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88
3부 706화(1588화)
12.
요즘 준가르 방면은 조용하다. 그놈들은 형제간에 권력을 두고 한바탕 내란을 치른 뒤로 힘을 비축하는지 별다른 소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쪽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그 사이를 왕래하는 대사들을 습격하는 사례도 거의 없어졌다.
“대신 자기네 서방에 있는 카자흐를 공격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청나라 황제 홍화제가 생각에 잠겼다. 서쪽 변경이 평화로운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 난폭한 준가르 놈들이 무슨 깃을 꾸미는지는 궁금했다.
“혹시 옛날 흉노라 돌궐처럼 서방으로 뻗어나가려는 의도인가…..”
흉노 이래, 중국 북방에서 성장한 유목민족들이 택한 운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원에 들어와 정착했다가 차츰 한족과 동화되어 소멸하는 것이다. 북방인 특유의 풍속을 멀리하고 한족의 그것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원래의 습속은 희미해지고 강건함도 사라졌다. 다른 하나는 흉노 일부가 보인 선례를 따라 초원 서쪽으로 가는 거다. 도중에 만난 다른 유목민 부족들을 제압하면서 계속 서진하다 보면 유럽에 닿는다. 그리고 이들을 처음 접한 현지인들에게 한동안 공포를 안겨주다가 역시 현지민들과 차츰 동화되어 사라진다.
흉노가 그랬고 돌궐(튀르크)이 그랬다. 몽골 역시 거의 같은 길을 걸었다. 그렇다면 지금 준가르가 비슷한 선택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중앙아시아를 제패하면서 교역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는 것 말이다.
“그건 아닐 듯하옵니다. 그보다 우리에게 뺏긴 땅 대신에 서역의 여러 칸국들을 통합하여 세력을 회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차 복수할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황제의 동생 효친왕 다이진은 다른 의견을 표했다. 다섯 형제 중 다른 셋은 이미 병이나 사고로 모두 사망한 탓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황제의 친혈육이다.
“흉노나 돌궐이야 패배한 뒤에는 가축 말고는 말과 소에 실을 수 있는 잡물들밖에는 남지 않았으니까 훌훌 털고 떠나기도 쉬웠지요. 하지만 준가르 놈들이 이주하려면 농장과 공장, 광산까지 버리고 가야 하는데 그럴 리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기반을 지키려고 기를 쓰지요.”
서쪽으로 가 봐야 준가르가 흉노나 돌궐처럼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점도 자명하다. 이제 시절이 바뀌었다. 준가르가 자랑하는 철기들도 보병들이 늘어선 유럽식 전열을 돌파해 적을 짓밟기는 어려워졌다. 화포와 소총이 비처럼 쏘아대는 탄환에 맞아 굴러떨어질 뿐이다.
기병으로 주변을 노략질해봐야 그저 도적일 뿐이다. 확실히 땅을 얻으려면 야전에서 적을 격파하고 성새를 함락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준가르에서는 공성전에 쓸 수 있을 만큼 크고 강력한 대포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 소형 야포가 고작이다. 청나라로서는 기술적으로 후진국인 준가르를 여유 있게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유지되던 이 기술 우위가 외부의 개입으로 흔들릴 조짐이 보인다는 데 있었다.
“준가르에도 이미 루스인들이 여럿 들어가 있다고 하였지……”
현재 러시아는 이 동방 땅에서 비교적 우호적인 존재로 대우받는다. 심양 회맹에 참가한 세 나라 중 러시아와 대놓고 적대관계인 나라는 하나도 없다. 대한이야 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 황제, 차르가 대한 태황의 부마 아닌가. 물론 러시아를 단순한 부마국으로 취급해서 하대하지는 않고 그럴 수도 없지만, 그 친분은 가볍게 볼 수가 없다. 차르를 건흥제가 직접 제자로 삼아 가르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후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이쪽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한보다도 더 가깝다. 대복진, 즉 황후가 러시아 황후와 친자매다. 두 나라 황태자는 서로 사촌이며,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편지는 꾸준히 교환한다고 들었다. 다음 대에도 그 관계가 가까우리라는 소리다.
“게다가 종교도 같고.”
엄밀히 말하자면 후금이 신봉하는 천주교와 러시아 정교회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종교에 확실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 둘을 불교에서 교종과 선종이 나뉘는 정도라고 이해한다. 즉, 별 차이를 못 느낀다는 도리다. 하지만 청나라는 러시아와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다. 황실에서 피를 섞은 것도 아니고 교역도 안 한다. 종교도 다르다. 아예 국경을 맞대지도 않았다. 두 나라 사이에는 준가르와 후금이 있어서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준가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준가르에 들어간 러시아인들 – 전투나 약탈에서 잡혀 노예가 된 이들도 있고, 자기 발로 들어가 고용된 이들도 있다 – 이 무기 제작 기술 따위를 알려주고 있다. 국경에서는 유럽제 총이 준가르에 밀수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으로 유럽제 총을 든 준가르군이 러시아 변방을 약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도 가끔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러시아 조정에서는 공식적인 교역을 끊는다고 엄포를 놓지만, 워낙 밀수가 많아서 별 의미도 없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근래 들어 준가르는 그 기세가 많이 죽었고, 그 세를 키운다 해도 우리를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준가르는 이미 초원의 지는 해, 폐하의 위엄에는 절대로 해를 리칠 수 없으니 안심하시옵소서.”
확실히 지난 몇 년 동안 준가르가 세력을 회복했다고 하나 그 창끝은 서역으로만 향했다. 앞서 말했듯이 청나라 쪽으로는 밀려오지 않았다.
“심양 회맹이 있지 않사옵니까. 혹시 저들이 루스와 힘을 합쳐 쳐들어온다 해도 연맹하여 맞설 수 있으니 염려 마시옵소서.”
“우리가 남적과 싸울 때도 돕지 않는 한황이 루스와 싸울 때라고 과연 우리를 도와줄지는 모르겠구나.”
박화탁이 비아냥거렸다. 대한이 분명 청나라의 두 번째 우호국이고 – 형제국인 후금보다 가까울 수는 없으니 – 아주 중요한 동맹이자 교역 상대국임은 알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보니 종종 이런 식으로 감정이 드러나곤 했다.
“어쨌든, 준가르가 조용히 있어 주니 남적을 칠 때 부담이 덜한 것은 좋구나. 겨울 출병 계획은 잘 진행 되고 있는가?”
“예, 폐하. 예정대로 군사 8만 명을 동원하여 적을 칠 계획입니다.”
요즘 청송 양국은 방어전에서는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면서도 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사례가 별로 없다. 국경선이 고착되면서 방어진은 점점 두텁고 강력해지는데, 이를 뚫어야 할 공격군의 전력은 크게 향상된 바가 없어서다.
“이번 출병에서는 아직 기관국이 뭔가 결과를 내기는 무리겠지?”
“예, 폐하. 기관국에서도 전력을 다하고는 있으나, 아직은 좀 미흡합니다.”
공부상서 홍진이 다소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였다. 박박 깎은 머리에 쓴 새까만 사모가 그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앞으로 기울어졌다.
13.
굴뚝에서 무럭무럭 연기가 솟았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움직였다. 김을 뿜는 쇠뭉치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자 옆에 덧붙인 목제 바퀴가 함께 돌았다. 일단 허공에서 돌아가느라 뭘 움직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무사히 작동하기는 했다.
“성공이다! 성공이야!”
“드디어 만들었구나!”
터지지 않고 작동하는 증기기관을 처음으로 본 기관국 시험장에서 환호성이 넘쳐흘렀다. 수없이 맨땅에 머리를 부딪쳐 가면서 도전한 끝에 이뤄낸, 3년 만의 성공이었다.
“일단은 터지지 않고 돌아가는 기관을 만드는 데 의의를 둔다! 크기가 너무 작거나 내는 힘에 비해 연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문제 같은 건 신경 쓰지 마라! 일단 만들어 놓고 나서 개량하는 편이 헛된 꿈을 꾸기보다는 낫다.”
일단 작고 가벼운 기관부터 만들지, 아니면 처음부터 크고 강력한 기관에 도전할지는 이 기관국이 문을 연 이래 계속되는 화두였다. 기관국을 담당하는 고관들은 대체로 후자 쪽을 지지했는데, 그래야 후송에 맞설 철갑선을 움직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쟁이 공부상서를 통해서 어전회의에 올라가자, 황제 홍화제는 단박에 전자로 결정을 내렸다. 만드는 기관마다 아예 안 돌아가거나 폭발하는 판에 일단 돌아가는 것부터 만들고 봐야지, 대뜸 철갑선용 기관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말이었다.
“한에서 증기기관을 만들어놓고도 증기선을 만드는 데는 자그마치 백년이 걸렸다. 어찌 그 긴 발걸음을 한달음에 따라잡으려 하느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라!”
덕분에 기관국 장인들은 큰 부담을 덜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세운 목표는 ‘일단 돌아가는 기관을 만들자’였고, 이에 따라 전력을 쏟은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지금 이 기관이었다.
“6시간 동안 가동했는데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건 처음입니다!”
“작년에는 불을 때기 시작한 지 겨우 2시간 만에 터져서 사람이 죽었었는데……”
“그게 바로 독판 대인 아우잖은가!”
몇몇 장인들은 감격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렸다. 이 기관은 아직 정밀하지 못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김이 새고 연료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터지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있는 기술자들은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모두 조상님의 은덕입니다. 오 조상님들이시요, 이 비천한 후손을 돌보시는 그 은총을 다시금 감사드리노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오, 예수불이시요. 예수불께서 베푸신 은총이 있었기에 이 기관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부디 앞으로도 돌보아주소서!”
자기가 믿는 신이나 조상님의 이름을 외며 엎드려 통곡하는 이들도 허다했다. 그 혼란한 현장에서는 기술자들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 관복을 차려입은 관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게, 이게 돌아가다니……”
책임자인 기기국 독판(督辦) 장경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작년에 기관이 터졌을 때 파편에 이마를 맞고 즉사했던 관원이 바로 그의 동생이다 보니 흐르는 눈물을 참기 한결 더 어려운 모양이었다.
“축하하네, 장 독판! 정말 고생이 많았네.”
마침 다른 일로 북경에 찾아왔다가 가동시험을 참관하게 된 병부상서 달복은 기관 제작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자 크게 기뻐했다. 그동안 증기기관 제작에 매진한 장경일 이하 기관국 관원들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천 냥에 달하는 막대한 상금도 내렸다.
“감사합니다, 병부상서 대인. 저보다는 야장들이 고생이 많았지요. 특히 한에서 한공으로 일하다 돌아온 이들의 공이 컸습니다.”
대한에서는 외국인에게 절대 증기기관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공으로 한인들하고 함께 어울려 일하다 보면 증기기관을 볼 기회가 자연스럽게 오곤 했다. 기관국에서는 이렇게 증기기관의 콧등이라도 본 사람은 다 모여 들였다. 증기기관 앞에서 화부 노릇만 했던 이들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기관국에서 만든 독자적인 설계에 이들의 경험과 증언을 반영했다.
“알겠네, 내 꼭 폐하께 아뢰어 큰 상을 내리도록 하지. 그런데 말일세, 그럼 이제 우리도 철갑선을 만들 수 있는 건가? 언제쯤 볼 수 있겠나?’
달복은 흥분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철갑선을 만들어내라는 듯 재촉이 심했다.
“작년에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 놈의 철갑선을 상대하느라 우리 군사들이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아는가? 결국 한에서 가져온 대포 덕분에 놈을 해치우기는 했지만, 그놈을 쳐부술 때까지 임은 피해만 해도 막심하네. 우리도 역시 그만한 철갑선이 필요해.”
청나라에서도 철갑선을 만들고는 있다. 하지만 대한에서 건너온 판옥선을 기반으로 만든 배인지라 후송 철갑선과 맞대결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 선체 크기도, 탑재한 화포 수량도 뒤떨어진다. 그렇다고 후송처럼 인력으로 움직이는 대형 철갑선을 만들 자니 사람이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만한 사람을 먹이고 입히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든다. 차라리 증기기관을 실어서 움직이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덜 든다.
“대인. 폐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한에서도 선박에 기관을 실을 때까지 백 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갓 움직이는 기관을 만든 우리가 어찌 대뜸 철갑선을 만들겠습니까?”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보니 달복도 더 다그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정말로 고생했다는 말을 던지며 뒤로 물러났을 뿐이다.
“본관이야 뭐 그저 소망을 말했을 뿐이니 괘념치 말게나. 그럼 어서 폐하께 표문을 올려 이 기쁜 소식을 전하시게나. 아주 뛸 듯이 기뻐하실 걸세.”
“예, 대인.”
한참 허리를 숙여 굽실거리던 장경일이 고개를 들었을 때, 증기기관은 아직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어딘가에 설치해서 작동할 수 있을 듯했다. 제작에 직접 참여한 기술자들의 보고로는 출력이 너무 낮다고 하는데, 그건 상관없다.
이건 청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제작한 첫 기관이다. 그동안 대한의 독점물이던 증기기관을 청나라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천하에 공표하려면 누구나 직접 볼 수 있게 외부에 전시한 상태로 가동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니까 말이다.
“철갑선이라…..과연 언제쯤 만들 수 있을까.”
황제도 독촉하지 않는데 독촉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장경일 자신도 철갑선을 만들고 싶지만 그만한 큰 배를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을 만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대한이 운용하는 철갑선이 얼마나 강력한 기관을 싣고 다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기관국이 시험한 기관은 기껏해야 소 두 마리 어치 힘 밖에 내지 못한다. 적어도 출력이 그 백배쯤은 되어야 그 안에 군사 5백을 태우고 화포 백 문을 싣고 수전에 나설 수 있으리라.
“수졸 5백 명에 화포 백 문…..그게 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 위에 뜬 성이 아닙니까.”
장경일의 포부를 들은 부하 관원들이 기겁했다. 하지만 장경일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아주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남적이 몰고 온 철갑선도 그 정도는 되지 않았나. 한의 수군에는 그것보다 더 큰 전선이 즐비하다네. 물론 그런 큰 배들은 아직 다들 돛으로 움직이지만.”
양측이 모두 철갑선을 띄워 수전을 벌이면 그 싸움 참 볼만하리라. 아무리 쏴도 부서지지 않고 가라앉지 않는 적을 상대로 서로 신나게 화약과 포탄만 낭비할 테니, 구경거리로는 그 이상 갈 게 없을 거다.
물론 청나라 수군은 대한에서 들여온 화포를 사용해서 적의 철갑을 부술 수 있다. 하지만 후송 역시 하려고만 하면 유럽에서 신형 대포를 구할 수 있다. 과연 그 싸움에서 어느 편이 더 강력한 전선을 갖출 수 있을지는 세월이 지나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