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692
4부 076화(1692화)
17.
포트 샤를에서는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다. 애초에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 황제가 참석하는 연회에 나올 만큼 지체가 높은 부인이나 아가씨들 숫자가 몇 명 안 됐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서도 처음에는 저런 신기한 눈빛이 쏠렸다. 춤을 추자는 제안도 연달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신기한 구경거리 취급도 처음 만났을 때나 받는 거다. 자주 보면서 익숙해지면 그런 재미도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곤란도 금방 끝났다.
배를 타고 강을 내려오며 들른 도시나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저 스쳐 가는 손님인데다, 나폴레옹과 동행하고 있기도 해서 파티장에 나가도 모두가 경외감에 찬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고민은 없었다. 그런데 뉴올리언스에서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제껏 지나오면서 본 시골 유지들과 달리, 뉴올리언스에 있는 귀족이나 유력자들은 나폴레옹에게도 익숙해서 서슴없이 내게 접근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는 나폴레옹 역시 내가 처한 곤경을 장난처럼 취급했다.
“태손. 자고로 영웅에겐 미녀가 따르는 법이라오. 나도 두 황후를 모두 사랑했지만, 그와 별개로 원할 때는 서슴지 않고 다른 여자들과 즐겼소.”
그리고는 태연하게 요즘 자지가 가장 총애하는 정부라는 뒤몽 백작부인을 나와 권씨에게 소개해주었다. 루이지애나 지역 토호의 딸인데, 나폴레옹의 눈에 들어 백작부인이 되었단다. 유럽식 관례에 따라 허수아비 남편을 하나 두고 백작 작위는 남편이 받았다.
“그대는 굳이 이런 허울을 쓸 필요도 없잖소? 대한의 황실 법도로는 미혼의 처녀도 그냥 하렘에 들이면 그만이잖소. 황후가 질투도 하면 안 되고. 그러니 눈에 드는 상대를 마음껏 골라보시오.”
이러면서 나한테 어느 공작댁 영애, 후작댁 영애를 줄줄이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는 낄낄거리고 그냥 다른 자리로 가버리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꼼짝없이 귀족가 영애들한테 완전히 포위당한 채로 남아야 했다.
‘젠장, 자기가 딸 없다고 이런 식으로 때우나!!!!’
포트 샤를에서, 나폴레옹은 자기한테 딸이 있었으면 내게 시집보냈을 거라고 몇 번이나 언급한 바 있다. 정처가 아니라 첩이라도 상관없다고, 왕관을 물려받을 아들만 먼저 낳으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농담처럼 넘겼지만, 외젠의 딸을 대신 보내주겠다는 소리도 했었다. 그때 나폴레옹이 한 행동에서 미루어보면 나폴레옹은 진심으로 내 옆에 여자를 붙여놓을 생각일 가능성이 컸다. 진짜로 자기 딸은 아니라고 해도, 누벨 프랑스 출신 여자가 내 옆에 있지만 해도 자기가 영향력을 크게 미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내가 후궁의 속살거림 따위에 넘어가서 국정을 말아먹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 성품을 다 모르는 나폴레옹은 얼마든지 그런 미인계를 시도할 수 있다. 내가 어리니까,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앙리 2세를 평생 사로잡은 디안 드 푸아티에처럼 말이다.
나폴레옹이 정말로 그런 생각을 품고서 나한테 누벨 프랑스의 명문가 영애들이 몰려오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성공한다면 저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건, 아니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건 분명했다.
“저하! 동방에서는 한 남자가 아내 여럿을 두어도 합법이라면서요?”
“저하께서는 아내가 몇 명이나 되시나요? 아직 아내를 더 맞이할 수 있으신가요?”
“기사왕 폐하는 질린스카 대공비와 황후 말고도 아내를 일곱이나 두셨다면서요. 그러면 저하께서도 그만큼은 더 두시겠지요?”
사방을 에워싼 영애들한테서 호기심에 찬 질문이 쏟아졌지만,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요?’를 시전할 수도 없다. 바로 직전에 이 아가씨들의 아버지들과 아주 유창한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눈 참인데 그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거짓말이 통하겠는가. 그래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질문은 그나마 대답하기 쉬운 부류에 속했다.
“저하께서는 실내에서도 늘 모자를 쓰고 계시는데, 머리 모양이 쿨리들과 똑같아서라는 말이 정말인가요?”
“우리 대한에서는 머리 모양과 상관없이 언제나 모자를 쓰는 게 예법이라오. 마드모아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만 벗는 다오. 그리고 중국식 상투와 한국식 상투는 모양이 다르오.”
이쪽 세상에서는 중국인을 가리키는 멸칭이 ‘돼지 꼬리’가 아닐 거다. 후송에서 온 쿨리들 머리가 청나라식 변발이 아니라 중국식 상투니까. ‘버섯 대가리’ 정도 아닐까.
이렇게 단순한 호기심으로 달라붙은 애들은 그나마 낫다. 문제는 아무래도 뭔가 다른 걸 노리는 게 분명해 보이는, 어딘가 수상한 낌새를 풍기는 영애들이다. 다른 집에 초대받아서 갔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집주인이 자기체면 때문에라도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기 전에 개입해서 나를 구해주기도 하고, 내가 남자 손님들 옆에 바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식으로 피하기도 했다. 김유근을 비롯한 스승들이 철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받은 초대에 대한 답례로 파티를 열 때는 손님을 직접 맞이해야 하니 피할 도리도 없었다. 이런 공세를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 오늘 입으신 의상은 황제 폐하께서 어제 직접 선물하신 옷이라지요? 정말 잘 어울리세요.”
“고…..고맙소, 마드모아젤.”
“그러면 새 옷의 기념으로 오늘은 저와 춤 한 곡만 추어주시지 않겠어요? 부탁드릴게요.”
“미안하오, 마드모아젤. 아무래도 내가 춤에는 영…..”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이건 그나마 양호한 축이다. 정말 찐득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건 이런 사례들도 있다.
“저하, 저하 같은 분을 뵐 수 있었던 건 제 인생에 다시없을 소중한 추억이에요. 저하를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만 남겨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언제나 왕실과 연을 맺고 싶었답니다. 저 정도면 저하의 옆자리에 서기에 충분하지 않은지요? 절대 대한 황실의 체면을 깎을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들의 의도는 빤했다. 나를 홀려서 보석이라도 하나 받아내고 싶거나, 아니면 올렝카의 선례를 따라 내 ‘하렘’에 들어오고 싶어 하거나. 설마 그런 의도를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있었다! 정말로, 심지어 역사적인 인연까지 끌어다 댔다.
“저하! 제가 이 자리에서 저하를 만나게 된 건 정말 하늘이 정해준 운명일 거예요. 저희 가문에는 옛날 루이 14세 시절에 대한에 고문관으로 가셨던 조상님이 계신답니다. 그분께서 맺으신 인연이 오늘 반복되었으니, 이는 분명 큐피드의 화살이 저희를…..”
“마드무아젤, 뜻은 고맙지만 나는 이미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만나서 혼인했으니 사양할 수밖에 없소. 사양하고 싶소, 하느님께서는 성실한 이를 사랑하시니, 부디 성실하고 훌륭한 남편감을 맞이하기를 기원하겠소.”
전부는 아니지만, 영애 중에 일부는 권씨가 근처에 있건 말건 나한테 달라붙기까지 했다. 어차피 대한의 법도가 일부다처를 허용한다면, 본처 앞에서 내게 아양을 떨어도 괜찮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함부로 그렇게 해도 되는 게 아니라고.
이런 곤욕을 치르면서도 영애들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지 못한 건 혹시라도 그중에 상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희망 때문이었다. 누벨 프랑스 고위층 중에는 아직 한국계 가문이 없지만, 피가 살짝 섞인 사례는 없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그 얄팍한 기대는 언제나 배신당했다. 상희와 닮은 얼굴을 한 영애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고, 한국어를 할 줄 알거나 의학에 지식이 있는 영애도 없었다.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국 여기서 상희를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도 완전히 접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파티 때마다 처음 보는 영애들이 계속 밀려들었다는 거다.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디에고가 좀 강하게 나가면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저하, 원래 백마를 탄 왕자에게는 언제나 미녀들이 몰리는 법 아니었습니까? 저하께서는 검증된 신분에다 출중한 외모, 거기에 또래들과 비교해서 키도 크시니 당연히 누벨 프랑스 처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으실 만하지요.”
“볼내공, 나는 이미 혼례를 치른 몸이오.”
“건흥제께서도 기혼이셨지만 자유롭게 유럽을 활보하며 숱한 미희들과 진한 정을 나누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라도 되십니까?”
정말이지 그 성실하던 디에고의 후손이라고 믿을 수 없는 태도였다. 그리고는 마치 상어 배에 붙은 빨판상어처럼 굴었다. 나를 노리고 온 영애 중 혹시 자기한테 얻어걸리는 사람이 없는지, 젯밥을 노렸다는 말이다. 그러니 몰려드는 아가씨들을 제대로 막아줄 리 없었다.
“저하, 제발 저와 춤 한 번만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아,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어라.
18.
“소저들이 그토록 원하는데 춤 정도는 춰주시지 그러시옵니까, 저하.”
힘들었던 하루를 끝내고 침실로 돌아왔다.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쉴 준비를 하는데 권씨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허나 이건 절대 동조해서는 안 될 제안이었다.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옳지 않은 일이오. 빈궁이 옆에 있는데 내가 어찌 외간 여자와 춤을 추겠소.”
권씨는 내가 나가는 모든 사교 행사에 동행했다. 말로는 지어미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예를 차리는 거라고 했고 행사에서도 주로 이곳 여자들과만 어울렸다. 하지만 나는 권씨의 진의는 내가 이곳 여자와 눈이라도 맞지 않는지 감시하려는 데 있다고 의구심을 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백 수십 년 전에 내가 만들어놓은, 올렝카와 디에고라는 전례가 있지 않은가. 혼자 외국에 나가 멋대로 돌아다니던 황자가 현지에서 양첩에 사생아까지 만들어서 데려왔다. 자칫했으면 황실에 평지풍파가, 피바람이 몰아치고도 남을 일이었다.
만약 내가 유럽에서 일지감치 디에 고를 인지했다면? 올렝카가 난임이 아니라서 일찌감치 아들을 얻었다면? 과연 그때 내 후계자는 누가 되었을까? 아무리 내가 상희를 총애하고 은이에게 힘을 실어주어도 디에고가, 올렝카의 아들이 자기 처지에 불만을 품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을 거다. 현왕이야 한인이니까 대한 황실의 법도를 알고 거기 맞춰 살았지만, 이사벨이나 올렝카가 자기 아들이 그렇게 찌그러져 살게 뒀을까?
이사벨은 처음부터 보통 성격이 아니었다. 올렝카도 양순해 보였지만 자식의 출세를 두고 붙는다면 절대 쉽사리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세 상희까지 셋이서 서로 자기 자식의 운명을 두고 격돌했다면…..정말 피바람이 불었을 거다.
지난번 생에서도 몇 차례나 생각했던 거지만, 만약 그랬으면 정말 피를 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 되어서 다행일 뿐이다. 그런 사태가 지금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권씨가 내 주변을 감시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나로서는 여기서 또 후궁을 맞을 생각이 전혀 없지만, 권씨가 나를 신뢰하지 않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거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다만 권씨는 겉으로는 전혀 그런 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환히 웃으며 내게 핀잔을 주었을 뿐이다.
“저하, 사내가 춤을 청하는 아낙의 신청을 거절하는 건 이곳 예법으로는 엄청난 실례라고 하였습니다. 신첩 때문이라면 개의치 말고 받으시옵소서. 신첩은 괜찮습니다.”
권씨는 내가 유럽식 춤을 출 줄 안다는 사실을 안다. 포트 샤를에서 함께 연습도 했었지 않은가. 나는 가르치는 재주가 없고 권씨는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몸치라서, 게다가 내가 권씨보다 키가 작아서 연습만 좀 하다가 집어치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키가 제법 자랐다. 그동안 몸을 많이 움직인 탓인지 요즘 부쩍 커서, 10cm 가까이 나던 키 차이가 5cm 남짓으로 줄었다. 이만하면 함께 무도회장에 서도 크게 티가 안 날만 한 차이 아닌가. 어쨌든 권씨가 권한다고 냉큼 춤추러 가면 나는 천하의 바보 천치다. 힘주어 거부했다.
“만약 내가 무도회장에서 춤을 춘다면 그 상대는 빈궁 하나뿐이오. 내가 그대의 지아비고 그대는 내 지어미인데, 어찌 다른 사람과 춤을 추겠소?”
“저하, 유주 예법은 사내가 여러 아낙과 춤을 추어도 비례(非禮)가 아닙니다. 물론 신첩은 춤을 익힌다 해도 저하 외에 다른 이와는 절대 추지 않을 겁입니다만, 저하께서는 얼마든지 추셔도 괜찮습니다. 중종께서도 그리하셨습니다.”
내가 성친왕 때 한 일만 불려 나온 게 아니다. 권씨는 박문수가 러시아에 진위사로 갔을 때 러시아 측이 열어준 사교행사에서 박문수가 러시아 귀족 여인들과 느긋하게 춤을 즐긴 사례까지 언급했다. 그런 전례가 있으니 내가 춤을 춰도 괜찮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따지면, 그때 의명공주께서도 양장을 입고서 루스귀족들과 춤을 추신 바 있으니 빈궁도 여기서 춤을 춰도 되지 않소.”
“아닙니다, 저하. 공주께서는 출가외인이셨으니 공주께서 조금 예에 어긋나는 일을 하신다 해도 황실에 큰 누가 될 일은 없었습니다. 누가 되더라도 박씨 문중의 누였지요. 그렇지만 신첩은 장차 보위에 오르실 저하의 안사람인데, 어찌 일말의 흠인들 만들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연주야 원래 장안에서 명성이 자자했으니, 외국에 있는 이복언니 집에 가서 드레스 좀 입고 춤 좀 춘다고 딱히 평판이 깎일 일도 없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라고 해도 왈가닥 공주가 하는 것과 태손빈이 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온도 차가 있다.
“가가례라 하였소. 이곳 예법이 춤은 여러 사람과 돌아가며 추는 것이라 해도, 내가 추지 않으면 그만이오. 빈궁이 내 옆에 이렇게 든든하게 서 있는데 내 어찌 그 보는 앞에서 외간 여자의 손을 잡고 허리에 팔을 두른 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겠소.”
권씨가 뭐라고 하건 나는 춤을 출 생각이 없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외간 여자랑 춤을 출 생각이 없다는 것도 진심이고, 지금도 간신히 철벽을 치고 있는데 일단 그 담이 허물어지면 곧바로 쇄도할 춤 신청을 다 받아주기도 싫다. 어디 그 춤이 춤 한 번으로 끝날까?
그동안 쏟아진 질문 공세나 은근히 팔짱을 끼며 몸을 밀착하는 몇몇 영애들의 태도를 볼 때, 나한테 틈이 생겼다 싶으면 더 끈근하게 달라붙으며 공세를 펼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여지는 절대 주고 싶지 않다.
“저하, 영웅호색이고 군왕무치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하께서 황귀비 소씨와 인연을 맺으신 건흥제 폐하의 선례를 본떠서 양첩을 들여 본국에 데려가신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빈궁,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소. 세상에서 가장 현숙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지금 곁에 있는데 왜 첩을 들일 궁리부터 한단 말이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선성에 있는 양원 세 사람도 부담스럽다오.”
까놓고 말해 ‘나는 당신 하나만 곁에 있어도 된다오’라고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똑똑한 사람이라 그 뜻을 바로 알아챘는지 권씨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동안 내 옆에 몰리는 누벨 프랑스 아가시들 때문에 쌓이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 듯했다.
“이만 잡시다. 요즘 쉬지도 못하고 매일 연회에 나가느라 피곤할 텐데.”
“…..네, 저하.”
여기에 입주하면서 보니 부부 침실이 따로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배를 티고 내려오면서 계속 같은 방을 썼더니 새삼스럽게 방을 나누는 것도 좀 그래서 그냥 같은 방을 쓰고 있다. 같이 침대에 누웠더니 권씨가 조심스럽게 품에 안겨 왔다. 부드럽게 두 팔로 그 어깨를 감싸니, 아직 풋풋한 여체가 주는 매끝하면서도 탄탄한 느낌이 전신을 자극했다. 처음 안는 몸도 아니건만, 왠지 심장이 뛰고 체온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어….라…..?’
가슴만 뛰는 게 아니다. 평소에는 물렁물렁하기 이를 데 없는 신체 일부에 은근히 힘이 들어갔다. 이번 생에서는 한 번도 없었단 일이라. 잡자기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때 권씨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흥분한 듯 들뜬 목소리로 치명타를 날렸다.
“사랑하옵니다, 저하.”
권씨의 ‘고백’을 듣는 순간 힘이 들어간 부분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리고 이제 정말 때가 왔구나, 하는 직감이 왔다. 우리가 진짜 부부가 될 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