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82
4부 066화(1682화)
24.
무도회장에서 내게 그 이야기를 들은 나폴레옹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너무 크게 웃어서 내 잘못은 분명 하나도 없는데 내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그런 소문이 퍼진 줄은 나도 몰랐군. 하지만 그거 꽤 마음에 드는데? 어떻소, 태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뮌헨에 사람을 보내서 공녀 한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건?”
나폴레옹은 많은 부하 장군들에게 귀족 작위를 내렸다. 그 중에서도 외젠은 후작이나 백작 따위가 아니라 나폴레옹 자신이 세운 괴뢰국 이탈리아 왕국의 부왕(副王)으로 봉했다. 자기 형제들이 유럽 각국의 왕으로 봉해진 데 준하는 높은 대우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이탈리아 왕국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추방되면서 소멸했다. 그러니 외젠을 ‘이탈리아 왕국의 부왕’이라고 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외젠에게는 장인인 바이에른 국왕에게 받은 로이히덴베르크 공작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기를 배신한 바이에른 국왕이 내린 작위가 탐탁지 않았는지 외젠에게 ‘마타모로스 공작’이라는 작위를 새로 내렸다. 외젠이 함락한 멕시코의 도시 이름을 땄다. 이로써 유럽에 남아있는 외젠의 가족들을 나폴레옹이 공비, 공자, 공녀 등으로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이쪽에서도 공작위를 받았으니까.
“…..참아주십시오, 폐하.”
내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폴레옹은 또 웃었다. 옆에서 있던 외젠은 그만 놀리라며 나폴레옹을 만류했다.
“폐하, 유감스럽게도 제 딸들은 제 마음대로 혼인시킬 수 없는 처지입니다. 장인어른이신 바이에른 국왕께서 그 아이들을 보호하고 계시니, 제 마음대로 데려오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들었다. 외젠의 장녀 조제핀은 부친이 없는 사이에 스웨덴 왕비가 되어있다. 이쪽 세계의 스웨덴 왕실은 베르나도트의 후예가 아니라 원래 세계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의 후손들이 이었지만, 외젠의 딸이 왕비가 되는 역사선은 그대로 이어졌다. 둘째인 외제니도 호엔촐레른-헤칭겐 공국으로 시집가서 공비가 되었다. 셋째 아멜리에와 넷째 테오도린느는 미혼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귀한 외손녀를 채 ‘첩’으로 만들라고 바다 건너에 보내줄 리가 없다.
“그런가. 그러면 그 이야기는 그만두지. 하지만 참 아쉽긴 하구먼. 마타모로스 공작가에서 연을 맺을 수 있도록 그대를 이혼시킬 수도 없으니 말이야.”
술잔을 든 나폴레옹이 턱짓으로 연회장 저편에 있는 권씨를 가리키면서 웃었다. 권씨는 오늘도 연회장 한편에서 이곳 귀부인이나 아가씨들과 어울려 프랑스어로 즐겁게 환담하고 있었다. 본래도 프랑스어를 꽤 잘했지만, 원어민들과 대화하면서 솜씨가 갈수록 늘고 있다.
“태손빈은 나이도 젊은데 참 훌륭한 부인이지. 내 욕심 때문에 그대에게서 떼어놓기에는 너무 아까울 만큼.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오.”
“감사합니다, 폐하.”
이제 나를 충분히 놀렸는지, 나폴레옹은 계속 웃으면서 다른 자리로 멀어져갔다. 외젠이 이만하다는 듯이 살짝 웃음을 지어준 뒤 나폴레옹을 따라 사라졌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하.”
“고생은 무슨. 귀공은 어떻소?”
“뭐, 즐길 만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분위기를 맛보니, 솔직히 즐겁군요.”
우리 사절단에서 이런 사교 행사를 가장 즐기는 사람, 볼내공 디에고가 느긋하게 답했다. 유럽식 사교계가 존재하는 술루국 출신이니만큼 이런 자리가 익숙한 사람이다.
“한양에서는 이런 자리를 맛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 말이지요. 솔직히, 여기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조 시절에 한양에 들어온 유럽 출신 이주자들은 유럽에서 생활하던 습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피가 섞이다 보니 차츰 한국 사회에 동화되어 이젠 생활 형태에서 큰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 집안이 많다.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가 남녀가 어울리는 유럽식 사교 행사의 축소, 소멸이다. 이들이 조선에 온 초기엔 내가 뒤를 봐줘서 괜찮았지만, 내 사후에는 이들이 풍기를 어지럽힌다는 상소 세례를 나처럼 막아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몇 세대 가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어차피 한양에 정착한 프랑스계나 스페인계는 수도 적고 남자밖에 없어서 한국 여자들과 혼인해야 했다. 게다가 무관이나 기술관으로 조정에서 일하다 보면 주변의 눈치도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처세니까. 그만큼 한국 풍습에 동화되는 것도 빨랐다.
부안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이야 가족 단위로 무리 지어 건너왔으니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혼인할 수 있고, 서울과 떨어진 지방인지라 눈길을 덜 받는다. 게다가 관직에도 잘 안 나가니까 지금도 자기들 마음대로 산다. 즉, 17세기 네덜란드 풍습 거의 그대로. 술루에서 스페인식 사교를 즐기다가 건너온 디에고로서야 양쪽 다 재미가 없을 수밖에, 그러니 누벨 프랑스에서 유럽식 사교계를 접하는 게 즐거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미녀라도 찾으셨소?”
“제 마음에 드는 미녀는 많은데 그네들의 마음에 제가 들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디에고는 천연덕스럽게 답하더니 저쪽에 있는 다른 아가씨에게 한번 희망을 걸어보겠다며 연회장 다른 쪽으로 또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쪽 벽에 기대선 갈색 머리 아가씨에게 다가가 작업을 걸기 시작했다. 그 성실하던 디에고의 후손에 저런 놈이 나오다니 참.
저놈이 저러고 돌아다니는 줄 알면 한양에 있는 본처 – 술루에서 혼인한 스페인계다 – 가 사생결단하자고 나올지도 모르는데, 완벽하게 숨길 수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하기야 어차피 저놈 인생이니 혹 걸리더라도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긴 하다만.
25.
디에고와 김호성 같은 무관들은 본래 이번 회담에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도중에 나를 경호하는 게 이들이 맡은 임무였고, 회담은 김유근을 비롯한 문관들의 몫이 없기 때문이다. 디에고가 무도회에서 보였듯이 사교를 즐기거나 사냥에 수행하기만 해도 되었다.
디에고는 가끔 나 없이도 자기 밑에 있는 하와군 군사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다. 도시 동쪽 평원으로만 나가는 게 아니고 서쪽에 있는 산악지대로도 사냥을 나가 노획물을 메고 돌아왔는데, 이 미친놈들이 드디어 미주에 오기도 전부터 벼르던 곰을 잡았다.
“저하! 드디어 우리 군사들이 곰을 잡았습니다!”
“하와군 병사들을 데리고 사냥하러 나간 디에고가 돌아와서 의기양양하게 보고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죽여서 가죽을 벗겨온 줄 알았다. 회색곰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히 생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성친왕 시절에 나도 회색곰을 생포하는 건 아주 힘들었다. 그런데 한껏 신이 난 디에고를 따라 대문 밖에 나가 보니 집채만 한 회색곰이 통나무를 엮어 만든 함거 안에 드러누워 씩씩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두 눈이 튀어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 내 앞에서 맹수동이 호기롭게 외쳤다.
“잡았습니다, 저하! 저희가 드디어 곰을 잡았어요!”
맹수동을 비롯한 하와군 서른 명은 곰을 실은 수레 주위를 돌면서 홀라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도 알아듣지도 못할 하와이 말로 노래를 부르면서, 그 기가 막힌 광경에 나만이 아니라 김유근이나 김정희도, 평소에 놀란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권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위대하신 쿠-울로노-와오(깊은 숲속의 쿠) 만세! 태왕 폐하 만세! 국왕 전하 만세!”
뭔가 격이 안 맞는 구호가 끼어들었지만, 굳이 바로 잡지 않기로 했다. 그런 소리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자네들….대체 어떻게 이런 괴물을 산 채로 잡았는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정말 큰 곰이었다. 이만한 덩치면 체중이 적어도 100관(375kg)은 나가리라. 이런 곰을 총으로 쏘거나 창으로 찔러 잡은 것도 아니고 산 채로 생포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함정을 팠나?
“아닙니다, 저하. 올가미를 던져서 잡았습지요. 여기 아파치 형제들이 가르쳐줬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곰을 몰아낸 다음 사방에서 생가죽 올가미를 던져서 사지를 옭아매고 잡아당겨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 지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몽둥이로 두들겨 패면서 미리 준비한 우리로 몰아넣었다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가능한 일이야?
‘아아, 이놈들은 맨손으로 호랑이의 혓바닥을 붙잡아서 생포하는 놈들이었지.’
하상운 아들 하원식이 그랬었지. 똥 싸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호랑이가 덤벼들자 바로 혀와 귀를 잡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달려온 시종들이 몽둥이질을 퍼 부어서 잡았던가. 그대나 지금이나 하와국 놈들은 참 범상치가 않구나. 이 곰 같은 하와이 너셕들이 덩치로 하면 자기네 절반밖에 안 될 것 같은 누벨 프랑스군 소속 아파치 전사들하고 친구가 되어 올가미 던지는 법을 배운 것도 신기하다. 서로 말도 안 통할 텐데 대체 무슨 재주를 부려 친해졌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고생이 많았다. 그래서, 이 곰은 어떻게 할 텐가?”
“당연히 집에 가져가야지요!”
“집?”
하와국에 가져가서 자랑하겠다는 소리였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괴수를 여기서 하와이까지 가져가겠다고? 그놈은 그냥 여기서 가죽을 벗기고, 정 곰을 하와이까지 들고 가서 자랑하고 싶다면 지선성에 가서 그쪽에서 한 마리 더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 안 드나?
26.
곰 우리는 저택 정원 구석에 처박아 놓게 했다. 그리고 디에고를 불러들여서 사냥 나가기 전에 하던 업무로 복귀시켰다. 회담이 진전되면서 무관들에게 새롭게 생긴 할 일, 미주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새로 편성할 치안유지 부대 조직에 관한 연구다.
미주판 우포청이 될 이 부대는 일단은 ‘미주순검대(美州巡檢隊)’로 임시 명칭을 정했다. 단순히 범죄만 단속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준군사조직 노릇도 해야 하는 만큼 포도청이라는 이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원래 역사에서 비슷한 조직이라고 하면 초창기의 캐나다 왕립기마경찰대나 미국의 텍사스 레인저 같은 게 있겠다. 둘 다 경찰 업무를 병행하는 준군사조직이었으니까. 미주순검대의 일차 임무는 새 영토의 ‘산적’들을 제압하는 거지만,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장차 동변을 포함하는 미주 전역의 치안 유지 임무를 맡길까 한다. 모델이 된 두 조직처럼.
김유근이나 김정희는 여기 관여하지 않았다. 누벨 프랑스 측 대표단과의 회담 준비 탓에 바쁘기도 하고, 내게 자유롭게 뭔가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볼 기회를 한번 줘보려는 듯했다. 어차피 이런 구상은 본국에서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기도 하니까.
“새로 병합할 땅에 웅거하는 산적 떼의 수가 최소한 4만이라….그놈들이 한데 뭉쳐 있다면 우리도 대군이 필요하겠으나, 저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도적놈들이 각지에 할거하여 서로 다툼을 일삼고 있다면 우리 군사는 훨씬 적어도 됩니다. 정예로 2만 명이면 충분하지요.”
디에고가 여자랑 사냥을 좋아하기는 해도 그것만 밝히는 무능한 놈팽이는 아니다. 대한의 남쪽 변방을 지키는 방패로 써 최일선에서 봉직하는 술루 왕가의 일원답게, 아직 젊으면서도 군무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애초에 4만 명이나 되는 도적들이 정말로 있지도 않을 것이고.”
우리가 넘겨받을 뉴멕시코, 소노라, 치와와 일대에 거주하는 인구부터가 총합 30만이 채 안 된다. 심지어 그중에서 스페인인은 2천명도 안 된다. 그런데 거기서 4만 명씩이나 되는 군대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미켈레나가 부풀려서 구라를 친 거지.
애초에 식민지 시절에 멕시코에서 주로 개척한 땅은 중부와 남부였다. 북서부는 말기에나 개발이 시작됐으며, 그나마 일손이 덜 필요한 목축업이 중심이었으니 당연히 인구가 적다. 나폴레옹이 얻은 텍사스도 마찬가지라서 그쪽 인구도 5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미켈레나가 상황을 조작한 이유? 글쎄. 그 속내를 누가 알겠느냐만, ‘우리 멕시코 공화국 중앙정부는 북서부를 평정할 여유가 없습니다’라는 사정을 그럴듯하게 내보이기 위한 명분 제시를 위한 핑계가 아닐까 싶다. 뭐, 아니면 말고.
“아무리 적이 약해도 미주 군사들만으로 순검대를 조직하기는 어렵습니다. 저하, 본국에서 일부 장졸을 충원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봅니다.”
이 문제에 관한 김호성의 의견은 확고했다. 미주 출신이니만큼 미주 군사들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내 생각도 그렇소. 미주 군사들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겠지.”
미주 군사들도 말은 잘 타고 총도 잘 쏜다. 문제는 이놈들이 ‘군기가 빠진’ 부분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했지만, 속오군에 있는 미주 군사들은 자기들도 군인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다. 아무리 잘 봐줘도 민병대, 동네 자경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경인왜란 때 곽재우가 이끌던 의령 속오군보다도 못할 거다. 동변 각지에 배치된 둔전병이라고 해서 딱히 나을 것도 없다. 일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오도리나 왜인여진 출신 정예라고 해도 미주에 둔전병으로 이주하고 몇 대 내려가면 껍질만 군인이지 그냥 미주 놈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하지만 저하, 신불랑과 맥고국, 합중국까지 모두 입을 모아서 ‘본국에서 군대를 불러오면 안 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도적을 토벌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본국에서 새로 군대를 동원하면 분명히 항의할 겁니다.”
옆에 앉아있던 박규수가 우려를 표했다. 박규수는 아직 회의석상에 동석할 정도로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명석한 두뇌와 차분한 성품 덕에 이런저런 보조 업무를 맡았다.
“그래, 군대를 불러오면 안 된다고 하였지.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이쪽에 이주하지 못하게 막으라는 말은 없었네. 그렇지 않은가?”
본국에서 ‘군대’는 불러오지 않는다. 하지만 전속을 희망하는 자원들을 전역시켜서 민간인 신분으로 미주로 건너오게 하고, 여기서 순검대에 입대시키면 아무 문제도 없다. 기간이 될 간부직은 그렇게 해서 확보하고, 병졸들만 미주 현지에서 모집한다.
“정말 제대로 일할 자들로만 3만 명쯤 뽑아서 순검대를 편성하면 필요한 데는 다 투입할 수 있을 걸세. 대신에 백성들에게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게 만드는 속오군 훈련 같은 건 다 없애버리고, 명부만 남겨 관아에서 관리함이 옳다고 보네.”
훗날 미주에서 전쟁이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군적부 자체는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유사시에 충분한 병력을 동원할 게 아닌가. 아무리 상태가 안 좋은 병사들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거라도 있어야 나라를 지킨다.
“하지만 저하, 이 문제도 고래해 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본국에 사는 백성들은 예외 없이 누구나 1년 동안 군역을 지고 다시 또 속오군으로 복무하는데, 미주 백성들은 군역을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속오군까지 폐한다면 본국에서 불만이 크게 나올 겁니다.”
지금도 그 문제로 가끔 묘당에서 말이 나오지 않느냐고 박규수가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나도 여기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미주 속오군은 지나치게 무용지물인 존재다.
“미주 백성들이 군역을 지지 않는 게 정 문제라면 대신할 다른 수단을 강구하는 수밖에. 군역 대신에 군역세를 따로 물리든가 해야겠지. 적절한 액수로.”
하지만 세금이 너무 비싸면 이게 또 반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적절한 선을 맞춰 반발을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하리라. 아무리 미주 백성들이 황실을 좋아하고 충심이 깊다고 해도 없던 세금이 생기는데 좋아할 리를 없으니까.
“저하께서 판단하신 바가 옳기는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신불랑이나 합중국 측이 트집을 잡을지 모르는 일이니, 본국에서 병력을 불러오는 문제에 관해 사전에 황제와 논의 정도는 해두시는 편이 낫지 않을 지요.”
“그대들이 정 불안하게 여긴다면 그렇게 하겠네.”
박규수가 자꾸 불안해해서 수락하기는 했지만, 나폴레옹이 그런 걸 가지고 트집을 잡을 것 같지는 않다. 당장 누벨 프랑스 제국군만 해도 유럽에서 개인 자격으로 건너와 입대한 망명자가 대부분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가 미주에서 똑같이 한다고 그걸 트집을 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