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77
4부 061화(1677화)
14.
파티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계속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배가 고프면 탁자 위에 차려진 음식을 적당히 집어 먹고, 댄스 시간이 되면 가운데로 나가서 춤도 추었다. 연회장 한쪽에서는 악단이 쉬지 않고 여러 종류의 곡을 연주했다. 과거에 내가 루이 14세 시절에 참석했던 베르사유에서 열린 연회와 비교하면 무척 다른 분위기였다. 그야 뭐 145년이나 지났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 곡 추시겠습니까, 저하?”
폴로네이즈가 시작되자 이름은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하지 못한, 아무개 백작의 딸이라는 어린 아가씨 하나가 내 앞에 와서 춤을 청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오, 마드무아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양무(洋舞)는 익히지 못하였소. 게다가 지금 입은 옷이 춤을 추기에는 별로 적당하지 않구려.”
거짓말이다. 추려면 출 수 있다. 옛날 성친왕 시절, 베르사유에 있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사교생활에 어울리느라고 폴로네이즈 외에도 미뉴에트를 비롯해 춤 몇 가지 정도는 익혔다. 함께 연습한 파트너는 당연히 올렝카였다.
귀국한 뒤에도 가끔 올렝카와 춤을 추긴 했다. 상희는 올렝카는 그래도 괜찮지만 자기가 그러면 주변에서 시끄러워질 거라면서 춤을 추지 않았다. 바이올린은 어떻게 넘어가도 춤은 절대 안 될 거라면서.
하여튼 춤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권씨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치러야 할 것을 제대로 안 치렀어도 엄연히 남편이다. 그런데 그 남편이 다른 여자 손을 잡고 허리에 손을 두르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배알이 안 꼴릴 리가 있는가. 당연히 피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지금 입은 옷이 적당하지 않다는 말도 사실이다. 곤룡포에 익선관을 걸친 상태로 제대로 춤을 출 수 있을 리 있나. 우스운 꼴이 되느니 안 추는 게 낫다.
“저와 한 곡 추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마담?’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무슈. 제가 이국의 기예를 익히지 못해 그러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얼핏 보니 권씨 역시 귀부인들과 담화를 나누면서 중간중간 들어오는 춤 신청을 부드럽게 거절하고 있었다. 권씨를 수행하는 상궁들은 스승들이 내 옆에서 했던 것처럼 권씨 옆에도 벽을 쌓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대화에 방해가 되니 적당히 하라고 막은 듯했다.
‘이참에 빈궁에게도 한번 춤을 가르쳐줄까.’
분위기 맞추는 데도 좋고,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다만 추더라도 우리 둘이서만 짝을 이워 춰야지, 외간 남자.여자랑은 추지 말아야 하리라. 자칫하면 귀국 후에 엄청난 스캔들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 연회 자리가 정말 중요했던 건 그저 춤과 식사를 즐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하고 안면을 트는 자리라는 데 있었다. 헨리 클레이만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미국인과 프랑스인, 멕시코인 – 당연히 스페인계 크레올 – 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들을 내게 소개하는 역할을 몸소 맡은 나폴레옹이 가장 먼저 내게 소개한 이는 이 세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분명 프랑스 해군 제독의 예장(禮裝)인데 알맹이는 확실한 동아시아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정체는 아마…..?
“동향 출신을 만나서 무척 반가울 거요. 태손. 우리 누벨 프랑스 제국의 근위해병대장 겸 해군 제독, 카리브 후작 클로드 홍 소장이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홍경래였다. 프랑스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경래’라는 본명 대신에 그나마 발음이 좀 비슷한 다른 프랑스 이름을 골라 쓰고 있었다. 나폴레옹을 루이지애나로 탈출시킨 공으로 백작위를 받았고, 멕시코 원정에서 세운 공으로 후작으로 올랐다고 했다.
“하늘이 내리신 임금의 자손이신 태손께 예를 올리자면 마땅히 꿇어 엎드려야 하겠으나, 지금 소인은 다른 나라에서 벼슬을 사는 신하인지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송구하오나 부디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태손 저하.”
분명히 옳은 말인데 어딘가 좀 얄밉다. 이놈이 미주에 있을 때 난리를 일으킨 이유가 그 벼슬 때문이었기 때문일까 나. 지선성에 머무는 동안 잠깐 잠을 내서 조사해 봤다. 그랬더니 홍경래가 난리를 일으켰던 데는 사회적인 배경이 있었다. 미주 출신들도 벼슬에 좀 많이 나가게 해달라며 항의성으로 일으킨 폭동이 규모가 좀 커지면서 도적들의 난동 취급을 받았다.
미주총관부에 있는 본국 출신 관리들의 눈에야 이런 난리는 ‘공부하기 귀찮은 놈이 괜히 부리는 생떼’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도적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주 사대부들도 ‘불만스러운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폭동을 일으키기는 좀…..?’ 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홍경래가 일으킨 난리가 그다지 커지지 않고 금방 진압된 배경은 그랬다. 소규모로 끝난 덕분에 주동자 홍경래가 누벨 프랑스로 도망갔어도 딱히 추포령 같은 것도 없었던 거고.
“알겠다. 그대가 신불랑 황제를 주군으로 모시기로 한 이상, 충성을 다하기를 바란다.”
내 뒤에 선 김유근은 나와 달리 도끼눈을 뜨고 홍경래를 노려보았지만, 나폴레옹 앞이라 그런지 대놓고 꾸짖지는 않았다. 홍경래야 김유근이 누군지도 모르니까 아 잘난 본국 출신 대감이시구먼 하고 그냥 무시하는 모양새였고.
그래도 홍경래가 나폴레옹의 측근이 된 덕분에 우리가 득을 본 부분도 있기는 했다. 그가 직접 주장한 바에 다르면 누벨 프랑스 정부가 우리를 ‘조선’이 아니라 ‘대한’으로 칭하거나 나를 프랑스식으로 ‘공작’ 따위가 아니라 ‘태손’으로 부르는 게 다 자기 덕이라니 말이다.
“불랑국민들에게 우리 대한에 관해 가르치느라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비록 지금은 신불랑의 신하라 해도 전에는 분명한 대한의 신하였으니, 어찌 잘못된 모습을 그저 두고 보겠습니까?”
“대단하군. 수고가 많았네.”
홍경래는 생전 처음으로 얻은 이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국에서 온 높으신 어르신들’ 앞에서 잘난 척을 제대로 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김유근이 마땅찮아 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 홍경래를 치하하고 넘어갔다.
“자, 이제 다른 사람들도 좀 만나보시오.”
홍경래는 아직 자랑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은 듯했지만, 주군인 나폴레옹이 그만 빠지라는 의사를 보이자 군말 없이 물러섰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 다양한 출신의 백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내게 물려왔다.
“이 사람은 멕시코 공화국 주재대사요. 이번 회담에서 큰 역할을 맡을 사람이지.”
“안녕하십니까, 저하. 호세 마리아노 데 미켈레나라고 합니다.”
미켈레나는 독립파면서도 반도 전역에서는 스페인군 소속으로 프랑스군과 싸웠던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폴레옹과 손을 잡은 건 순전히 그가 전 황제 아구스틴 1세와 대립하는 관계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소개받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멕시코 공화국을 지탱하는 중요한 지도자들이오. 태손도 잘 알아두는 편이 좋을 거요. 뭐니 뭐니 해도 멕시코도 대한령 미주 지방과 국경을 접하는 나라 아니오.”
나폴레옹은 아지 기쁜 표정으로 사람들을 소개했다. 귀찮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꼭 ‘아들에게 아빠 친국들을 소개하는’ 아저씨 같았다.
“멕시코 공화국이 안정되려면 이 사람들의 도움이 필수요. 혁명은 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나폴레옹이 소개한 ‘멕시코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 즉, 나폴레옹과 손을 잡은 군벌들이라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지금의 멕시코 공화국 자체가 나폴레옹이 세운 괴뢰정권이니 말해 뭐하겠느냐만.
하기야 이놈들은 성향도 제각각이다. 지선성에서 이미 접했지만, 현 멕시코 공화국에는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보수주의자, 왕당파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저 권력을 잡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리다.
미켈레나 이후로 나타난 멕시코 지도자들은 이름도 제대로 외울 수 없었다. 산타 안나를 제외하면 죄다 생전 처음 이름을 듣는 사람들인데다, 스페인식 이름은 또 엄청나게 길었다. 그러니 겨우 한번 들어서 외울 도리가 없다. 어쨌든 대화의 맥락은 비슷했다. 이들은 대개 멕시코 동부나 남부 출신들이 많았다. 우리 미주와 인접한 북서부 출신은 없었다. 그쪽은 거의 반나폴레옹파가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누에보 멕시코를 비롯한 서쪽 지방에 있는 놈들은 말 그대로 산적이나 마찬가지라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조선군이 출동해서 진압해 주신다면 저희로서도 반가운 일이지요.”
과연 우리가 그 ‘산적’들을 진압한 뒤에 영토까지 차지해도 괜찮다고 할까. 이런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까지는 나눌 수 없지만, 수행원들과 의논해봐야 할 일이다. 과연 이놈들이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군벌로서만 행동할지, 멕시코라는 ‘나라’에 충성하는 심리가 있을지를.
이들과의 대화가 대충 끝날 때쯤, 나폴레옹이 점잖게 생긴 노인 한 사람을 부르더니 내게 소개했다. 이 ‘합중국에 누벨 프랑스인’의 이름을 듣자. 정말이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양반이 여기 왜 있어?
“대법원장인 에런 버라고 합니다, 저하.”
에런 버는 미국의 초기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그 밑에서 부통령 직책을 수행했다. 그런데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결투를 벌여 사살하는 바람에 정치 생명이 끝나버렸다. 정치 생명만 끝난 게 아니었다.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아예 미국을 떠나 한동안 프랑스에 망명해서 나폴레옹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망하기 전에 미국에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언제 또 여기로 이주했을까?
“합중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평범하게 변호사로 일하며 조용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매한 잡인들이 끝없이 저를 괴롭혀서 괴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폐하께서 아메리카로 터전을 옮겨 새로이 시작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족으로 넘어왔습니다.”
에런 버는 프랑스에 머무를 때 나폴레옹을 부추겨서 영국이 아닌 미국을 공격하게 하려고 시도했을 만큼 미국을, 엄밀히 말하면 자기랑 원수진 작자들을 싫어했다. 물론 나폴레옹은 버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미국과 싸울 생각이 없었으므로 그 요청을 무시했다.
하지만 아메리카에 건너오고 나서 유능한 행정관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보니 자기 발로 찾아온 지지자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과연 에런 버는 지금도 미국을 공격하라고 나폴레옹에게 조르고 있을까?
15.
에런 버 이후로도 숱한 미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의 소개로 내 앞에 나타나서는 자기 이름과 경력을 뽐냈다. 유감스럽게도 그때쯤에는 내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탓에 그 많은 사람이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성친왕 시절이었다면야 자정이 지나도 쌩쌩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나는 만으로 12세밖에 안 되는 어린애인지라 버티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아직 연회가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먼저 양해를 구하고 물러나야 했다. 물론 주빈인 내가 먼저 빠져나가는 게 예의에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황사영에게 나 대신 남아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숙소로 돌아가 그대로 뻗었다.
파티 참석이 생각보다 피로했는지, 다음날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나폴레옹 측에서 오늘 바로 회담을 열자는 연락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는 이대로 쉬겠구나 하고 있는데 드 뤼옹 대위가 사자로 왔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소식을 전했다.
“저하, 폐하께서 사냥 준비가 다 되었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차비하고 나서시면 소관이 안내하겠습니다.”
아니, 밤에 그렇게 놀았는데 바로 사냥을 나간다고….? 나폴레옹은 잠이 별로 없었다더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다. 좋은 몸 상태로 회담할 생각은 아예 없는 건가?
저쪽에서 이미 준비를 다 마쳤다는데 안 나갈 수도 없어서 어제 연회에 빠졌던 부관들만 데리고 사냥을 나섰다. 권씨는 피곤할 텐데도 그래도 따라가겠다며 나섰다. 말을 못 타니까 마차를 타고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함께 나섰다.
“환영하오! 이곳 누벨 프랑스에서는 귀국에서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절대로 할 수 없는 멋진 사냥을 할 수 있다오. 이제부터 보여주겠소.”
나폴레옹이 의기양양하게 자랑할 만했다. 포트 샤를 동쪽 – 현대의 콜로라도 대평원 – 에 펼쳐진 평원은 정말 넓다. 우리 본국에서는 이렇게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을 볼 수 없다. 동원된 사람 숫자도 막대했다. 7천 명의 근위대에다 인근 지역에서 모아들인 인디언 전사 4천 명이 몰이꾼으로 동원 됐다. 우리 대한에서도 강무할 때 이만한 인원을 동원한 전례가 있긴 하지만, 산야에 흩어진 1만 명과 평원에 늘어선 1만 명은 주는 충격이 달랐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오.”
평원이라고 해도 주변보다 조금이나마 높은 언덕 정도는 군데군데 있었다. 그중 한 언덕 위에 귀빈석을 차려놓아서 나와 권씨는 그 위에서 누벨 프랑스 기병들과 인디언들이 짐승을 몰아들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먼지구름 사이로 얼핏 보이는 갈색 구름을 보았다.
“저걸 잡는다고….?”
거리가 있어서 하나하나 구분되지는 않지만, 땅에 붙어서 움직이는 그 갈색 구름은 들소 떼가 분명했다. 아니, 저런 게 사냥감이 된다고?!
되었다. 사냥감이 되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들소들의 사체를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숲에서 사는 폴란드 들소들보다 평원에서 사는 아메리카 들소가 잡기 쉽지. 몰기도 좋고.”
나폴레옹이 흡족하게 웃었다. 오늘 거둔 사냥감이 총 천여 마리가 넘는데, 그중에 7할이 들소였다.
“태손이 피곤한 줄은 알았지만, 마침 들소 떼가 주변에 나타났다고 하기에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불러냈소. 저놈들은 한번 지나가면 또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거든.”
누벨 프랑스에서 들소는 가장 중요한 사냥감이라고 했다. 몰아서 대량으로 잡을 수 있는데다가, 고기와 가죽이 모두 유용한 자원이라서다. 심지어 가죽은 유럽으로 수출까지 된다.
“기계를 돌리는 피댓줄을 만드는데 들소 가죽 이상 가는 재료가 없다고 하더군. 합중국도 들소 가죽을 팔 지만, 그쪽에서는 자기들이 소비하는 양이 많아서 수출하는 물량은 적소.”
이토록 중요한 자원이다 보니 누벨 프랑스에서 들소는 아무나 잡지 못한다. 들소사냥은 황제의 허가장을 받은 사냥꾼들만 할 수 있다. 사냥할 수 있는 마릿수에도 제한이 있다.
“한 번에 싹 잡아버리고 끝낼 수는 없는 일이잖소? 잘 보존하면서 두고두고 잡아야지.”
나폴레옹은 의외로 자연에 관해서 근대적인 인식을 품고 있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근대적인 인식이 아니라 중세적인 인식이겠구나. 농노가 영주의 사냥감에 손대지 못하도록 밀렵을 단속하는 거야말로 중세적인 자연관의 특징 아닌가.
이렇게 사열식, 파티, 사냥으로 이어지는 환영 행사는 지선성에서 포트 샤를까지 오느라 다소 피로해 있던 나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 뒤로 나흘을 더 뻗어 있었다. 결국 나폴레옹과 내가 처음으로 책상에 마주 앉아 회담을 시작한 날은 포트 샤를에 닿은 지 엿새 뒤였다. 지선성을 떠난 지 53일만 인 3월 15일, 양력으로 4월 2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