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04
4부 088화(1704화)
11.
한국 외무부에 다녀올 때마다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진다. 분명 한국은 청나라의 둘째가는 우방이고 또한 심양 회맹으로 한데 묶인 사이건만,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고 벅찬 상대인 탓이다. 그나마 오늘을 현안이 있어서 간 게 아니라 단순한 위문이라 부담이 적었다. 한양 주재 청나라 공사, 송균(松筠)이 자리에 앉아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쉬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차가 나왔구려. 한잔 마시며 쉬고 올라갑시다. 한황께서 상태가 호전되었다 하니 일단은 다행인 셈 치고,”
송균이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올해로 일흔일곱이 된 이 노인은 이름만 보면 한족일 것 같지만 사실 몽골인이다. 전장에서는 언제나 선봉에서 싸웠고 문무의 요직을 역임했으며 지방관으로도 재임하며 수많은 업적을 쌓은 청조의 명신이었다.
“그러는 편이 좋겠습니다. 차가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군요.”
함께 외무부에 다녀온 한양 주재 후금 공사, 합달나랍 탁혜(哈達那拉 托惠)가 맞장구를 쳤다. 그는 만주 명문가 합달나랍씨의 일종으로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만주 귀족이지만 팔기의 깃발을 받쳐 들고 전장을 누비는 대신 붓을 들고 문관 노릇을 하고 있다.
신분으로 따지면 탁혜 쪽이 더 높다. 하지만 송균 쪽이 근 서른 살이나 나이가 많은 탓에 탁혜는 송균을 어른 대접하고 있었다. 물론 예로부터 양국 사이에서 청나라 쪽이 미묘하게 손위 노릇을 해 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래도 형이 세운 나라 아닌가.
“일단 고비는 넘긴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한황의 나이가 나이니까 좀 불안하기는 합니다. 이렇게 한국에 주의가 쏠릴 때는 원종, 대종 폐하 시절처럼 남적 놈들과 남개 놈들이 힘을 합쳐 바보짓을 좀 해줘야 하는데 말이지요.”
남적(南賊)은 건주 양국이 후송을 부르는 비칭이다. ‘남쪽의 도적놈들’을 의미한다. 남개(南?)는 사천과 양광과 귀주 등을 모두 상실하고 운남에 처박힌 서나라를 부르는 멸칭이다. ‘남쪽의 거지 놈들’을 의미한다.
탁혜가 이야기한 ‘남적 놈들과 남개 놈들의 바보짓’이란 서나라와 후송이 번갈아 막대한 재정을 엉뚱한 데 퍼부은 일을 가리킨다. 세상에, 공사관 하나 짓는데 천만 냥이 넘는 돈을 쓰다니 그게 제정신인가. 그 짓을 한 장시원은 정말 미친놈이었다. 후송의 조경소도 만만치 않다. 물론 미녀라는 건 그저 손을 대지 않고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것이고, 그 미녀들을 집어넣으려면 궁궐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즐기는 일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에 한 명씩 품어도 3만 명을 품으려면 80년이 넘게 걸린다.
“그러니 망했지요. 멍청한 놈들.”
“옳은 말이오.”
탁혜가 비웃음을 던지자 송균도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그는 사천이 함락될 때 전군의 선두에서 전마를 몰아 성도에 입성한 선봉대 중 한 사람이었다. 장시원이 황금과 비단을 처발라 장식한 성도의 그 화려한 궁전을 직접 보았다.
“대서관을 짓겠다고 퍼부은 천만 냥이 넘는 돈을 가지고 한중의 방비를 굳히는 데 썼다면 어찌 철기가 그 험한 고개를 넘었겠소이까. 모두 저들이 자처한 바, 전혀 가엾게 여길 이유가 없지요.”
굳이 반복해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서나라 말종 장시원이 한 짓은 뭐라고 해도 옹호할 수 없다. 돈을 많이 썼더라도 뭔가 이뤄낸 게 있었거나 의도라도 좋았으면 용납이 될 텐데, 순전히 자기 개인의 향락을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후송은 비슷한 짓을 벌이고도 망하지 않았다. 일단은 나라가 더 부유하기도 하고, 조경소도 어느 정도는 자제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낭비에 쓴 돈이 순전히 자기 돈이라는 점에 있었다.
후송의 재정은 황제의 금고로 들어가는 돈과 각지의 도통사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나뉘어 있다. 도통사들은 자기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거둔 세금 중 일부를 군사비로 사용할 권한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고, 이 돈은 이들이 사실상 군벌로 존재하는 기반이 되고 있었다. 조경소는 재정을 유용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아 조달한 돈으로 엄청난 사치를 벌이면서도 이 도통사들 몫의 세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헌납을 가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황제의 사치와는 별도로 각 도통사가 보유하는 전력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진즉에 반란이 일어났겠지. 그렇지 않소?”
“물론입니다. 도통사들이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지요. 남적의 도통사들은 옛날 당나라의 절도사들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황실에 충성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그뿐입니다.”
송균의 질문을 받은 탁혜가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후송의 도통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히 황제와 싸워서 좋을 일이 없고, 완전히 덜어져 나간다면 청나라나 한국이 틈을 노려 공격할 게 뻔하기에 하지 않을 뿐이다.
후송 황제들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사치에 눈이 돌아가 사방에서 신나게 돈을 긁어모은 조경소도 도통사들 몫의 세금에는 손을 대지 않은 거다. 후송 성립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후송 태조 조승복은 자기에게 반항하는 자들은 몽땅 대가리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도통사고 뭐고, 그때는 조승복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손발에 불과했다. 조승복 마음대로 도통사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건 예사였다.
사실 후송 초기에는 도통사 감투를 쓴 이가 스무 명이 넘었다. 하지만 조승복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박살이 나거나 궁지에 몰려 자살하거나 청나라나 서나라로 망명하거나 하면서 그 수가 꾸준히 줄어든 끝에 8명만 남게 된 거다. 그 뒤로도 백여 년은 그 충격이 유지됐다. 하지만 슬슬 후송 황실이 문약해지고 통제력이 수도인 남경 인근에 집중되면서 지방에 있는 도통사들은 점점 통제를 벗어나서 자기 멋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조경소의 사치가 이런 움직임을 결정적으로 촉발했다.
“아무리 사치를 부려도 군대에 필요한 자금은 넉넉히 남겨 두었어야지요. 정말로 어리석은 놈입니다.”
“말해서 무엇 하겠소.”
병사의 머릿수만 그대로라고 전력이 그대로인 게 아니다. 장비를 제때 교체하고 보급품을 제대로 공급해야 전력이 유지된다. 하지만 조경소는 거기 들어갈 돈을 자기 사치에 썼고, 당연히 중앙군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도통사들의 힘이 강해졌다. 모든 군사를 황제가 확실하게 손에 쥐고 있는 건주 양국과 비교하면 조경소가 벌인 짓은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다. 청나라도, 후금도 전체 병력 숫자는 후송에 비해 적지만 통제는 황제 한 사람이 확실히 하고 있다.
후금에서는 황족과 귀족들이 아직 팔기의 기주 직함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청나라 쪽은 이미 백 년 전에 명목상의 기주 지위까지 모두 황제에게 빼앗겼다. 팔기에다 녹영까지 모두 황제의 명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조경소가 벌인 막대한 낭비 때문에 후송의 중앙군인 금군은 제때 전력을 보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조경소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소태제 조승번은 기껏 양광 땅을 정복하도고 그 처분을 정주도통사 홍사옥에게 일임하다시피 해야 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양광 정복의 여세를 몰아서 이번에는 기필코 북벌을 성공시키겠다고 칼을 갈고 10여 년에 걸쳐 병력을 조련하고 자금을 비축한 건 좋았다. 청나라에서 백련교의 난이 발발하자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한 것도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조승번은 덕성도가 청나라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고, 전쟁이 벌어지면 이들이 내부에서 반기를 들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벌을 개시하기 전에 대대적인 덕성도 탄압을 벌였는데 이게 그만 5년이나 이어진 대규모 민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간신히 민란을 진압했을 때는 북벌을 위해서 준비한 군대는 만신창이가 되고 창고는 텅텅 비었다. 청나라는 이미 4년 전에 백련교도들을 다 진압하고 태세 정비를 마친지라 조승번이 북벌을 시도할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계획한 일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가 치민 조승번은 황궁 안에서 길길이 날뛰다가 픽 쓰러져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한 해 뒤에, 단지 마흔넷밖에 안 된 나이로 황궁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말았다. 그게 지난 갑자년(1804)의 일이다. 지금 후송을 다스리는 황제는 조승번의 둘째 아들 조형윤이다. 조승번이 조졸하는 바람에 불과 열다섯 살의 나이로 황제의 관을 썼다. 그래서 태후인 왕씨가 한동안 섭정을 맡았다. 조형윤이 친정을 시작한 건 3년 뒤였다. 이제 20년이 지났다.
그중에 절반은 덕성도의 난 때문에 입은 피해를 복구하면서 보냈다. 그게 웬만큼 이뤄진 참에 갑자기 기근이 닥치고 괴질이 닥쳤다. 그 와중에도 덕성도에 대한 소소한 탄압은 끝이 나지 않았다.
“대체 그 멍청한 놈들은 무슨 원수가 졌기에 덕성도를 때려잡지 못해 안달이랍니까?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야 금지해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금지하지만 말입니다.”
탁혜가 찻잔을 들고 혀를 찼다. 그 ‘금지해야 할 이유’는 그가 입은 관복 앞에 큼지막하게 붙은 흉배에 새겨진 금빛 십자가가 그 대신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놓아둘 수도 없소. 서로 수백만이 죽어 나가며 피를 흘렸으니 이제 서로 원한과 원한이 쌓여서 안심하고 지낼 수도 없는 거지.”
탄압당한 덕성도 신도들이 관부(官府)에 대해서 품은 원한, 그리고 그들이 다시 결집해서 난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관부 측의 우려, 이게 합쳐진 게 아직도 이어지는 덕성도 탄압의 배경이다. 건주 양국으로서는 그저 한심할 뿐이었다.
“애초에 그냥 놔두면 그만이었던 것을.”
덕성도는 어차피 불교의 변형이다. 신도가 많다고 해 봐야 응집력도 낮고, 교리도 그다지 과격하지 않다. 내버려 둬도 상관없는 것을 공연히 건드려서 그 꼴을 만들었으니 그건 전부 후송 활실의 자업자득이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국력을 회복해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게 후송의 상황이다. 이들과 가장 많이 충돌하는 상대인 건주 양국으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 측의 자세도 살필 필요가 있다.
“지금 태황께선…..평소에는 남적과 우리 사이에 큰 구분을 두지 않고 지내더라도 전면전이 발발하면 우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셨소. 증기기관도 보내주셨고, 그걸 보자면 어느 쪽에 마음이 기울어 계셨는지는 따질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지금 임금, 원평제는 혈맹이라고 할 수 있는 건주 양국에 무척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아마 자기에게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면 대서관도 청나라에 주었으리라. 아버지인 목종이 이미 결정해버린 일이라 그대로 대명공부에 넘겼을 뿐이다.
“문제는 황태자가 그 기조를 유지하느냐…..”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인 문제다. 교역 같은 건 어차피 조정에서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간다. 하지만 전쟁과 군대만은 황제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 건주 양국으로서는 중원을 제패한다는 목표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다. 비옥한 강남을 점한 후송이 미친 듯이 땅을 개간하고 광산을 개발하며 공장을 돌리니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진 까닭이다.
물론 전력은 건주 연합군이 아직 더 강하다. 후송군도 나름대로 꾸준히 전력을 끌어올린 탓에 과거 한때 그랬듯이 사상자 수가 몇 십 배씩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는 건주 쪽이 여전히 우세를 쥐고 있다. 하지만 후송이 압도적인 대군을 동원한다면 좀 힘들어진다.
만약 후송이 대대적인 북정을 감행했는데 청이 밀린다고 가정하자. 그때 한황이 지원군을 보내기를 거절한다면 청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한국군이 후송의 해안선을 공격해서 주의를 돌려줘야만 한숨 돌릴 틈을 얻을 수 있는 거다.
“황태자께서는 우리 양국에 퍽 큰 호감을 보이시지 않소?’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나 호감이 호감에서 끝날까 봐 걱정이죠.”
이들도 황태자 이순을 이미 몇 차례 만나보았다. 이순은 자기가 후송보다는 건주 양국에 더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 아닙니다. 황태자가 가장 좋아하고 부러워한 나라는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이오, 그게? 그럼 남적을 좋아했단 말씀이시오?’
송균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탁혜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황태자가 제일 부러워한 나라는 심왕부였습니다. 심왕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마음 편한 군주라고 하시며 심왕처럼 살고 싶다고 뼈 있는 말씀을 한번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게 음, 재작년 가을에 열린 연회에서였던가…..”
이순의 평판에 관해서라면야 이들도 이성원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대동양을 대해로 가진 대국, 대한의 황태자가 실상은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라는 건 비밀도 아니다.
“그렇군. 심왕부를 부러워할 만하오.”
송균은 빠르게 납득했다. 그 놀기 좋아하는 태자라면 권한은 얼마든지 있고 부담은 없는 심왕의 자리를 부러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돈도 많다.
110여 년 전, 청나라ㆍ후금ㆍ한의 세 나라가 심양회맹을 맺고 처음 심왕부를 설치했을 때 심왕부에서 보유한 자산은 연수익으로 대력 10만 냥이었다. 세 나라가 십시일반으로 내준 밑천에서 들어오는 꾸준한 수입이다. 그것이 지금은 연수익만 50만 냥으로 다섯 곱이나 늘었다. 초대 심왕이던 이준이 자신을 순전히 먹고 노는 데만 쓰지 않고 철도와 포경선을 비롯한 각처에 투자했고, 그 뒤를 이은 후손들도 식재(殖財)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매년 수입이 50만 냥이라면 웬만한 사치는 다 누리면서 살 수 있다. 이순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더라도 그 삶이 부럽지 않다는 사람이 없으리라. 당장 이 두 사람도 심왕 자리에 오르라면 거절하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일단 보위에 오르면 태자에게는 그깟 심왕부 따위는 먼지만도 못한 게 아닙니까. 그러니 황제 노릇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어떻게 집중하느냐가 문제겠지요.”
지금 대한의 세입은 아마 매년 7천만 냥은 넘을 것이다. 청나라보다 2할쯤 많은 수준이고 후금의 열 배쯤 된다. 청나라 인구가 한국의 두 배쯤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청나라의 두 배쯤 잘 사는 셈이다. 여기에 황실에서 별도로 보유한 재산도 있다. 수백만 냥이나 되는 돈이 별도로 주머니에 들어온다. 보위에 오르기만 하면 그 모든 게 태자의 것이다.
“지금이야 태자가 배부른 소리를 한다지만, 막상 그만한 부와 권세를 쥐는 자리에 오르면 분명 놓지 않을 겁니다. 그걸 휘두르는 방향을 우리에게 유리한 족으로 트는 게 관건이죠.”
탁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중평관에 있는 이성원도 아마 지금쯤 자신들과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어떡할까요. 루스에서 데려온 미녀라도 선물할까요? 태자는 서양 문물을 무척 좋아하니 말입니다.”
후금에는 소수이기는 해도 러시아인 인구가 있다. 이런저런 사유로 국경을 넘어와 정착한 자들이다. 중죄를 저지르고 도망쳐온 자들은 대부분 잡아서 송환하지만, 은근슬쩍 눌러앉아 사는 이들도 적잖다.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구려. 음, 그보다…..대칸께서는 후사를 얻으셨다는 소식이 있으시오? 우리 쪽에서도 걱정이 크오.”
“아니오, 아직은 없습니다. 뭐,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시겠지요.”
후금 대칸 박락(博洛)은 벌써 서른여덟이나 되었는데 아직 후사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자는 몇 있지만 적자가 없다. 그래서 후계 문제가 좀 시끄럽고, 주변국에서도 이를 두고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두 사람은 잠시 대칸의 후계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태자 이순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 시점에서는 이쪽이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