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87
3부 705화(1587화)
11.
흐르는 땀이 이마를 적신다. 인상을 찌푸린 준가르군 지휘관 로브 산쇼노가 잠시 투구를 벗고 수건을 들어 땀을 닦었다.
“제기랄, 정말 덥네. 칭기즈 칸께서 이 더운 나라를 포기하신 이유를 알 만하군.”
인도는 덥다. 정말 덥다. 힌두쿠시 산맥의 고갯길을 넘어 인도로 들어온 지도 몇 달이나 되었지만, 이 더운 기후는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짜증이 났다.
“제가랄, 이 씨부랄 땅에서 뭐 건질 게 있을까?”
준가르는 그동안 참으로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버텨야 했다. 누르하치가 살아있던 시절의 건주부와 연합하여 할하부를 완전히 무너뜨렸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아니, 그 시기야말로 준가르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순간이었다. 그 뒤에 건주부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때만 해도 무난했다. 본래 초원의 패자는 오직 단 하나뿐이었고, 할하부를 쓰러트린 둘이 왕좌를 놓고 싸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끝까지 사이좋게 지내는 게 도리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팽팽했다. ‘옛날 대원 시절에는 사람 취급도 못 받았던’ 여진족 놈들이 많이 컸다고 비웃어줄 여유도 있었다. 어차피 군가르도 그 시절에는 2류 취급을 받았지만 어쨌건 몽골의 일부였다. 하지만 건주는 말 그대로 숲속의 야만인들이었으니 말이다. 양자 간에 유지되던 이런 균형이 깨진 건 명나라가 급작스럽게 붕괴하면서 화북에 공백이 생겨버린 탓이 컸다. 건주가 화북을 통째로 차지하면서 힘의 균형이 일거에 저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버렸다. 후세에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하지만 준가르에도 사정은 있었다. 당시 준가르를 통치하던 홍타이지 에르데니 바투르는 준가르 각 부족을 제압해 내부에서 패권을 확립했다. 서방에 있는 카자흐족도 정벌했다. 심지어 이 와중에 티베트 원정까지 감행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 5세를 옹립한 공으로 ‘홍타이지’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이 세 가지는 당시 준가르로서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대칸 누르하치 밑에서 단결한 건주부에 맞서자면 자기들도 힘을 합쳐야 했고, 카자흐는 서쪽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물자와 인력의 공급원이었으며, 티베트에는 이들의 종교적 중심인 달라이 라마가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야 ‘그때 준가르도 명나라를 쳐서 관중에 들어갔다면 양측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어떤 효과가 생길지 몰라서 그 일을 안 한 게 아니다. 그때는 그래야 할 사정이 있었을 뿐이다. 하여튼 화북 전체를 차지한 건주와의 대결은 확실히 준가르에게 불리했다. 대놓고 건주부 편에 선 조선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서쪽에서 온 러시아와 남쪽의 서나라와의 교역을 늘려 고립을 해소했지만, 국력 차이가 커도 너무 컸다.
방어는 그런대로 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은 힘들었다. 준가르가 나름대로 준비한 회심의 일격도 건주 양국에게는 국경에서의 작은 소란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역대 홍타이지들은 어떻게든 준가르의 우세를 유지하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이는 도리어 건주부의 보복전을 초래했을 뿐이다. 부왕인 체왕 랍탄의 치세에 건주군이 몇 차례에 걸쳐 벌인 대대적인 침공으로 준가르는 치명타를 받았다.
그동안 준가르가 세력으로 유지하던 동방 – 준가르의 시작에서 – 영토가 대거 건주부로 넘어갔다. 중요한 교역로이자 비옥한 농토, 풍요로운 방목지를 잃었으니 준가르의 국력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동부에서 타격을 받으니 서부에도 영향이 왔다. 체왕 랍탄이 건주부와의 싸움에 몰두하는 사이 서부의 카자흐가 다시 발흥했다. 동서 양편에서 영토와 속민을 잃은 준가르에는 이제 전성기의 절반을 밑도는 인구 밖에 남지 않았다.
체왕 랍탄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남은 전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주변 세력을 공격했다. 러시아와 서나라와 티베트에 원조를 청했다. 하지만 딱히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화병이 와서 분사(?死)하고 말았다. 향년 84세였다.
“뭐 그만한 나이면 돌아가실 때가 되기는 했지.”
로브 산쇼노는 벌써 12년 전에 죽은 부왕을 회상하면서도 별다른 고통은 느끼지 않았다.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60을 넘기는 군주가 거의 없건만, 초원에서 84세라니! 그만한 나이면 충분히 장수한 거 아닌가. 그러니 전혀 애통해할 필요가 없다. 물론 부왕의 치세가 연이은 패배로 물들었던 건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절대 부왕이 무능해서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안 된 일을 뭐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런 건 다 부처님의 뜻에 따르는 수밖에 더 있나.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칸.”
측근인 보돈차르가 옆에서 변죽을 올렸다. 카자흐와 싸울 때도 함께 활약했던 용장이다. 그놈의 칸이라는 소리 좀 그만둘 수 없냐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곳 놈들은 개나 소나 서로 칸이라고 부르던데, 전하께서 컨을 칭하시면 좀 어떻습니까. 어차피 홍타이지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칸이라고 하시지요.”
부왕의 후계자인 새 홍타이지는 로부 샨쇼노의 이복형 갈단 체렝이다. 갈단 체렝은 죽은 부왕과 달리 무의미한 보복전을 시도하기보다는 건주군이 오지 않는 서쪽을 중심지로 삼아 국력을 다시 증진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전쟁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니다. 건주 방면은 하서회랑을 따라서 견고한 요새가 이어지는 방위선이 구축되어 있으니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방벽이 없는 카자흐를 상대로는 맹공격을 퍼부었다. 타림분지가 다시 준가르의 영지가 되고 타슈켄트도 탈환했다.
동서를 잇는 교역로의 핵심인 타슈켄트 탈환은 준가르의 위신을 크게 끌어올렸다. 적어도 주변국들로부터 비웃음을 사지 않을 정도로는 회복되었다. 그런데 외부가 안정되자 내부에서 문제가 생겨났다. 건주부가 준가르를 대규모 원정으로 완전히 복속시키려고는 하지 않고 가끔 생각날 때 일부 병력만 동원해서 공격하는 이유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나서였다.
“그놈들, 강남에 있는 송군을 상대하느라 늘 주력은 본국에 남겨두잖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는 남는 군사만 보내는 건데, 우리는 그것도 상대를 못 했느니…..”
“기가 막힌 일이지.”
어찌 보면 건주가 후송을 신경 쓰는 덕분에 준가르가 명맥을 유지하는 셈이다. 이 요행을 뒤늦게 깨닫자 준가르 지도부에서는 당장에 권력 다툼이 시작됐다. 형제간에 피가 흘렀다. 이 싸움에서는 로브 산쇼노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그의 모친은 토르구트 출신이었는데, 토르구트부는 대부분 러시아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힘이 되어줄 세력이 부족했다. 그런 탓에 형과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패주해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준가르에서 이탈한 로부 산쇼노는 싸움을 일삼으며 각지를 전전했다. 좋게 말하면 용병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적질도 서슴지 않았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무리를 키우던 중에 나디르 샤에게 고용됐고, 전장을 전전하다가 인도까지 왔다. 지금 로부 산쇼노 휘하에는 4천 기에 달하는 기병이 있다. 중핵은 처음부터 자신의 뒤를 따르던 준가르인 친병(親兵)들이고 , 여기에 더해서 도중에 새로 끌어들인 키르기스, 카자흐, 하자라, 투르크멘 같은 튀르크계 출신도 상당수다.
비록 대포는 없으나 병사 전원이 사슬갑옷과 검, 활,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탄약과 화살도 넉넉하게 휴대하고 있다. 본래 준가르에서는 화기와 탄약을 모두 직접 생산하는 만큼 이런 식으로 무장하는 건 당연 했다. 여기에 로브 산쇼노가 지휘하는 직속부대는 마갑까지 갖추고 있다. 어설프게 무장한 인도 기병 따위는 상대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아깝습니다. 칸께서 홍타이지가 되셨어야 하는데.”
“다 끝난 일일세.”
로브 산쇼노는 아제 그만하라고 했지만 보돈차르는 계속 칸 타령을 했다. 기왕 새 나라에 왔으니, 확실하게 과거와 연을 끊고 새 칭호로 시작하자는 주장이었다.
“잠깐, 그러니까, 아예 북쪽으로 돌아가지 말자고?”
“그렇습니다, 칸.”
준가르 부대는 델리 약탈에서 큰 몫을 챙기지 못했다. 고용주인 나디르 샤가 명하기를, 시크교도들이 본대 후방을 위협하고 있으니 그쪽을 맡아 경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칫 닳아빠진 동전 한 닢 따로 못 챙기고 북쪽으로 떠날 뻔했다. 다행히 나디르 샤가 이들에게 후위 임무를 맡긴 덕분에 그 손해를 벌충할 길을 찾았다. 로부 산쇼노는 인도에서 가장 풍요롭고 부유한 지방이 벵골이라는 소문을 듣고, 다른 부대 협력 없이 혼자 힘으로 벵골을 약탈해서 그 부를 독차지할 생각이었다.
금은보화를 손에 넣은 뒤에는 당연히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계획에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 제동을 걸고 나선 거다.
“돌아가면 어디로 가시려고요? 그리고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말문이 막혔다. 지금 상황에서 북쪽에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용병, 혹은 산적 두목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곳 인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땅을 빼앗아서 여기 눌러 앉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이 동네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살펴보니, 인도 놈들도 참 답이 없는 놈들입니다. 우리가 손을 대면 그냥 개박살이 나겠는데요.”
보돈차르는 과거의 전례를 들먹였다. 옛날 흉노에게 쫓긴 대월지가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를 정복했었다. 그리고 지금 인도를 지배하는 무굴인들도 본래는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티무르의 후예였다. 둘 다 풍요로운 인도 땅을 정복하여 나라를 세운 거다. 게다가 정복하기도 쉽다. 두 사람 모두 나디르 샤 밑에서 종군하면서 인도인들이 싸우는 솜씨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이미 잘 봤다. 이 정도로 허술한 적이 상대라면 정말이지 힘들여 싸울 필요도 없으리라.
“게다가 인도는 곧 천축이잖습니까.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땅입니다. 티베트보다 한층 더 중요한 의미가 있지요. 전하, 성지를 다시 부처님 손에 돌려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번 유혹은 좀 통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로부 산쇼노가 솔깃해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앞으로 나가있던 정찰병이 달려왔다.
“전방에 적 출현! 보병 2만, 기병 2천!”
결정을 미루도록 도와주려는지, 무굴군의 일단이 또 앞에 나타나서 길을 막았다. 비하르 태수가 이끄는 군대라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로부 산쇼노가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사흘 전 그놈들처럼, 무모하게 우리에게 도전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준다. 좌익과 우익은 날개를 벌려라!”
보돈차르도 전투가 시작되자 잡담은 그만두고 자기 군사들 쪽으로 갔다. 나팔이 울리면서 군사들이 대열을 정비했다. 인도군 병사들도 대열을 갖추고 진격해 왔다.
“이번에도 정말 싸울 게 없기는 없구먼.”
싸움은 압승으로 끝났다. 전원이 기병인 준가르군은 빠른 기동력으로 인도군 기병대부터 격파했다. 숫자가 1/4밖에 안 되는 인도 기병대가 박살 나 쫓겨 가자, 남은 보병들은 그대로 주저앉은 채 준가르 기병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코끼리가 몇 마리 있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준가르군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코끼리를 접했고, 말이 코끼리를 보고 놀라지 않도록 익숙해지는 훈련도 했다. 이 커다란 짐승을 제압하는 방법도 확실히 학습했다.
“상부(象夫)만 죽으면 코끼리는 미쳐 날뛰지.”
준가르군은 코끼리 목에 올라앉아 코끼리를 모는 몰이꾼들을 총과 활로 집중사격했다. 그 결과 상처를 입고 몰이꾼까지 잃은 코끼리들은 고통으로 날뛰었다. 수많은 인도 병사들이 코끼리에게 짓밟혔고 사방이 피바다가 되었다. 싸움이 끝나고 보니 죽거나 다친 인도 병사만 총 1만 명이었다. 기병들은 그래도 도망간 숫자가 꽤 많았지만, 보병들은 대부분 도망치다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앞으로 싸움이 계속 이렇다면 인도에 눌러앉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렇지요? 북쪽에서 증원군이나 좀 더 불러오면 됩니다.”
남쪽에서 손쉽게 새 땅을 얻는다고 하면 힌두쿠시를 넘어 내려올 자들이 줄을 설 거다. 방금 보돈차르가 꼬드겼듯 부처님이 태어난 성지를 밟고 싶어서 올 자들도 있다. 갈단 체렝 쪽에서도 불만분자들이 떠난다면 기꺼이 보내줄 수도 있다.
“샤께서 우리 배반을 눈치채고 돌아오시면 어떡하겠는가?”
“샤는 본래 동쪽보다는 서쪽을 중시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메소포타미아와 오만 원정을 재차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으니,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겁니다. 어차피 인도는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리고 간 땅이었고 말이지요.”
애초에 나디르 샤는 인도 원정을 계획하지도 않았다. 아프간 원정도 페르시아를 정복했던 호타키 왕조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고, 무함마드 샤가 호타키 왕조의 도망자들을 받아주지만 않았어도 굳이 인도까지 건너올 이유가 없었다. 계획에 없던 원정에서 막대한 전리품까지 챙겨서 돌아갔으니 당분간 나디르 샤가 인도에 관심을 가질 일은 없다. 후위로 남겨놓고 간 부대들도 하나같이 페르시아 정규군이 아니라 준가르군 같은 용병이다. 전멸해서 돌아오지 못해도, 아쉽지 않을 놈들로 고른 거다.
“혹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납작 엎드려서 ‘샤께서 안심하실 수 있도록, 인도를 평정하여 샤의 배후를 든든히 하겠습니다!’라고 빌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노골적으로 샤를 적대하지만 않으면, 우리가 여기서 나라를 세운다고 해서 군대를 끌고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나디르 샤는 전쟁에 미쳐 있다. 준가르군이 그 밑에서 따라다닌 전쟁터만 해도 10여 곳이 넘는다. 바그다드 공성전까지 직접 목격하고 돌아왔다.
“오스만이라는 강적과 막 싸우려고 한참 신이 나 있을 텐데, 고작해야 기병 수천 가밖에 없는 우리 따위를 진압하러 그 먼 여정을 되돌아오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안심하시고 대업을 한번 꾸며 보시지요.”
그동안 로브 샨쇼노가 생각하던 것보다 보돈차르는 훨씬 아는 게 많았다. 그 유혹에 반쯤 관심이 쏠린 로브 산쇼노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 한번 시도해 볼까? 이 인도 땅에서, 과연 대월지와 무굴제국의 뒤를 이어 세 번째 북방 출신 왕조를 세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