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0
1부 170화
– 11 –
“귀측이 제출한 지도를 그동안 세심히 살펴보았소. 그런데 산맥과 강줄기 모양이 요동부에 있는 지도와 약간 형태가 다르오.”
“대략적인 모양은 같지 않소? 요동부에서 그 지도를 언제 편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지도는 이번 북정을 통해 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라 대대적으로 개찬한 판본이오. 정확도를 비교한다면 요동부 지도보다 우리 지도가 더 정확할 거요.”
정계를 위한 회견은 황제가 붕어했음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되리라고 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전혀 멈추지 않고 진행할 수는 없었다. 이춘미가 지휘첨사로서 군무 뿐 아니라 행정업무 역시 일부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상은 큰일이다. 이춘미도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군민(軍民)들에게 하달해야 하는 행정적인 조치들이 많았고, 정계와 국상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는 명확했다.
덕분에 남곤은 근 한 달 동안 이춘미를 만나지 못하고 객사에서 소일해야 했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얼굴을 맞대고 정계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이춘미는 남곤을 대하는 태도가 그전보다 훨씬 깍듯해졌다. 국상 탓은 아닌 듯 하고, 아무래도 술대결에 지면서 기가 좀 꺾인 모양이었다. 남곤으로서는 하필 술을 가지고 이춘미가 자신과 승부를 겨룬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통사 박개동은 ‘이가는 무장이므로 도저히 글로 도전할 수는 없고, 무위로 짓밟기는 차마 떳떳하지 않고, 그나마 동등하게 우열을 따져 볼 도구가 술밖에 없다고 여기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했다. 하지만 딱히 근거가 없으니 그 말대로 생각하기도 조금 곤란했다.
어쨌든 상대가 나를 공손하게 대하는 이상 이쪽도 예절을 갖추는 게 법도다. 새파랗게 어린 일개 지방관이 자신과 동급으로 구는데서 오는 불쾌감은 잠시 잊기로 했다.
“알겠소. 가친께서 이 일을 맡으셨다면 귀측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으나, 본관은 이 책무가 매우 시급함을 이해하고 있으니 일단 귀측 지도를 사용하여 일차로 정계를 하겠소.”
이춘미는 자신이 무척 큰 선심을 베푼다는 듯 점잔을 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곤은 일단 고비를 하나 넘겨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가친이라는 말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하긴, 그러고 보니 선친이 자연사하고 때가 되어 직책을 승계했다고 보기에는 이춘미가 너무 젊었다.
“춘부장께서는 어찌 이리 조기에 그대에게 지위를 물려주셨소?”
다른 일이 있어서인지 이춘미 쪽 통사는 회담장에 나오지 않았다.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대놓고 평어로 이야기했다. 높임말은 박개동이 알아서 넣을 일이다.
“가친께서는 달단 토벌에 종군하라는 황명을 받고 출전하셨다가 달자들이 쏘는 총탄에 맞아 작년 초에 돌아가셨소. 헌데 그 총이 조선에서 보낸 총이었던지라, 본관은 귀국에 대해 별로 좋은 생각을 품고 있지 않소.”
대답을 들은 남곤이 깜짝 놀랐다. 몽골인들이 명군에게서 노획한 총으로 명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조선에서 보낸 총에 이춘미의 부친이 맞아죽었을 줄은 몰랐다. 반감이 있다면, 일가인 이인임 때문일 거라고 여겼었다.
“그거 유감이오. 하지만 우리는 그 총을 황상께 바쳤지 달자들에게 내주지 않았소. 그대가 원망을 우리에게 돌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오.”
“본관 역시 그 점을 알기에 귀하가 묻기까지는 말하지 않은 것이오. 선친께서 조총에 맞아 돌아가신 것이 어찌 귀국 탓이겠소? 허나, 본관이 사람인 이상 귀국을 좋아할 수는 없소.”
명나라에서는 자기네가 만든 총은 수총(手銃), 조선에서 바친 총은 조총이라 하되 鳥銃이 아니라 朝銃이라고 적어서 구분하고 있었다. 단 중국어 발음은 鳥銃과 朝銃이 명확히 다르다.
조선에 대한 자기 심정을 털어놓은 이춘미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선친께서는 조선말도 구사가 가능하셨고, 증조부께서 떠나오신 조선 땅에 대해서도 애착을 가지고 계셨소. 허나 대국 무장으로서 임무에는 충실하셨던 만큼, 선친께서 계셨더라면 그대 감계사가 이리 쉽게 회담을 진행할 수는 없었을 거요.”
이제 네 번째 만났다. 회담은 겨우 시작 단계인데, 그동안 쉽게 진행한 일이 도대체 뭐가 있었나 싶었지만 남곤은 굳이 그 말을 반박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부터라도 이춘미가 앙심을 품고 회담 진행을 지연시키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분명 임금은 밀지를 통해 회담을 오래 끌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제는 국경선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진지하게 교섭하는 시간이 길어도 좋다는 것이지, 상대를 화나게 해서 괜히 협상을 파탄으로 몰고 가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계시지 않는 선친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겠소. 현안인 정계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니까.”
다행히 이춘미 쪽에서 먼저 껄끄러운 화제를 그만 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남곤에게 받은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놓은 이춘미가 지시봉으로 그 위를 짚었다.
“우리 조정에서 내린 방침은 요동을 흐르는 적당한 강을 선정하여 대국과 조선을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하라는 것이오. 귀하도 같은 지시를 받으셨소?”
“그러하오.”
남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이 내린 밀지에는 그 내용도 적혀 있었다.
“알겠소. 나라 사이에 경계로 삼으려면 어느 정도 이상 규모가 되는 강이어야 하오. 물이 줄면 무릎까지도 안 차는 그런 시냇물 같은 물줄기를 경계로 삼을 수는 없다, 이 말이오.”
“동의하오.”
남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경계선은 쉽게 넘을 수 없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크고 눈에 띄어야 한다. 이춘미가 예시로 든 그런 작은 강은 제대로 경계선 노릇을 하기도 힘들고, 너무 수가 많아서 헷갈리기도 쉽다.
“귀국이 제시한 지도를 보건대…그 자체로 보아 경계선으로 삼을만한 크기가 되는 강은 총 4개가 있소. 이중에 경계가 될 강을 골라야 하리라 생각이 되오.”
“굳이 따져볼 것도 없소. 가장 명확하게 경계선으로 삼을 만한 강은 요하라고 생각하오만.”
가능한 농담처럼 보이면서 한 마디 던져 보았다. 잠시 움찔하던 이춘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국상 중에 크게 웃음은 예에 어긋난다고 여겼는지, 곧 그치긴 했다.
“흐음, 조선국 감계사께서는 재미있는 재담을 하시는군. 본관도 동의하오. 이적(夷狄)들이 사는 관외(關外)와 중원을 나누는 경계선으로는 확실히 요하가 적절하지.”
중원, 명나라 본토와 요동 사이에는 천하제일관이라고 불리는 산해관이 버티고 있다. 관문 바깥 땅, 곧 관외는 이적이라 불리는 오랑캐의 땅이다. 요동은 예로부터 중원의 힘이 미치는 땅이 아니었다.
이춘미가 흥미를 보이는 듯하자 남곤이 좀 더 발을 내밀어 보았다.
“지휘첨사께서도 알고 계실 거요. 옛적 한무제도, 당태종도 요동 땅 전부를 얻지는 못했소. 옛 조선을 멸한 뒤 한무제가 군현을 설치했다 하나, 그것 역시 요동 깊숙한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중국과 가까운 서쪽 변경에만 설치되었소.”
“나는 사서를 많이 읽지 못하여 그대가 하는 말의 진위를 알지 못하겠소.”
“그대 밑에도 학사(學士)들이 있을 테니, 그들을 불러 물어보시오. 한무제가 설치한 군현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들이 알려줄 거요.”
이춘미는 멈칫거리기만 할 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휘하에 있는 문관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듯했다. 하긴, 머릿속에 먹물 깨나 집어넣었다고 자부하는 문사들이 아직 연소한 상관에게 잘 따른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리라. 가신(家臣)이라면 모르겠지만.
“당태종 역시 고구려를 멸하고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하나, 얼마 못 가서 치소를 요서로 옮겨야만 했소. 요동 땅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요동은 고구려를 이은 발해의 영역이 되었소.”
“그건 알고 있소.”
“그럼 지휘첨사께서도 중원과 요동을 가르는 선은 요하가 가장 적당하다는 본관의 견해에 동의하시겠구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이춘미가 피식 웃었다. 아까 저지른 실수를 기억했는지, 입술만 살짝 움직였을 뿐 소리는 내지 않았다.
“아주 훌륭한 변설이었소. 본관이 정계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귀하가 내세우는 언변에 넘어가서 요하 이동에 있는 영토를 모두 포기하고 물러갔을 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동도사께서 본관에게 주신 권한은 어디를 경계로 삼으면 좋을지 확인하라는 것뿐이구려.”
남곤도 마주 웃었다. 애초에, 설마 이 정도 말에 상대가 넘어오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춘미에게 요동 땅을 포기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고 말이다.
그저 회담 분위기를 다소 부드럽게 만들고, 상대에게 중국은 요동에 대한 연고권이 애초에 없었음을 인식시켜주면 될 뿐이었다. 계획대로 이춘미는 남곤의 말을 인정했다.
“확실히 귀하가 말한 대로 요동은 중원에 속하지 않은 땅이오. 허나 본조(本朝)로서는 그냥 방치할 수가 없소. 달자들이 요동을 범한 다음 중원을 쳤고, 그 이전에는 여진과 거란이 모두 요동을 기반으로 일어나 중원을 점거했소. 그런데 어찌 조정에서 요동을 포기하겠소.”
고구려와 발해는 요동을 장악하였으되 중원까지 영토를 넓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뒤에 요동에서 일어난 거란과 여진은 중원을 장악하여 천자라고 칭하며 세력을 떨쳤다.
남곤은 여기서 상대를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조선은 중원을 칠 의사가 없다고 말이다.
“본관이 소진이나 장의처럼 변설에 능하다면 좋겠구려. 그렇다면 조선이 요동에서 지배하는 영토를 넓히더라도 대국에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변설로 설득하여 평화를 이룰 수 있을 테니 말이오.”
“소진과 장의는 모두 강대한 진나라와 그에 맞서는 6국이 있었기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소? 조선은 있으되, 다른 5국은 어디에 있소?”
뼈 있는 한 마디였다. 남곤이 소리 없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서를 읽지 않았다 하시더니, 반박이 날카로우시오.”
“사서를 직접 읽지는 않았으나 어려서부터 스승은 있었소. 선친께서 붙여 주신 노사(老師)가 이것저것 가르쳐 주셨소이다.”
이춘미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남곤도 미소를 지으며 반론했다.
“진과 6국은 서로를 정벌하고자 전쟁을 반복했소. 허나 대국과 우리 조선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잖소? 우리에게는 오직 공동의 적밖에 없었소. 달자가 그 적이었고 야인이 그 적이었으며 왜구가 또 하나의 적이었소. 대국과 우리는 늘 한편이었음을 상기하시오.”
모두 사실이다. 국초에 잠시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주장하며 명과 갈등을 낳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정도전이 숙청되고 태종이 보위에 오른 뒤로는 두 나라 사이는 급속도로 좋아졌다. 여진에 대한 관할권 문제로 약간 분쟁이 있긴 해도, 충돌한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그 말은 맞소. 하지만 조선은 왜 요동으로 나오려 하는 거요? 대국에서는 달자들에게 한쪽 날개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요동을 확보하고 있소. 하지만 조선이 야인들이 사는 척박한 땅을 굳이 영토로 확보하려 하는 이유를 본관은 알 수가 없소.”
이 문제는 사실 남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더구나 이 문제를 명 조정도 아니고 이춘미가 제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선에 요동 땅을 내주기로 이미 결정은 다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단지 ‘경계를 정하는’ 실무자가 왜 그 근본을 따지고 드는가?
“본래 우리 강역이기 때문이오. 다른 이유는 없소.”
밀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남곤 자신이 답안을 만들어내야 했다.
“옛날 우리 전조인 고려조에서 여진을 정벌하면서 두만강 북쪽 7백 리 되는 공험진 땅에 정계비를 세운 바가 있소. 또한 우리 개조(開祖)이신 강헌왕께서 일찍이 대업을 일으키실 때는 북방 천여 리에 걸친 땅에서 야인들이 귀부하였소. 그러니 그 어찌 우리 땅이 아니겠소?”
“본조의 역대 황제들께서 그 야인들의 땅에 모두 위소를 설치하고 조공을 받으셨소. 그러니 그 땅들은 본조에 귀속되었다 할 수 있소.”
아무래도 어리다 보니 우쭐해서 자꾸 붙들고 늘어지는 모양이다. 남곤으로서는 이춘미와 더 이상 의미 없는 논쟁을 이어갈 필요가 없었다.
– 12 –
“확실히 이국(異國)이라, 많은 것이 낯설구나.”
이장곤은 통변을 거느리고 시끌벅적한 철령위 시가를 천천히 훑어나갔다. 비록 지금이 국상 중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평소처럼 영위되고 있었다.
“나리, 감계사 어른께 허락도 받지 않으시고 너무 오래 출타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제 그만 객사로 복귀하시지요. 감계사께서는 성품이 무척 엄하시다 합니다.”
도성에서 데려온 역관은 주변을 메운 야인과 몽골인들을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감계사가 아니라 사실은 야인들을 더 두려워하는 듯해서 그 모습을 본 이장곤이 피식 웃었다.
“걱정 말게. 감계사 영감과 나는 니마차 토벌 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면서 피를 나눈 사이라네. 지금 해야 할 일도 없는데 객사를 벗어났다고 역정을 내시진 않을 걸세.”
상감은 남곤에게 내리는 밀지를 가지고 갈 사람으로 이장곤을 선발했다. 선전관이 임금에게 밀지를 받아 전달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장소가 너무 멀었다. 압록강 너머 철령위라니!
임금도 너무 먼 길을 보내기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밀지와 더불어서 여비로 은 두 주머니를 주었다. 어디에 쓰든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쓰라는 말과 함께.
한때 사역원에서 근무했던 병조판서가 추천한, 사역원 역관들 중에 가장 한어(漢語) 실력이 출중하다는 역관과 함께 꼬박 열흘을 말을 달려 철령위에 도착한 게 보름 전이었다. 그동안은 여독도 풀 겸 객사에만 있었지만, 오늘은 남곤이 지휘첨사를 만나러 나갔으므로 자유였다.
정계 문제로 남곤과 논의하며 보낸 시간은 솔직히 골이 아팠다. 오늘은 자유롭게 성채 안을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명나라 군대는 상태가 어떤가도 살필 생각이었다.
“어차피 다른 군사들도 몽땅 놀러나갔습니다. 우리 세 사람만 혼이 나지는 않을 걸요.”
옆에서 이죽거린 사람은 내금위에 속해 있는 대마도주 종재성의 차남, 종성가였다. 임금은 그와 그의 형 종의성으로 하여금 이장곤을 수행해 철령위로 가라고 명령했다. 도중에 평안도 일대에 흩어져서 번을 서고 있는 대마도 군사들을 위문하라는 지시와 함께 말이다.
두 형제는 동포들을 둘러보고 이장곤보다 닷새 늦게 철령위에 도착했다. 오늘도 종의성은 감계사가 언제 갑자기 객사로 돌아와 찾을지도 모른다며 객사를 절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달리 종성가는 밖에 나올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럴 걸세. 우리만 꾸중을 듣지 않으려고 들인 돈이 얼만데.”
이장곤은 공범을 만들 겸, 임금이 하사한 은을 군사들에게 두어 냥씩 나누어주었다. 진즉에 주머니가 텅 비어 방구석을 뒹굴던 군사들은 모조리 객사를 뛰쳐나갔다. 아마 오늘 중에 죄다 써버릴 테지만, 별로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번 돈도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명나라 요동병은 거의 야인이나 달자로군. 한인은 거의 없는 듯하고…갑주는 제법 든든하지만, 화살은 몰라도 조총은 절대 막지 못하겠고.”
임금은 이장곤에게 단순히 밀지만 전달할 게 아니라 남곤의 의논 상대 역할도 하고, 명군의 허실도 가능한 한 탐색해 보라는 밀명을 내렸다. 그 한 사람의 눈으로 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볼 수 있는 만큼은 보아둘 생각이었다.
“요동병들은 화포가 없는가?”
질문을 받은 통사가 답했다.
“있긴 할 겁니다만, 대국에서도 화포는 중요한 병기인지라 평시에는 드러내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동병은 기병이 중심이라 들었는데, 화포를 어찌 끌고 다닌단 말인가?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기병의 힘을 버리는 게 아닌가.”
하루 정도 돌아다닌들 그것까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철령위에 머무르는 동안은 가능한 매일 나다니면서 탐보꾼 노릇을 해야 할 판이다.
“어…저건 뭔가?”
“여인네들이 쓰는 방물을 파는 점포입니다.”
색색으로 반짝이는 갖가지 장신구가 보였다.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은은한 향내도 풍겼다. 이장곤은 자기도 모르게 점포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