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79
4부 063화(1679화)
18.
‘멕시코 공화국’이 북서부에 소재한 3개 주의 일부를 대한령 미주에 매각한다는 전제는 확정됐다. ‘3개 주’가 아니라 ‘3개 주의 일부’인 이유는 누오보 멕시코, 소노라, 치와와 3개 주를 전부 우리가 완전히 먹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일단 가장 크고 가장 가까운 누에보 멕시코(뉴멕시코)는 우리와 누벨 프랑스가 분할한다. 경계는 리오그란데강 상류로, 원래 세계에서 리오그란데강은 중하류만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이지만, 이쪽에서는 그 중상류도 국경이 되는 셈이다.
이 선을 따라 나누면 원래 세계의 뉴멕시코주는 대략 절반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나라에 속하게 된다. 원래 세계에서 지도에 자 대고 죽 그은 그 근본 없는 경계선에 비하면야 훨씬 자연스러운 분할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전체가 멕시코 영토였던 소노라와 치와와는 그 남쪽 경계를 어디에 그어 나눌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했다. 당연히 회의 한두 번으로 결정이 날 리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게 결정이 나야 땅값으로 얼마를 낼 것인가도 확정할 수 있었다.
“내일은 사냥이나 한번 나가면 어떻겠소, 태손?”
“좋습니다, 폐하.”
이런 종류의 협상이 늘 그렇듯 회담은 매일 열리지는 않았다. 나폴레옹이 회담장에 매일 출석하지도 않았다. 그러야 뭐 이해할 만하다. 황제가 국경 연변의 이 촌구석에 와 있다고 해도 누벨 프랑스 제국의 국정은 돌아가야 할 것이고, 결재도 내려야 할 테니까. 어쩌면 김유근이 처음 예상한 바처럼 회담 일정을 끝도 없이 늘려서 나를 지쳐 떨어지게 한다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내가 외교 협상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이런 자리에서는 서두르는 놈이 진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이 협상을 시작한 계기부터가 돈이 부족한 나폴레옹이 수도인 뉴올리언스나 부도(副都)인 세인트루이스에 있지 않고 여기 와 있는 것부터가 누벨 프랑스로서는 손해다.
“느긋하게 굴어도 되는 건 저들이 아니라 우리 쪽이지요. 그러니까 공연히 조바심을 내는 모습을 보여서 저들의 전략이 먹힌다는 인상을 줄 필요는 없습니다.”
김유근은 내가 느긋해 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다. 아무리 천재라도 어린애는 어린애니, 긴 협상에 필요한 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무척 걱정했는데 이만하면 괜찮겠다는 태도였다.
회담이 없는 날에 열리는 사냥이나 무도회에도 거리낌 없이 나가서 즐겼다. 사냥은 여기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벌였던 사냥처럼 대규모는 아니었어도 꽤 규모가 컸다. 수백 명은 될 몰이꾼들이 짐승을 몰아오면 길목에 대기하고 있던 포구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태손, 어린데도 사격 솜씨가 훌륭하시구먼.”
“과찬이십니다, 폐하.”
아직 체격이 작아서 곰이나 들소를 일격에 잡을 만큼 큼 총은 쓰지 못하지만, 사슴이나 날짐승 따위는 한 방으로 잡을 수 있다. 날아가는 새를 한 방에 떨어트렸더니 옆에서 보고 있던 나폴레옹이 경탄하여 찬사를 보냈다.
“아무리 강선총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솜씨요. 연습을 얼마나 한 거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폐하.”
지금 내가 마흔 살이라면 혹 모르겠다.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된 주제에 차마 백 년 동안 총 쏘기를 연습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농담으로도 안 들릴 테니까.
“이것도 한번 보시지요. 페하를 위해 가져온 선물입니다.”
“음, 멋진 독수리로구먼, 사냥용으로 길들인 거요?”
내가 본국에서부터 고이 데려온 잘 길든 검독수리를 꺼내자 나폴레옹이 경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사냥은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의 도락이었던지라, 하급귀족 신분으로 벼락출세한 나폴레옹은 이런 데 약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멋지구먼! 대단한데?”
화살처럼 날아간 독수리가 평원 저편에 있는 사슴을 문자 그대로 쏜살같이 낚아챘다. 그 뒤를 바로 쫓아간 시종이 독수리를 진정시키고 사냥감을 회수하는 모습을 보며 나폴레옹이 크게 탄복하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건넸다.
“아주 훌륭한 독수리입니다, 폐하. 누벨 프랑스에도 잘 살피면 새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테니, 잘 돌보아보십시오.”
“고맙소, 태손.”
이번 거래의 사실상 주체가 나폴레옹이니 이만한 선물은 충분히 건넬 만하다. 그 먼 길을 죽이지 않고 데려오느라 애 좀 먹었다만, 이만하면 성과는 거둔 셈이다.
“약소한 대접입니다만 즐겁게 드시기를 바랍니다.”
“별말씀을요, 감사히 즐기겠습니다, 저하.”
사교 행사로 벌이는 사냥은 그저 짐승을 죽이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냥한 짐승을 요리해서 손님들이게 대접해서 호평을 들었을 때 비로소 끝난다. 그래서 나도 내가 머무는 저택에서 몇 차례 연회를 열었다. 내가 공연히 지선성에서부터 수레 70대분이나 되는 짐을 싣고 온 게 아니다 물론, 수레에 실은 짐의 태반은 황야를 건널 때 필요한 식량과 마초였지만 술과 요리 재료도 잔뜩 가져왔다.
물론 이는 단순한 사냥행사의 마무리가 아니다. 나폴레옹 측에서 베푼 연회에 대한 답례 성격도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 본국에서 데려온 숙수들은 최선을 다해 자기들 솜씨를 한껏 발휘했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온갖 방식으로 요리된 짐승들을 보고 무척 신기해했다. 누벨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인이 수십만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이초에 죄다 하층 서민들이었다. 그러니까 이주했지, 잘 살았으면 왜 이주 금지령을 어기고 동족으로 도망갔겠는가.
고로 이제껏 누벨 프랑스에 전해진 한식은 죄다 소박한 서민 요리에 불과했다. 미주에서 풍족하게 살면서 재료의 양과 질은 좋아졌을지언정 조리법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누벨 프랑스의 프랑스계 상류층은 한식을 하잘것없게 취급했다.
그런 그들 앞에 장조 시기부터 스페인식ㆍ태국식ㆍ중국식ㆍ일본식ㆍ프랑스식 조리법이 계속 더해지면서 진화한 진짜배기 궁중요리를 최고급 술까지 반주로 덧붙여 내놓았다. 그랬으니 여태 한식에 별 흥미가 없던 프랑스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이 까만 파스타는 뭐요? 맛이 참 독특하군.”
차음 보는 우리 음식들에 흥미를 보이는 건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특히 관심을 보인 음식은 나도 좋아하는 면요리였다.
“흑장면이라고 합니다, 폐하. 면과 소스를 함께 볶은 한국식 파스타지요.”
나폴레옹은 황제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탄수화물을 좋아했다. 적어도 하루에 한 접시는 파스타를 먹었고, 요즘은 안 그런다지만 과거 전장에서는 구운 감자만 몇 알 먹고 때우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쟁반짜장이 맛이 없을 리가 있나.’
내가 중종 때 만들었으니, 이쪽 세계에서는 짜장면은 명백한 한국 요리가 되었다. 그러니 나폴레옹이 쟁반짜장의 맛을 호평하며 포크로 둘둘 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뿌듯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식사를 마친 뒤에 커피와 함께 내놓은 담배도 무척 평이 좋았다. 역시 식후땡은 진리다.
두 번째 무도회부터는 옷을 바꿔 입었다. 아무래도 곤룡포가 일상적으로 딱히 좋은 옷은 아니니까 말이다. 대궐 안에서야 그거 입고도 할 거 다 하면서 살지만, 이런 외지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연회나 사냥 같은 자리에는 주로 철릭을 입고 나갔다. 양복은 아니어도 이 정도면 활동에 별 지장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평범한 무관들이 입는 것과는 다르게 장식이 많이 붙었고, 유럽식 예복과는 다르지만 휘황한 모습으로 인해서 무척 주목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한 곡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하?”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소이다.”
계속 춤 신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옷을 바꿔 입었다고는 해도 외간 여자와의 춤은 여전히 망설여졌다. 성친왕 때처럼 애매한 신분에다가 본처도 안 데려온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 나는 황태손인데다가 어떤 자리에든 권씨가 함께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숙소에서 쉬는 동안 권씨에게 춤을 가르쳐보긴 했다. 하지만 일단 내게 춤 선생으로서의 재능이 부족했던 데다, 권씨가 아무리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재원이라고 해도 양반 댁 아가씨 신분이다 보니 춤 따위는 춰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서툴 수밖에.
그래도 동작이 서투른 것 정도는 연습하면 어떻게 해결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권씨가 나보다 키가 크다는 문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 키가 150cm 정도인데 권씨는 160cm쯤 된다. 이래서야 춤을 춰도 무양이 날 리가 있나.
현대 기준으로야 평범한 여중생 키지만, 이 시대 사람들 평균 키를 생각하면 권씨도 무척 키가 크다. 성인 여성들도 150cm대가 허다한 세상에, 아직 10대인데도 160cm라니 말이다. 아마 다 크면 중종 때 상희나 올렝카에게 뒤지지 않는 장신이 될 듯하다.
19.
이렇게 즐기는 와중에도 회담은 며칠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특기할 사항은 나폴레옹이 결석했을 때도 헨리 클레이는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입석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양측에서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조정안을 내놓았다.
“그 문제는 이렇게 처리하면 양측에 모두 이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형식적으로 이 거래의 상대편 당사자는 멕시코 공화국, 미국과 누벨 프랑스는 보증인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그중 누벨 프랑스는 실상은 협상 당사자, 아니 협상 주창자다. 고로 진짜 보증인은 미국 정부뿐이다. 헨리 클레이는 미국 대사로서 중재자 역할에 충실했다.
의견 충돌은 의외로 자주 있었다. 우리 대표단도 멕시코 북서부 지방의 지도 정도는 미리 입수해서 검토한 만큼, 마을 하나나 강물, 광산 하나의 위치까지 따져 가면서 새 국경선을 설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멕시코 측’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와 다투는 역할은 주로 미켈레나와 외젠이 맡았다. 에런 버는 법적인 정당성 확보가 자기 임무라는 듯 협상에서는 한 발 뒤에 있었고, 나폴레옹은 결석이 잦아서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 쪽에서도 김유근을 비롯한 네 사람이 주로 말을 하고 나는 조용하게 보고만 있을 때가 많게 되었다. 대화의 격을 맞춰야 할 필요도 있었고,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으려는 신하들의 배려이기도 했다.
“어떻소, 태손. 어른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외교의 세계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렵지 않소?”
어쩌다 얼굴을 내민 나폴레옹은 내 얼굴을 보고 이러면서 웃고는 했다. 나도 나폴레옹이 참석했을 대만 입을 열어 응수했다.
“제 조부이신 임금 폐하께서 이에 관해 정말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동서고금의 수천 년 역사에서 온갖 주제를 두고서 일어났던 수많은 군주와 사신들의 협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려주시고, 여기 계시는 제 외숙을 비롯한 여러 스승께도 배우도록 해주셨지요.”
은근슬쩍 조부와 김유근을 동시에 띄워 올렸다. 김유근은 내가 자기를 칭찬해주자 기분이 좋은지 헛기침을 살짝 하면서 허리를 폈다. 자기가 생각해도 뿌듯한 모양이다.
“지금 이 자리는 이 북아메리카 대륙의 운명을 정하는 회담이 될 겁니다. 제가 비록 아직 어린아이라고는 하나, 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서 여기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이 정도면 머리는 좋으나 아직 철모르는 부분이 있는 어린애의 태도로 나쁘지는 않겠지. 너무 설치는 것도 좀 애매하니,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까지는 없다. 실직적인 우리 쪽 대표 권한은 김유근에게 있기도 하고. 그렇게 살짝 뒤로 빠지면서도 상황 자체는 제대로 파악하는 내 모습이 나폴레옹에게는 꽤 귀여워 보였던 모양이다. 양쪽 신하들 사이에 오가는 논의는 다 제쳐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거나 꺼내 들려주곤 했다. 개중에는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태손에게 제안할 사안이 하나 떠올랐는데.”
“무엇인데 그러십니까, 폐하?”
“멕시코 공화국에서만 땅을 살 게 아니라, 우리한테도 살 생각 혹시 없소?’
“땅을 파시겠다고요?”
누벨 프랑스가 자기 땅을 팔겠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외젠이나 버도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보니, 저쪽에서 사전에 논의된 게 아니라 나폴레옹이 즉흥적으로 내민 제안인 건 분명해 보인다.
“대체 어디를 차시겠다는 말입니까/’
“저~기 북쪽에 있는 땅 말이오. 알베르빌 북쪽에서 북극까지 펼쳐진 땅을 전부 대한이 좀 사주면 어떨까 싶은데.”
이쪽 세계에서 누벨 프랑스 영토인 알베르빌은 원래 세계 지명으로 에드먼턴에 해당한다. 정확하게 거기는 아니고 대충 얼마쯤 오차가 날 수도 있겠다. 에드먼턴은 앨버타주의 주도로, 위치는 주 한가운데서 조금 남쪽이다. 즉, 나폴레옹의 이 제안은 현재 누벨 프랑스령인 원래 역사에서의 캐나다 중북부지방 전체를 우리한테 통째로 넘기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영토가 넓어지는 건 좋지만, 이건 내가 중종 때부터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했던 상황이다. 미주가 로키산맥을 넘어가 북아메리카 중앙부로 확장하면서 독립성이 강해진다면 본국에서 떨어져 나갈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게 풍요롭고 비옥한 미국 중부가 아니라 척박하고 사람이 살기 힘든 캐나다 북극 지방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쪽이라면 식량 생산도 안 되고, 이 시대에는 모피 외에 자원이라곤 없다. 하지만 현대로 가면….
‘가스랑 석유가 나오지…..’
지금 장악한 지역에도 석유는 많다. 만주, 사할린, 알래스카, 필리핀, 보르네오 등등. 이번 협상이 잘 이루어지면 텍사스에서도 석유를 뽑을 수 있다. 텍사스를 꼭 우리 영토로 만들지 않더라도, 석유 채굴권은 확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캐나다 석유도 있으면 좋을 물건이기는 하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좀 심사숙고할 셈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폐하. 본국에 계시는 폐하께서는 제게 오직 멕시코와의 국경 변경 문제에 관해서만 논의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북방의 국경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허락하신 바 없어 지금 논할 수 없으니, 부디 영해하시지요.”
“알겠소. 그럼 귀국한 뒤에 귀국 임금께 아뢰어서 논의하고 회답을 주시오. 부디 성사되면 좋겠구려.”
확실히 탐은 난다. 이미 언급한 단점 외에 완충지대가 사라지고 영국령 캐나다와 국경을 직접 맞대게 되는 문제도 있지만, 그래도 석유와 가스가 탐난다. 깨끗하고 풍부한 캐나다의 자연이 우리 것이 되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고.
하지만 내가 세운 기준이 무너지는 것도 탐탁지는 않다. 캐나다보다는 그냥 옐로스톤이나 팔라고 제안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