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4
1부 164화
그래, 동청례는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 후손들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동청례와 그 부친 동소로가무, 형 동청주(童淸周), 동생 동청지(童淸智)는 모두 조정에 출사하여 열심히 일했다. 그 매제인 김파다상(金波多尙)도 향화인이다. 하지만 그 형제들 중에도 형인 동아망합(童阿亡哈)처럼 오도리에서 사는 길을 택한 이도 있다.
동청례의 두 아들은 혼처를 같은 향화인 중에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으음, 이것도 딜레마일세. 내게 대한 충성심을 강하게 하려면 조선인과 결혼시켜야겠지만 그러면 북방 여진인들과 연계가 약해진다.
조선 땅에서 사는 오도리야 뭐 거의 조선 백성이 다 되어 가니 괜찮다고 치자. 건주위처럼 적당히 거리를 둔 관계를 지속하면서 순전히 동청례 인맥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집단과 잘 지내려면 결국 꾸준히 혼맥을 맺는 수밖에 없다. 지금 추장이 아마 동청례 사촌이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지금 이 연회장을 경비하고 있는 종씨 형제 쪽으로 생각이 뻗어갔다. 대마도 출신답지 않게 우직하며 대마도인 아내를 둔 종의성, 약삭빠르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전형적인 대마도인이지만 정호찬의 딸에게 장가든 종성가. 과연 어느 쪽이 더 믿을만할까.
아아,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야인들이 동청례와 같은 인적 연결고리가 아니라 군주에 대한 충성이라는 규범적 가치를 통해 움직이도록 ‘교화’해야겠다. 각 부락에 유학교육을 맡을 훈도(訓導)라도 파견해서 가르쳐야 하려나.
젠장, 설마 성리학을 진지하게 공부한 여진족들이 ‘부덕한 군주를 타도해야 한다’며 50년쯤 뒤에 탈래반(脫?反)이라도 결성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건 아니겠지.
“선전관 이장곤은 앞으로 나오라!”
한참 흥이 올라 부어라 마셔라 하던 중에 생각이 났다. 내가 꼭 한잔 직접 줘야지 하다가 그만 잊어버릴 뻔했네.
“이번 원정에서 그대가 세운 공이 무척 크다 들었다. 내 술 한잔 받으라.”
이번에 이장곤이 펼친 활약은 초특급이었다. 무쌍을 찍으면서 적을 베어 넘긴 건 아니라서 람보 같았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길안내도 하고 전투도 하면서 아주 멋진 활약을 펼쳤다. 이 사람을 추천한 이극균이 아주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큼 말이다.
이장곤을 휘하에 두었던 박원종과 황형은 물론이고, 내가 사실상 감사관으로 딸려 보냈던 남곤조차도 이장곤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칭찬했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이장곤과 계속 함께 움직였던 다지도 자기가 본 이장곤의 활약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 정도면 다면평가는 충분하다. 당장 의금부에 명해서 작년 역모 건에 연루되었던 혐의는 깨끗하게 싹 지우도록 하고, 두 품계를 올려서 정4품 봉정대부를 내리기로 했다. 급히 적당한 관직을 마련하기는 좀 그래서 직책은 일단 선전관으로 했다. 옆에 좀 두고 보고 싶기도 해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장곤은 한 번에 원샷으로 술잔을 비웠다. 호, 잘 마시는데?
“그대가 술을 잘 마시니 한 잔 더 내려야겠다. 여봐라, 그 술잔을 가져오너라.”
‘그 술잔’이란 이세좌를 한방에 날렸던 그 주발을 가리킨다. 내관이 들고 나타난 주발을 본 신하들 몇몇이 움찔하는 기세를 보였으나 이장곤은 털끝만큼도 동요하지 않았다.
“자, 들라.”
“신에게 내리시는 은혜가 이토록 크니 어찌 감읍하지 않겠나이까.”
그리고는 주변에 있는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주발을 번쩍 쳐들어 그대로 마셨다. 몇 방울 입가로 흘리기는 했지만, 한 번도 입에서 떼지 않고 끝까지 마셔서 비워버렸다.
“진정 사내로다!”
찬탄하는 목소리가 주변에 가득했다. 단지 술 잘 마신다고 탄복하는 게 아니라 왠지 다들 안심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만약 이장곤이 어주를 쏟거나 흘리면 이세좌 때처럼 피바람이 불까봐 다들 걱정했던 모양이다.
아니, 이건 경우가 다르잖아. 이세좌는 내가 처음부터 얽으려고 작정했지만 이장곤한테는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내가 무슨 연산군이냐?
이 분위기를 불식시키자면 얼른 술잔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수밖에 없다.
“병마사가 술을 받았으니 병마부사도 술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부여주 병마부사는 앞으로 나와 어주를 받으라!”
병마사는 1명이고 병마부사는 2명이다. 그래야 업무가 분담되니까 말이다. 그중 한 사람인 이손은 이제까지 선전관과 절도사, 관찰사 등을 역임하여 풍부한 행정 경험이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청요직을 주로 지냈고 행정관으로서의 경력은 거의 없었다.
“병마부사, 그대가 이번 원정에서 보인 열의와 충성은 과인으로 하여금 이런 신하가 있다는 사실을 천지신명께 감사하게 하였노라. 그리하여 그대를 병마부사로 인선하였으니, 앞으로도 성의를 다하라. 자, 여기 한 잔 받으라.”
어주를 받는 남곤의 얼굴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듯 애매했다. 하긴 이해가 됐다. 그 추운 만주, 죽을 고생을 치르고 살아 돌아온 그 땅에 아예 부임을 하라고 하니 정말이지 죽고 싶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새로 얻은 땅에서 초기 행정이 자리를 잡으려면 단순히 유능한 관리를 배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지역을 잘 알아야 하고 청렴해야 한다. 물론 이손도 함경도 절도사를 지낸 경력이 있지만,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남곤은 직접 종군하면서 그 땅을 익혔다. 그리고 정말로 청렴하다. 이 사람이면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어떤 부정행위도 놓치지 않겠지. 야인들을 직접 착취하는 하급 관리라거나, 공물을 빼돌리는 중간 관리라든가 등등을 말이다.
“자, 실컷 마시고 취하라. 오늘은 그대들을 위한 날이니라.”
악공들이 연주하는 음률이 잔잔하게 귀를 울렸다. 아, 기분 좋구나.
– 25 –
“병마사를 비롯한 관리들은 언제부터 파송하시겠나이까.”
“눈이 녹고 3월쯤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잔치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연말은 원정을 마무리하는 이런저런 사무로 지나갔다. 그 뒤에는 병마사를 필두로 하는 부여주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업무가 최우선이 되었다. 미리 다 해놓았으면 좋았겠지만, 원정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어서 준비에 한계가 있었다.
거창하게 표현은 했지만 말이 좋아 행정체계 구축이다. 솔직히 부여주에는 행정구역이라고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여진 부족들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 남쪽에서 하는 것처럼 각 고을에 사또를 보내고 중앙에서 통제하는 방식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 땅을 다스리려면, 발해가 말갈족을 통치하면서 했듯 병마사가 각 부족장을 통해 간접통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병마사가 본거지를 둘 치소(治所)도 아직 확정하지 못한 참이다. 후보지는 몇 곳 나왔지만 최종적인 결정이 나지 않았다.
이런 경우 결국 담당자가 직접 정하는 수밖에 없다. 동청례와 두 병마사가 직접 후보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살피고 그중 한 곳을 고르기로 했다.
“남눌과 골간은 확실히 모두 평정되었느냐?”
우군이 상대한 남눌, 수군이 상대한 골간 두 올적합은 니마차처럼 대규모로 맞서 싸우지 않았다. 각 부족이 제각기 흩어져 도망치거나 항전하기를 임의로 택했다. 덕분에 우군 도절제사 오순종과 동해수사 우현손은 중군이나 좌군처럼 위기를 겪지 않았다.
다만 수군은 철수하는 도중에 애를 좀 먹었다. 수분하가 그새 중간에서 얼어버리는 바람에 군사들이 빙판 위에 올라가 얼음을 깨서 수로를 만들면서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군은 남눌 부락 17개소, 수군은 골간의 부락 22개소를 불태우고 다대한 수급과 포로를 거두었습니다. 전체 포로 1만 중 4천이 이쪽에서 거둔 포로들입니다.”
“그건 알고 있다.”
약속대로 모두 오도리에게 줘야 해서 참 안타까운 포로들이지. 저걸 노비와 병사로 사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큰 보탬이 되려나.
“살아남아서 원한을 품은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니마차 역시 마찬가지다. 3월에 동청례가 부여주에 부임할 때, 함경도 기병 3천에 더불어 오도리 기병 1천을 이끌고 가게 하라. 그리고 올해 북정에서 우리 공격을 피한 여러 올적합 부족을 지속적으로 토벌하도록 하라.”
“예, 전하.”
겨울에는 가진 것만 가지고 도망치면 되니까 도피가 도리어 쉬운 면이 있다. 하지만 봄이 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현대에서 보면 가끔 여진족은 사냥이나 목축만 하면서 산 줄 아는 사람이 있던데, 농사 많이 짓는다. 걔들이 농기구나 소를 괜히 원하는 게 아니다.
변경을 덮쳐서 사람을 노예로 잡아가는 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자기네 농경지에서 농사짓게 하려고 잡아가는 거다. 명나라 요동부에서는 한 해에 10만 명이 잡혀간 적도 있다고 했다. 선대왕 시절부터 여진을 토벌하러 가면 꼭 중국인 포로를 구출해서 돌려보내곤 했다.
이 점은 이번에도 같았다. 잡혀 있는 것을 구해낸 조선인이 325명, 중국인이 1,746명이나 되었다. 중국인들은 당연히 모두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겨울이라 여행이 좀 힘들기는 했지만, 공연히 오래 붙들고 있다가 오해를 사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3년 정도는 부여주에 있는 여진 부족들을 평정하는 기간으로 하여 항거하는 자는 응징하되, 순응하는 자에게는 덕을 베풀도록 하라. 일전에 의논했듯이 그동안은 세금도 일체 부과하지 않도록 하겠다.”
원래 조선에서는 황무지를 새로이 개척하면 3년 정도 조세를 면해 주었다. 북방인 함경도, 평안도 지역은 면세가 10년이었다. 다만 야인들의 땅은 그 특성상 세금 부과 형식이 달라질 예정이다.
“이미 논했듯이 3년 후부터는 부락별로 수량을 정하여 초피를 거두겠다. 만약 초피가 부족하다면 야저피나 호피로 납부를 받도록 하겠다.”
초피(貂皮)는 담비 가죽을 말한다. 담비 가죽은 지금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치품으로. 야인들에게 소 한 마리를 주고 가죽 한 장과 바꿔올 만큼 비싼데도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다. 야저피(野?皮)는 멧돼지 가죽, 호피(虎皮)는 말 그대로 호랑이 가죽이다.
조선 본토(?)에서는 대동법을 실시하여 곡물이나 저화로 모든 세금을 걷기로 했지만, 새로이 획득한 부여주에서는 곡식을 거둔다 해도 도성까지 운반하기가 너무 힘들다. 묘당에서 의논한 결과 곡식보다 가벼우면서 값도 비싼 모피를 세금으로 걷기로 한 것이다.
모피 하면 또 중요한 산지가 연해주다. 그럼 연해주 갔다 돌아온 사람을 또 불러야지.
“유담년에게 묻겠다. 여기 보니, 연해주 해안을 따라 올라가다 조우한 야인들이 스스로를 우대개(優待介)라 일컬었다 하였다는데 맞느냐?”
“그러합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골간과 달랐사오나, 본영으로 복귀하여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니 니마차와는 도리어 비슷한 데가 있다 하였습니다.”
“흠.”
우대개…처음 들어보는 종족 이름이다. 사실 내가 아는 북아시아 소수민족 이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기껏해야 아이누, 사모예드, 야쿠트 정도? 이들은 모두 연해주에는 살지 않는다. 아이누는 북해도, 사할린, 쿠릴에 살고 사모예드와 야쿠트는 북극권에 산다. 우대개는 누굴까?
“저들이 자기가 옛날에 고려인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였구나.”
“예, 전하. 허나 전조(前朝)는 그런 먼 북방 땅을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 서툰 말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잘못 전해진 게 아닐는지요.”
유담년이나 우대개나 모두 자기 말이 아닌 골간 말로 회견했으니 의사전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공산은 다분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진술이 사실인 것 같았다.
“경들도 알고 있겠지만, 고구려의 옛 장수였던 대조영은 발해를 세우고 자신이 고구려를 계승했다 주장했노라.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군주들은 당나라를 대할 때는 스스로 발해국왕이라 칭했으나 내부에서는, 그리고 왜를 상대할 때는 고려국왕이라고도 칭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 정도가 이 시대에 알려진 지식의 범주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현대까지 내려오기 전에 실전된 역사책들 중에 어떤 책이 지금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지 내가 알아야 말이지. 게다가 현대에 와서 밝혀진 사실 중에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을 거니까.
“부여주와 연해주 전체, 그리고 지금 명나라가 차지한 요동까지도 전부 발해가 차지한 강역이었다. 발해가 망한 뒤 그 지배하에 있던 말갈인들 중 거란에 귀부한 자들은 숙여진이 되고 합류를 거부한 자들은 생여진이 되었던 바, 그 우대개라는 자들은 생여진의 후예라 본다.”
발해가 망한지(926년) 6백년 조금 안 됐다. 그 정도 기간이면 막연하게나마 자기들이 한때 고려인이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신하들도 내 말이 수긍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 태조는 발해로부터 태자 대광현을 비롯한 유민들을 받아들이면서 삼한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전하께서 이번 원정을 기화로 하여 그보다 먼 북방에 남아 있던 옛 발해 백성을 거두시게 되었으니, 고려 태조가 이루지 못한 위업을 이루셨다 하겠습니다.”
임사홍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나를 칭송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네.
“실로 그러하다. 그 우대개라 하는 자들은 발해의 유민으로 우리 동포라 할 수 있으니, 장차 저들도 우리 백성으로 받아들여 보듬어야 하리라.”
연해주가 확고한 조선령이 되면 당연히 내 백성이 되겠지. 일단은 유담년을 다시 보내서 그 우대개라는 이들과 교역을 하며 주변 정세를 파악하게 하고, 거기서 북해도로 건너가는 길도 찾게 하자. 그 우대개가 말했다는 ‘바다 건너 섬’이 사할린인지 북해도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우현손과 유담년에게는 유귀국을 찾으라 했는데, 사실 유귀국이 있다는 땅은 분명 사할린이 맞는다. 신당서에 나오는 흑수말갈이 사는 땅에서 북동쪽으로 한참을 간다는 기록,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기록 모두 남부 사할린이라고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사할린은 춥다. 그리고 너무 멀다. 농사도 거의 불가능하다. 감자나 들어온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지만, 아직은 어업과 모피교역 거점 정도밖에는 가치가 없다. 그보다는 농사, 어업, 목축, 교역 모두 가능한 북해도 쪽이 훨씬 구미가 당긴다.
북해도에는 이미 일본인들이 도달하여 아이누와 교역을 하고 있을 거다. 마음먹고 나서면 그 시장을 빼앗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일본에 대해 원한이 많을 아이누들을 지원해서 북방에서 일본을 견제하는 동맹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토로 삼기는 무리고.
그러고 보니 북해도라는 지명도 다른 걸로 붙여야겠지. 북해도(北海道)라는 이름이 애초에 섬 이름도 아니고, 19세기에 일본이 행정구역명으로 지은 거니까 말이다. 그전에 일본에서는 에조치(蝦夷地)라고 부른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지금도 그렇게 부르지 싶다.
북해도 진출 말고도 이미 한 일, 앞으로 할 일들은 얼마든지 많다. 마음속으로 장래 계획을 세우면서도 조급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조선국왕 이융으로서 내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아홉 살,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말이다.
“전하, 평안도 관찰사에게서 급히 파발이 왔사옵니다.”
승정원에 남아 있던 동부승지였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요동도사에게 통보가 오기를, 4월에 육로로 칙사가 올 것이라 하였다 하옵니다.”
뭐? 칙사? 무슨 일로 칙사가 와? 지금 칙사가 올 일은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