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42
4부 026화(1642화)
30.
“즐거웠다. 다음에 또 나오자꾸나.”
“…..예…..”
밤 나들이를 끝내고 대궐에 돌아온 시각은 거의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였다. 직접 동행해 보고 나니 왜 태자가 내가 아침 문안을 갈 따마다 처자고 있는 날이 태반이었는지 확실하게 이해가 갔다. 실컷 술 처먹고 이 시간에 들어와서 자는데 어떻게 제시간에 일어나나. 나도 태손궁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잠자리를 준비하고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리던 송현승이 급히 시중을 들어주어 바로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잘 수는 없었다.
“뭐냐, 스승님들이 벌써 오셨느냐?”
“저, 그것이….대전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주상께서 저하를 부르신다고 하옵니다.”
송현승이 침상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해도 안 떴다.
“알겠다. 옷을 갈아입게 도와다오.”
“예, 저하.”
규칙을 어기고 나간 외출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그래도 며칠 정도는 여유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그런 건 없었다.
“너는 이 할아비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느냐!”
격노한 조부의 일갈을 들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망살 익위사 군관 놈들, 참 입도 싸구나. 어떻게 귀궐 하자마자 곧바로 조부한테 나도 나갔다 왔다고 일러바치냐? 그놈들이 일러바치지 않았으면 적어도 며칠은 조용히 지나갔을 텐데.
“내가 가끔 하는 문안 인사 외에는 애비와 상종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네게 몇 번이나 타이르지 않았느냐! 그런데 애비와 짜고 밤 나들이를 나가? 너희 부자가 제정신이 맞느냐. 지금! 너희가 나를 화병으로 죽게 하려고 작당한 것이 아니냐!”
조부는 길길이 날뛰었다. 아마 원래 역사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나무랄 때 혹시 이러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머리가 멍한 상태라 딱히 조부의 호통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거 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맨 정신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을 거다. 산전수전 다 겪고 공중전에 수중전까지 치른 나 아닌가. 아무려면 조부의 호통이 논살벌에서 내 귓가를 스치던 총탄과 화살보다, 빈에서 뒤집어쓴 튀르크군의 피보다 더 무섭겠는가. 혹시 불시에 당했다면 또 모르겠다. 멍하니 무릎을 꿇고 앉아 천둥과 같은 조부의 고함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데 한 가지 추궁이 문득 귀를 파고들었다.
“누구냐! 누가 주동하여 나가자고 하였느냐!”
“소손이옵니다.”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조부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는 게냐! 네 아비가 너를 꼬드겨 데리고 나갔을 것이 뻔한 일인데 어찌 거짓을 고한단 말이냐!”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거기 맞춰서 대답만 하라는 건가. 그럴 거면 나한테 질문은 왜 하는데? 내가 분명히 사실을 말하는데도 조부는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구제 불능 망나니인 태자가 나를 꼬드겨서 데리고 나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필시 그놈이 감언이설로 너를 꼬여서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제 책임을 피하려고 네게 지금처럼 네가 나가고 싶어서 나갔다고 말하게 시켰겠지! 자식이라면 마땅히 아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효라고 주장하면서!”
아무래도 조부의 머릿속에는 태자가 천하의 개새끼로 각인된 게 맞나 보다. 그리고 나는 그 개새끼가 버리다시피 한 아들이라 자기가 챙겨야 하는 존재고. 나는 잠에서 덜 깬 멍한 머리로 조부가 화내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조부는 내가 얼추 잠이 깰 때까지 태자를 욕하더니 어조를 바꿔 자애로운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못된 아비의 잘못’ 때문에 애꿎게 자식인 나한테 화를 낸 게 미안한 모양이다.
“…..네가 요즘 공부만 했으니 대궐 밖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했을 것이다. 태자가 꼬드기는 데 넘어간 것도 그 탓이리라. 허나 앞으로는 절대 네 아비를 따라 대궐을 나가선 안 된다. 차라리 내게 고하고 허락받은 뒤에 나가거라. 웬만하면 내 허락할 터이니.”
조부는 내가 외출할 때 호위를 맡을 인원으로 친위대에서 가장 우수한 인원들을 차출해서 따로 붙여주겠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추후 나를 정식으로 태손으로 책봉하면 바로 위종사를 설치하여 그 인원들의 소속을 위종사로 바꿔주겠다고도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할바마마.”
다른 대답을 할 게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조부가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우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다. 네 아비가 네게 못된 수작을 부리도록 놓아둔 이 할아비의 잘못이 크다. 앞으로 내가 더 잘 살필 터이니, 너는 문안을 올리는 외에는 절대 아비 곁에 가지 않도록 하여라. 끊을 수 없는 천륜만 아니었어도…..”
조부가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태자의 방탕한 행각 때문에 분통이 치밀 지만 그래도 차마 태자를 폐할 수도 없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한숨으로 표현되는 듯했다.
31.
실컷 야단을 맞고 돌아오니 김유근이 책을 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부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들은 김유근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하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폐하께서 그리 노하셨다니, 태자께서 당분간은 밤 외출을 삼가시겠군요.”
태자는 조부의 눈치를 절묘하게 살필 줄 안다. 근래에는 조부가 자기에게 대놓고 화를 안 냈으니 슬금슬금 외출을 늘렸지만, 어제 나를 데리고 나간 일로 조부가 생각보다 크게 화를 냈으니 이제 당분간은 납작 엎드려 있을 거라고.
“그만한 재간도 없었다면 태자 자리를 유지하지도 못하셨을 겁니다. 폐하께서 사생결단을 내셨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나저나, 어젯밤에 태자마마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김유근이 걱정스럽게 건넨 질문에 차마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태자와 나눈 대화에 대해 들은 김유근이 어떻게 반응할지 도저히 짐작이 안 갔기 때문이다.
“아버님. 작년 그 사고는….어찌 일어난 것입니까.”
큰맘 먹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슬이 한잔 들어가면 신이 나는 법이고, 그러면 신나게 달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말이건 마차건 말이다. 그전에도 그랬고 그 뒤에도 그랬지만 흉사가 터진 건 그날뿐이다.”
….음주운전이 그날로 처음도 아니었고 그날이 마지막도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래, 말이야 술 한 잔하고 탈 수도 있지. 말은 자동차랑 달라서 주인이 웬만큼 취했어도 알아서 가니까. 나도 술 먹고 말 타본 적 있다. 하지만 슬슬 걸었을 뿐이지 그따위로 질주하지는 않았다. 태자는 수시로 술에 취해 폭주 행각을 벌인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날 사고도 자기 탓에 터진 게 아니라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저리 태연하게 ‘사고가 난 건 그날뿐이었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본성은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한 거 전부 최소다. 이 상습 음주운전자 놈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고 싶은 것을 참느라 탁자 밑에서 빨대를 잡아 뜯었다. 보릿짚으로 만든 빨대가 완전히 먼지가 되어 바닥에 흩날리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날 저와 어머니를 왜 바로 찾아 들여다보지 않으셨습니까.”
“마부석에 서 있다가 십여 장이나 날아가 덤불 속에 내팽개쳐진 나도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했으니, 마차에 타고 있던 너희도 무사할 줄 알았지.”
1장은 10자, 대략 3미터다. 태자가 정말로 30미터를 날아갔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하지만 사고 현장에 태자비가 죽고 나는 겨우 살아난 걸 알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네 어미는 이미 죽었고, 너는 내의원에 실려 갔고, 나는 곧장 북한산성에 갇혔는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는 말이냐. 전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무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고, 너도 북한산성에 있는 내게 문안 한번 오지 않은 주제에 뭘 또 따지려고 드느냐.”
태자는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자기도 켕기는 부분이 있어선지 내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려면 내가 너와 네 어미를 죽이려고 일부러 술을 마시고 마차를 몰았겠느냐. 서로가 원해서 혼인하지는 않았으나 나와 살을 맞대고 살면서 자식도 넷이나 낳은 사이다. 당연히 나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렇게 미안했으면서 북한상성에 술과 기생을 들인 건 뭐냐. 그것도 슬픔을 잊기 위해서 했다고 할 셈인가. 하지만 차마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8세니까. 18세나 28세가 아니니까.
이 이야기를 김유근이 듣는다면 뒷머리를 잡을 게 뻔하다. 그래서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마포성당을 비롯한 마포 일대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장조께서 성당을 짓도록 허락하신 이유가 요새로 삼으려고 하셔서였다거나, 2백 년이나 묵은 오래된 시계점 이야기라든가, 금나라 성종이 마포 성당에 와서 묵은 적이 있다거나….같은 이야기들이었지요.”
성종(聖宗)은 부수가 받은 묘호다. 파포태가 일으킨 내란을 진압하고 준가르를 쳐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후금 내에서 천주교회의 교세를 넓히는 등 두루두루 업적을 인정받아 성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되었다.
“죄다 스승님께서 이미 들려주신 것들이었습니다. 별다르게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해주실 분도 아니고요.”
태자위에서 쫓겨나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공부만 하는 태자다. 그런 태자가 김유근보다 유식할 리 없지 않은가. 승마나 궁도처럼 몸 움직이는 일이라면 야 태자가 김유근을 압도하겠지. 하지만 학문처럼 머리 쓰는 일에서 태자가 김유근보다 나을 일은 없다.
“후금 성종이 다녀갔을 때 일이야 워낙 화제가 되었으니 태자께서도 잘 아시는 겁니다. 태조께서 이 나라를 여신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뭐가 처음 있는 일이냐고? 이미 언급하지 않았는가. 현재 보위에 있는 이웃 나라 군주가 처음으로 도성에 찾아왔던 일이다.
32.
내가 죽었을 때, 부수는 마침 심양에 와있었다. 심양에서 해안까지 부설한 심양선 철도가 완공되어 구경하러 온 참이었다고 한다. 구경을 마치고 상도로 막 돌아가려는 참에 부고를 접한 부수는 그대로 기차에 다시 올랐다. 그리고 바다에서 배로 갈아타고 한양을 향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내 장례에는 주변국 전체에서 조문객이 몰려들었다. 서나라 사신까지 왔을 정도니까. 사견이라는 전제를 두기는 했지만, 그때 서나라 사신은 내가 자기네 나라에 ‘재조지은을 베풀었다’라는 언급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사절들은 모두 일개 중신 아니면 군주의 형제, 조카, 사촌 같은 황족이었다. 군주 본인이 직접 달려온 사례는 후금에서 온 부수 한 사람뿐이었다.
유구 천안제 상경의 동생인 북곡왕 상철은 자기가 조문객 중에 가장 지체가 높다고 하여 무척 으스댔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우리 황실과 조정에 크게 로비하려고 했는데, 부수의 출현 때문에 엎어지고 말았다. 모든 주목을 부수가 쓸어갔으니까.
그때 영이는 고모부인 부수를 맞아 환영한 뒤 그동안 후금 사신들이 주로 머무른 서평관 대신 새로 지은 경희궁에 숙소를 준비하게 했다. 하지만 부수는 이를 거절하고 마포성당에 머물게 해주기를 청했다.
“그동안 장릉을 참배하러 온 후금 대패륵들은 모두 서평관에서 묵는 게 관례였습니다만, 성종은 그 관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옛 선조인 장조께서 첫 삽을 뜨신 성장에서 머무르고 싶다고 했지요.”
그것도 호화스러운 숙소가 아니라 소박한, 성당에서 숙식하면서 봉사하는 일반 신도들이 지내는 그런 방을 하나 달라고 했다. 자기는 장인어른의 장례에 참례하러 왔지, 호화스러운 여행을 즐기러 온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이런 소박한 모습을 본 우리 조야의 부수에 대한 평가는 한층 더 올라갔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바뀌면서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자연스레 즐기게 되었다지만, 선비다운 검박한 삶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관념은 여전했다. 부수에 대한 평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부수는 한양에서 지내는 동안 술루국 사신들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두 나라는 천주교가 국교라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었고, 십자가 군기를 내세워 이교도들과 싸운다는 점에서도 같았다. 비록 동아시아 세계의 남쪽 끝과 북쪽 끝에 이 ㅆ지만, 마음은 서로 통하는 셈이다.
영이는 이때 직접 방문한 부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증기기관 수출을 허용하면서 제일 먼저 후금에 최신 증기기관차를 넘겼다. 그리고 후금 내에서 철도가 부설되도록 도와주고, 나중에 그 노선을 우리 서북선과 연결하여 국제열차 노선을 처음 만들었다.
“현재 금나라로 가는 북방선은 양국 사이를 오가는 교역상품의 7할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생축(生畜), 가죽, 뼈, 불 따위를 실어 오고 소금, 차, 쌀, 포목 따위를 실어 보내지요. 과거 철도가 없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많은 물량이 오갑니다.”
화물만 오가는 게 아니다. 승객도 오간다. 우리가 소유한 철도는 북경과 상도까지 가지만 상도 북쪽, 북경 남쪽으로는 각기 후금과 청나라가 소유한 노선들이 펼쳐져 있다. 더 멀리 가고 싶은 승객은 북경과 상도에서 내려서 그쪽 열차로 환승하면 된다.
“왜 우리 열차가 후금과 청에 직통으로 들어가지 못합니까?”
“자기네 열차 사업을 보로하려는 조치지요. 우리 열차가 마음대로 자기네 땅을 왕래하면 그만큼 자기네 손님을 빼앗기지 않습니까.”
혹시 우리가 기차에 군대를 가득 실어서 기습적으로 들이밀까 봐 걱정하는가 했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그게 걱정이면 아예 국경에서 환승시키지, 상도나 북경까지 기차가 들어오게 허락하지도 않겠지. 일종의 시장 보호 조치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부수 이후로도 후금 대칸들은 천주교를 보호하면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준가르가 밀려난 뒤로 전쟁도 거의 없다. 가끔 벌이는 준가르 원정 외에 청나라가 후송과 싸울 때 지원군을 파병하고 전리품을 분배받는 게 아마 후금이 하는 사실상 유일한 군사적인 활동이리라.
“루스와 싸우지는 않습니까?”
“아시잖습니까. 루스는 유주에서 주변국들과 싸우는데 바빠서, 지난 백여 년 동안 동방에 와서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준가르 외에 다른 나라들과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요.”
그렇지. 준가르. 그놈들은 양쪽에서 치인 끝에 거의 망했다. 안쓰럽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