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28
4부 012화(1628화)
7.
누벨 프랑스 제국(Empires nouvelle francais), 정식명칭은 누벨 프랑스와 아메리카를 다스리는 제국(I’empirequi gouverne I’amerique et la nouvelle france). 약호 표기는 EGANF. 한국어 표기로는 신불랑국(新佛郞國). 원래 세계에서는 확실하게 없었던 이 나라의 존재야말로 이 세계가 원래 세계와 한층 더 다르게 굴러가는 세계라는 점을 내 머리에 확실하게 인식하게 해준 요소 중 하나였다.
왜냐교?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보나파르트 황제가 다스린다고. 그 ‘보나파르트’ 황제가 누구겠는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바로 그 사람이다. 희대의 군사적 천재로 전 유럽을 직접 제패하고 프랑스 제국을 세워 나폴레옹 1세로 등극한 바로 그 사람 말이다. 나폴레옹은 이쪽 세계에서도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나폴레옹 육군이 자랑하던 증기차들은 러시아의 눈과 진창에 묻혀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만약 대포를 말로 끌었다면 말고기라도 먹었을 텐데, 쇳덩어리인 증기기차는 먹을 수도 없었다.
철도도 도움이 안 됐다. 프랑스 내에서야 물자 보급이나 병력 배치에 아주 잘 써먹었으나 프랑스 밖에는 아직 철도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물자를 보급하려면 그저 옛날처럼 진격로 주변을 약탈하거나 마차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원정에 실패하고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다시 군대를 모았다. 하지만 끝없는 전쟁에 지친 프랑스 국민에겐 더 싸울 힘이 없었다. 나폴레옹의 분전에도 무색하게 전선은 계속 밀렸고 동맹군이 파리에 육박했다. 결국 나폴레옹도 손을 들었다.
나폴레옹이 퇴위하자 루이 18세가 런던에서 돌아와 정식으로 즉위했다. 처형당한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복수심에 불타던 루이 18세는 수많은 나폴레옹파와 공화주의파 인사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나폴레옹이 퇴위할 때 주기로 한 연금도 주지 않았다.
“비록 자기 부모를 체포해서 죽게 한 장본인이라고 해도, 주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그것도 군주가 한 약속이라면 지켜야 할 게 아닙니까. 국왕이 20년 넘게 외국에서 고생한 건 알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약속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도 스승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루이 18세는 주기로 약속한 돈도 안 주고, 본국에서는 나폴레옹 지지자들과 공화정부를 지지했던 인사들이 연달아 투옥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폴레옹에게 당장 파리로 가서 다시 황제가 되라고 부추겼고, 결국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한다. 이후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다시 권좌에 올라 제정을 복구했으나 주변국은 나폴레옹을 용납하지 않았다. 피폐해진 프랑스의 국력이 겨우 한 해 만에 회복될 리도 없다 보니 패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때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면 보나파르트 황제는 동맹군에게 붙잡혀서 절해고도로 유배되는 결말을 맞았을 겁니다. 이미 엘바에서 한번 탈출한 바가 있으니, 이번에는 탈출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외딴섬으로 갔겠지요. 하지만 운이 정말로 좋았습니다.”
“예, 스승님께서 이미 이야기해주신 바지만,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진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 머무르기를 포기하고 신대륙으로 망명하려고 해안으로 도망쳐서 배를 찾았다. 하지만 워털루에서 가까운 도버해협 연안의 항구는 모조리 영국 해군이 철통같이 봉쇄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곧바로 대서양으로 향했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내리지도 않았다. 나폴레옹이 패했다는 소식이 그가 탄 기차보다 먼저 파리에 닿았고, 나폴레옹은 이미 파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라 로셸까지 간 나폴레옹과 우연히 만난 사략선 선장 한 사람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정말이지 놀라운 인물입니다. 본국에서는 그저 잡다한 도적 중 하나로 취급했던 녀석이 그런 놀라운 일을 해내다니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 김유근이 유사한 사례로 권율을 들었다.
그렇습니다. 저하. 사람의 재주란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휘되곤 합니다. 옛날 무자호란 때 충장공처럼 말입니다.”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나폴레옹을 태운 그 사략선 선장이 바로 남미주에서 패거리를 모아 난을, 아니 소동을 일으켰다가 동쪽으로 도망간 도적, 홍경래였기 때문이다. 지금 논하는 주제가 그게 아니니만큼 홍경래가 미주에서 벌인 난동에 관해 당장 상세하게 묘사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놈을 잡겠다고 굳이 추적대를 보내거나 범죄인 인도를 요구할 만큼 중요한 죄인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는 것만 미리 말해 둔다.
“국경을 넘어서 도망간 일개 도적놈이 해적으로 출세하더니 황제를 구출하는 대공을 세울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혀를 내두를 일이지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홍경래는 미주총관부 관헌의 추적을 피해 누벨 오를레앙, 그러니까 뉴얼리언스로 도망가서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사략선 선원이 되었다. 그게 대력 원평 18년(1800)의 일이다.
그런데 홍경래는 해적질 – 대한에서는 여전히 사략선을 해적으로 취급한다 – 에서 놀라운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평선원으로 시작해서는 10여 년 만에 선장이 됐으니 말이다. 백인 혼혈도 아니고 미주 태생이기는 해도 순수 한인이 프랑스 사략선의 선장이 되었으니, 정말 재능과 실적이 따라 주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쨌든 홍경래는 라 로셸에다가 배를 대고 있다가 나폴레옹을 만났고, 나폴레옹에게 자기 배를 타고 탈출하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프랑스 본국에서는 더 이상 활로가 없다고 생각한 나폴레옹은 그 제안을 수락했고, 대동하고 있던 측근들과 함께 그 배에 올랐다. 홍경래는 귀신같은 재주로 영국 해군의 눈을 피해서 라 로셸을 빠져나갔다. 동맹국들은 ‘감쪽같이 사라진’ 나폴레옹 때문에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이미 엘바섬을 탈출해 자기들을 엿을 먹인 전력이 있는 ‘코르시카의 괴물’이 이번엔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어서였다.
유럽인들은 고박 1년 동안 나폴레옹이 대체 어디로 갔느냐를 두고 온갖 추측을 내놓으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 경악했다. 나폴레옹이 어느새 루이지애나에 건너가 있었고, 그곳에서 ‘누벨 프랑스 제국’의 건국과 함께 자신을 ‘누벨 프랑스인의 황제’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참 세상이 꼬이니까 이렇게 또 꼬이네. 나폴레옹이 신대륙에 건너가서 나폴레옹 제국을 재건하다니.’
이것도 달라진 점이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루이지애나 구입’이 없었다. 애초에 그 광대한 땅을 프랑스가 포기한 적이 없었다. 7년 전쟁을 끝낸 1763년의 파리 조약은 미시시피강을 경계로 해서 누벨 프랑스 식민지를 둘로 나눴다. 캐나다를 포함하는 동쪽은 영국에게 넘어갔지만, 루이지애나가 포함된 서쪽은 프랑스령으로 그대로 남았다.
이것도 내가 뿌린 씨 탓이었다. 원 역사에서 루이지애나는 미시시피강 하구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역이 황무지 – 유럽인들의 눈으로 – 였다. 그러니 캐나다를 빼앗기는 김에 그냥 스페인에 넘겨줘도 상관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이쪽 세계의 루이지애나는 대한과의 교역 및 한인출신 이주자들이 세운 농장으로 번창하고 있다. 아깝게 버릴 이유가 없다. 게다가 유사시에는 배후에 있는 대한령 미주에서 군사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실제 7년 전쟁 때 영이도 루이지애나가 공격받으면 미주에서 지원군을 보낸다는 협약을 맺고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안보 면에서도 루이지애나는 상당히 안정된 여건을 갖춘 셈이다. 그래서 루이 16세부터 샤를 10세까지, 부르봉 왕조 국왕들도 루이지애나를 꽤 공들여서 챙겼다. 혁명정부도 루이지애나는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폴레옹 역시 흑인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킨 아이티는 상실했지만 루이지애나는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대서양의 제해권을 영국이 장악하며 루이지애나의 수도인 누벨 오를레앙은 영국군이 점령했고, 프랑스 세력은 내륙인 생 루이로 밀려났다. 그때 조정에서 ’40년 전 맺은 협약에 따라 프랑스 쪽에 원병을 보내야 하느냐?’의 문제로 논란이 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그 전쟁 시기에만 유효했던 게 아닌지요? 효력이 영구한 조약을 맺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논란이 되었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더구나 현종께서 협약을 맺으신 상대는 불랑국왕이었는데, 잉글군이 쳐들어온 시점에서 불랑국은 보나파르트 황제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옛 약속이 새조정에 승계되었다고 볼 수 있느냐는 점 역시 논란이 되었습니다.”
대한과 유럽 제국(諸國)은 여전히 서로의 수도에 상주 공관을 거의 두지 않고 있다. 아직 오가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본국의 훈령을 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는 역마를 써서 석 달 만에 오갈 수 있는 러시아다. 하지만 공사관은 없어도 소식은 오간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조부는 정당한 군주에게 반란을 일으킨 혁명정부를 매우 좋지 않게 보았다. 비록 싸움에 직접 끼어들지는 않았으나 부르봉 왕실의 복위를 지지했고,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세상 반대편 일이니만큼 우리가 인정하든 말든 나폴레옹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잘 지냈다. 그러다가 망했을 뿐이지. 어쨌든 나폴레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조부는 ‘현종께서 하신 약속은 그 전쟁에서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영국이 루이지애나를 공격해도 우리가 군대를 보내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참전하지 않았다.
“혹시 잉글군이 내륙으로 진격해서 미주대령으로 접근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 쪽의 대처도 당연히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잉글군은 누벨 오를레앙 함락 이후에는 내륙으로 진격하지 않았습니다. 불랑인들이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막기만 할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대로 끝났습니다.”
누벨 오를레앙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군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쫓겨나자 프랑스 당국에 도시를 반환하고 떠났다. 나폴레옹이 백일천하를 시작했을 때는 상황이 너무 급하게 전개된 탓에 루이지애나 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고, 바로 이 틈으로 나폴레옹이 들어왔다.
현재 루이지애나는 인구도 백여 만에 달한다. 농업과 교역이 발달해 경제적 기반도 있다. 동쪽은 프랑스의 혈맹이던 신생국 미국이 막아주고 있으며 서쪽은 전통적인 우호국 대한이 있으니 군사적 위협은 남쪽에만 있다. 누벨 프랑스 제국을 선포할 기반은 충분한 셈이다.
“보나파르트 황제는 자신이 옛 국왕들처럼 신의 뜻에 따라서 보위에 오른 게 아니라 민의(민의)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불랑국에 있을 때도 ‘불랑국인의 황제’라는 호칭을 썼으니, 새로 나라를 세운 다음에도 똑같이 행동한 것이지요.”
그 소식이 미국을 통해 전해지자 당연히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막상 신대륙에 정착한 나폴레옹을 처리하겠다고 행동에 나선 군주는 루이 18세 딱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각자의 계산에 따라 나폴레옹을 방관했다.
“오스트리아 – 나폴레옹 전쟁 도중에 신성로마제국이 정식으로 해체되면서 오스트리아와 도이치를 다른 나라로 구분하게 되었다 – 나 포뢰선, 루스에서는 대서양 너머 미주를 다른 세상처럼 간주하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잉글국은 미주합중국 견제에 도움이 되리라 보고 신불랑국 건설을 묵인하기로 했고요. 막겠다고 나설 나라는 불랑국뿐이었습니다.”
루이 18세는 후환을 뿌리째 뽑고야 말겠다면서 나폴레옹을 체포할 원정군을 보냈다. 본래 나폴레옹의 측근이었으나 워털루 전투 패배 이후 항복해서 자신에게 서약한 니콜아 솔트 원수에게 5만 명의 군대를 주고 나폴레옹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는 루이 18세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였다. 바다를 건너가 루이지애나에 도착한 솔트 원수가 곧바로 나폴레옹에게 투항해버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토벌군 대부분이 본래 나폴레옹 휘하에 있던 병사들이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결국 루이 18세는 나폴레옹에게 5만 대군을 선물한 셈이 되었다. 참 기가 막힌 희극이다.
“보나파르트 황제는 그 군대로 신불랑 각지에 있는 도시와 마을을 장악하여 자기 깃발을 올렸습니다. 아직 명목상으로 만 자기 영토일 뿐이지 아직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지역을 제압하고 방비를 굳히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지요.”
기존에 루이지애나에는 군대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현지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원주민, 한인 등으로 구성된 민병대가 소수 있을 뿐이었다. 미시시피강 동쪽에 있는 미국인들도 별 차이 없는 수준이라. 그 이상의 군대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경험 많은 노련한 병사 5만 명을 얻은 나폴레옹은 곧바로 이 군대로 루이지애나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미시시피강 하구를 요새화해서 적의 침입을 막았다. 당연히 루이 18세는 펄쩍 뛰었다. 하지만 새 토벌대를 보내 봐야 나폴레옹에게 병력만 더 보태주는 결과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아예 외면하고 내버리는 길을 택했다.
“불랑국왕이 주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그 괴물을 바라 저편으로 유배 보낸 셈 치겠다.’라고 했다고 하지요. 원미주는 분명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땅이나, 딱히 보나파르트 황제를 몰아낼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그냥 포기한 겁니다.”
다른 열강은 별 망설임 없이 ‘나폴레옹의 새 나라’를 승인했다. 설마 나폴레옹이 미주에서 힘을 키워 유럽으로 돌아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가 땅은 넓지만, 미시시피강 하구만 봉쇄해버리면 바다로 나오지도 못하고 말이다.
아마 나폴레옹이 미국으로 갔다면 도리어 곤란해졌을지 모른다. 미국인들이 최근에 있던 미영전쟁의 원한을 갚으려고 나폴레옹에게 군대를 맡겨 영국을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영국인들이 절대로 그냥 놓아두지 않았을 테니까. 나폴레옹이 이렇게 자리를 잡자 곧바로 유럽 전역에서 루이지애나로 떠나는 망명자들이 줄을 이었다. 나폴레옹 지지자에다가 프랑스 혁명의 대의를 추종하는 자들까지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망명자들 사이에 폴란드인들도 다수 섞여 있었던 것이고.
“그리하여 보나파르트 황제는 미주에서 자기 세력을 확립해가고 있습니다, 저하.”
이렇게 사람이 모이자 힘을 얻은 나폴레옹은 누벨 프랑스 제국을 단순한 북아메리카 지역 국가로 두는 대신에 남북아메리카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는 패권국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지금 멕시코가 벌이는 독립전쟁에 개입할 기미를 보이는 것도 그 탓이리라. 이번 ‘나폴레옹-먼로 공동 선언’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움직임일 게 분명해 보인다. 과연 우리 조정에서는 그 선언에 어떻게 반응할까. 유럽에서 벌어진 1차 나폴레옹 전쟁이야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미주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2차 전쟁은 바로 우리 일이 된다.
“유주에서 들어오는 이주자들이 그렇게 계속 신불랑국을 강화한다면…..”
젠장, 관심 있는 주제를 논하다 보니 그만 또 말을 너무 많이 해 버렸다! 내 얼굴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 김유근을 보자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저하께서는 실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시니, 소인으로서는 늘 뿌듯할 따름입니다.”
내가 범상한 여덟 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서 참 기쁘다는 듯한 표정이다. 저 얼굴을 볼 때마다 ‘또 낚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유근이 저런 미소를 보고 나면 꼭 며칠 뒤에 수업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분명 서도를 받아본 조부의 지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