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84
4부 068화(1684화)
28.
20여 차례에 걸친 회담 끝에 겨우 우리와 신생 멕시코 공화국 및 누벨 프랑스 제국 간의 새 국경선이 정해졌다. 나와 나폴레옹이 처음 마주 앉은 날이 3월 15일 – 양력 4월 28일 – 이었으니, 두 달하고도 반쯤 걸린 셈이다.
“역시 경계선은 강이로군요.”
“강만큼 좋은 국경은 없습니다. 저하, 쉽게 눈에 보이고, 나루나 여울목이 아닌 지점에서 함부로 건너기도 힘들지요.”
사실이 그렇기는 하다. 평원 한가운데다 여기가 국경이라고 푯말을 박아 봐야 그 옆으로 철조망이라도 쭉 치지 않는 이상 – 그러고 보니 철조망도 내가 특허를 내려 계획한 발명품 목록에 들어 있었던가? – 어디가 정확한 경계인지 알기 어렵다.
산 역시 마찬가지다. 산속 어디가 국경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산등성이를 따라서 계속 이어지는 철조망을 치거나 말뚝을 박을 것도 아니고, 그런 건 대한민국 휴전선에서나 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강을 좋아한다. 무종 때, 장조 때 명나라로부터 만주와 연해주를 넘겨받았을 대도 강에서 강으로 건너뛰듯이 국경을 옮겼다. 두만강에서 목단강으로, 그리고 송화강으로. 마지막에는 요하로. 이 마지막 단계는 내가 한 게 아니긴 하지만.
미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친왕 시절 스페인 당국과 협의해서 결정한 우리 미주와 누에바 에스파냐의 경계선도 골로강(콜로라도강)이었다. 누벨 프랑스와의 경계선도 미주대령 너머, 최대한 강을 따라가면서 그었다. 국경선으로 강을 선호하는 건 이제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 조정 전체가 지향하는 정책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김유근을 비롯한 우리 사절단은 최대한 강을 따라 경계선을 그었다.
다만 강을 국경으로 삼았을 때는 딱 하나 단점이 있다. 수력발전이나 용수 공급 등 강을 자원으로 활용할 때다. 더군다나 멕시코 북부는 기후가 무척 건조한 편이라. 혹 가뭄이라도 들면 갈등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그걸 고민할 만큼 그 지역에서 인구가 늘거든 그때 고민하자. 어떻게든 해결책이 없지야 않겠지.’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퍼내던가, 저수지에 물을 모으고 뚜껑을 덮어서 증발을 막던가. 꼭 하려고 들면 대책은 많다. 21세기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뭄 대책으로 한 것처럼 호수에 고무공을 잔뜩 띄워서 증발을 막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나중에 고민할 일이다.
“어디, 치와와 쪽에서 국경으로 삼은 강 이름이…..”
콘초스강(Rio conchos)이라. 리오그란데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멕시코 쪽 지류다. 주변은 풍요로운 평원이라 농사를 짓기에도 좋다. 이 강을 경계로 하면 치와와주의 대력 2/3가 우리 손에 들어오는 셈이 된다. 강 남쪽의 1/3은 멕시코 공화국 정부에 남긴다. 하지만 소노라주 쪽에는 적당히 경계로 삼을만한 강이 없었다. 그래서 논의 끝에 소노라 지역은 전부 우리가 넘겨받는 것으로 하고, 멕시코 공화국 정부에서 소노라주와 그 남쪽의 시날로아주 사이에 그은 행정적인 경계선을 그대로 새 국경선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아시다시피, 신메히꼬 주는 그란대강(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해서 신불랑 측과 서로 나누기로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다 합치면 정말 엄청난 넓이의 땅이 새로 폐하의 강역이 되었습니다!”
“저들이 꺼리는 바가 있으니, 신불랑인들 앞에서는 그리 말하지 마시오, 박 종사관.”
흥분한 박규수를 보고 김유근이 가볍게 나무랐다. 협상 상대방인 세 나라가 우리 본국이 미주에 세력을 뻗치는 상황을 썩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다.
“그래서 대가는 얼마나 치르기로 했는지요?’
우리가 이번에 얻는 영토를 지도 위에 그려 보면, 그 넓이가 무려 남미주 전체의 2.5배가 넘는다. 아무리 현재 거주하는 인구가 단 30만도 안 된다지만, 이만한 땅을 거저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논의 끝에 신불랑 금화를 기준으로 900만 냥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300만 냥은 맥고국 정부에, 600만 냥은 중계역을 맡은 신불랑 조정에 치르게 되었습니다.”
대한에서는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다른 나라 화폐를 죄다 ‘냥’으로 부르는 관습이 있어서 좀 헷갈리는데 – 파운드화를 잉글국 냥, 프랑화를 불랑국 냥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 누벨 프랑스에서는 화폐 단위로 달러를 쓴다. 나폴레옹에 따르면, 프랑을 쓰지 않고 달러를 쓰는 이유는 현실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스페인인들이 만든 달러 주화를 쓰고 있는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무슨 재주로 그걸 다 프랑스 돈으로 바꾼단 말이오?’
미국도 아직 주화를 제대로 못 만들어서 스페인 은화를 쓰고 있으니 아직 취약한 부분이 많은 누벨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말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의도인지, 멕시코에서 주조한 스페인 은화와 금화에다 ‘NF’라는 압인(壓印)을 추가로 찍어서 쓴다. NF는 당연히 ‘누벨 프랑스’의 머리글자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이를 ‘나폴레옹 프랑스’로 읽고 ‘나폴레옹 달러’라고 하는 이들고 꽤 있는 모양이다. 별명으로는 이쪽이 훨씬 인지도가 높을 것 같기는 하군.
“신불랑 금화로 900만 냥이라면 적은 액수는 아니군요.”
“계미남변 당시, 서미주를 매수하는 데 낸 값이 기껏해야 우리 돈으로 금 8만 냥, 서반아 화페로 88만 냥이었던 전례가 있어서 살짝 전거(典據)로 삼아 값을 좀 깎았습니다.”
음, 그때 내가 우리 쪽 강화회담 대표로 내보낸 성시균이 그 액수로 결착을 봤지. 분명히 나는 10만 냥쯤 줘도 좋다고 했는데, 협상 과정에서 20%를 또 깎았다. 성시균도 그런 점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사실상 전리품으로 뜯어낸 거였으니 그 값도 엄청 후려친 거지만.
이번에 사들이는 땅의 넓이는 서미주보다 5배가 안 되는 데 돈은 10배를 넘게 내니 값을 지나치게 후려친 건 아닌 셈이다. 본래 땅 주인도 아니면서 거간 노릇만 한 나폴레옹 쪽이 구전(口錢)을 지나치게 챙겨 먹을 뿐이지. 세상에, 원주인의 두 배를 처먹다니.
이에 반해 진짜 중개자이자 조정자 노릇을 성실히 한 미국정부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 헨리 클레이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따로 주겠다는 선물도 사양했다. 자기는 그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평화와 안정이 꽃피기를 바랄 뿐이라나.
‘저는 합중국 정부의 공직자로서 책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어찌 그 대가로 재물을 받겠습니까?’
‘중간에서 수고해주신 데 감사드리는 성의 표시일 뿐입니다. 현금이 아니라 미술품인데도 안 받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정 제 수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으시다면, 귀국 태손께서 워싱턴에 한 번 방문을…..’
‘죄송합니다, 대하 각하. 저희 태손께서는 귀국 소도를 임의로 찾아갈 권한이 없으십니다.’
헨리 클레이는 여전히 나를 미국에 데려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클레이를 찾아간 원재신은 그 방문 요청을 거절하고 클레이를 단념시키느라 한참을 설득해야 했다.
“거참, 안 가겠다는 사람을 왜 그리 자꾸 붙들고 늘어지는지.”
선물로 보낸 그림과 도자기를 도로 들고 온 원재신에게 받던 보고를 생각하니 절로 혀를 차게 된다. 아, 워싱턴은 안 간다니까. 처음에는 헨리 클레이가 이 소리를 했을 때는 자기가 올해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세울 수 있는 공적을 세우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헨리 클레이가 아직도 누벨 프랑스 주재 대사직을 사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써 양력으로 7월이다. 12월에 열리는 대선까지 반년도 안 남았다. 만약 클레이가 올해 대선에 출마하려면 벌써 사임하고 귀국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여기 있다는 건 올해 대선은 출마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내가 미국을 방문하도록 권하는 게 클레이 개인의 공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을 잡은 현직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 파벌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현직 대통령 애덤스는 도전자인 잭슨에게 맞서서 재선에 성공하려고 기를 쓰고 있을 테니까.
‘현 대통령께 맞서는 가장 유력한 반대 후보는 어느 당의 누구입니까, 대사?’
‘미스터 앤드루 잭슨입니다. 본래 우리와 같은 민주공화당이긴 합니다만, 지금은 사실상 다른 당이라고 해야겠지요.’
앤드루 잭슨은 미영전쟁의 영웅이다. 당시 영국군은 미시시피강 수로를 장악해서 미국을 내부에서 헤집어놓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프랑스령이던 뉴올리언스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군 부대가 이를 실행하게 되었다. 그때 잭슨은 테네시주 민병대 6천 명과 함께 미시시피주 나체즈시에서 요새를 구축하고 영국군이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도록 대비하고 있었다. 그 앞에 나타난 영국군을 본 잭슨은 곧바로 발포 명령을 내렸고, 현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그 승리는 잭슨이 거둔 원래 역사에서의 뉴올리언스 전투처럼 일방적이지는 않았다. 원래 역사에서 미군과 영국군의 사상자 비율은 거의 1:30에 달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그 비율이 1:10 정도였다. 그것만 해도 뭐 엄청난 대승이기는 하지만. 이미 크리크족 인디언들을 상대로 승리해서 명성을 쌓은 잭슨의 인기를 크게 올라갔다. 그 뒤로도 인디언들을 상대로 한 세미놀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빼앗았다. 당연히 인기가 더 치솟았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대선에도 출마했다.
하지만 당연히 당선될 줄 알았던 대선이, 경쟁 후보들 간에 맺어진 야합으로 인해 패하고 말았다. 격분한 잭슨은 절치부심하여 다음 선거를 노리고 있었고, 애덤스 진영은 잭슨에게 한 번 더 승리를 거두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진영의 위업을 드높이기 위해 나를 이용할 셈이겠지.”
애덤스는 나폴레옹과 연합하여 일거에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킨다는 전임자 먼로의 외교 정책을 계승했다. 아직 국제적으로는 애송이로 취급받는 미국의 영향력을 ‘나폴레옹’이라는 페가수스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냄으로써 국위를 선양하겠다는 이 계획은 제법 성과를 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여기서 합중국 대사와 회견하고 있었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외숙.”
이처럼 외교적인 업적을 이용해서 표를 끌어 모으려는 애덤스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거 없었던 원래 역사에서보다야 지지를 더 받겠지만, 어떤 결말이 날지 미리 알 수는 없으니까.
클레이는 거기에 몇 표라도 더 보태기 위해 날 데려가려는 게 분명해 보인다. 미국인들도 대한이 어떤 나라인지는 꽤 알고 있으니, 당연히 선거에 보탬이 될 테니까.
“어쩌시겠습니까, 저하? 저들의 청을 들어주어 합중국에 가시겠습니까?”
“안 되는 건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본래 계획대로 신불랑에만 잠시 머물다 바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나폴레옹에게 이미 초대장은 받아놓았다. 멕시코 국경 문제에 관한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뉴올리언스에 들렀다 가라고 말이다. 황제 명의로 정식으로 초청받고 가는 거니까 입조하는 거 아니냐고 오해받을 염려는 없다.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칸소강과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는 유람선 여행, 그리고 뉴올리언스 관광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와, 이쪽 지방 여행은 원래 생에서도 못 해본 거였는데.
사실 이것도 조금은 불안하다. 체류가 너무 길어지면 전에 걱정한 것처럼 태자비 쪽에서 내 행보를 이용해 나를 공격하려고 나설 우려가 있다. ‘왕손이 허가도 안 받고 외국에 가서 그 군사를 빌려 역모를…..’ 운운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아주 흔한 사례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여행이 즐겁다고 넋 놓고 머무를 게 아니라 상황을 잘 살펴 가며 적당히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얻어갈 게 있으면 얻어가야지.
“그러면 저하, 조약은 이 조건으로 조인하면 되겠습니까?”
김정희가 조심스럽게 묻기에 책상 위에 놓인 조약문 초안을 다시 들고 읽어보았다. 이미 교환 조건은 다 확인했지만, 혹시 빠트린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지요.”
“예, 저하.”
두 번을 다시 읽었지만 놓친 부분은 없었다. 그만한 땅을 사는데 9백만 달러라면 절대로 비싼 것도 아니고. 원래 세계에서 미국은 멕시코 정부에서 ‘개즈던 매입’으로 그것보다 훨씬 작은 땅을 사면서도 1천만 달러를 냈었으니 말이다.
결정을 짓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폴레옹이 참여를 안 하는 바람에 내 협상 실력을 제대로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성공적인 협상이 이루어진 듯해서다.
나흘 뒤, 양력으로 7월 11일에 회담장이었던 포트 샤를 시청에서 국경 문제를 확정하는 조인식이 있었다. 프랑스어로 작성된 문서 정본과 한문으로 작성된 부본, 두 통의 문서에다 깃털펜으로 하나씩 서명했다.
“자, 받으시지요.”
“예, 저하.”
내가 넘긴 서류를 받은 미켈레나가 서명했고 그다음에는 이 거래의 보증인으로서 참여한 외젠과 클레이가 각기 누벨 프랑스 정부와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서명했다. 나폴레옹이 이 문서에 직접 서명하지 않을까 잠시 기대했는데, 역시나 여기에는 끼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소. 이제 함께 누벨 오를레앙에 가서 그 아름다운 도시를 한껏 줄기도록 합시다. 도중에 볼 것도 많고.”
가기 것이 아닌 것을 팔아치운 덕에 주머니에 6백만 달러가 곧 들어온다고 생각해서인지, 나폴레옹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이미 내가 제안 받고 대답을 미뤄둔 거래를 다시 제안했다.
“역시 북쪽에 있는 땅도 한꺼번에 사지 않겠소? 멕시코 북서부 지역을 넘기고 9백만 달러 받기로 했으니, 그 북쪽 땅은 눈 딱 감고 2백만 달러만 받으리다. 그만하면 괜찮은 값이지 싶은데, 어떻소?”
“음….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임의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제가 귀국해서 임금께 이 문제를 상의 드리고 답을 드릴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이번에도 좋은 말로 거절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대의 조부께서 2백만 달러가 너무 비싸다고 하시면 좀 더 깎아줄 수도 있소. 그러니까 내 뜻을 꼭 좀 임금께 전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나를 뉴올리언스로 초대한 데 다른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짙은 의심이 든다. 저 인간, 혹시 북쪽에 있는 얼어붙은 땅을 어떻게든 나한테 팔아치우려고 날 설득할 시간을 벌 생각으로 나를 자기 수도에 초대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