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95
3부 713화(1595화)
5.
홍이가 울릉도에 도착한 게 작년 정월, 양력으로 2월이었으니까 이제 1년하고 9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섬밖에는 전혀 나오지 못했다. 당연히 내 생일 축하연에도 못 참석했다. 한번 나오려고 시도하기는 했다. 작년에 미주로 가는 길에 울릉도에 잠시 기항한 박문수 휘하 토포군에 합류하려고 한 거다. 다행히 박문수가 잘 타일러서 주저앉혔고, 울릉현감이 그 전말을 상세히 써서 올렸다.
이 정도만으로도 조정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유배형에 처해진 죄인은 어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 정해진 유배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윤허를 청하지도 않고 멋대로 귀양지를 떠날 궁리를 했으니, 난리가 안 날 수가 없었다.
“폐하! 울릉도에 있는 죄인 이홍은 그 행동을 조심하라는 폐하의 명을 받았음에도 성품이 방자하여 그 죄를 모르고 멋대로 귀양지를 떠나려 하였습니다. 이는 대역의 죄까지 물을 수 있는 큰 잘못이니 마땅히 엄히 벌하소서!”
사간원에서 가장 먼저 난리가 났다. 청요직이 출세의 필수 코스가 아니게 되자 사간원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신료들의 수는 격감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적다고 해도 그 하나하나는 진짜배기 반골들이 몰렸다. 기세가 날카롭기가 무종이나 장조 시절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황이 시절에 풍문거핵과 불문언근에 폐지되면서 간관들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고는 하나, 무고한 사람을 덮어놓고 잡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먹잇감이 걸려들기만 하면 독수리처럼 잡아 뜯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폐하. 이 일에서는 죄인 이홍을 옹호랄 여지가 없습니다. 귀한 체통을 버리고서 고기잡이 노릇을 하는 것만 해도 용납이 안 될 일인데, 어찌 멋대로 유배지를 벗어나려고 한 죄인을 용서하시겠습니까?”
조정 중신들도 대부분 이쪽 편에 섰다. 나로서는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옹호하는 신하들도 없는 건 아니었다.
“폐하. 옛날 무자호란 시기에 북방에 유배된 죄인들이 스스로 나서서 호적(胡賊)에 맞서 싸우며 죄를 씻은 전례가 있습니다. 장조께서도 그 공을 높이 사서 죄인들의 벌을 물리시고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삼성부 포위전 이야기다. 그때 해서부 군사들에 맞서 성을 지키던 이들이 권율을 비롯한 관군 장수들 외에 ‘정철의 난’으로 귀양을 간 정철, 윤두수 등이었다. 그때 세운 공 덕분에 그 사람들이 죄를 씻고 도성으로 돌아온 건 사실이다. 내 총신인 권훤이나 외척인 민겸제 같은 사람이 이런 소리를 했으면 조정에서 씨알머리도 안 먹혔을 거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집현전 대제학 홍영시였던 덕분에 그나마 어느 정도 주목이라도 받았다.
“죄인 이홍도 국가의 중대사를 맞아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까 싶은 마음에 도적을 잡으러 가겠다고 자원한 게 아니겠습니까? 겨우 벌을 면하려는 얄팍한 마음에 유배지를 벗어나고자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폐하께서는 그 점을 살펴 관대히 처분하소서.”
홍영시는 평소 홍이와 친분이 있다거나 내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나서서 이렇게 말하니 홍이를 벌하자던 신하들도 홍영시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자기들하고 의견이 좀 다른 사람으로 취급했을 뿐이다. 덕분에 내가 기회를 잡았다.
“대제학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니 특별히 이번 한 번만은 죄인 이홍의 잘못을 다로 묻지 않고 넘어 가기로 하겠다.”
“폐하! 아니 되시옵니다!’
“매우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옵니다!”
대간들은 아우성을 쳤다. 조정 중신들은 내 눈치를 봐서 슬쩍 반대하다가 말았지만, 이런 게 자기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간관들은 허술하게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홍이도 상희가 낳은 내 자식 아닌가. 나는 영조가 아니다. 엄연한 내 자식을 뒤주에 가둘 생각도 없고, 죽을 때까지 울릉도에 처박아놓을 생각도 없다. 적당히 반성하는 기미만 보이면 다시 불러들여 언행에 좀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라고 할 생각이었다. 굳이 울릉도로 보낸 건 그 이유도 있었다. 배우라고.
그래서 이 장길산 토벌 자원 건도 간관들의 격렬한 반발을 억누르고 억지로 무마했다. 그 못난 놈도 내 새끼라서. 이놈이 그저 정신을 좀 못 차렸을 뿐이지, 나쁜 의도로 나서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으면서 무마했다. 그 뒤로 정신을 좀 차리기늘 바라며.
여기서 현감에게 내리는 조서와는 별개로 홍이 앞으로도 직접 쓴 편지를 한 통 보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는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고, 부디 행동을 조심하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고 홍이가 제발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면서 썼다.
그런데 이놈이 벌이는 행동은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쓴 편지와 엇갈리다시피 하면서 날아온 울릉현감의 두 번째 표문을 읽은 순간, 정말이지 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토포군 지원을 거부당한 죄인 이홍이 육지에서 인부 50명을 손수 데려와 거처할 집을 짓겠다 하기에 불허하였더니, 그러면 집 없이 살겠다며 모전(毛氈)으로 전막(戰幕)을 짓고 기거하고 있사온데…..」
전막(戰幕)은 몽골식 오두막인 ‘게르’를 말한다. 대한에서는 군용 야전 텐트로 많이 쓰는 탓에 저런 이름으로 표기하게 됐다. 나도 예전에 미주에서 아파치를 토벌하던 때 평원에서 게르를 치고 지냈엇다.
정말로 집이 없어서 천막을 치고 산다면야 뭐라고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분명히 현감이 집을 마련해 줬잖은가. 그런데도 자기 집을 따로 짓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안 된다니까 자기 몫으로 주어진 집을 거부하고 천막을 세웠다. 이건 현감의 권위를 X으로 본다는 소리였다.
울릉도에서 올라온 이 표문을 보고 내가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었겠는가. 정말로 이놈의 자식을 내 손으로 두들겨 패겠다고 찾아갈 수도 없고, 불러올릴 수도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신하들도 난리가 났다.
“폐하! 이런 무도한 짓을 용서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죄인 이홍이 포경선을 타는 건 황실의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오나 이미 폐서인이 되었고, 울릉도 선비들의 습속을 따르는 일이니 덮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셔서는 안 됩니다! 관장의 지시를 무시함은 폐하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일이옵니다!’
홍이의 토포군 지원 때보다 더 큰 소동이 조정을 뒤흔들었다. 토포군 지원 때는 홍이한테 호의적인 발언을 했던 대제학 홍영시조차 이번에는 홍이를 편들어주지 못했다. 이 분위기를 나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울릉현감에게 명한다. 군사를 동원하여 죄인 이홍이 지음 전막을 철거하고 그 구조물은 모두 소각하라. 혹시 죄인이 반항한다면 결박하여 투옥해도 좋다.”
그러고 보니 울릉도 관아에 감옥이 있었던가. 울릉도에는 처벌할 죄인이라는 것이 없다. 울릉도는 대한 향약의 중심이고 – 이쪽 세계 조선에서 처음 향약이 나타난 곳이 울릉도다 – 주민 자치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범죄 자체도 거의 없고, 혹시 있더라도 주민들 선에서 모조리 처리가 끝난다. 육지에서는 향약이 이만큼 강하지는 못하다. 사법권 같은 건 해당이 없고, 도덕적 질서의 보급과 상수상조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는 게 보통이다. 오직 울릉도에서만 법무부 판관이 아닌 향회(鄕會)에서 주민들이 범죄를 삼판한다. 웬만한 죄인은 몽둥이찜으로 판결이 난다.
죄인을 가두는 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게다가 울릉도에서 죄를 짓는 자들 대부분은 배를 타고 들어온 외지인이고, 이런 자들은 오래 붙잡아둘 수가 없다. 그러니 빨리 혼을 낸 뒤에 내보내 버려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감옥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은 뒤에 다시 울릉도에서 표문이 올라왔다. 어처구니없는 그 전막은 어명에 따라서 파기했고, 홍이는 순순히 명에 따랐으며, 여전히 고래를 잡으러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한 단계 급이 올랐다. 분명 처음 보고에서는 노잡이로 승선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창던지는 연습을 했는지 어느새 창잡이가 되어 고래한테 직접 창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폐서인이 되었다지만 친왕이, 내 아들이 그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니!
처음에 고래잡이배를 타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일시적인 반항이라고 저러다가 말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경선에 올라 중선을 타고 직접 창질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했다. 녀석이 고래에 던지는 창끝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듯했다. 상황이 이러니 홍이 생각함 하면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벼락이 떨어졌다 한다. 벌을 거두고 다시 불러오고 싶어도 이놈이 뭔가 자중하고 회개하는 티를 내야 데려오든지 말든지 하지, 자기 멋대로 배를 타고 고래나 잡으러 다니는데 어떻게 불러오나.
평소에는 어떻게든 잊고 살지만, 누가 홍이 이름만 대면 가슴에 칼바람이 분다. 이번에도 영이가 홍이를 용서해달라고 청한 일 때문에 가슴이 무너질 것처럼 쓰리다. 끝없이 나오는 한숨을 보면서 내가 불쾌한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호찬은 그저 허허거리고 웃는다.
“어찌 요즘 이리 발걸음이 뜸하십니까, 폐하. 혹시 홍 귀비께서 폐하의 건강을 염려하시어 바깥출입을 삼가시라고 권하기라도 하시는지요? 요즘 기력이 많이 쉬하지 않으셨습니까.”
군무를 아직 내가 관장한다지만, 만사를 꼼꼼하게 챙기는 건 아니다. 우참정대신 권훤이 대부분의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내게는 결재서류만 올라오는 정도다. 그렇다 보니 바깥으로 놀러 나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가도 상관없다. 힘들어서 못나갈 뿐이지. 성묘도 상희의 무덤에 가는 것만 빼면 대부분 영이에게 대신 가라고 하고 있을 지경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오늘 나온 나들이도 멀리 나가는 대신 정호찬의 집에 왔다. 내 마음속 고민을 편하게 하소연하기에는 역시 여기만 한 곳이 없다.
“아무려면 귀비가 지아비의 바깥일을 못 하게 할 사람이던가. 기력이 쇠한 건 그저 짐이 일을 놓은 탓일세. 본래 사람은 일을 놓으면 갑자기 확 늙지 않던가.”
대리청정을 명하여 대부분의 나랏일을 영이에게 넘기고 난 올해 봄부터 몸이 여기저기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아예 거동도 할 수 없는 지경이야 아니지만, 팔다리가 무겁고 오래 걷기 힘들다. 오죽하면 늘 걸어 다니던 궐내에서 가마를 타고 다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이 문제로 상희와 한바탕 논쟁을 벌였던 생각이 난다. 나는 ‘일을 그만두면 늙는다’라고 주장했고, 상희는 ‘늙었으니 일을 놓아야 하는 거다’라고 반박했다. 그 논쟁이 누가 은퇴할 때 벌어졌었더라…..최석정이었던가.
신하들 앞에서는 내 입으로 ‘이제 힘들어서 임금 노릇 못 하겠다’라고 하긴 했지만, 정말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적어도 경기도 일원을 유람하며 사냥과 관광을 즐길 정도 기력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냥은커녕 이런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줄 알았나.
대리청정을 명하기 전만 해도 대궐 안에서 걸어서 돌아다니는 정도는 무리가 안 됐던 걸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상태가 안 좋아진 건 늦가을로 접어든 날씨 탓도 있지만, 역시 일을 거의 내려놨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호찬은 그런 내 견해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폐하. 신은 사직한 지 이제 18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나귀를 타고 낚시를 나가며, 약주를 즐기면서 유유자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이 여태 하던 일을 그만둔다고 하여 꼭 늙는다고 하겠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정호찬이 70세가 되자마자 사직 상소를 던지고 벼슬을 그만둔 게 벌써 18년 전 아닌가. 그런 주제에 여전히 눈도 어두워지지 않고 귀도 밝은 채로 멀쩡히 지내고 있다. 그 앞에서 ‘일을 그만두면 늙는다’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리가 있는가.
“정 대총관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군. 홍이 이야기나 계속하세.”
“예, 폐하.”
정호찬은 여전히 눈도 깜짝하지 않고 내게 응수했다. 이사벨라가 갖다 준 생강차로 잠시 목을 축이며 기분을 풀고, 영이와의 식사 때문에 새삼 떠오른 홍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놈의 자식을 생각만 하면 울릉도로 달려가서 손수 매질이라도 하고 싶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속이 탈 뿐이네.”
“그럼 불러오시면 되잖습니까.”
정호찬은 쉽게도 대답했다. 내가 도리어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일단 불러들이십시오. 관장의 말도 듣지 않으니 귀양을 보내는 의미가 없으니 도성으로 도로 불러들인다고 조서를 내리시고, 일단 불러온 뒤에 가두든 매를 치시든 하면 됩니다.”
“정 대총관, 나는 그 아이가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뒤에 당당하게 데려오고 싶네. 발작하는 개새기를 묶어서 끌고 오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일세.”
홍이 사람 좀 되라고 보낸 울릉도다. 그 인성 개조 계획이 실패해서, 여전히 엉망진창인 채로 도로 데려오는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흉을 보겠는가. 임금이라고 해도 자식 앞에서는 아무 힘도 못 쓴다고.
“예, 그렇습니다. 자식 앞에서는 아무 힘도 못 쓰는 게 맞습니다. 폐하께서도 사람이시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정호찬도 느긋하게 생강차가 든 찻잔을 기울였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정호찬이 나를 대접할 때는 늘 차를 낸가.
“생각해보십시오, 폐하. 폐하께서 소싯적에 도성을 풍비박산 내면서 돌아다니실 때, 그때 두 분 선황께서 폐하께 무슨 벌을 내리셨습니까? 태황태후께서는요?”
“…..아무 벌도 아니 내리셨지.”
내 이야기, 아니 성친왕 이야기를 꺼내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이놈의 자식이 얼마나 독한 말썽꾸러기였는지를 수십 년간 들어서 나도 잘 아니까. 확실히 성친왕은 제대로 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모후가 싸고돈 탓이라고 해도 부황이나 형황이 마음만 먹었으면 한 번쯤 종아리가 해지도록 회초리질을 해주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텐데, 단 한 번도 매를 맞지 않았다. 아주 약하게 꾸중을 들었을 뿐이다.
결국 참다못한 형황이 나를 견서사로 유럽에 던져버리긴 했지만….결과적으로는 그게 내게 복으로 돌아온 셈이니 괜찮다. 국내에서 천적꾸러기 미친놈으로 지내다가 각성한 것보다는 유럽에서 눈을 뜬 게 훨씬 나으니까. 어쨌든 정호찬이 건넨 조언의 요지는 명확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고 임금도 부모니,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홍이를 도성으로 불러오라는 소리였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신도 이제는 슬슬 구순(九旬)에 가깝사옵니다. 그렇다 보니 먼저 보낸 후손들이 여럿이지요.”
정호찬의 다섯 아들과 두 딸 – 아들 셋은 본처 소생, 나머지는 이사벨라 소생이다 – 중 아직 살아있는 자녀는 아들 둘과 딸 하나뿐이다. 손자녀들도 절반은 명을 달리했다. 노환에 병이나 사고로 죽기도 하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전쟁에서 전사한 자식과 손자들도 있다.
본인이 무관 출신이라 전장에서 죽는 사람을 많이 봐서 그런지, 정호찬은 자기 자손들이 죽을 때도 남들 앞에서 흐느끼거나 통곡하지는 않았다. 그저 ‘인명은 재천’이라면서 담담한 태도로 내 위로를 받곤 했다.
“상대가 혈육이라고 해도, 화해하려면 살아있을 때 해야 합니다. 괜히 머뭇거리다가 어느 한쪽이 죽어버리면 만사 끝이지요. 폐하께서도 그 점을 생각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정호찬의 이 말은 심각하게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는 내 건강과 언제 사고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고래잡이에 나선 옹이를 생각하면…….어느 한쪽이 갑자기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짐이 옹이를 불러들였는데 녀석이 바로 안 돌아오고 울릉도에 눌러앉아 고래나 잡는다고 뻗대면 어쩌면 좋겠는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정호찬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럼 속이 분리 때까지 거기 있다가 오라고 하십시오. 뭔가 깨달은 게 있으니 울릉도에 머무른다고 답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가…….”
고민됐다. 영이도 부탁했는데 불러들일까 하는 마음과 내 위신이 깎이고 조정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일을 하기 싫다는 오기가 서로 충돌했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겨우 내 결심을 입 밖에 냈다.
“어차피 곧 겨울이라 이미 뱃길이 끊기지 않았는가. 봄이 될 대까지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네.”
“그러시옵소서.”
일단 봄이 올 때까지만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부디 그동안 울릉현감에게서 좋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다. 표문에 홍이가 개심했다고 달랑 한 줄만 적혀 있어도 선뜻 유배를 취소하고 도성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