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00
3부 718화(1600화)
15.
도성에서 개선식을 여는 건 무종때부터였다. 그게 무종 4년이었던가. 박원종을 순변사로 삼아서 수시로 강을 건너와서 우리 평안도 지역을 습격하는 압록강 너머 여진족 부락들을 토벌하게 했는데, 그 원정이 성공했다고 첫 개선식을 열었었다. 그 원정에 내가 보 낸 병력은 중앙군인 총통영과 평안도 군사를 합쳐 겨우 2천 명이었다. 기록을 살펴 확인하니 그때 거둔 전과는 가옥 소각 2백여 호, 적 사살 267명, 포로 279명, 노획한 우마 118두, 구출한 포로 88명이며 아군 손해는 전사자 2명, 부상자 26명이었다.
그 뒤에 치름 숱한 전쟁에 비하면…..참으로 소박한 싸움인 셈이다. 하지만 전쟁 규모만 볼 게 아니다. 조선이 본격적으로 대외로 팽창을 시작한 첫 발걸음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었지. 전쟁의 결과를 전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인 도성 백성들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물론 전례가 없는 행사였으니만큼 반발도 있었다. 조정에서는 ‘평안도 군사들이 고향에서 도성까지 왕복하는 비용에 포로와 가축을 끌고 오는 비용까지 막대한 경비가 들고, 군자가 덕이 아닌 무위를 과시함은 옳지 않다’라는 명분으로 반대가 거셌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벌인 개선식은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도성 백성들이 우리 군대의 위용을 실감하고 승전이 가져오는 결과를 직접 목격했으니 말이다. 그때 이후고 개선식이 정확히 몇 번 더 열렸는지는 지금 모르겠다. 세 번에 걸친 왕생을 거치며 내가 한 것도 많았지만, 그 중간에 재위한 다른 임금들이 아예 개선식을 한 번도 안 한 건 또 아니라서 말이다. 확인이 필요하다.
개선식은 우리 대한의 적을 물리친 기념으로 하는 것이다. 그 적은 일본이나 스페인처럼 외부의 적일 수도 있고, 양응룡처럼 ‘우방의 적’ 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에 친 장길산처럼 내부의 적일 수도 있다. 예외적인 사례가 있기는 하다. 옛날 장조 때 탐동사(探東使)로 처음 미주에 갔다 돌아온 정문부와 김완이 적과 싸워 전공을 거둔 게 아님에도 개선식을 열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새 땅과 새 백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것도 일종의 승리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번 개선식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솔직히 지금 민심은 3년에 걸친 흉년 때문에 별로 좋은 편은 못된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개선식은 백성들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다른 데로 돌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뒷배경이야 어쨌건, 이번 개선식은 계미남변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 여는 개선식이다. 개선식이 열린다는 자체로 즐거워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행사라는 이야기다.
“날씨가 좋구나.”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폐하.”
대전내관이 굽실거리며 내 비위를 마췄다. 그저께 소환 한 명에게 안하던 욕지거리를 좀 했더니 내관들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예전보다 한층 더 내 눈치를 살핀다. 내게 욕을 먹은 그 소환 놈은 그새 어디 다른 부서로 갔는지 대전에서는 안 보인다. 음, 이렇게까지 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정신 차리고 제대로 근무하라는 생각이었지.
“할바마마, 밤새 평안하시었습니까.”
“오냐.”
광화문 문루 밑에서 기다리던 영이와 대소 신료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무종 대 첫 개선식 이래 임금이 착석하는 자리는 광화문 문루 위가 되었으니, 그에 따라 인사를 받으며 위로 올라갔다. 영이가 내 옆에 섰다.
“시간이 되었는가?”
“예, 폐하. 지금쯤 경희궁 앞에서 출발하였을 것이옵니다.”
도승선 박몽린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경희궁 앞 광장은 처음부터 이런 대규모 행사에 사용하려고 지은 시설이다. 드디어 애초 건립 목적대로 사용하는 셈이다. 행렬이 도착할 때까지는 여기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내관들이 내 주변에 열심히 화로를 갖다 쌓았다.
16.
“출발하라!”
박문수가 지시를 내리자 기패관이 깃발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군사들이 일제히 배운 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겨우 이틀 동안 벼락치기로 연습한지라, 발걸음이 별로 잘 맞지는 않았다. 그래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선두에는 깃발을 든 기수들과 함께 박문수가 섰다. 부사 홍진오도 옆에 섰다. 그 뒤로는 각 부대에 속하는 군사들이 순서대로 늘어섰다.
“부사,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고생은요. 전부 필요한 일인진대 어려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박문수가 산더미 같은 보고서를 들고 대궐에 들어가 상감과 대신들을 상대하는 동안, 그 대신 군사들을 인솔해서 오늘 열릴 개선식을 준비한 사람은 홍진오였다. 그 준비에는 행진 연습은 물론이고 복장 정비도 포함됐다.
지금 군사들이 입은 강철제 갑옷과 투구, 전복의 금속제 단추들은 모두 윤이 나게 닦여서 눈부신 광체를 발했다. 배를 타고 있을 때부터 선창에서 꺼내 손질하게 한 보람이 있었다.
“갑주는 정작 싸울 대는 입지도 않았는데, 개선식에서 입게 되었습니다.”
‘위세 있게 보이는 데는 갑옷이 낫지 않겠소.”
날씨가 쌀쌀한 덕분에 갑옷을 입었다고 덥지 않아서 다행이다. 박문수는 속으로 안도하면 앞으로 쭉 뻗은 태평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서 광화문까지 쭉 행진하기만 하면 된다.
“태황 페하 만세! 만세!”
“꼴좋다, 이 도적놈아!”
대로 양편은 경기 일원에서 모여든 구경꾼들로 빼곡하다. 좌포청 포졸들이 한 줄로 등을 보이며 늘어서서 이들이 도로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행렬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픈 마음에 도로로 뛰어들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잇, 오라질 놈들! 맛 좀 봐라!”
돌이나 흙덩어리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표적은 박문수를 비롯한 토포군 군사들이 아니다. 그들 뒤에 손발을 묶여서 끌려오는 장길산 일당의 포로들이다. 두령 장길산은 지선성에서 온몸이 조각난 뒤 투석기로 바다에 던져졌다. 그 밑에서 함께 날뛰던 부두목급, 최상 갑(甲)이라고 할 만한 도적 서른 명도 같은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장길산과 마찬가지로 수급은 소금에 절여 가져왔고 몸은 바다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개선식 행렬에서 포로가 아예 빠질 수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그 죄상이 을(乙)에 해당하는 포로 2백 명이 배에 실려 함께 왔다. 이들은 개선식이 끝나면 가장 환경이 혹독한 탄광으로 보내져 죽을 때까지 석탄을 캐게 될 예정이다.
“으아악!”
날아든 돌멩이에 맞은 도적 하나가 얼굴을 감싸 쥐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군중 속에서 함성이 울리더니 날아드는 돌과 흙덩이가 늘어났다. 좌포청 관원들이 고함치며 제지했지만, 투척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돌을 던지던 군중들은 그 뒤를 줄줄이 따라오는 수레들을 보고 손을 멈췄다. 수레 위에는 이번 토벌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이 연극처럼 꾸며져 있었다. 어느 쪽인지 복장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허수아비들이 편을 갈라 자세를 잡고 있었다.
「매복에 걸려 도주하는 적괴(賊魁)」
「귀순하는 도적의 졸개들」
「산속을 헤매며 도주하느라 고생하는 도적들」
「또 매복을 당해 붙잡힌 적괴」
「처형당하고 바다로 던져지는 적괴」
각각의 수레마다 그 수레가 나타내는 주제를 쓴 깃발을 걸었다. 토포군이 장길산을 쫓아 어떻게 싸웠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보기에도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네!”
“그렇지, 도적놈은 저런 꼴을 맞아야지!”
인형극을 꾸민 수레들이 지나가자 장길산을 잡느라 공을 세웠다고 해서 특별히 뽑힌 미주 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다만 이들은 앞서 지나간 토포군 군사들처럼 당당하게 행진하진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도성의 화려함에 질려 사방을 둘러보느라 바빴던 까닭이다.
“아이고, 촌놈들!”
“별세상이지, 이놈들아?”
닳고 닳은 도성 백성들은 낯선 가죽옷을 입은 이 병사들이 앞서 지나간 군사들과는 달리 시골뜨기 촌놈들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 챘다. 야유와 비아냥, 휘파람이 날아들었다.
“이따가 밤에 우리 가게로 와! 술도 맛있고 예쁜 색시들 많아!”
심지어 호객하는 색주가 중노미들이나 아낙네들도 있었다. 앞서 지나간 포도청이나 금군 소속 군사들한테는 입도 뻥긋 못할 테지만, 이 바다를 건너온 어수룩한 놈들은 쏙 털어먹기 딱 좋은 먹잇감으로 보인 탓이다.
태평로 양쪽에 늘어선 구경꾼들은 이처럼 누가 지나가느냐에 따라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최후미를 달리며 상황을 정리하는 좌포청 기병들이 지나갈 때까지, 함성은 끊이지 않았다.
17.
광화문 위에 서서 내려다보니 흐뭇한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역시 상황극을 구성한 마차 쪽이 가장 반응이 좋구나. 반촌극장에서 무대를 꾸미는 전문 기술자들을 불러서 일을 맡긴 보람이 있다. 개선식 구성도 마음에 든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입장하는 정예 기병 2천 기를 뒤따르는 수급과 포로들, 그리고 그 뒤에 붙은 상황극 마차, 맨 뒤에 따라오는 미주 군사들까지.
상을 주기 위해 데려온 미주 군사들을 행진 맨 뒤에 오게 한 건 장길산 토벌에서 이들의 역할이 보조적인 쪽이었기 때문이고, 앞줄에 두었다가 실수를 범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 익숙하지 않은 빌린 말, 실수할 조건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이들도 자기들이 뒤쪽에 선 데 대해 별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후미를 지키면서 중간에 있는 도적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이라고 받아들인 듯했다.
이들 1천 기는 한인만 있는 건 아니다. 토인과 혼혈인들도 다수 포함하라고 했다. 그래야 이들 모두가 대한의 백성으로서 충성을 다한다는 사실을 천하에 드러낼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 이유로,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끌고 온 도적 포로들도 한인과 토인, 혼혈인 등을 모두 포함해 골고루 끌고 오라고 처음부터 명령해 두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한 가지 집단만, 이를테면 파이우트족 노인들 – 실제로 꽤 많이 가담했다 – 만 붙잡혀온다면 그 특정 혈통이 도적들의 핏줄로 낙인찍힐 게 뻔해서다.
그렇게 갖가지 인종이 섞인 군사들이 태평로 행진을 마치고 광화문 앞에서 도열한 모습을 보자 마음이 흐뭇해졌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군사들이 일제히 환호를 올렸다.
“태황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군사들만이 아니다.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도 다 함께 만세를 연호했다. 10분 가까이 계속 이어진 연호 끝에 내가 살짝 손을 들자 함성이 잦아들었다.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도승선 박몽린이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대들은 들으라! 폐하께서 말씀하시노라!”
마음 같아서야 직접 연설하고 싶지만, 이제는 큰소리를 내기에는 목도 아프고 서 있기도 힘들다. 그러니 도승선이 나 대신 나서서 대독하는 수밖에 더 있는가. 박몽린은 박문수 이하 토포군 장졸들의 공을 치하하고 도적을 잡는 일에 몸을 바쳐 나선 미주 군사들의 공도 크게 평가했다. 박문수가 도착하기 전부터, 승선들이 여드레 동안이나 매달려 쓴 연설문답게 정말로 명문이었다.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너무 길다는 점이었지만, 내가 직접 읽을 게 아니니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느긋하게 앉아 기다리니 대략 10분 만에 낭독이 끝났다. 박몽린이 손에 든 연설문을 둥글게 말면서 뒤로 빠지자 선전관이 앞으로 나서며 다른 두루마리를 펼쳤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자들은 순서대로 앞으로 나오라!”
이제 공적을 세운 자들을 서훈할 차례다. 다만 앞으로 불러내는 건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는 자들만이다.
“토포사 정사 박문수! 토포사 부사 홍진오!”
박문수와 홍진오 두 사람은 자응장 훈 2등을 받았다. 박문수는 전체 지휘를 맡아 작전을 이끈 공, 홍진오는 박문수를 보좌하여 군무를 전담하면서 직접 장길산을 쫓아 잡기까지 한 공이다. 훈장을 직접 전달하는 건 육군대신 윤세길이 맡았다. 두 사람을 빼고도 대략 백 명에 달하는 토포군 군사들과 예순 명가량의 속오군 군사들이 앞에 나와서 3등, 4등, 5등 훈장을 받았다. 그중에 김춘호가 맨 앞에서 3등 훈장을 받았다. 그동안 내게 바친 충성의 대가이자, 미주 출신이라도 공을 세우면 보상받는다는 상징이다.
나머지 군사들도 8등 하나는 다 받았다. 하지만 6등에서 8등까지 받은 군사들은 일일이 앞으로 불러내지 않았다. 3천 명 전부 수여식을 하다가는 밤까지 끝이 안 날 것이므로, 각 중대장에게 지급하고 중대장이 대신 수여하도록 했다.
“그대들의 공을 기려 오늘 폐하께서 궐내에서 주연을 베푸실 것이니, 그 은혜를 죽어서도 잊지 말고 충성 하라! 행여라도 대대로 입어온 임금의 은혜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태황 폐하 만세!”
“만세!”
“주상 폐하 만세!”
한 번 더 광화문 앞이 만세 소리로 가득 찼다. 사흘 전에 도성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술과 고기를 한번 베풀었지만, 정식 개선식을 한 날인데 당연히 뒤풀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승선, 장수들은 안쪽으로 따로 들라고 하라.”
“예, 폐하.”
이틀 동안 나하고 조정 중신들이 퍼붓는 질문 공세에 시달린 박문수에게도 한 잔 줘야지. 개선식 준비에 골머리를 앓은 홍진오랑 김춘호 한테도. 가뭄 때문에 황실에서 여는 연회를 전폐한 참이지만, 이런 행사는 예외로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흥겨운 잔치가 낮부터 시작해서 어둑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적당히 취한 상태에서 연회가 끝나자 ‘한 잔 더’가 아쉬웠던 군사들 다수가 한양 안팎의 색주가로 몰려들었고, 그 덕분에 도성의 술집들은 오랜만에 매출을 크게 올렸다. 말 그대로 횡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