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53
4부 037화(1653화)
“게다가 선위에 선위를 거듭하여 보위를 곧바로 태손께 넘기신다면 이는 태자를 폐하시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실로 큰 논란이 될 것이옵니다.”
태자는 태손처럼 특출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태자 자리를 내놓아야 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과거 전례를 봐도 그렇다. 이 나라 역사에서 유일하게 태자 자리에서 쫓겨난 양녕대군은 남의 첩을 빼앗았으며 부왕인 태종에게 대들며 패륜을 저질렀다. 하지만 태자는 그런 짓은 안 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선위를 거듭하여 지위에 따르는 책임은 아랫대로 넘기고 위에서는 실권만 쥐는 건 일본의 왜황가와 장군가에서나 하는 나쁜 습속이다. 일본에서 어디 배워올 게 없어서 하필 그런 못돼먹은 습속을 배워온단 말인가.
“신이 듣기로, 태자께서도 성군이 되려는 뜻이 아예 없으시지는 않다고 하였습니다. 부디 그 효성을 보아 폐하께서도 조금만 더 관대하게 보소서.”
“알겠다.”
태황이 폐부에 찬 공기가 다 빠져나가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태자는 부황이 없는 곳에서는 잡기에 미쳐 있을지언정 부황의 면전에서는 늘 효성스러운 아들의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태황이 자기 아들에게 딱 하나 믿고 있는 부분이 그거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려는 마음 하나는 품고 있다는 점. 문제는 의지가 부족하여 실행에 옮기지를 않는다는 시실이다. 그러니 부황 앞에서만 굽실거리고 부황이 없는 곳에서는 놀아나지.
그게 모두 가식이라고,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더 참지 못하고 태자를 폐서인하고 말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태자를 보고 화를 내고 야단을 치며 열을 내다가도 결국 그래도 이놈이 본성은 나쁘지 않은데, 하며 주저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이것도 과거 이야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태손에게 관심을 쏟고 위안을 얻으면서부터 태자를 보고 화를 내는 일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문안차 찾아왔을 때도 그저 인사만 간단히 받고 얼른 보내버리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폐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더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태황이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주저하던 정약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자마마 앞에서 태손 저하를 너무 칭찬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훗날 보위에 오른 태자께서 태손께 핍박을 가하시지는 않을까 다소 우려가 되옵니다.”
막연한 언급이었지만 태황은 단박에 알아들었다. 태자가 혹시 자기 아들을 경쟁자로 여겨 괴롭힐 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혹자는 왜 아비가 아들을 견제하느냐고 하겠지만, 태자가 속이 좁은 인간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이미 역사에 수많은 실례가 있었다. 부당하게 야단을 맞고 구박까지 받아도 태손은 한마디 항변도 제대로 못 할 것이다. 그게 효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아들이 아비에게 대들면 불효가 되니까. 그래서 태자도 부황 앞에서는 바짝 엎드리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싶었다.
“국상의 걱정은 알겠으나, 그래도 태자가 그러기야 하겠는가. 태손이 영특하면서도 효심이 깊어 무도한 마음 따위는 전혀 품지 않았음을 태자도 알 터인데.”
원평 40년의 그 마차 사고 이후로 태자는 아들에게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본래 아들을 챙기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사고 이후로 갑자기 친근감을 드러냈다. 부황 몰래 태손과 함께 마포에 밤 나들이를 나간 것도 나름대로는 아들을 아낀다는 표시일 터였다.
태자는 아들에게 분명 나쁜 영향을 미친다. 공부를 싫어하는 태자가 아들도 자기와 같은 길로 끌어들이려고 한 건 분명히 나쁜 짓이다. 그래서 멀리 떼어놓았다.
하지만 적어도 태자는 아들에게 못되게 굴지는 않았다.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것도 자기는 나름대로 애정이 있으니 그럴 것이다. 그런데 보위에 오른 뒤라고 해서 아들을 경계할까. 태황은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비뚤어진 아들놈이 자기 자식을 비뚤어진 태 도로 대하기는 할지언정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비에게도 그렇게 효성스러운데, 설마 자식에게 해를 끼치겠는가.
“설사 그대의 말처럼 태자가 다소 억지를 부린다 해도….태손을 폐하지는 않을 터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실로 전례를 찾기 드문 영특한 태손이 태어났는데, 어찌 태자가 자기 손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흔들려고 하겠는가.”
태자 자신이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태자 자리를 지켰다. 그랬으면서 그리도 완벽한 왕재인 태손을 설마 내몰 리가 있겠는가. 태자가 머리가 돌지 않은 한은.
“하지만 옛말에 이르기를, 열 길 몰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 않았습니까.”
지금이야 보위가 자기 것이 아니니 아들을 경계할 필요가 엇으리라. 하지만 일단 보위에 되면 아들이라고 해도 정적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정약용이라고 해서 태자가 태손을 원수 대하듯 하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자리 잡을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주의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을 뿐이다.
“물론 불안한 기분이 없지는 않기는 하지….내가 어찌 국상의 걱정을 모르겠소. 어떻게든 이 늙은 몸이 좀 더 오래 사는 수밖에.”
태자가 태손을 아들로서 아끼는 것과 태자가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느냐는 완전히 별개 문제다. 그리고 태황은 전자는 믿어도 후자는 믿지 않았다. 태자의 건강이 안 좋기라도 하면 태손이 빨리 그 뒤를 이으리라 기대하겠지만, 몸 하나는 중종만큼 건강하다는 말을 듣는 태자다. 빨리 눈을 감으리라는 기대 따위는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태황 자신이 최대한 오래 살면서 태손의 자리를 굳건히 다지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태자가 무슨 사고를 치는지 태손이 안정적으로 대한의 보위에 오를 수 있으리라. 갑자기 태황의 두 눈에 붉은 기가 돌았다.
“국상, 문득 자괴감이 느껴지는 구려. 아무리 그놈의 행실 때문에 정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비 된 주제에 자식이 차라리 나보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니…..”
“폐하……”
정약용도 눈물이 치솟아서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역시 수많은 후손을 두고 있었고, 부모가 된 몸으로 후손의 죽음을 바라는 상황이 얼마나 비참할 것인지 잘 알았다.
“이제까지 참았으니 앞으로 조금 더 참지 못할 것도 없겠지. 그 못난 자식…..”
태황이 뼈저린 한숨을 토하는데 대전 내관이 들어와서 태자가 문안 인사를 올리러 왔다고 알렸다. 오늘이 문안 올리는 날이 맞기는 맞는데, 어떻게 참 이렇게 기가 막힌 때에 맞춰서 들어오는지 모를 일이다.
16.
“문안 올리옵니다! 폐하.”
“오냐.”
이제 부자간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정역용은 물러갔다. 하지만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아들인데다, 정약용과 대화하면서 한껏 우울해진 상태라 태황은 태자와 오래 대하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만 받고 보내려는데 태자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태손이 요즘 무척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태황이 멈칫했다. 부황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자 태자가 얼른 말을 이었다.
“소인을 본 강서원 스승님들이 입을 모아서 그 배움이 빠르기와 깊은 이해를 칭찬하더군요. 그런 기특한 손자를 두셨으니, 이는 진실로 하늘이 폐하께 내린 복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맙다.”
태황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부황 앞에서 태손을 칭찬하는 말을 이어갔다.
“소인이 너무 미욱하여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일이 참으로 많사옵니다. 허나 다행히 태손이 무척 영특하여 그 재주로 폐하를 기꺼워하게 하고 있으니, 소인이 제대로 하지 못한 효도를 대신 해주고 있어 기쁘고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정약용과 대화할 때도 언급했듯, 이런 태도가 태자를 완전히 내쳐버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적어도 태황 앞에서는 천하에서 제일가는 효자처럼 구는 이 모습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장차 태자가 보위에 오르더라도 의도적으로 태손을 괴롭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굳어 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정역용이 비친 걱정, 태손에게 태자가 경계심을 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녀석도 정말 보위에 오르면 사람이 바뀔까. 옛날 무종이나 장조께서 그러셨듯이.’
무종은 왕세자 시절만 해도 얌전하고 순한 성품이었다. 하지만 보위에 오른 뒤 돌변하여 수많은 죄인을 처형하고 또 유배하며 철권을 휘둘렀다. 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장조 역시 마찬가지다. 즉위하기 전에도, 즉위하고도 15년 동안이나 점잖은 서생이었던 장조가 돌연 군사를 몰아 남북을 누비며 친정을 나서리라고 누가 감히 짐작했겠는가.
태자도 어쩌면 즉위하고서 다른 방향으로 사람이 바뀔지도 모른다. 차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태손을 아끼는 부황의 비위를 맞추려고 저러는 걸지도 모란다. 훗날 혹시라도 아들을 경쟁자로 여겨 핍박한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 태자를 바꾸려고 한다면…..
절대 그렇게 놓아둘 수는 없다. 태황은 지금 너무 안심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태손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더 단단하게 다지고, 태손을 보위하는 세력을 많이 구축해 놓아야 했다. 부황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자는 태연하게 부황에게 태손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고 학식을 많이 쌓았을 뿐 아니라, 천하의 정세를 파악하고 그 향방을 예측하는 솜씨까지 뛰어나니 어찌 감탄하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신불랑국의 보나파르트 황제가 어찌 움직일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 조정이 어떤 방책을 마련하면 좋을지 태손이 실로 정확한 해법을 내놓았다는 말을 들으니, 실로 소인은 가슴이 떨리고 눈이 흘들려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찌 그리 영특하단 말입니까?’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태손을 칭찬하는 태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태황이 잠시 풀었던 경계심이 다시 조금씩 스러졌다. 나중에야 어찌 되건, 지금 이 자리에서는 태자가 태손을 순수한 태도로 칭찬하고 있었으니까.
“폐하, 태손이 비록 아직 어리기는 하나, 그 재주를 이대로 썩혀서는 안 됩니다. 훌륭하게 발휘하여 그 이름을 떨칠 기회를 주소서.”
갑자기 태자가 엉뚱한 결론을 냈다. 태황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기회를 주자니,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태손을 원평 23년(1816)생이다. 올해가 원평 45년이니까. 이제 겨우 열두 살에 불과하다. 아직 이렇게 어린데 무슨 기회를 준단 말인가. 태자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설명을 요구하는 부황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번에 태손이 한 제안을 실천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주에 직접 건너가 신불랑 황제를 만나 국경 문제를 협상할 전권을 주시고, 그 결과가 어찌 되든 승인하신다면 진실로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참에 미주 순행도 마치고 오도록 하시고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생각도 해보지 않은 제안이기도 했다. 태손이 뛰어나게 영특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열두 살밖에 안 된 아이를 특사로 보내서 중요한 외교 교접을 맡기라니.
“혹여 실수를 범할까 걱정되신다면 스승이자 외숙인 강서원 사 김유근을 동반하여 보내서 뒤에서 살피고 돕도록 하소서. 그리하면 걱정할 필요 없이 만사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태황은 갈등에 빠졌다. 태손의 뛰어난 재주는 믿지만, 과연 그 어린 몸이 유주의 노회한 패자(覇者) 보나파르트를 상대로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보나파르트는 일신상의 용맹은 초패왕 항우와 비교할 수 없지만, 장수로서 달성한 위업은 항우나 회음후 한신에 버금갔다. 이목, 염파나 다름없는 휘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전 유주를 제패했다. 오죽하면 세간에서 불패자(佛覇者), 유주무쌍(遺洲無雙) 따위로 불리겠는가.
과연 어린 태손이 그런 호걸과 마주하고 앉아서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적어도 1년 이상 자기 옆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점도 문제였다.
“협상은 다른 신하를 보내서 해도 된다. 그런데 왜 굳이 태손을 보내자는 것이냐? 나이도 어리고, 아직 국혼을 하지 않아 후사도 없는데.”
“아직 어리다고 하나, 어린 나이에 대업을 이루면 그만큼 입지가 든든해질 것이고 누구도 태손의 위치를 넘보지 못할 겁니다. 폐하. 폐하와 소인의 뒤를 이을 이로써 태손이 이룩한 위업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시도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태자는 과저 중종이 성친왕 시절 겨우 열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 반대편으로 떠났던 일을 거론하면서 ‘타국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땅으로 가는’ 미주행이 절대 무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태황은 선뜻 설득되지 않았다.
“네가 미주 순행을 다녀온 지 이제 겨우 13년이 되었다. 수십 년 간격을 두고 다녀오는 게 보통이었는데 순행을 서두를 이유가 있느냐?’
“황실에서 미주에 자주 손을 내밀면 미주 백성들은 더 기뻐하면 기뻐했지, 꺼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황실이 저들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표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태손은 무척 영특하니 이번에 가면 미주 백성들의 민심을 추스르기도 잘할 겁니다.”
태자가 자기 경험을 거론하며 이야기했다. 이것 하나는 부황보다 자기가 낫다고 여기는지 무? 자신감 있는 태도였다.
“그리고 폐하께서 직접 보셨듯이 세상을 보는 식견도 퍽 뛰어납니다. 그러니 나폴레옹과 협상하여 멕시코…..아니 맥고국과의 관계를 성립하는 일도 잘 해낼 겁니다.”
하지만 태황은 아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이유를 들어 거부감을 표했다.
“미주 순행은 국혼을 치러 후사를 얻고 난 다음에 가는 게 법도였다. 그런데 아직 국혼도 치르지 않은 태손을 어찌 그 먼 곳에 보내겠느냐?”
“후사가 필요했던 것은 행여 바다에서 흉사가 벌어질까 그리했던 것인데, 요즘 대동양을 건너는 배들은 거의 사고가 없어서 백 척이 가면 아흔아홉 척은 아무 탈 없이 돌아옵니다. 그만하면 굳이 후사를 기다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법도를 갖추려면 국혼만 치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전국에다 금혼령을 내리고 간택단자를 걷어도 반년 안에 모든 절차를 끝낼 수 있으니 가을에는 태손을 미주에 보낼 수 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폐하, 사사로운 정을 잠시 접으시고 태손에게 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길 위업을 세워주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옵소서.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되는 태손이 보나파르트를 만나, 두 나라 사이의 긴한 문제를 매듭짓고 돌아온다면 이 얼마나 대단한 위업이겠습니까?’
태황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대동양을 왕래하는 해상 교통로가 옛날보다 훨씬 안전해진 건 맞다. 그리고 태손이 신불랑국과의 외교 문제를 해결하고 온다면 역사에 유례가 없는 큰 위업이 되리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귀여운 손자를 멀리 떠나보내는 게 불안했다. 늙은 자신이 태손이 협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까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태자가 왜 이런 제안을 꺼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정말 태손이 큰 공적을 세워서 위치를 단단히 다지게 하고 싶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부황 곁에서 아들을 떼어놓고 싶은 질투심 때문일까? 본인은 전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후자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 태자의 꾸준한 설득을 듣던 태황이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결정할 수는 없다. 중신들과 의논해 보겠다.”
태황이 결정을 잠시 미루겠다는 뜻을 비쳤다. 태자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땅하신 처분이시옵니다. 급한 일도 아니니 천천히 결정 하시옵소서.”
문안인사를 마친 태자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태황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태자는 그때 부황에 게 등을 돌린 채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