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43
4부 027화(1643화)
33.
준가르는 중종 시절에 건주 연합군에게 공격받아 큰 타격을 입었다. 그 뒤에 남은 영토를 추슬러서 재기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특히 카자흐와의 사이가 나빠진 게 가장 좋지 않았다. 다른 강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준가르의 연이은 공격에 견디다 못한 카자흐는 서쪽에 있는 다른 강국, 러시아에 사절을 보내 보호를 청했다. 러시아 역시 카자흐를 공격해오는 적이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러시아가 낫겠다는 심산이었다.
“당시 루스는 서쪽으로 영토를 넓히기가 어려워지자 대안으로 서역 땅을 노리고 원정군을 보내 세력권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원조 요청을 받자 얼씨구나 하고 군대를 보내 준가르와 맞붙었지요.”
표트르 1세 이래로 러시아는 콘스탄티노플 ‘탈환’을 국가적 목표로 삼았다. 자신이야말로 로마의 계승자라는, 그 자부심이 이런 목표를 세우게 했다. 물론 내가 표트르에게 바람을 넣은 영향도 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목표는 그리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은 아직 러시아와 맞설 만한 힘이 남아있었고, 이를 얕보고 덤비던 표트르가 프루트강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적에게 포로로 잡힐 뻔하기도 했다.
발칸 반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진격은 지지부진했다. 오스만 측의 저항도 만만찮은데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처럼 쉴 사이 없이 벌어지는 서유럽 쪽 전쟁에 러시아도 자꾸 말려들다 보니 남진에 쏟을 힘이 더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서쪽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서쪽에 있는 폴란드는 공주인 예카테리나가 왕비로서 다스리고 있었기 매문이다. 당시 차르였던 표트르 2세는 남매간의 싸움은 절대 안 된다고 붙드는 모후 루시아 때문에 폴란드에 손을 대고 싶어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대신 눈을 돌린 방향이 동쪽이었다. 하지만 시베리아 방면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표트르 2세의 눈길이 향한 곳은 중앙아시아, 더 정확히 말하면 서투르키스탄이었다.
“북변에서는 기축변계조약으로 우리와 국경을 정했으니 이를 어길 수 없을뿐더러, 만약에 차르가 탐욕에 불타 조약을 깨고 싸우고자 한다 해도 어찌 모후가 그대로 두었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모후인 수빈공주는 중종께서 사랑하는 딸이셨으니, 자손이 참람하게 패역을 저지르도록 놓아두실 리가 없지요.”
러시아가 시베리아에서 우리를 공격한다…..정말 미쳤다는 소리밖에 안 나올 일이다. 양국 황실 간의 혈연은 둘째치더라고, 군사적으로도 무리다. 우리 방어선을 돌파할 만한 대군을 우리 모르게 이르쿠츠크에 모으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만약 국경을 넘어 침입한다고 하면 이들을 막아설 우리 북방군 현역 병력만 따져도 10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 속오군이 추가되면 백만 대군이 우습게 편성된다.
“여기서 싸워 이기자면 루스도 백만 대군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군사를 어찌 그 동토(凍土)를 지나 이 동방까지 보내고 또 치중을 조달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러시아의 국력으로 보면 백만 명의 병사를 동원하는 것 자체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군을 동방으로 보내서 전쟁을 시작하고 싶으면….일단 시베리아 횡단철도부터 제대로 놓여야지, 아직은 도저히 무리다.
“그러니 루스 차르가 서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군요.”
“그렇습니다, 저하. 서역을 얻음으로써 비단길을 얻고, 이로써 육로를 통해 아주와 유주를 잇는 모든 길을 손에 넣고자 하였지요. 심지어 천축으로 가는 길까지 말입니다.”
‘비단길’이라는 용어는 본래 19세기 말에나 처음 나왔다. 유럽 지리학자들이 동서양 간의 교류를 연구하던 중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그 단어의 기원이 내가 되었다. 장조 시절, 서역을 오가는 육상 교역로를 지칭할 때 무심코 ‘비단길(絹錦之路)’이라고 불렀었다. 몇 번 그랬더니 그 표현이 어느새 역사 용어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비단길을 장악하고자 노리고 있었으니, 카자흐 칸들이 보낸 구원 요청은 차르에게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습니다. 당장 카자흐의 여러 칸에게서 복속하는 맹세를 받고 군대를 보내주었습니다.”
러시아군이 무슨 일당 천이라서 나타나자마자 준가르를 박살 낸 건 아니다. 이들은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준가르 기병대를 상대로 진지전을 펼쳤다. 러시아도 그동안 준가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놈들의 약탈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전적이 있는 탓이다.
러시아군이 세심하게 구축한 보루는 준가르 기병대의 침입을 확실히 막았다. 러시아군은 점차 보루의 숫자를 늘이면서 계속 준가르 세력을 서투르키스탄 일대에서 몰아냈다.
“적이 서쪽에만 있었다면 준가르도 버텨냈을지 모릅니다만, 양면에 적이 도사리고 있으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가 준가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안 건주 양국도 동쪽에서 준가르 공격을 재개했다. 준가르로서는 사면초가였다.
“서역 땅은 애초에 남의 것이니 빼앗겨도 별 상관없었지만, 건주와 인접한 와라부 지역은 준가르의 본거지라 도저히 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족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지요.”
와라부(瓦刺部)는 본래 서부에 거주하는 몽골계 부족인 오이라트족을 의미한다. 준가르, 호쇼트, 칼뮈크 등이 모두 오이라트의 후예다. 하지만 요즘 대한에서 ‘와라부’라고 지칭하면 이 오이라트 부족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는 지명으로, 오이라트가 차지했던 몽골 서족의 중가리아 땅을 가리킨다. 현대 중국 지명으로 하면 대충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구 지역을 가리킨다고 보면 맞는다.
“30여 년에 걸친 싸움으로 준가르는 서역에서 완전히 밀려났습니다. 지금은 와라부 땅만 겨우 지키고 있지요. 그리고 루스인들이 부쩍 그 세력을 키웠습니다.”
표트르 2세가 시작한 중앙아시아 진출은 알렉산드르 1세, 표트르 3세로 내려오면서 계속 이어졌다. 서투르키스탄 지역의 여러 칸과 족장들은 준가르에 맞설 힘을 빌리느라 러시이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카자흐, 키르기스 등의 튀르크계 부족들이 모두 넘어갔다.
이 부족들은 아직 러시아에 완전히 합쳐지지는 않았다. 현재는 차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병력을 제공하는 봉신국에 가까운 신세들이다. 하지만 이번 세기 내에는 이놈들도 러시아의 손에 들어가 완전히 무릎을 꿇게 되리라.
벵골 칸국이 보충병을 비교적 간단히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중앙아시아가 이처럼 전화에 휘말린 탓이 컸다. 러시아와 건주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아 밀려난 준가르인과 러시아에 대한 반발 등 갖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난 다른 여러 부족 전사들이 벵골까지 흘러간 거다.
“이제 보나파르트 전쟁도 다 끝난 지 오래인지라, 여유가 생긴 루스인들이 다시 동방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는 아직 알 수 없고요.”
준가르는 영토가 줄어들며 가난해진 데다 내분까지 극심해지며 옛날의 그 기상을 잃었다. 건주 양군이 유희 삼아 벌이는 약탈원정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정도다. 건주 양국이 굳이 정복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기에 존속하고 있을 뿐이다. 김유근은 러시아가 준가르를 공격해서 완전히 멸망시키기보다는 남쪽의 인도를 향해 손을 벋치리라고 보았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남하하리라는 건데, 이는 합리적인 예측으로 보인다. 원래 역사에서의 러시아도 그랬으니까.
“태손께서는 루스가 그런 대국이 되어도 좋다고 보십니까?’
“….루스가 너무 강해지면 우리 대한을 넘볼 수 도 있으니, 그 국력이 지나치게 강해지지는 않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러시아는 우리와 육지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다. 지금이야 러시아가 우리한테 전쟁을 거는 게 말도 안 된다지만, 인도까지 진출하며 국력을 키운 러시아가 시베리아 개발에 나선다면 장차에는…..장조 시절에 꿨던 내 그 악몽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참호선 속에서 러시아군 포격을 맞으면서 상희와 해후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황실과 러시아 황실 사이에서 피가 섞였던 것도 이미 4대 전 이야기다. 지금 차르인 알렉산드르 2세 –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들 – 는 루시아의 현손자니, 조부와 촌수를 따지면 무려 10촌 관계다. 내 항렬로 내려오면 14촌이다. 이게 무슨 친척인가. 그냥 남이지.
후금이나 청나라는 촌수가 더 멀지만, 그래도 그쪽은 심왕부를 중심으로 관계가 지속되고 있으니 경우가 다르다. 번갈아 가며 심왕부와 혼사를 맺는 식으로 혈연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 우리는 주로 황실의 처가나 외가 쪽 조카를 봉작해서 보낸다.
“천축에서는 잉글국의 주도권이 확고하게 잡혀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지원을 받는 벵골 외에 다른 지역에 있는 토후국들은 대부분 잉글국 동인도회사의 제어를 받고 있으며, 이제 다른 나라가 파고들 틈은 없다고 하셨지요.”
어떻게든 역전해 보려고 기를 쓰던 프랑스는 동인도회사도 나가떨어졌다. 7년 전쟁 당시에 벌어진 몇 차례 전투는 모두 영국과 친영 토후국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제 프랑스는 인도에서 순전한 교역 거점으로 퐁디셰리 하나만 보유하고 있다.
마라타 동맹도 완전히 무너졌다. 마라타 동맹에 속했던 마지막 번왕국이 5년 전에 영국에 항복하면서 인도 중남부 전역이, 실론까지 포함해서 영국의 세력권이 되었다. 영국이 벵골 외에 아직 제압하지 못한 주요 세력이라고 하면 북부의 시크 왕국 정도다.
영이나 선이, 조부는 영국이 인도를 장악하는 데 별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일단 우리가 벵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큰 관심이 없었고, 영국도 괜히 우리 세력권인 벵골을 건드려서 우리와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건 인도 대부분이 이미 영국의 손에 들어갔고, 조만간 벵골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영국이 차지하게 될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장악하면서 남진했을 때 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지도 뻔한 것이고. 다만 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까지 이야기하면 내가 너무 똑똑해 보일 것 같으니 말이다. 다행히 김유근이 먼저 그 이야기를 했다.
“잉글인들은 수백 년에 걸쳐 천축을 한 조각씩 점유해 왔습니다. 그러니 루스가 남진하면 그동안 노력해서 거둔 노획물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 앞을 막아서겠지요. 태손께서는 장차 잉글국과 루스가 서로 싸울 때 이 대한을 어떻게 이끄실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셔야 합니다.”
친영이냐, 친러냐, 중립이냐, 우리는 셋 중에 뭐든지 선택할 힘이 있다. 양국 본국과 한참 멀리 떨어진 거리에다 충분한 국력까지, 국제 정세도 원래 역사와 미묘하게 차이가 있으니, 상황을 보면서 고려해보자. 어차피 내가 보위에 오르려면 30년은 걸릴 거 아닌가.
34.
며칠 전 태자와 함께 밤 외출을 했을 때, 조부는 나를 불러들여서는 엄청나게 화를 냈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다시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모드로 돌아와서 내가 마음에 상처라도 입었을까 봐서 달래주고 위로도 해주었다.
“호위도 태자와 별도로 따로 붙여주겠다고 했지. 그런데, 그건 좋은데…..”
친위대에서 정예병들을 차출해서 보내준다더니, 그 병력이 지금 도착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참령 계급장을 단 지휘관 한 명, 병사 30명. 지휘관은 볼내공 디에고였다. 저번에 강무에서 내 안내를 맡았던 술루국 왕자 말이다. 디에고는 왕자기는 하지만 지금 국왕 아우구스틴 1세의 아들은 아니다. 선대인 4대 국왕 펠리페 1세의 3남으로, 아우구스틴 1세의 동생이다. 본래 볼내공은 둘째 왕자에게 하사하는 작위지만, 둘째였던 산티아고가 요절해서 늦둥이로 태어난 디에고가 볼내공이 되었다.
사실 디에고는 먼저 태어난 형제들과 나이 차이만 크게 나는 게 아니다. 스페인계 혈통인 왕비를 먼저 저세상에 보낸 펠리페 1세가 한인 혈통인 후비(後妃)를 들였는데, 디에고는 이 후비 소생이었다. 3대에 걸쳐 피가 섞인지라 외모는 한인과 별로 다르지 않다. 덧붙여 말하자면, 술루국 왕실은 지금도 스페인식 이름과 한국식 이름을 별도로 짓는다. 디에고의 한명(韓名)은 이계진, 지금 국왕인 아우구스틴 1세의 한명은 이계성, 술루국에서 스페인계 왕비를 처음 들인 국왕이었던 선대 국왕 펠리페 1세의 한명은 이홍일이다.
“폐하께 저하의 호위를 명받았습니다. 앞으로 숙위병들과 함께 태손궁에 머물면서 저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아들 디에고의 현손인 디에고는 나한테는 11촌 숙부가 된다. 촌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도 열다섯 살이나 많은지라, 마구 편하게 대하기는 좀 어렵다. 아니, 디에고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디에고의 뒤에 늘어선 군사들이었다.
“볼내공께 묻겠습니다. 지금 뒤에 거느리신 군사들이 저를 호위하라고 할바마마께서 뽑아 보내신 군사들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하, 저하의 신변에 어떤 위해도 벌어지지 않도록, 폐하께서 세심히 고르신 군사들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냐고? 그건 간단하다. 조부가 친위대에서 선발해서 보냈다는 호위병들이 전원 순혈 한국인이 아닌 외국계 군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쉽게 볼 수 있는 흑룡군이나 백룡군도 아니었다. 내 눈앞에는 덕대가 범강장달이 같은 하와국 군사 서름 명이 몸에 꼭 맞는 새 군복을 차려입고 절도 있게 늘어서 있었다!
아니, 디에고 한 사람만 붙였으면 내가 말도 안 한다. 이 눈에 확 띄는 인간들을 데리고 외출을 나가라고? 누가 보기만 하면 내가 바깥에 나온 줄 한눈에 알아볼 텐데? 이게 외출을 나가라는 거야, 나가지 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