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50
4부 034화(1650화)
10.
나폴레옹의 멕시코 원정은 이베리아 원정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정복당하는 상대방이 스페인어를 쓴다는 사소한 공통점에서 시작해서, 수도로 진격해서 나라를 무너뜨리기 까지는 쉬웠는데 그 뒤로는 게릴라를 상대로 한 지루한 토벌전이 이어졌다는 부분까지 말이다.
나폴레옹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멕시코는 스페인보다 여덟 배쯤 넓으며, 국토에서 황량한 고지대와 황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나폴레옹이라 하더라도 겨우 7만 명으로 이 넓은 멕시코 전역을 통제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폴레옹이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카리부만 연안을 따라 진격해서 멕시코 황제 아구스틴 1세를 멕시코에서 축출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뒤로 2년이 더 걸렸어도 멕시코 전토를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다. 넓어도 워낙 넓으니까. 지금 나폴레옹은 베라크루스, 탐피코, 마타모로스 등의 주요 해안 도시를 거점으로 삼고 동맹으로 합류한 틀락스칼텍 지방의 지원을 받아 멕시코 동부 지역을 통재하고 있다. 수도 멕히코시티도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서부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아구스틴 1세였다면 바로 그 서부에서 나폴레옹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며 시간을 끌었을 거다. 하지만 본래 스페인군 사령관 출신인 아구스틴 1세는 나폴레옹의 이름 때문에 겁을 먹었는지, 결사항전이 아니라 망명을 택했다. 방치된 멕시코 서부 지역에서 빚어지는 혼란이 우리 남미주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섣불리 개입하기는 어렵다. 나폴레옹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우리 미주군 따위는 풍비박산이 날 게 뻔하니까.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병력을 동원하는 건 쉽다. 8백만 미주 인구를 기반으로 속오군만 모아도 80만은 간단히 나오고, 대붕영 2만을 포함해서 지원군 5만 명쯤 파견하는 건 딱히 어렵지 않을 거다. 중종 때와 비교하면 수송 능력도 훨씬 늘었으니까. 하지만 머릿수는 멕시코에 있는 나폴레옹도 확보할 수 있다. 누벨 프랑스 제국군이야 7만 명뿐이라지만, 왕당파 세력을 제대로 포섭한다면 수만 명은 족히 넘는 병력을 보조부대로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지휘관은 나폴레옹이 아닌가! 누가 나폴레옹에 맞설 수 있지?
멕시코는 우리에게 낯선 땅이다. 그 먼 곳에서, 강행군에 지친 우리 병사들이 나폴레옹을 상대로 과연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나폴레옹 휘하에 있는 베테랑 장병들은 20년 동안 전 유럽을 누비면서 싸워왔는데, 우리 미주 속오군 따위가……말을 말아야지.
이런 걸 보면 나도 아구스틴 1세만큼이나 나폴레옹에게 겁을 먹고 있긴 하구나.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내가 날고 기어도 방어전도 아니고 외부로 나간 원정에서 나폴레옹과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걸. 게다가 미국도 나폴레옹 편인 거다. 정식 참전은 안 할지 몰라도 미국이 카리브해를 통해 물자와 의용병만 공급해줘도 나폴레옹 측의 상황이 전혀 달라지고 우리는 힘들어진다.
상황이 이러니 멕시코에 개입해서 대규모 전쟁을 시도하는 건 그다지 현명한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니만큼 일단은 외교교섭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조부가 두 번째로 나한테 내민 질문에도 그렇게 답했다.
“보나파르트와 외교 교섭을 시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냐?”
“신불랑국에는 신서반아 전역을 확고하게 제압할 군대와 문자가 없습니다. 신서반아에서 새롭게 보조병을 모집한다고 해도 광대한 신서반아 전역을 통제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지금 멕시코 제국은 현대의 멕시코에 텍사스를 비롯한 미국 남부지방 여러 주까지 덧붙인 광대한 나라다. 나폴레옹한테는 이 넓은 땅을 통제할 병력이 없을 수박에 없다고 조부에게 설명했다.
“보나파르트는 유주에서 그랬듯이 신서반아에서도 일부 영토는 자기 땅으로 돌일 겁니다. 최소한 테하스주 정도는 신불랑국에 편입하겠지요. 나머지 지역은 유주에서 한 것처럼 일단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자기 속국으로 삼아 통제하려고 들 겁니다.”
텍사스(Texas)가 원래 스페인어로 ‘테하스’다. 프랑스어로도 적당히 텍사스라고 읽어주면 된다. 뭐 앞으로 나한테는 편하게 됐군.
“어떤 요구를 내세워서 교섭한다는 말이냐?’
“신서반아 내에서 일어난 혼란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도 혼란을 진정시키는 일을 돕고 싶다고 제안하는 겁니다. 그러면 별다른 충돌 없이 합의에 다다를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개입하기는 해야 한다. 저쪽에서 먼저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다면야 나설 명분이 없겠지만, 혼란이 길어지면서 도적놈들이 우리 변경을 건드리고 있다지 않은가. 우리한테는 나폴레옹이 멕시코 전역에 평화를 가져올 대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멕시코 전역이 누벨 프랑스에 편입되거나 그 보호령으로 들어갔을 때 그놈들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도 문제다 북아메리카 중앙부만 해도 작은 세력이 아닌데, 거기에다 멕시코까지 더한다고? 그건 균형이 너무 안 맞잖아? 그러니 우리도 개입해서 멕시코 북서부 일대를 평정해서 남미주 연변의 안전을 확보하고, 해당 지역을 우리 세력권으로 삼아 완충지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게 우리가 얻어야 하는 최소한이다.
하지만 이게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그래서 나폴레옹과 먼저 교섭부터 해서 상호 간에 충돌이 있어나지 않도록 합의를 마친 다음에 병력을 보내자는 거다. 평정할 구역에 관해 합의를 보고, 우리가 맡기로 한 구역을 차분하게 정리하면 된다.
“좋은 의견이나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이제껏 신서반아의 유일한 주인은 서반아 국왕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우리가 신서반아에 군대를 보낸다면 서반아에 전쟁을 선포하는 셈이 되지 않느냐?’
“본래 서반아 국왕에게는 신서반아의 도적들이 우리 땅들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일단은 저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 유감을 표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 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겠다고 통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스페인 정부는 지금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자력구제에 나설 수밖에. 그리고 스페인 정부에는 일종의 위자료 삼아 마리아나 제도 구입 대금을 두둑하게 치러주면 되리라고 본다. 내 이야기를 들은 조부가 반문했다.
“평정을 마친 뒤에는 어쩔 셈이냐?”
“그대로 놓아두면 또 도적이 설칠 수 있으니, 우리 군사가 주둔하게 해서 꾸준히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상 나폴레옹과 함께 멕시코를 분할하자는 이야기다. 우리 미주를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벨 프랑스가 너무 커지지 않게 하려고.
“다만 눌러앉을 수 있는 명분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서반아 본국으로부터 매입할 수도 없는 일일 테고요.”
“네 말이 옳다. 네 식견이 참으로 놀랍구나.”
선택지는 몇 가지가 있다. 멕시코 제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나푤레옹이 멕시코 제국의 보호자임을 인정함으로써 우리가 맡은 구역의 관할권을 두고 나폴레옹과 교섭하든가. 호세 페르난도 2세에게 돈을 쥐여주고 땅을 사버리거나.
전자는 ‘모국이 인정하지 않은 독립국을 승인하지 않는다’라는 우리 외교 원칙이 깨진다. 후자는 ‘구대륙의 열강이 신대륙의 독립국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나폴레옹-먼로 선언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당연히 후자가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나폴레옹과 짜고 멕시코를 나눠 갖는다고 스페인 정부가 난리를 치건 멀건, 놈들이 우리한테 해를 끼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희망봉이나 혼 곶을 돌아 우리를 공격할 함대를 파견할 것도 아니고.
“문제는 간단하다. 서반아 국왕이 그만 포기하고 맥고국이 독립국이라고 인정하면 만사가 깨끗하게 풀리지 않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합의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는 호세 페르난도 2세가 어떤 성격인디고 잘 모르는걸. 내가 지금 거의 130년을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족 세상에서는 이제 겨우 5년을 살았다. 이쪽 세상에서 몇 십 년씩 산 사람들보다 아는 게 적을 수밖에 없다. 내 대답을 들은 조부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기한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뜻인지, 그저 단순히 내가 대견하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대답이 자기 뜻과 일치한다는 반응이기는 했지.”
조부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내 답을 듣고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조정 중신들과 논의해서 얻은 것과 같은 대답을, 누구랑 따로 논의하지도 않았을 내가 수월하게 내놓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잘하면 편해지는 게 아니라 더 힘들어지는 이놈의 팔자…..”
어제 조부를 만났을 때 일을 생각하다 말고 그대로 뒤로 드러누워 한숨을 쉬었다. 젠장, 황태손이라면 당연히 걸어야 하는 길인 줄 알기는 하는데 뭣 같기는 하다.
“그나마 서반아 국왕한테 식민지를 포기하라고 설득하러 보내지지는 않을 테니 다행이지, 다행이야.”
아무리 조부가 내 대답에 만족했더라도, 이제 겨우 만으로 11세인 나를 유럽에 보내지는 않으리라. 정식으로 책봉한 황태손이라는 귀한 몸인데다, 아직 결혼도 안 하고 후사도 없지 않은가. 스페인에건, 누벨 프랑스에건 사신으로 가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닐 거다. 그러니 나는 이 집경당에 앉아 책이나 읽어야지. 아, 머리 좀 식힐 겸 그거나 읽을까.
몸을 돌려 책장 구석에 숨겨둔 무협지를 꺼냈다. 구대검협전(九大劍俠傳),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줄거리는 명쾌하다. 아홉 명의 협객들이 최고의 검객을 가리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 온갖 모험을 겪으면서 우열을 가린다는 참으로 신나는 모험물이다. 주인공 아홉 명 전부 검을 쓰다 보니 비교가 너무 단순한 게 아닌가 싶지만, 기본이 되는 검법에서 일단 차이가 났다. 그리고 주연들의 개성 면에서도 확연히 구분되는 특색이 있게 설정해놓아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표지에 표기된 저자 이름은 백산대인(白山大人)이다. 외조부인 김조순이 소싯적에 썼다는 오대검협전(五臺劍俠傳)과 제목이 흡사해서 백산대인이 혹시 김조순의 필명이 아닌지 조금 의심해보기도 했는데, 제목을 베끼는 사례가 워낙 많으니 다른 적자가 썼을 수도 있겠다.
에휴, 김조순이 안 썼으면 어떠냐. 재미만 있으면 되지.
11.
태자비는 그새 또 셋째를 임신했다. 태자 이순은 그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대는 참으로 복덩어리요. 이리 매년 소생을 보니 말이오. 더구나 생산을 마친 이후에도 몸이 아이를 낳기 전과 다를 바 없으니, 이는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요. 참으로 좋구려.”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태자마마.”
태자비 박씨는 얌전하게 고개를 숙였다. 태자는 박씨가 자기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 않고 늘 순종적인 태도로 태하자 무척 만족해했다. 효비(孝妃)로 봉해진 전 태자비 김씨가 전에 자기에게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지 늘어놓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이 나라의 태자요. 그렇다면 힘들고 피곤할 때 잠시 여색을 즐기면서 쉴 수도 있는 것을, 효비는 꼬박꼬박 지적하며 잔소리하기 일쑤였소. 이는 곧 투기이니, 칠거지악이오. 내 그대는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아서 아주 좋구려.”
“송구하옵니다. 신첩은 그저 지어미로서 지아비를 편안하게 모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옵니다.”
태자비가 발그레 웃음을 짓자 태자가 껄껄거리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품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옻을 칠한 칠보를 아로새긴 고급스러운 보석 상자였다.
“자,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오. 받으시구려.”
“어머나, 홍옥 반지가 아니옵니까! 팔찌에 목걸이까지1”
상자를 연 태자비가 감탄을 발했다. 태자가 미소를 지으며 태자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대는 명색이 이 나라의 태자비 아니오. 그 정도 패물은 갖춰야지.”
“감사합니다, 전하. 정말 고맙습니다.”
입이 귀에 걸린 태자비가 태자의 어깨를 열심히 주물렀다. 곧 태자가 코를 골기 시작하자 태자비가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옆에 내려놓았던 상자를 다시 열고 황홀한 표정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금으로 세공한 장신구와 거기 박힌 핏빛보석의 광채가 눈을 어지럽혔다.
“그래, 이거지….이거야.”
태자비가 되어 동궁에 들어온 지 어느덧 3년을 넘겼다. 태자비는 그동안 남편인 태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태자는 여색을 좋아했다. 그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늘 주 의해야 했다. 피부는 백옥과 같아야 하고 눈은 영롱해야 하며 허리는 버들가지 같아야 했다. 못생겨지고 살이 찌면 바로 태자의 눈 밖에 난다. 그렇게 해서 동궁 뒷방에서 홀로 지내는 후궁이 이미 몇이던가.
태자의 눈에 들기만 하면 부와 권세가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시아버지인 임금께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계시니 어렵지만, 태자가 보위에 오르기만 하면 친정 가문까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를 터였다. 중전의 진가인데 뭐를 못 하겠는가.
태자가 아낌없이 내려주는 패물도 박씨를 행복하게 했다. 박씨의 집안은 경화사족이기는 했으나, 그다지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 백성들과 비교한다면 훨씬 넉넉한 형편인 건 맞다. 하지만 이런 패물을 마음껏 가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조부인 박지원부터가 둘째 아들이라 재산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축재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박씨의 부친 박종선은 조부의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재산도 별로 받지 못했다. 당연히 딸이 원하는 만큼 패물을 사줄 수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뭐든지 참으면서 살아야 했던 박씨는 완전히 바뀌어버린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궁중에서 지켜야 하는 예법이나 도리 같은 것들이 힘겹다가도 보석함 속의 패물들만 생각하면 그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요즘은 다른 욕심도 생겼다. 분명 패물은 지금도 많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지금 있는 전 태자비 김씨 소생인 태손 이진 대신, 자기가 낳은 장남 이용이 보위에 오르면 더 많은 재물을 자신은 물론 친정에까지 챙겨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태자가 며칠 전 얼핏 말한 것처럼, 태손을 바깥으로 보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