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9
1부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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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위 객사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다. 다만 입에 맞지 않게 기름져서 젓가락을 대기 꺼려지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아침부터 기름기 가득한 볶음밥이 나온 상을 본 남곤이 한숨을 쉬었다.
“혹시 저놈들이 일부러 날 굶기려고 이런 밥을 주는 건 아닐 테지.”
남곤은 김종직의 직계제자로서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평소 검약한 생활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소찬(素饌)을 즐겼고 고기는 어쩌다 가끔 먹었다. 헌데 이 중국인들은 고기가 없이 넘어가는 끼니가 거의 없었다.
“저들 나름대로는 손님을 대접하려고 내놓는 것이니 부병마사 영감께서 맞추셔야 합니다. 허나 저들이 기름과 고기를 즐기는 데도 까닭이 있습니다. 거친 북방 땅에서 채소만 드셔서는 기운이 없어 버티지 못합니다.”
통사 박개동이 조언했다. 북방을 오래 왕래한 사람이라 북방에서 살아가는 방식도 그만큼 잘 알았다.
“어제 지휘첨사가 베푼 잔치에서는 잘 하셨습니다. 고기가 입에 맞지 않으신다면 어제처럼 술이라도 호방하게 드셔야 합니다.”
“술이 생각보다 독해서 그것도 고역이었네.”
어제는 철령위에 도착한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라면서 이춘미가 잔치를 베풀었다. 불려온 기생들이 옆에 앉아서 술을 따르고 악공들이 악기를 뜯으며 노래를 불렀다. 탁자 위에는 역시나 술과 고기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남곤은 행동을 바르게 함을 중시했으므로 여색에 별 관심이 없었다. 고기도 즐기지 않으니 술잔이나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술은 센 편이었으므로 기녀가 따라주는 대로 연달아 잔을 비웠다. 이춘미가 준비한 중국술은 상당히 독했다.
“하지만 지휘첨사를 이기시지 않았습니까. 지휘첨사도 나름 자기가 술이 세다고 생각했으니 영감께 승부를 청했겠지만, 도저히 상대가 안 되더군요.”
계획적인 승부는 아니었다. 전적으로 우연히 벌어진 시합이었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이춘미는 잔치에서 주빈인 남곤을 자기 옆에 앉히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진 다른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자기 주변 자리는 자기 부하들로 채웠다.
일행 중에서 통사 박개동 외에는 남곤 본인만 초대를 받았다. 동무가 없으니 딱히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그냥 술잔만 비웠다. 그런 모습이 거슬렸는지, 느닷없이 이춘미가 벌떡 일어나서 남곤에게 오더니 술잔을 내밀었다. 어느새 술잔은 두 사람 사이를 끝없이 왕복했다.
“별 거 아니었네. 마시다 보니 어느새 지휘첨사가 엎어져 자고 있더군. 그게 다일세.”
“그래도 지휘첨사가 기가 좀 꺾였으면 좋겠습니다. 그간 오죽 사납게 굴었습니까?”
지난 사흘 동안 이춘미는 무척이나 고압적으로 행동했다. 박개동은 이춘미가 없는 곳에서 욕지거리를 퍼부었고, 가능한 싸우지 않으려던 남곤도 눈썹을 찌푸릴 정도였다. 조선에 대해 악감정을 품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먼저 자신들이 가진 지도와 비교한다면서 를 그린 조선 쪽 지도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불제위 토벌전’에서 조선군이 실제로 어디까지 진군했었는지 확인해야겠으니, 중군?좌군?우군?수군까지 사군이 움직인 여정을 기록한 일지까지 모두 달라고 요구했다.
속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임금은 일단 이번 협상에서는 가능하면 명나라 측과 대립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추후에 불필요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상세한 지리 파악은 필수이므로, 남곤은 요구받은 정보를 모두 제공했다.
물론 넘겨준 일지에는 정말로 딱 행군 일정과 경로만 기재되어 있었다. 장차 명나라와 어떤 사이가 될지 알 수 없는 터, 남곤으로서도 조선군이 어떤 무기로 어떻게 싸웠는지까지 상세히 알려줄 의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헌데 보기만큼 술이 약한 것도 아닐지 모르네. 이리 아침 일찍부터 사자를 보내 만나자고 독촉하는 양태를 보면, 술이 이미 깨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모를 일입니다. 지난 사흘 동안 부병마사 영감께 만나자는 말 한 마디가 없었던 걸 보면…게다가 지난밤 술자리에서도 술 이야기만 했지 정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인은 지휘첨사가 성실하게 정계에 임할 생각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사람을 믿어야지, 의심만 해서야 어찌 일을 하겠는가? 지휘첨사가 오늘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이니 이 새벽부터 불러대는 게 아니겠는가. 다만 이 기름진 밥이 문제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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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녕 사실인가!”
당혹감에 내지른 내 비명 소리가 편전을 채웠다. 신하들은 장계 내용과 내 비명, 양측이 주는 충격 때문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손에 장계를 든 도승지가 얼굴이 창백해진 채 보고했다.
“그러합니다, 전하. 감계사로 명받은 부여주 부병마사 남곤이 치계하기를, 그 스스로도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급히 알린다고 적었습니다.”
“어허, 어허!”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리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건강이 안 좋다고 듣긴 했지만, 아직 나이도 젊은데 이리 전조도 없이 갑자기 사람이 죽다니. 놀라울 뿐만 아니라 정말 큰일이다. 무슨 일이냐고?
명나라 황제, 홍치제가 죽었다.
“황제가 고뿔에 걸리자 어의가 약을 조제해 바쳤는데, 약을 마신 뒤 갑자기 쓰러져 코피를 쏟고 그대로 붕어(崩御)하였다고? 정말 놀랍구나. 실로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로다.”
홍치제는 나이도 젊다. 향년 36세, 나보다 7살밖에 많지 않다. 아무리 평소 건강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지만, 아직 한창인 30대에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다니. 역시 과로 때문에 갑자기 쓰러진 게 분명하다.
새삼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건강한 식단으로 밥 잘 챙겨먹고, 몸 약해지지 않게 꾸준히 운동하면서 체력관리를 해야겠다. 하지만 그거야 내 개인적인 대응이고 지금은 정치적인 대응을 해야지.
“즉시 사신으로 보낼 이를 인선하고, 예물을 준비하라. 어허, 그동안 조공품으로 총만 보낸 지가 오래되어 호조에 적당한 물품이 비축되어 있는지 걱정이구나.”
나도 몇 번 초상을 치러봤지만, 예에 따라서 장례를 제대로 치른다면 엄청나게 많은 물품이 필요하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명나라 황제의 장례식이니 종이, 베, 돗자리 따위가 엄청나게 소요될 게 분명하다. 내가 조공품을 총으로 바꾸기 전에는 모두 상당한 양을 보냈었다.
“호조의 창고에 여축이 있사옵니다. 점검하여 준비하고, 수량이 부족한 물품은 육의전에서 구하여 방납인들에게 매입하면 되옵니다.”
가능하면 그 루트는 피하고 싶은데 도리가 없다. 빠른 시간 내에 물품을 조달할 수단이 그 길 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비용은 한 푼이라도 줄이기로 결심했다.
“호조판서는 일전에 명한 대로 방납인들 여럿에게 경쟁을 붙이라. 누가 더 낮은 가격으로 필요한 물품을 제공할 수 있는지 종이에 써서 내게 하고, 개중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자로부터 매입하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쉽게 말해서 최저가입찰제를 하라는 소리지. 다만 무턱대고 싼 것만 찾지는 않는다. 납입된 물품에서 불량품이 적발되면 그 업자는 다시는 호조가 내는 물품조달 공모에 지원할 수 없다. 현대에는 명의위장 따위로 쉽게 회피할 수 있지만, 조선에서는 도리어 철저하게 걸린다.
“황제의 상을 치르는 데 사용할 물품들이다. 출발 전에 검수를 철저히 하여 절대 불량품이 섞이지 않도록 하라.”
그동안 내게 많은 호의를 보여준 홍치제의 장례다. 공납으로 총만 받기로 한 일이라든가, 사행길을 해로로 바꾸면서 무역선이 오가도록 허락해 준 일이라든가, 니마차 정벌을 승인해서 내가 만주를 넘볼 수 있게 해준 일 등 참 감사할 점이 많은 상대다. 이 정도는 해야 도리지.
“참, 황제 붕어에 임하여 우리 조정에서는 어찌 예를 차려야 하겠느냐?”
조선 후기 예송논쟁이 조선 사회를 얼마나 뒤집어엎었는지 분명히 배웠다. 아들과 며느리가 죽었을 때 시어머니가 상복을 얼마나 오래 입어야 하느냐를 놓고 벌어졌던 그 논란, 현대인이 조선시대를 평가할 때 가장 안 좋게 보는 이유를 제공한 그 사건 말이다.
물론 지금은 효종 때처럼 성리학이 교조화된 시기가 아니다. 더구나 예송논쟁은 왕위계승의 정통성 및 학통간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국내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지만, 명나라 황제가 죽었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외교적인 고민이라면 좀 되겠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중국 황제의 죽음을 맞아 예를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그 문제 때문에 국내에서 논란이 일지 않을 정도로만 수위를 맞추는 거다. 그러자면 신하들에게 자문을 구해 그 선에 맞추는 게 제일 낫고.
“지난 정미년에 행한 전례가 있으니 그대로 하면 될 듯하옵니다. 부음을 들은 당일, 오늘은 곡을 하고 넷째 날에 상복을 입고 그 뒤로 다시 사흘째 되는 날에 상복을 벗으면 충분하리라 여겨지옵니다. 《오례의(五禮儀)》에 그리 나와 있사옵니다.”
정미년? 아, 명나라 성화제가 죽었을 때 일이구나. 홍치제 아버지. 그때는 내가 연산군으로 각성하기 5년 전이니까 당연히 내게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다.
“좋다. 각 관부에 명을 내려 그리 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혹시 그 외에 추가로 행할 사안이 있는지 예조에서 살펴서 빠짐없이 행하도록 하라.”
예절을 잘 차려서 손해를 볼 일은 없다. 더구나 죽은 사람이 누군가? 동아시아에서 최고로 힘센 권력자, 명나라 황제다. 그러니만큼 이 시대 기준으로 차려야할 예절은 가능한 한 차려 두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고 보니 대를 이을 황태자는 어떤 사람인가? 이제 열여섯 살이던가?”
“열다섯 살입니다. 현명하면서 학문도 매우 깊다고 하니, 앞으로 사신을 보낼 때 학식 있는 이를 선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언제는 무지한 자를 골라서 보냈던가? 하지만 더욱 주의해야 하긴 할 일이로다.”
설사 황제가 무식하더라도 신하들은 똑똑한 사람을 모으게 마련이다. 그런 탓으로 중국에 가는 사신들은 명나라 관리들과 일종의 학문 대결을 하는 경우도 잦고, 당연히 엘리트 위주로 선발한다. 이미 한참 전부터 말이다.
학식보다 중요한 건 성격 문제다. 과연 새 황제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바라는 최상의 경우는 소극적인 현상유지주의자, 만력제 같은 사람이다. 내가 알기로 만력제는 재위기간 대부분을 셀프 파업(…)으로 보냈다. 임진왜란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행동은 정말 예외적이었고, 그 외에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덕택에 명나라는 속으로 곯았다.
다만 새 황제가 만력제 같은 사람일 리는 없을 거다. 왜냐고? 간단하다. 명나라가 그 뒤에 만력제 때까지 안 망했잖은가! 진즉에 만력제 같은 사람이 제위에 올랐으면 그때 벌써 나라가 망해서 임진왜란 때 지원도 못 해줬겠지.
비교적 멀쩡한 황제일 건 분명하니, 가능한 좋은 관계 유지하면서 협력해 나가야겠다. 저쪽 관심은 몽골이랑 서역, 베트남으로 돌리고 요동은 나한테 양보하도록 말이다. 적어도 동만주 정도는 확실히 내가 먹어야지. 참, 그럼 회담은?
“남곤이 정계 문제에 대해서는 어찌 기술하였느냐? 대국에서 혹시 국상으로 인해서 정계를 할 수 없으니 회담을 중단하자고 하지는 않았느냐?”
내가 묻자 도승지 권균이 답했다. 아직도 얼굴이 새파랬다.
“남곤이 써서 올리기를, 지휘첨사가 ‘이 일은 돌아가신 선제께서 이미 승인하신 과업이니 혹시 취소하라는 칙명이 없다면 계속 진행하여야만 하며, 다만 최종 승인은 새로이 즉위하신 황제께서 하셔야만 한다’고 했다 합니다. 계속 진행하게 될 모양이옵니다.”
다행이다. 국경 확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끌다 보면 자칫 새 황제가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요동은 다 대국 영토이니 조선은 압록강-두만강 이남으로 물러나라’고 나올 공산도 없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날벼락이다.
이런 꼴이 안 나려면 가능한 만큼 협상을 진전시켜서 ‘선제께서 남기신 유지에 따라 이만큼 진행된 일입니다’ 하고 눈앞에 들이밀어야 한다. 명나라 쪽 실무자들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라 다행이다.
“철령위에 있는 남곤에게 회신하라. 시간이 들더라도 저들에게 부여주 확보에 대한 우리 편 입장을 잘 설명하여 이해시키라고.”
“예, 전하.”
남곤은 무능하지 않다. 아니, 절대적으로 유능하다. 그래서 김종직에게 직접 배운 제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계속 조정에 머무르게 해주었다. 이제 그가 그동안의 내 기대에 답할 때다.
음, 아무래도 밀지를 하나 써서 보내야겠다. 직접 내린 가이드라인이 있는 편이 남곤에게도 협상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부담이 적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