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99
3부 717화(1599화)
13.
도성에서 개선식이 열릴 거라는 말을 토포군 군사들 사이에도 돌았다. 하지만 이들 중에 누구도 예전에 개선식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정확하게 어떤 행사인지 아무도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저런 출처에서 들은 풍월은 있었다.
“거, 말 타고 뽐내면서 도성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라던데?”
“우리 오지이상의 오지이상의 오지이상이 장조 폐하 때 니혼에 원정을 다녀와서 개선식을 했는데, 적의 머리통을 잘라다가 말에다 매달고 행진했다고 했어.”
“아이고, 우리는 미주에서 수급 하나도 안 잘라 오고 전부 땅에 묻어 버렸잖아. 그럼 뭐를 들고 행진하지? 근데 오지이상이 뭔가? 무슨 밥상 같은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불꽃이 튀었다. 증오와 분노를 담은 혐오감이 서로의 사이를 오갔다.
“남의 조상을 밥상이라고 하는 데 놈의 그 멍청한 머리통을 도적놈들의 머리통 대신 말에 달고 행진하면 어떨까?’
“이 건방진 왜놈의 새끼가! 칼을 뽑아라! 결투다!”
“어디 이 호로자식 놈 주제에……”
친위기병대 소속 오도리 병사와 우포청 소속 왜인여진 병사가 서로를 노려보며 허리에 찬 칼을 뽑으려는 참이었다. 날벼락 같은 호통이 그 위에 떨어졌다.
“야 이 개쌍누모 자식들아! 개선식이 내일인데, 행진 연습하다 말고 무슨 지랄이냐! 당장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지 못할까!”
느닷없이 뒤에서 나타난 김춘호가 고함을 쳤다. 주변을 둘러싸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다른 군사들은 어마뜨거라 하고 줄행랑을 쳤다. 당장이라도 정말로 칼을 뽑을 듯하던 병사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쯧쯧. 힘이 남아도나.”
“도망치는 놈들의 꽁무니를 보면서 혀를 차던 김춘호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본래 선전관이었지만, 내일 열리는 개선식이 다 끝날 때까지는 토포군 소속으로서 함께 움직이게 되어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 자질구레한 소동까지 맡아 정리하게 됐다.
“에잉, 얼른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
김춘호는 장길산을 추포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랑국과의 협상에서 사자로 오가면서 세운 공이 크다고 하여 승진과 훈장, 포상이 예정되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마께서 약속하셨고 폐하께서 인정하신 상이다.
이번에 장길산을 잡고 나서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을 때,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본국에 건너가 ‘바다 건너 큰아버지’를 바로 옆에서 모시는 그에게 정말 열광적인 환영을 해주었다. 이제 더 큰 상을 받고 할아버지보다 높은 품계를 받아 돌아가면 얼마나 큰 자랑이 되겠나.
이게 잘 되려면 이번 개선식 임무를 잘 마쳐야 한다. 김춘호는 계속 연습장 주변을 말을 타고 돌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군사들이나 아까 그놈들처럼 다툼을 벌이는 군사들을 L잡아 연습장으로 돌려보냈다. 본성이 원체 거친 ‘말 탄 늑대들’이라, 얌전히 따르지를 않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돌리던 김춘호의 눈길이 뚱땅거리는 망치질 소리가 나는 뒤쪽을 향했다. 저 수레는 이제 제작한 지 이틀째인데 제법 모양을 갖춰 가고 있었다. 개선식에서 사용할 거라던데,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듯했다.
14.
개선식 준비는 아랫것들이 맡아서 할 일이다. 윗사람은 그런 것보다 중요한 다른 볼일을 해결해야 한다. 박문수 본인에게 직접 들어야 할 현지 사정에 대한 보고를 개선식이 끝날 때까지 미뤄둘 수는 없었다.
“고령위는 그저 말을 타고 앞서서 걷기만 하면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말지어다.”
“예, 폐하.”
개선식은 경희궁 앞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걸쳐 수레 여덟 대가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는 넓이로 만들어 놓은 태평로를 따라 이루어진다. 경로가 이리 단순하니만큼 딱히 지휘할 것도 없다. 군사들이야 열 맞춰 걷는 연습이라도 좀 해야 하지만, 주장은 그것도 필요 없다.
이 넓은 대로를 정비한 뒤에 여기서 개선식을 여는 건 처음이다 보니 기대가 무척 크다. 내가 만들라고 명한 소품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되고,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이번에 미주를 직접 살피고 온 박문수의 보고 쪽에 집중해야지.
“이번 토벌로 미주 백성들이 폐하께 품는 충성심이 더 깊어졌사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본국에 계시는 폐하께서 전력을 다해 지켜주시리라는 기대가 무성하니, 실로 좋은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주에 있는 백성들도 다 내 자녀들이다. 내 어찌 소홀히 대하겠는가.”
박문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지 사정은 그동안 미주총관부가 미사여구로 수식해 가면서 주장하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장길산이 도적질을 시작한 지는 거의 15년, 그놈이 미주를 뒤흔드는 흉악한 도적이 된 지만도 근 10년이다. 그동안 관청에서는 그놈을 잡지 못했다. 본국에서야 설마 그럴 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현지에서는 안 통한다. 참다못해서 고발해 봐야 관병은 오지 않고 세월만 보내기 일쑤다.
그러던 참에 본국에서 보낸 토포군이 상황을 바꿔버렸다. 숫자는 겨우 2천이라지만 적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뒀다. 징발한 미주 군사들도 함께 움직이니 실로 수만 대군이었다.
“소문이 와전되었는지, 그 수만 군사가 전부 본국에서 도적을 잡으러 건너온 군사인 줄로 아는 이들도 다수 있었사옵니다. 그만큼 폐하의 은덕에 감사를 표하는 백성들이 많았으니, 이번 토벌은 참으로 보람이 있는 출정이었사옵니다.”
박문수가 말했듯이, 바다 건너 본국에서 장길산을 잡겠다고 대군을 파견하면서 그동안 이 문제로 쌓인 미주 백성들의 불만과 서러움은 싹 날아가 버렸다. 10년이나 묵은 골칫거리를 좀 늦기는 했으나 확실하게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폐하께서는 미주를 잊지 않으셨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복하는 백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사옵니다. 미주 백성들은 폐하께서 한때 미주에서 머무르시고, 미주에서 태자까지 얻으시며 인연을 맺으신 일을 아주 자랑스러운 인연으로 여기고 있사옵니다.”
“그것도 다 하늘이 내린 복이다.”
런던에 머무를 때였던가. 형황한테 미주에 건너가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설마 그게 이런 나비효과로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이삿짐 싸기가 귀찮고 본국에 가지도 못하니 그저 나라 밖에서 귀신이 되겠구나 싶었었는데. 세상만사는 역시 새옹지마다.
“태손. 미주 백성들의 이런 충성을 붙들어놓기 위해서도 장차 네 아들은 보위를 물려받기 전에 미주에 한번쯤 다녀와야 하느니라. 짐도 사정만 허락했으면 너를 꼭 미주에 보냈을 것이다…. 사정이…..”
은이 생각이 나자 갑자기 목이 막히면서 혀가 굳어졌다. 눈가가 축축해지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듯했다. 울음을 참느라 억지로 눈을 감았다. 영이가 눈치 있게 얼른 받았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할바마마. 소손은 비록 직접 가지 못하였으나 지선성에 있는 아비의 가묘(假墓)를 정성껏 돌보게 하겠고, 제 자손에게는 꼭 한 번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은이의 옷가지를 묻은 가묘는 지선성 동쪽, 본토 쪽 산기슭에 있다. 지선성에서 태어난 세 아이의 태실이 있는 바로 옆이다. 관리는 능참봉으로 임명받은 양소목이 맡았다. 여섯 개나 있는 별궁은 다르게 보면 그저 빈집일 뿐이다. 허나 이 무덤은 대한 황실에서 미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내는 가장 큰 상징이다. 비록 몸은 본국에 묻었을망정, 마음 한 부분은 미주에 있음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이 어디 있겠는가.
영이에게 미주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느라 잠시 멈췄던 보고는 곧 다시 이어졌다. 이제 프랑스와의 경계선 획정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정계 협상은 폐하께서 내리신 분부에 따라 저들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만한 조건을 갖추어 진행했습니다. 다만 북방의 빙해까지 닿는 지방의 모든 지도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관계로, 추후 긴 세월을 들여 감계(勘界)를 진행해야 하리라 사료되옵니다.”
“지당한 일이다. 아직 가보지도 못한 땅에다 선을 그어 국경을 정했으니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 땅인지 누가 알겠느냐.”
원래 역사에서 유명한 사례 있잖은가. 백두산정계비. 대충 그은 선 때문에 수백 년 뒤에 난리가 난. 본래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는 압록강과 두만강이었다. 그런데 그때 청나라 대표인 목극등(穆克登)은 기껏 백두산 천지까지 올라가서 주변 지형을 살펴 놓고는 엉뚱한 하천을 ‘저게 두만강의 원류다!’라고 지목해 버렸다. 그리고 오류를 수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국경선을 표시하는 시설을 설치하던 조 선인들은 목극등이 지목한 하천이 두만강의 상류가 아니라 송화강의 상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냥 적당히 묻어버렸다. 이는 조선 말기에 양국이 이 지역에 주목하면서 국경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원인이 된다.
이쪽 세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부황 시절에 러시아랑 레나강을 경계로 변계조약을 체결했을 때의 일이다. 과연 레나강의 정확히 아디로 흘러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레나강이 흘러가는 유로가 확실하게 밝혀진 건 조약이 맺어지고 30년쯤 지난 되였다고 기억한다.
“이번에는 더하다. 강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강을 징검다리 뜀뛰듯 이어가며 선을 그어야 하니…..양쪽에서 보낸 감계사가 꼭 함께 움직이며 제대로 살펴 감계해야 한다.”
나도 로키산맥이 어디로 뻗는지 대충 알 뿐이다. 정확한 지도 따위는 만들어진 적 없으니 국경을 확정하려면 현지에서 실사해야 한다. 그렇게 경계를 정하다 보면 아마 이번에 내가 생각한 선에서 어느 정도 변동은 있겠지 싶다. 어쩌면 우리 몫인 땅이 좀 줄어들지도.
“큰 상관있겠사옵니까? 어차피 우리는 미주대령 동쪽으로는 나가지 않을 것이고, 조약에 따르자면 이번에 얻은 땅에는 성채나 상관을 설치할 수도 없사옵니다. 우리가 이용할 수도 없는 땅이라면 굳이 한 조각 더 얻는다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사옵니다.”
“재무가 하는 말이 맞는다. 그 점에서는 공연히 고민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한테 로키산맥 동쪽에 아무 시설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한 건, 혹시 우리가 그쪽에다 근대를 모아 누벨 프랑스를 침공이라도 할까 봐 그랬으리라. 거참,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쾌재를 부를 건 영국뿐이잖은가.
하지만 내 다음 임금 중에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니, 이런 식의 제약이 있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긴 하겠다. 내가 영원불멸한 존재도 아니고, 매번 몇 십 년 정도 간격은 두고 각성하니 말이다.
“장가 놈에게 잡혀간 우리 백성들의 송환은 어찌 되었는가?”
“신이 돌아올 때까지 조사가 진해오디는 중이었사옵니다.”
장길산 일당에서 붙잡힌 놈들의 진술과 그놈들과 거래한 노예 밀수꾼들이 진술 – 이놈들 잡는 데는 프랑스 측의 노력이 좀 컸다 – 을 종합해 보면 누벨 프랑스로 팔려 간 우리 백성 숫자는 대력 2천 명이 맞는듯했다. 처음 잡힌 밀수꾼 놈의 진술이 의외로 정확했다. 장길산 일당이 잡아간 우리 백성의 전체 숫자는 그보다 몇 배나 되지만, 노예로 팔려 간 이들은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한인과 일인뿐이다. 그래서 팔려 간 숫자는 생각보다 적다.
“다만 신이 귀환할 때까지 그 소재가 확인된 이는 7백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사옵니다. 그중에 귀환을 희망하는 이는 더 적어서 2백 명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돌아오지 않겠다는 이들은 대개 신착민(新着民)이었다. 본국에서 미주에 막 건너간, 아직 땅을 분배받지도 못하고 선착민들의 농장에서 노비 취급을 당하면서 몇 년씩 노역해야 하는 그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몇 년씩 고생해야 관아에서 토지를 받는다. 하지만 누벨 프랑스 총독부는 이들이 프랑스에 귀화한다면 당장 각자에게 농지 20에이커를, 천주교로 개종까지 하면 40에이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토지에 목이 마른 상태인 신착민들이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끌려간 곳에서 맞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식도 낳고 그럭저럭 적응하고 나니 굳이 돌아올 생각들이 안 나는 거다. 그러니 안 돌아오겠다는 이들이 많다.
“환장할 일이로구나. 모두 짐이 부덕한 탓이다. 짐이 도적을 일찌감치 퇴치하여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였으면 어찌 저들이 끌려갔을 것이며, 태평상대를 이루었으면 어찌 저들이 본래 살던 땅을 그리워하여 돌아오지 않았겠느냐.”
내가 탄식하자 편전에서 난리가 났다. 그야 당연히 이 사태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감히 그동안 임금에게 입은 누대의 은혜를 잊고 눈앞의 재물에 회가 동한 못된 백성들 탓이라고 나를 위로하는 신하들 때문이다.
“그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폐하께서 품어 다스릴 가치도 없사옵니다! 그저 오랑캐 땅에서 오랑캐로 살기에 어울리는 자들이니, 이참에 내다버리고 돌아보지 마소서.”
권훤은 한층 더 과격했다. 아마도 예전에 미주에 있을 때 권훤이 맡았던 직책 중 하나가 신착민호감관(新着民護監官)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선착민(先着民)인 지주들한테 학대받는 신착민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신착민들이 고생이 심다하는 건 안다. 하지만 이 나라 백성이라면 그 고생을 참고 견디며 임금께서 살펴주시기를 기다려야지, 그 고생이 싫다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겠다는 건 반역을 도모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권훤의 주장은 그랬다.
“돌아온 피로인들에게나 은상을 내려 위로하시고, 추후 신착민들의 처우를 좀 더 개선할 수 있도록 하소서. 그것이 미주 인심을 다스리는 데는 더 좋을 것이옵니다.”
“우상의 말이 옳은 듯하다.”
미주에 있을 때 권훤은 원미주 원정을 나가고 싶어 못 견디는 애송이였다. 신착민호감관 일도 사실 원미주 원정에서 관심을 돌리려고 시킨거였고. 만약에 권훤이 그때하고 똑같은 태도를 유지했다면 이번 원정을 좋은 기회로 삼아 그동안 벼르던 원미주 원정을 결행하자는 주장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40년 세월은 권훤에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옛날처럼 전공 욕심에 찬 성급한 청년은 이제 없다.
프랑스 측과는 이렇게 대충 마무리가 됐다. 스페인 측은 국경 문제는 예전에 내가 체결한 협정을 준수하면 되기에 괜찮은데, 다른 문제가 있었다. 장길산 패거리가 누에바 에스파냐 북부 일대를 누비면서 입힌 인적ㆍ물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받았다.
“얼마나 달라고 하던가?”
“신이 귀국하는 시점에, 그 액수가 10만 에스쿠도까지 내려갔사옵니다.”
처음에는 그 두 배를 불렀다고 했다. 20만 에스쿠도면 은 25만 냥을 조금 넘는다. 10만 에스쿠도면 그 절반, 그거, 장길산이 내 은광 하나에서 털어간 은만 해도 그거보다 많은 걸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많은 돈은 아니긴 하다.
“장가 놈의 소굴에서 회수한 재물은 얼마나 되는가?”
“아직 다 발굴하지 못하였으나, 놈이 이곳저곳에 비장해 놓은 재물 중 발견한 것만 10만 냥은 되었사옵니다.”
“그럼, 거기서 절반만 잘라서 보내주면 되겠다. 미주총관부에 그리 명하라.”
압수한 재물이 전부 은은 아니다. 이런저런 현물도 많다. 처음부터 약탈품이었던 물건도 있고, 빼앗은 은으로 사들인 술이나 고급 의류 따위 사치품도 잔뜩이었다. 게다가 노략질한 재물을 총이나 화약, 말 따위를 사는 데 쓴 탓에 놈의 수중에 남은 금은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 찾지도 못했다. 두목의 지시를 받고 재물을 숨긴 실무자들이 이번 토벌 와중에 죽거나 없어져 버린 자들이 숱한 탓이다. 그러면 그놈이 숨긴 물건은 그래도 사라진 거다.
“어쩌면 장래에 미주 각지에 장길산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찾으러 다니는 놈들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대한판 보물섬 이야기 나오겠군. 왠지 쓴웃음이 나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정리할 것을 정리하며 이틀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장엄하게 준비한 개선식이 열리는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