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52
4부 036화(1652화)
14.
태자에게도 측근은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다음 보위에 오를 사람은 태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품행에 문제가 있고 그것 때문에 부황에게 질책도 많이 받지만, 태자가 보위를 계승할 거라는 예측을 부정하는 자는 없었다. 금상은 섭생에 신경을 많이 쓰고 보약도 적절히 챙겨서 먹는다. 덕분에 나이에 비해서는 분명 건강한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다. 도술을 익혀 반로환동(返老還童)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건 분명했다.
길어야 10년, 짧으면 3년….아니, 당장 올해 겨울에라도 쓰러질 수 있는 게 주상의 나이다. 당연히 그다음으로 보위에 오를 사람인 태자 주변에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다. 부와 군세가 쏟아질 원천에, 부와 권세에 목마른 이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태자는 다음 임금이 내릴 은총을 노리고 자기 옆에 달라붙어 꼬리를 흔드는 아첨꾼들의 속셈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런 자들을 적당히 자기 옆에 두고 약간의 재물과 장래에 대한 희망으로 마음껏 조종했다. 술이나 여자, 사냥을 즐기러 다닐 때도 이들을 대동했다.
“어차피 그런 소인배들은 나랏일을 제대로 맡아 처리할 만한 놈들이 아니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전하.”
물론 옆에 둔 자들 모두가 그런 머저리들은 아니다. 태자가 다음 임금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결과임을 인정하고, 태자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임금이 되도록 인도하려고 애를 쓰는 이들도 있다. 태자도 이 두 부류의 신하들을 명백히 구분해서 대했다.
첫 번째 부류는 자기 앞에 바짝 엎드려 아부하는 모습을 즐기며 만족감을 얻는 데 썼다. 이들은 어느 기루에 예쁜 기생이 들어왔다거나 천하제일의 명마가 시장에 나왔다는, 그런 소식을 누가 먼저 태자에게 전하느냐를 두고 겨루었다.
두 번째 부류는 존중했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는 않았으나 하는 말을 점잖게 듣기는 했다. 그들은 태자의 이런 태도에서 태자가 언젠가 행동거지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얻고 다소나마 안도했다. 신하들로서는 기왕이면 세상에서 존경받는 임금을 모시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이들은 태자가 조금이라도 행동을 고쳐 최소한 욕은 안 먹게 되기를 바랐다. 과거 태자의 큰 외숙부 윤시현이 한 말이 이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옛날 중종께서도 나이가 들고 난 이후에야 군자의 도를 알고 있음을 보이셨습니다. 분명 전하께서도 그러실 수 있으심을 신들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윤시현은 임금의 처남이지만 순전한 실력으로 출세했다. 공무대신ㆍ육군대신ㆍ내무대신 등 대신 자리만 세 번이나 역임한 명신으로서 지금은 중추원 판사로 재직하는 중이다. 태자를 옹호하는 중신 중에는 그 말고도 태자의 외가인 파평 윤씨 가문 사람들이 여럿 있다.
파평 윤씨로서는 자기들이 권세를 쥐기 위해서라도 태자를 어떻게든 제대로 된 임금으로 세워야 했다. 물론 머저리라고 해도 임금 노릇은 할 수 있다. 외척들이 쥐고 휘두르기에도 그런 임금이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모양새는 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은 성친왕 시절의 중종과 비교하면 그래도 태자가 낫다고 자위했다.
동몽선습도 떼지 못했던 성친왕과는 달리 태자는 그래도 사서삼경을 서툴게 나마 익혔고, 장난 때문에 도성을 몇 번씩이나 뒤흔들었던 성친왕과 달리 놀이를 즐기면서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친왕 시절의 중종보다는 태자가 나았다. 그래서 이들은 희망을 품고 태자를 보필했다. 부디 태자가 정신을 차리기를, 그리고 이미 태자를 포기하고 태손에게만 관심을 쏟는 임금과 화해하기를 바랐다.
“그 바람에 부응해주고 싶기는 하지만.”
태자가 술잔을 기울이며 빙그레 웃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거든.”
지금 태자의 눈앞에 있는 이는 첫 번째 부류였다. 돈과 권세를 얻으려고 태자를 추종하는 이들 중 하나 말이다. 이들이 권세를 원하는 건 나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자기 마음껏 위세를 부리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한다. 이 거대한 나라는 그렇게 놀고먹는 사람 몇 명 정도는 충분히 부담할 여유가 있지 않은가.
물론 태자 앞에서 대놓고 그런 소리를 지껄일 만큼 뻔뻔하게 굴지는 않는다. 말로는 장차 대한을 위해 대업을 이루리라고 호언장담하곤 한다. 지금 태자의 앞에 마주 앉아 독대중인 외사촌이자 술친구, 윤원성 역시 마찬가지다.
“조정 일이야 폐하께서 거느리시던 중신들에게 맡겨두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노력해도 그보다 더 좋은 이들을 뽑아 일을 맡길 수도 없을 테고.”
“옳으신 말씀입니다.”
연신 맞장구를 친 윤원성은 벙글거리면 태자의 잔에다 술을 따랐다. 모처럼 둘이 속내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기에 기생은 아직 들이지 않았다.
“나랏일은 할 의사가 있고 잘할 능력이 있는 이에게 맡기면 그만이지요. 전하께서는 일이 되어가는 꼴을 보시고 그 결과에 따라 잘한 자에게는 상을, 못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면 임금으로서 할 일은 다 하시는 겁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윤원성 역시 머리는 제법 잘 돌아가지만, 타고난 성정이 게으르고 요행을 바랐다. 하도 놀다 보니 대과에 붙기는커녕 문음취재(門蔭取材)를 통과하지 못해서 문음(門蔭)으로 주어지는 벼슬도 받지 못했고, 집안 배경 덕분에 받은 대가(代加)로 정7품 무공랑(務功郞)을 하나 받아 양반입네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촌형인 태자가 보위에 오르기만 하면 그에게도 엄청난 재물과 권세가 주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윤원성은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태자의 옆에 붙어 온갖 수발을 다 들면서 수족 노릇을 했다. 그의 부친 윤시현은 인생에 오점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실패한 일이 세 아들 중 막내인 윤원성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태자는 자기를 잘 따르는 윤원성을 칭찬하며 추켜세웠다.
“자네 공적은 내 잊지 않음세. 자네가 경전 공부는 좀 부족할지 몰라도 남들보다 뛰어난 창의성과 재치가 있니 않은가. 그런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무조건 경전만 외워야 하는 과거시험이 잘못된 거지. 어찌 그깟 시험 때문에 지네를 무능하다고만 보겠는가.”
태자는 옛날 중종의 총신이던 권훤을 언급했다. 과거를 보지 않아서 세간에서 무과대장군(無科大將軍)이라고 불렀으나 능력으로 출세하여 우참정대신까지 오르고 무묘에까지 배향된 명장이다, 태자는 윤원성에게 너도 권훤처럼 출세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부추기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 새 처가인 반남 박씨는 영 태도가 마땅찮군. 처숙(妻叔)들이랑 처사촌들도 영 시큰둥하단 말이지. 어서 내 사람이 되어 내게 충성해야 할 자들이 말일세.”
박지원의 네 아들 중 장남 박종의는 백부 박희원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죽은 지 12년이 되었다. 둘째 박종채는 전라남도 관찰사고, 셋째 박종간은 벼슬에 나가지 않고 부친의 여러 저작을 정리하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태자에게 별 호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풍고 대감 쪽 눈치를 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간이 작다고 밖엔…..”
태자가 지금 반남 박씨를 언급하는 건 자기 추종세력을 사이에서 경쟁을 붙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별일이 없으면 태자비 박씨는 중전이 될 테고, 그러면 그 뒷배경인 박씨 가문이 세력을 넓히는 건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윤원성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그래서 태자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준으로 박씨 가문을 살짝 깎아내렸다. 그래야 다음 임금의 총애를 두고 경쟁할 상대가 줄어들 테니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자, 한 잔 더 드시지요. 이제 곧 현선이가 나올 것이옵니다. 그 미색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천녀가 강림했나 할 정도라니, 분명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태황이 윤원성과 같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여태 치도곤이 떨어지지 않은 배경은 간단했다. 윤원성은 태황이 처조카였을 뿐더러, 이들은 태자를 둘러싸고 신나게 놀아나기는 할지언정 법은 하나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자와 마찬가지였다.
“아무려면, 우리 폐하께서는 죄인에게만 엄격하시거든, 우리가 공부는 안 하면서 주색에만 빠져 있다고 벌을 내려야 한다는 조문이 대전회통 형전에 있는가, 민전에 있는가?”
술잔을 비운 태자가 폭소를 터트렸다. 성공했다고 생각한 윤원성이 히죽거리며 다시 술을 따랐다. 그 술잔을 단숨에 들이켠 태자가 불콰해진 얼굴로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나나 그대처럼 노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은 친구끼리 모여서 놀면 되지. 공부도 하고 싶은 놈이 하고, 일도 하고 싶은 놈이 나서 하면 되는 것이고, 하겠다는 놈을 누가 말리나.”
태자는 지금도 집경당에서 책을 펼치고 있을 자기 아들을 떠올렸다. 멍청한 자식 같으니, 그렇게 열심히 책을 본들 네 인생이 편해질 건 없다고 그렇게 경고했건만.
‘너는 아직 어리니까 공부에 너무 열과 성을 쏟지 않아도 된다. 나라를 다스릴 날도 아직 한참 남았으니 벌써 부담 갖지 말고 지금은 쉬어라. 어차피 나라를 너 혼자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라.’
자기가 그토록 적당히 하라고, 어차피 네가 안 해도 다른 누군가가 맡아 할 텐데 공연히 두각을 두러내서 피곤해지지 말라고. 몇 번이나 타일렀는데도 아들인 태손은 그 조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놈의 자식….자기가 자청해서 들어간 고생길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나. 내가 분명히 일이 이렇게 커지기 전에 그놈을 붙들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 자네한테도 말하지 않았나?”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태자 전하. 태손께서 참으로 어리석다며, 당장 폐하께 칭찬받는 것만 생각하지, 훗날 얼마나 힘들어질지는 전혀 생각을 못 한다고 답답해하셨지요.”
윤원성이 싱글거리며 변죽을 올렸다.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누구는 눈이 없어 경서를 읽지 않고, 입이 없어 외국어를 말하지 않는 줄 아는가? 그깟 말 몇 가지 익히는 게 뭐가 어렵다고?”
빈정거리던 태자가 뭐라고 빠르게 중얼거렸다. 잡기만 익히며 공부를 게을리 한 윤원성의 귀에는 ‘X라X라’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다른 나라 말인 건 분명해 보였다. 얼굴에 찬미하는 빛을 떠올린 윤원성이 급히 태자의 영민함을 칭찬했다.
“실로 대단하십니다. 전하께서는 이토록 배움이 깊으시면 서도 겸손하시어 이를 숨기셨을 뿐이니, 훗날 보위에 오르시면 그 진가가 분명히 드러날 겁니다.”
“됐네, 됐어. 나는 폐하처럼 고생하면서 살 생각이 없으니, 자네 조카가 어서 일하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라고 하니, 그놈이나 최대한 빨리, 실컷 일하도록 해주면 그만이지.”
태자의 판단은 분명했다. 아들놈이 아비의 충고를 듣지 않고 스스로 고생길로 접어들려는 꼴을 보건데, 그렇게 되기를 그놈이 스스로 원한다고 볼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하루다로 빨리 그 길에 확실하게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게 아비의 도리 아니겠는가? 하지만 윤원성은 태자와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혹시 일이 글러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난처해하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하, 태손께서 너무 대놓고 설치시면 폐하께서 전하를 폐위하시고 태손께 직접 양위한다고 나서실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혹시 그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윤원성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태자의 측근 중 상당수가 같은 근심을 품고 있다. 과거 태종 시절에 세자의 자리에 있던 양녕대군이 밀려나고 동생이던 충녕대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어 세종대왕으로 즉위한 전례 때문이다.
태손이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그리고 뛰어난 성과를 거둘수록 태황의 관심은 아들이 아닌 손자를 향했다. 이를 알면서도 공부에 매진하는 태손을 보면, 마치 할아버지인 태황의 총애를 받는 게 목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혹시 태손이 아버지를 체치고 먼저 보위에 오르려는 마음을 품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뜻밖에 많은 이들이 품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문제를 가장 걱정해야 할 당사자인 태자는 불안한 빛을 띤 윤원성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걱정할 일을 걱정하게. 그러실 폐하셨으면 벌써 하셨지. 그리고 태손이 아무리 설친다고 해도 나보다 먼저 등극하지 못하네. 유럽이라면 몰라도, 이 나라의 법도가 그게 아니니까.”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대한에서 효(孝)는 절대적인 규범이다. 부모가 무슨 짓을 벌여도 자식은 힘으로 맞설 수 없다. 그저 말로 떠들 수 있을 뿐, 물리적인 힘으로 부모와 맞서는 순간 천하 만민의 공적(公敵)이 된다. 그러니 끝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 권력부터 먼저 쥐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비를 폐위하거나 유폐하는 순간에 그 권력의 정당성은 부리부터 소멸한다. 누구도 패륜을 저지른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게나. 태손이 얼마나 큰 권세를 쥐건, 아비인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보위에는 내가 먼저 오를 것이고, 내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도 맡아 해치울 것이고, 그 뒤에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태손이 모든 것을 이어받게 될 걸세.”
태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 윤원성이 안도하면서 술병을 기울여 술을 따르자 쭉 들이켠 태자가 재촉했다.
“그나저나 이제 술은 웬만큼 마셨으니까, 그만 현선이나 들라 하게.”
“예, 전하.”
곧 조용히 문이 열리고 갈색 머리카락을 곱게 틀어 올린 기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태자는 호쾌하게 웃으며 자기 옆자리 방석 위를 두드려 여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 즐거운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판이었다.
15.
태황은 요즘 태손이 하는 일이 뭐든지 다 마음에 들었다. 태손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 중신들은 태손을 가리켜서 옛날 숙조 시절에 요절한 효장태자의 재림이라고 불렀다. 어려서부터 보이는 천재적인 모습 때문이다.
태손과 비교되는 만큼 태자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아니, 태황은 아들인 태자에게 갈수록 관심을 품지 않았다. 공부하든지 말든지, 늘 노는 패거리들과 대궐 밖으로 놀러 나가든지 말든지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태손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면서 그 아비인 태자에게도 더 너그러워졌다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젠 태자를 붙들고 야단도 안치니까.
“그놈이 수습할 수 없는 사고는 치지 말아야 태손이 무난하게 보위에 오를 텐데…..”
생각 같아서는 옛날 태조 시절처럼 자신이 태상황으로 물러나고 태자는 상황으로 올리고 태손을 태황으로 앉혀 곧바로 보위를 물려주고 싶은 지경이었다. 태자에게 양위하여 잠시만 태황 자리에 앉게 했다가 바로 다시 태손에게 선위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입 밖에 꺼내자마자 반대에 직면했다. 임금과 독대한 정약용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 됩니다, 폐하. 법도에 맞는 처사도 아니며, 중도에 어떤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태황으로서도 선뜻 내키는 방법은 아니었다. 태자가 순순히 상황으로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패악질을 부릴 위험성이 있었다. 국상 정약용은 다른 의미에서 동의하지 않았다.
“태종께서 두 분 상왕을 모시게 된 데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사정이 있었사온데, 이는 작금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태조가 상왕으로, 곧바로 태상왕으로 물러앉아야만 했던 건 순전히 무인정사 때문이었다. 지금 그렇게 큰 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임금이 보위를 태자에게 넘긴다고 하면 말이 될 리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