제가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다만 라 파르 후작으로서는 기껏 데려온 정예병들이 전혀 공을 세우지 못한 게 아쉬웠다. 총사대가 장길산을 체포하든지 처단하든지 했으면 이쪽 체면이 훨씬 섰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 프랑스는 장길산과의 노예 거래 문제로 인해서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다. 그러니만큼 이쪽 손으로 장길산을 산 채로든 죽은 채로든 잡아서 조선 측에 전달했으면 외교적으로 꽤 유용한 선물이 됐을 것이다.
“아닙니다, 후작. 이번에 도적을 잡는 데는 귀측의 도움이 컸습니다.”
다만 박문수도 겸손하게 응대했다. 프랑스 측이 병력을 동원해서 로키산맥을 넘는 샛길을 봉쇄하고 장길산과 거래하던 밀수꾼들을 체포하며, 거기서 얻은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고마워할 부분에 관해서는 고마워하면 되는 거다.
“르 바타는 생포하셨다지요?’
“그렇습니다. 놈이 일단 한동안 더 숨이 붙어있게 되었지요. 다만 형을 집행할 때가 되면 차라리 그때 총에 맞아 죽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 할 겁니다.”
유타성 외곽에 숨어있던 장길산은 박문수가 자기를 붙잡으러 온가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잽싸게 도망쳤다. 유타성에 박문수가 있다면 남쪽과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지역까지 법망이 펼쳐져 있을 게 분명하므로 서쪽으로 도망쳤다. 문제는 급한 나머지 앞길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홍진오를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너무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자기 뒤를 바짝 쫓고 있던 홍진오가 활짝 편 그물 속에 그대로 뛰어들었다.
그놈은 만사가 끝났음을 알고도 체념하지 못했다. 투항을 거부하고 칼을 들고 덤벼들다가 총탄 세례를 받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나마 홍진오가 군사들에게 말을 쏘라고 미리 지시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벌집처럼 구멍투성이가 되었으리라. 물론 모든 탄환이 겨냥한 대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몇 발은 빗나가서 장길산을 맞췄다. 다행히 다리에 맞았기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지금 장길산은 이곳 관아 뇌옥에 갇혀서 치료와 함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다.
“붙잡은 르 바타는 본국으로 데려가서 임금 폐하 앞에서 처형하실 것인지요?”
“아니요. 출정하기 전에 폐하께서 명하시길, 꼴도 보기 싫으니 그 도적놈을 붙잡거든 미주 현지에서 처형하라고 하셨습니다. 지선성에서 중인환시하에 목을 베고 시신은 바다에 던진 뒤에 그 머리만 소금에 절여서 본국으로 가져갈 예정입니다.”
무덤 따위는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런 극악한 죄인한테는 단 한 조각의 땅도 아까우니까.
“마땅히 바다에 던져 물고기들이나 뜯어먹게 만들어야지요. 생각 같아서야 사막에 던져서 새와 짐승들이 뜯어먹게 해도 좋겠습니다만, 굳이 사막으로 다시 끌고 나오기도 싫습니다. 바다에 던져서 살은 뜯기고 뼈는 흩어져 혼백이 머물 곳도 없게 해버리는 편이 낫지요.”
“동의합니다.”
유럽이라고 해도 저 정도 범죄자는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묘지에는 묻어야 주겠지만, 성직자의 축복을 받고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그자의 문제는 그걸로 끝이로군요. 르 바타 놈, 그놈이 그동안 저지른 죄에 걸맞은 최후입니다. 오랜 골칫거리를 이제 끝내시게 되었으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백작.”
“감사합니다.”
즐겁고 편안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이제부터는 좀 더 복잡하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갈 차례였다.
31.
박문수와 라 파르 후작, 두 사람은 모두 군인이면서 외교관까지 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서로를 이야기하기도 쉽고 서로의 속을 들여다보기도 쉬웠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끝없이 서로의 약점을 탐색하고 파고드는 과정이었다.
“그 바타가 조선인들을 루이지애나에 노예로 넘기고, 이를 제때 적발하지 못한 건 분명한 누벨 프랑스 총독부의 불찰입니다. 하지만 이 점은 명백히 해두고 싶습니다. 백작께서도 잘 아시듯이 르 바타는 조선인이고, 애초에 놈을 잡지 못한 것도 조선 미주 총독부였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도 그 문제로 귀측을 겁박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우리 폐하께서 제게 명하신 바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끌려간 우리 백성들을 돌려받으라는 것뿐입니다.”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억울하게 끌려와 노예가 된 사람들은 당연히 찾아 송환해야지요. 우리 루이 16세 폐하께서도 그런 부당한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강제로 노예로 팔린 한인들을 무조건 송환한다는 원론적인 견지에는 양측 모두 동의했다. 조사 및 국경까지의 이동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누벨 프랑스 총독부가 부담하며, 대한 측이 인수한 뒤에 집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필요한 비용은 미주 총관부가 부담한다. 라 파르 후작이 지적했듯이 장길산이 날뛸 수 있었던 데는 대한과 프랑스 양쪽 다 책임이 있었다. 박문수 쪽에서도 이 점은 인정했으므로 이런 부분에서는 합의가 쉬웠다. 합의하기 어려웠던 건 송환할 피로인의 규모를 파악하는 방법이었다.
“얼마나 많은 우리 백성이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파악하려면 우리 관원들이 귀측 영역 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조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벨 프랑스 총독, 보하르누아 후작은 이 과정을 프랑스 관리들이 전담하도록 하고 싶어 했다. 박문수는 총독 대리인 앙투안 드 보레에게 그 제안을 전달받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앙투안에게는 이를 조정할 권한이 없었다. 총독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다시 받아야만 했다. 박문수가 보기에는 총독이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송환할 대상자들을 의도적으로 은닉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들어둘수록 주벨 프랑스에는 이들이 될 테니까 말이다.
총독의 뜻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던 박문수는 자기 명의로 퀘벡에 보낼 강경한 항의문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문서를 작성하는 중에 라 파르 후작이 전권을 쥐고서 도착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총독에게 항의문을 보낼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 문제에서는 귀측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만 우리 영토 내에서 타국 관헌이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면 차마 우리 국왕 폐하께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귀국 조사관이 단독으로 행동하는 대신 우리 측 조사단과 동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작업에 고의적인 방해가 가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두 사람은 미주총관부에서 선발한 관원 30명을 누벨 프랑스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한인 정착촌들을 순회하면서 노예로 끌려왔으며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확인해서 미주로 도로 데려오는 일을 담당할 일원들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프랑스 측에서는 몽캄 후작이 총사대원들을 거느리고 조사단에 동행하기로 했다. 누구도 조사단에 반항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다.
“자신의 의지로 누벨 프랑스로 건너온 이주자들은 예외로 두시는 게 맞겠지요?”
라 파르 후작의 질문을 받은 박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송환할 피로인은 장길산 패거리가 강제로 잡아간 사람들만 대상으로 합니다. 다른 이들에 관해서는 일단 논하지 않기로 하지요.”
조정의 결론은 분명했다. 관병들의 눈을 피해서 신불랑으로 간 역도들은 무시해도 좋다. 자기 뜻에 반해 끌려간 자들만 도로 데려온다. 박문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원미주의 광대한 토지를 탐내 도명간 자들을 붙잡아 억지로 끌고 온다고 한들 또 도망갈 게 뻔하다. 게다가 자기들을 강제로 미주로 송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놈들이 숨어버린다면 그 광대한 원미주를 기약도 없이 헤매고 다녀야 한다.
생각 같아서야 몽땅 잡아다가 치도곤을 안기고 싶다. 그놈들은 누대에 걸쳐 입은 임금의 은혜를 감히 배반한 역도들이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이미 그쪽에 건너간 월경민들은 묵인한다는 게 조정에서 합의한 방침이었다.
“그렇게 하시겠다니 저희로서는 환영할 일이로군요. 사실 누벨 프랑스 총독부에서 토지를 지급하고 국적까지 부여했는데 그걸 취소하라고 하시면 저희도 난감할 참이었습니다.”
“뭐, 서로 이런저런 사정이 있지 않습니까.”
덧붙이자면 대한 역시 이 문제에서 떳떳하지는 못하다. 지난 40여 년 동안 원미주로 몰래 빠져나가는 월경민들의 존재를 빤히 알면서도 제대로 막지 않았던 건 분명하니 말이다. 미주 땅이 지나치게 광대한 탓에 제대로 경계를 감시하고 월경을 단속하기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주요한 길목에는 보루를 쌓고 수비대를 두었다지만, 모든 길목에 그렇게 군사를 두고 지킬 수는 없었다.
이건 프랑스 쪽도 마찬가지라, 장길산이 누벨 프랑스를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포착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경을 지키는 문제는 서로 탓하지 않는 게 유리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후작께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동안 누벨 프랑스와 미주 사이의 경계는 암묵적으로 존재하기는 했습니다만, 조약으로 그 선을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리가 마련된 김에 그것까지 정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저도, 아니 저희 국왕 폐하께서도 염원하시는 바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이 기회에 그 문제도 확실히 결정하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확실히 경계를 정해야 그 경계를 지킬 방법과 책임에 관해서도 의논할 수 있다. 박문수는 이 문제에 관해서도 상감과 조정으로부터 확실한 지침을 받아왔다. 대한의 강역은 상감께서 정하신 범위를 유지하면 족하다는, 명백한 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