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3
1부 163화
– 23 –
5년 전, 3년 전처럼 이번에도 개선식이 있었다. 출동했던 아군 정예부대가 도성을 행진했고 포로로 잡은 여진족 추장과 전사들, 아녀자들도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도성을 횡단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포획한 준마와 빼앗은 무기, 갑옷도 눈길을 끄는 구경거리였다.
동에서 서로 도성을 횡단한 행렬은 성벽 바깥을 천천히 돌아 남대문으로 다시 입성했다. 이 경로는 모두 사전에 공지되어 있었으므로 서대문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위에도 구경꾼들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추운 날씨였지만 구경하려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야, 이런 진기한 구경을 5년 사이에 세 번이나 하다니.”
“혹시 상감마마께서 다음에는 명나라 놈들도 이렇게 끌어다가 구경을 시키시려나?”
“아서라, 아서. 어떻게 대국하고 전쟁을 하나? 고려 때 꼴 나려고?”
몽골군이 수십 년에 걸쳐 고려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게 겨우 250년 전이다. 잊히기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였다.
고려는 수많은 적들을 막아냈다. 거란도, 여진도, 홍건적도, 왜구도 결국은 모두 쫓아냈다. 하지만 몽골만은 막지 못했다. 임금이 무릎을 꿇었고 나라는 폐허가 되었다. 많은 백성들이 적에게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백성들은 그런 전쟁이 또 시작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중국과 전쟁을 하다니, 여진이나 왜구를 토벌하는 싸움과 차원을 달리할 것이 분명했다.
“헛소리 말고 저기나 보라고.”
남대문을 통해 입성한 행렬이 다시 광화문 앞으로 돌아왔다. 광화문 앞에는 그사이 커다란 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항복 의식을 위한 단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아주 중후장대한 단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비용도 비용이고, 광화문 앞에 만들기에는 장소가 너무 좁았다. 연무장인 살곶이 벌판에 만들자니 공간은 넉넉하지만 너무 멀었다. 도성 백성들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개선식에 덧붙여 하는 행사인데 좀 가까워야지.
한강변 모래밭도 후보지로 생각해보긴 했는데, 여긴 가깝기는 한데 너무 추울 것 같았다. 강물은 완전 얼음판이고 눈밭이 된 모래사장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눈발이…아아, 생각만 해도 춥네. 하긴 살곶이도 벌판에 풀밭이라 춥긴 마찬가지겠구나.
결국 그냥 단을 작게 만들기로 했다. 개선식을 벌이기 사흘 전부터 준비해서 삼단으로 아주 든든하게 만들게 하고, 천을 두르고 깃발을 세워 장식했다. 주변에서 잘 볼 수 있도록 높이는 광화문 문루보다 조금 낮은 정도로 했다. 그래야 좀 떨어져 있어도 잘 보일 테니까.
개선 행렬이 예정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은 광화문 안쪽 공간에 준비한 천막 안에서 기다렸다. 다행히 오늘 날씨가 걱정했던 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전하, 도체찰사가 도착하였사옵니다.”
개선행렬이 코스를 다 돌았다는 말이렸다. 헛기침을 한번 하고 천막을 나섰다. 따로 마련해 둔 천막에 들어가 있던 신하들도 마침 지금 밖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내가 다가서자 광화문 중문이 열렸다. 천천히 걸어가서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층 단 위에 내가 앉을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의식은 오래 끌지 않았다. 날도 춥고 해서.
도승지 권균이 낭랑한 목소리로 무도한 야인들이 임금의 덕에 굴복하여 귀부했음을 하늘에 알리는 길고 어려운 글을 낭독하는 소리를 들으며 딴생각을 했다. 아, 저것도 문구 하나하나 때문에 예조와 의정부 사이에서 꽤나 치열하게 공방이 오고갔었지.
물론 난 그 문장과 도리를 따지는 싸움에 아예 개입하지 않았다. 조선에 온지 벌써 만으로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런 문제는 아직 젬병이다.
그보다는 의식 절차를 정하느라 있었던 다툼 쪽이 더 기억이 났다. 처음에 나는 삼전도에서 인조가 했던 것처럼 삼궤구고두례(三?九叩頭禮)로 항복을 받으려고 했었다. 헌데 조정대신들 전체가 반대했다.
“전하, 왜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오랑캐의 예법으로 항복을 받으려 하십니까?”
명나라 황제는 오배를 받고, 내가 사배를 받는다. 그러니까 오랑캐 추장에게 삼배를 시키는 건 별 문제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하들은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예법으로는 저들 추장들에게 항복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사배를 받으소서. 이는 마땅한 도리이옵니다.”
쩝, 하긴 내가 만주족 추장도 아닌데 청나라처럼 삼궤구고두로 항복을 받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결국 항복식에서 절은 사배만 받기로 되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도승지가 낭독을 끝냈다. 포로로 잡혀 도성 안을 끌려다니며 구경거리가 되었던 니마차 추장들이 쭈뼛거리며 단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차례로 단하에 꿇어 엎드린 채 단상에 있는 내게 사배를 올렸다.
형제의 맹약도 아니고 항복을 받는 것이니만큼 피나 술을 나눠마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절이 끝나자 다섯 추장을 나란히 무릎 꿇린 채로 그 앞에 서서 간단한 연설을 했다.
“너희는 일찍이 우리 태조께 신종하기로 맹세하였음에도 배반하여 우리 변경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괴롭혔노라. 이에 내가 하늘의 뜻으로 너희를 징벌하였으니, 마땅히 그 죄를 깨닫고 다시는 범하지 말지어다.”
조선말을 모르는 저놈들이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공식적인 행사멘트라 동청례가 일일이 통역해줄 수도 없고. 어쨌든 분위기야 알 테니, 계속 진행했다.
“저자들에게 술 한 잔과 준비한 관복을 내려주어라.”
그래도 끝까지 버티지 않고 나서서 항복한 공으로 니마차 추장 5인에게는 종4품 만호직이 부여되었다. 이들 5인은 앞으로 부여주 병마사에게 지휘를 받으며 내 권위를 대행하게 된다. 더 이상 요동도사에게는 조공을 바치거나 지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도 분명히 일러두었다.
뒤이어 이번 원정에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 상으로 어떤 지위를 내릴지 공표되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 내용 같은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발해 멸망 이후 한민족의 손에서 떠났던 만주 벌판이 우리 손에 돌아왔다는 감격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아직 과제는 남아 있다. 두만강에서부터 북쪽으로 실효지배를 점점 굳혀 나가야 한다. 그 과정도 무척 힘들고 어려우리라.
– 24 –
겨울이라 해도 잔치는 치를 수 있다. 두툼한 천으로 장막을 치고 지붕을 덮은 다음 화로를 넉넉히 들여놓으면 된다.
“자, 술 한 잔 받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조정 고관들과 이번 원정에서 공을 세운 이들 중 그 공이 특히 크다 하여 선발된 이들이었다. 동청례와 그 두 아들, 그리고 동생 동청지를 비롯한 오도리 전사 십여 명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번 원정을 총지휘한 도체찰사의 공이 마땅히 가장 크겠지만, 수하에서 명을 따라 힘써 싸운 군사들의 노력이 그 기저에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지어다. 군사들에게 충분히 포상을 내리라 하였는데, 잘 실행하였느냐?”
“그러합니다.”
병조판서 임사홍이 일어서서 허리를 수그렸다.
“신유동정 때 전례에 따라 전사한 자, 부상을 입은 자에게 모두 저화로 보상하였사옵니다. 부정하게 새는 돈이 없도록 신이 직접 중간 과정을 감독하였으며, 각처에 있는 수령들에게도 공정하게 분배하라고 신신당부하였사옵니다.”
“노획한 말과 소, 철물도 모두 논의한대로 처분하였는가?”
“묘당에서 논의한대로 말은 각 군영에서 전마를 보충하도록 분배하였으며 소는 야인들에게 노략질을 당한 백성들에게 분배하여 농사에 사용토록 하였습니다. 철물은 추후 야인들과 다시 교역할 때 사용하도록 보관하였습니다.”
명나라는 야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질이 나쁜 철물을 준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녹여서 바로 무기로 재생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조선에서 여진에 넘어가는 철기는 조선 내수용과 질에서 별 차이가 없다. 민간에서 몰래 무역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다만 니마차는 그 거주지가 한참 북쪽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노획한 철기들도 조선에서 넘어간 것보다는 요동의 명나라 관헌들과 교역해서 받아온 중국제 철기가 많았다. 당연히 이 노획한 철기는 거의 명나라산 저질품이었다. 우리 시장에 풀어봐야 욕이나 먹을 물건들이다.
“물자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 사람은 쉽지 않구나.”
절로 한숨이 나왔다.
“포로들을 모두 오도리에게 노비로 내주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귀환한 장수들과 함께 전과를 평가할 때 나온 화제 중 하나가 포로 문제였다. 삼군이 잡은 여진족 포로는 온성을 비롯한 함경북도 일대에 집결했는데 그 수가 1만여 명에 달했다. 남자가 3천, 여자와 아이가 7천이었다.
“저들을 모두 오도리에게 내주기보다는 각 관아에 나누어 관노로 삼고 노역을 시킴이 좋지 않겠는가? 각지에 있는 광산이나 염전에 일손이 필요하고, 정예하고 날랜 이는 북변에 두어서 별초(別哨)로 편성하고 군사로 써도 좋을 듯하다.”
포로들을 여진족 외인부대로 편성해서 믿을 수 있는 장수 밑에 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처자식을 함흥쯤 후방에 살게 해서 인질로 삼으면 멋대로 날뛰지도 못할 테다.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오도리에게는 약간 명만 나눠주고 나머지는 관노로 하여 나라를 위해 쓰도록 하소서.”
영의정 유순은 당장에 두 손을 들어 찬성하고 나섰다. 하지만 좌의정 허침은 동의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전하, 붙잡은 포로는 출병에 대한 포상으로 모두 오도리에게 넘긴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전하께서 하신 약속을 믿고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북정군이 무사히 길을 갈 수 있도록 눈과 귀가 되어 정탐을 하였으며 거둔 수급 다섯 개 중 하나는 저들이 잘랐습니다.”
동청례가 이끈 오도리군이 얼마나 충실하게 싸웠는지는 유순정이 쓴 장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의 뒤통수를 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처음 계약할 때 상정한 액수보다 보수가 너무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난 기껏해야 한 3천명쯤 잡힐 줄 알았거든.
“자고로 이르기를 장부의 약속은 한 마디가 천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일개 장부의 약속이 천금일진대, 임금의 약속은 그 값이 얼마이겠습니까?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소서. 그래야만 오도리가 계속 전하께 충성할 것이고 다음 출병에도 기꺼이 나설 것입니다.”
좌찬성 강귀손도 허침의 편을 들었다. 이조판서 김수동도 이쪽 편에 섰다.
“전하, 애초에 군사를 내신 목적을 상기하소서. 저들이 저지르는 노략질을 근절하고 다시는 무도하게 굴지 못하게 하고자 함이었지, 노비를 얻고자 함이 아니었나이다. 노비를 얻으려고 싸움을 하다니, 그야말로 도적이나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노예사냥을 하겠다고 전쟁을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에 대항할 논리도 없었고.
그래, 포기하자. 내가 가지고 있던 노비를 나눠주는 것도 아니니까.
“알겠다. 원래 약속대로 올적합 포로들은 전부 오도리에게 넘겨주어 동청례의 주관 하에 각 부락에서 나눠 갖도록 하라. 다만 도망한 이보을개의 처는 함흥으로 옮겨 절도사가 관리하게 하라. 후일 이보을개를 투항하게 하는데 쓰겠다.”
동청례의 공은 무척 크다. 그래서 나는 여진족들 사이에서 동청례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한 세워줄 셈이었다. 조정에서 다소 반감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예, 전하.”
“힘든 원정을 잘 마무리한 그대들에게 어주를 내리고자 한다. 와서 받으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유순정, 전임, 박원종, 오순종 등 도절제사 이상 최고위 지휘관들이 내 앞에 나란히 섰다. 동해수사 우현손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각자 잔을 들게 하고, 내수사에 명해서 특별히 구해 대령하게 한 좋은 술을 내가 직접 한 잔씩 따라주었다.
“그대들은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다하였다. 추후에도 계속 군사를 이끌어서 나라에 공을 세우기 바란다.”
도체찰사 유순정은 스터디 멤버이니만큼 내 장래계획을 알고 있어서 약간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다른 장수들은 그저 신명을 다하겠다고 외칠 뿐이었다. 다들 내가 그냥 하는 덕담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뭐, 필요할 때 가서 밝히면 되니까.
“부여주 병마사, 앞으로 나와 잔을 받으라!”
내가 엄숙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하자 야인 부하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던 동청례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조아린 채 내 앞으로 급히 걸어왔다. 그래, 결국 동청례를 그 자리에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전하, 동청례가 비록 공이 크다 하나, 글자 한 자 모르는 무식한 무부(武夫)가 아닙니까? 부여주 병마사는 그 권한과 책임이 관찰사에 버금가는데, 그런 중요한 자리를 동청례에게 줄 수는 없사옵니다!”
예조참판 이손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사헌 민휘를 필두로 하여 대간들도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거 참 오랜만이군.
“전하, 재고하소서. 부여주 병마사는 단지 병마만 통솔하는 자리가 아니옵니다. 동청례가 그 용력이 뛰어나고 야인들 사이에 인망이 높다 해도, 글을 모르는데 어찌 높은 덕을 펼칠 수가 있겠나이까? 덕이 있는 인재로 하여금 병마사를 맡게 하시고 동청례는 그 수하로 하소서.”
“문자를 써서 덕을 가르침은 이미 문자를 아는 백성을 상대로 할 때나 가능하다. 우리 땅에 사는 백성들은 이미 3천 년 전부터 기자(箕子)로 인해 왕화를 입었으나, 야인들은 아직 그런 기회가 없었지 않은가? 기자만한 성인이 지금 있다 해도 어찌 단번에 저들을 교화하겠는가?”
나는 기자동래설을 안 믿는다. 당연히 기자조선도 안 믿는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기자가 이 땅에 덕을 전했다는 기록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내가 그걸 부정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저들을 납득시킬만한 근거도 없고.
“성인인 기자가 조선에 왔다 함은 조선이 중국과 맞먹는 오래 전부터 덕으로 교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이 대국이라 하여도, 우리가 저들과 맞먹을 만큼 오래 전부터 예를 알았는데 어찌 우리를 얕보게 하겠습니까?”
이 문제로 슬쩍 대화를 나누었을 때 임사홍이 한 말이다. 사대부들이 왜 기자를 중시하는지 납득은 되지 않았지만 이해는 되었다.
“덕이 있는 이를 동청례의 보좌로 하여 업무를 살피도록 하자. 그리하면 동청례가 예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도 그 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예조참판 이손은 학문이 지극히 깊을뿐더러 말과 활에 능숙하니 야인들에게 존경을 얻기도 좋을 것이다. 경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한바탕 논란 끝에 이손을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임명하기로 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조정 신하들에게는 동청례는 상징적인 병마사고 실제적인 부여주 관리는 이손이 맡게 되리라고 설명했다. 동청례가 사실상 ‘바지사장’이 되는 셈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타협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청례는 무장으로서, 그리고 여진족들과 나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은 매우 잘 해냈다. 하지만 행정능력은 솔직히 많이 부족하다. 그 사실을 알면서 행정에 대한 전권을 줄 수는 없었다.
“자, 한 잔 받으라. 앞으로 그대가 부여주를 어찌 다스릴지 기대가 크도다.”
“전하께서 신을 믿어주시니 충성으로 보답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