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05
4부 089화(1705화)
1.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바닷새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육지 가까운 바다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까지 일부러 나오는 새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잡아먹을 고기가 흔한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둥지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고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서 새가 보인다는 건 두 가지 상황 중 하나다. 하나는 신천옹처럼 진짜 전 세계의 하늘을 누비고 다니는 종류의 새고, 다른 하나는…..
“길을 잃은 새라오.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날려 난바다로 밀려왔거나, 자기가 아는 곳에 가려고 나왔다가 무슨 이유에서건 방향을 잃었거나…..”
“그렇군요. 저하께서는 참으로 아시는 것이 많사옵니다.”
뱃전에 서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권씨가 옆에서 활짝 웃었다. 바다를 이쪽으로 건너올 때보다 확실히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 1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데다, 역시 몸을 맞대는 날이 이어지면서 마음도 더 이어진 탓인 모양이다.
“저하, 말씀하시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옵니까?”
권씨의 하얀 얼굴이 불쑥 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거기서 차마 ‘지난 한 해 동안 그대와 퍽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소’라고 곧이곧대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적당히 돌려서 답했다.
“…..신불랑을 떠난 뒤 있었던 일들을 잠시 생각했소.”
거짓말은 아니다. 누벨 프랑스를 떠나서 방문한 멕시코에서의 여정은 사실상 권씨와 함께 떠난 둘만의 신혼여행 후반기나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누벨 프랑스보다는 멕시코 쪽이 더 마음 편한 여행지였다고 해도 될 정도다. 누벨 프랑스 방문은 외교적인 의미가 커서 마음 한쪽에서 부담감이 떠나지 않았는데, 그런 부담은 멕시코에서는 하나도 필요 없었으니까 말이다.
바다 날씨도 좋고 홍경래의 배 모는 솜씨도 정말 탁월했던 덕에, 뉴올리언스…..아니, 누벨 오를레앙에서 베라크루스까지는 겨우 나흘밖에 안 걸렸다. 홍경래 왈, 범선을 타고 갔다면 적어도 일주일은 잡아야 했다고 한다. 베라크루스에서는 산타 안나의 주문에 따라서 이미 성대한 환영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서 하루를 쉬고 다시 출발해서 멕시코시티까지는 보름이 걸렸다.
“어서 오십시오, 공작 각하! 메히꼬에 오실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하오.”
다만 내 신분에 관해서 전달이 제대로 안 됐는지, 멕시코에서는 나를 공작(Principe)으로 대우했다. 스페인에서는 어차피 왕위계승자를 가리키는 호칭이 아스투리아스 공작(Principe de Asturias)이니까, 딱히 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해서 굳이 따지지 않았다. 멕시코에서도 귀족 작위가 있기는 했다. 식민지 시대에 책봉된 귀족들도 있고 이탈리아로 망명한 아구스틴 1세도 자기 측근들에게 공작이니 후작이니 백작이니 하는 칭호들을 마구 뿌렸었다. 하지만 멕시코 공화국은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귀족제도 함께 폐지해버렸다.
“모든 메히꼬 공화국 국민은 동등한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노예도 없고 귀족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상입니다.”
멕시코 공화국 초대 대통령 과달루페 빅토리아가 자기네 목표에 관해 직접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과달루페빅토리아는 아구스틴 1세를 몰아낸 뒤에 바꾼 새 이름이었다. 본명은 ‘호세 미구엘 라몬 아다욱토 페르난데스 이 펠릭스’라고 했다. 정말 긴 이름이다.
“우리는 대서양 건너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스페인 정부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이 땅에 실천하고자 손에 무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 혁명의 대의를 배반한 반역자도 몰아냈지요. 이제야말로 진정한 공화국을 수립할 때입니다.”
과달루페 빅토리아는 자기 자식뻘인 내가 귀여워 보였는지, 무척 친절하게 대우해주었다. 덕분에 멕시코시티에 머문 석 달 동안 전혀 부족할 게 없는 대우를 받았다. 우리와 체결한 변계조약을 준수할 거라는 약속도 받았다.
“이참에 외교관계도 정식으로 수립하도록 하지요. 아직 서로 공사관을 설치하고 외교관이 상주하기는 조금 무리긴 합니다만, 수교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 아닙니까.”
“동의합니다. 외교 업무야 이번에 설치될 누벨 프랑스 공사관에서 대리로 처리해도 되는 일이니까요.”
외교 공관을 설치할 여유가 없는 나라를 위해서 우호적으로 지내는 다른 나라 대사관이나 공사관이 업무를 대신해주는 건 흔한 일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대사관이 없는 나라 외교 업무는 다른 나라 대사관이 대신 처리해주었다.
다만 과달루페 빅토리아가 보인 환대와 별개로 우리 숙소는 주르당 원수가 통제하는 누벨 프랑스군 군영 안에 두었다. 대통령군 – 옛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 관저 – 이나 다른 멕시코 측 저택에 들어가지 않은 건 신변 안전 문제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멕시코에는 아직 반혁명주의자들이 남아있어서 사방에서 테러를 저지르고 있소. 그놈들 탓에 주르당 원수가 무척 바쁘지. 그러니 그대가 멕시코에 간다면 부디 우리 군대가 머무르는 주둔지 안에 숙소를 두기를 권하오.’
도착해서 분위기를 보니 나폴레옹의 말은 사실이었다. 베라크루스와 멕시코시티를 잇는 도로는 그나마 누벨 프랑스군과 친나폴레옹파 군벌들이 조직한 공화국 정부군이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수시로 교전과 습격이 벌어지고 있었다.
멕시코시티 시내는 철통같은 경비 덕분에 비교적 안전했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게 있는 만큼, 빅토리아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들여 140여 년 만에 누에바 에스파냐 총독 관저 – 현 대통령궁 – 에 다시 머물고 싶은 욕심을 접고 누벨 프랑스군 주둔지에 숙소를 정했다. 안전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폐하께서 제게 저하를 정중하게 대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머무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원수.”
주르당 원수는 자기 휘하 근위대 병력을 차출해 내 경호대를 조직해주었다. 나를 따라온 내 원래 호위대 인원들에다 누벨 프랑스군 병사들까지 내 신변을 보호하자 안심하고 권씨와 함께 멕시코시티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중요한 공공건물 같은 건 올렝카와 함께 왔던 140년 전과 그다지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새로 생긴 건물들도 많았고, 도시 규모 자체가 그때보다 더 커져서 구경할 만 한 건 많았다.
“저 맥고국 총통궁은 본래 맥고국 토인들이 세운 왕궁 자리라오. 서반아인들이 토인들의 나라를 쳐서 병합한 뒤에 그 왕궁을 헐고 그 터 위에 자기네 양식으로 부왕궁을 지었지.”
“저하께서는 참으로 박식하시옵니다. 어찌 그런 것을 다 배우셨는지요?”
“….책에서 읽었소.”
그렇게 멕시코시티 근교를 관광하고 데오티우아칸까지 갔다. 140년 전에도 왔던 곳이라 다시 찾으니 참 기분이 묘했다.
‘어떻게 매번 상희가 아닌 다른 여자랑 여기 오는구나….’
상희와 함께 여기에 오고 싶다. 상희와 함께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에 올라가서 도시 유적을 내려다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테오티우아칸을 떠났다. 그렇게 낮에는 관광을 다니거나 휴식을 취했다. 밤에는 여기저기서 초대받은 자리에 가서 스페인식 시교를 즐겼다. 여기서는 디에고가 맹활약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세뇨리타. 그동안 더 아름다워지셨군요. 풋풋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자랑하시던 분이 이제 성숙한 숙녀가 되셨습니다.”
“이런, 만나 뵙지 못한 사이에 세뇨라가 되셨군요. 정말로 아쉽습니다. 이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단 한 사람이 독점하게 되잖습니까.”
디에고는 멕시코시티에 아는 얼굴이 꽤 있었다. 술루국과 누에바 에스파냐 사이에 이어진 교류의 역사를 이렇게 또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젊은 여자들에게 건네는 저놈의 말투는 도무지 친숙해지지 않았다. 디에고 녀석, 혀에 기름이라도 칠했나? 정작 자기는 유부남인 주제에 어떻게 저리 느끼한 말투를 구사하는 거지? 저거 아무래도 내가 말로만 들은 성….친왕 놈이 저랬던 것만 같다. 정말이지 피를 못 속이는 건가.
하여간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3개월은 꽤 즐거웠다. 멕시코 고원지대의 겨울이 서울보다는 견디기 쉽다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그래서 겨울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서 지냈다. 그리고 봄을 맞아 태평양으로 내려가는 길을 걸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앞으로 귀국과 우리 메히꼬 공화국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빅토리아 대통령을 비롯한 멕시코 정부 주요 인사들이 환송식에 참석해서 우리가 무사히 귀국하기를 빌어주었다. 주르당 원수가 붙여준 후위대에 멕시코 정부군까지 붙어서 우리가 아카폴쿠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보호했다. 멕시토시티에서 아카풀코까지는 20일 걸렸다. 지선성에다 미리 일정을 알려두었기 때문에 지선성에 두고 온 동진이 이미 아카풀코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주에서 추가된 인원을 싣기 위한 다른 배 두 척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저하! 무탈하셔서 다행이옵니다!”
“나도 그대들을 다시 만나 반갑구나. 그동안 잘 있었느냐.”
이신환 이하 동진 선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반겼다. 우리는 함께 대동양을 건너 사이 아닌가. 그런데 거의 1년이나 보지 못하다가 겨우 재회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반가운 마음에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
“이틀만 지내고 출발하자. 이곳도 우리 대한의 기상이 서린 곳이라, 좀 둘러보고 싶구나.”
“에, 저하.”
계미남변 당시 벌어진 아카풀코 공방전의 흔적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항구 서쪽 언덕에 있는 요새의 석벽에 남아있는 포탄 자국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기야 백 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전적지를 직접 돌아보는 건 꽤 보람 있는 일이었다. 보고서로만 본 전쟁터에 직접 와서 주변 지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피고, 옛날 일을 추억했다. 하지만 늘 나와 동행한 권씨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하께서는 책에서 본 옛일을 탐구하기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권씨는 내가 누벨 프랑스나 멕시코에서 원주민들이나 식민지시기에 생긴 유적지를 보러 다닌 일과 아카풀코에서 전적지를 살핀 일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내가 좀 편하긴 했다. 추억 되살리기를 역사 탐방 정도로 이해해 주었으니까. 그렇게 아카풀코에서 멕시코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고 배에 올랐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도중에 있는 몇 몇 항구에 들러 지역 주민들에게 임금의 은혜를 전했다. 서미주 일대가 남미주에 비하면 중요성이 떨어지긴 해도, 여기도 귀한 우리 땅이었다.
그러다가 남미주에 접어들었다. 동진이 남미주의 첫 항구인 산대고 – 샌디에이고 – 에 이어 두 번째 항구에 들어서자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로스앤젤레스….아니, 천사동인가.”
내가 미주에 있을 때는 여기 와본 적이 없다. 스페인령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미주와 누에바 에스파냐 사이를 오가는 잠상들이 주로 이용하는 포구였다.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누에바 에스파냐 당국이 아예 여기에 도시를 만들어버렸다. 그리고는 곡물이나 기름, 목재처럼 스페인 복국에서 조달하지 않는 물품을 정식으로 교역했다. 그러다가 계미남변으로 이 지경이 완전하게 우리 영역이 되면서 발전 속도가 빨라졌다. 서미주가 아닌 남미주의 일부가 되었고, 인구도 늘어서 지금은 근 2만에 달한다.
“이쪽 세계에서도 천사동이 영화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까….? 뭐, 두고 보면 알겠지.”
내가 기억하기로 LA 근교 지역이었던 할리우드가 영화산업의 기원지가 될 수 있었던 건 화창한 날씨 덕분이었다. 연중 내내 맑은 날씨 덕분에 영화를 빨리 촬영할 수 있어서였다. 영화산업이 언제 시작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사진 기술이 처음 발명된 게 지금쯤이긴 할 테니 – 유감스럽게도 대한에서는 그에 관한 연구가 없다 – 몇 십 년 안에 영화가 나오긴 하겠지. 그러면 이 날씨를 영화 찍는 데 활용하겠다는 사람이 나오길 나올 거다. 사람 생각 수준이 다 똑같지 뭐. 내 이번 생전에 영화를 볼 수 있을까나.
그렇게 여기저기 들러 선물도 뿌리고 잔치도 베풀고 하면서 올라갔더니 일정이 늦어졌다. 이신환에 따르면 아카풀코에서 지선성까지 늦어도 열흘이면 떡을 친다고 했건만, 실제로는 25일이나 걸렸다. 그렇게 해서 지선성에 돌아온 게 3월 14일, 양력 4월 17일이었다.
“태손 저하!’
“너무나 그리웠사옵니다!”
대략 1년하고 1개월하고도 1주일, 정확하게는 407일 만에 돌아온 지선성에서는 엄청난 환영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맨 앞에는 두고 갔던 후궁 세 사람이 눈물바다를 만들면서 서 있었고 말이다.
‘연락도 자주 주지 않으셔서, 소녀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옵니다……”
“괜찮다. 빈궁이 잘 챙겨주어 무사히 갔다 왔느니라. 그대들도 무탈하였느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세 사람 다 잘 지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한동안 양원 김씨의 친정에서 지냈는데, 김씨네 집에서 이 기회에 자기네 딸인 김씨 기를 살리겠다고 다른 두 사람의 기를 아주 제대로 죽여 놓은 듯했다.
“저하와 함께 있을 때도 보았지만, 계시지 않는 동안에 미주가 이렇게 광대하고 풍요로운 땅인 것을 정말로 크게 실감하였습니다. 진실로 놀라웠습니다….. 우리 대한의 강역 중 이런 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땅 자체의 풍요로움만 보면 확실히 본국 어디도 미주와 비교가 안 되지. 게다가 이들 두 사람은 규중처녀 아니던가. 간택에 들기 전에는 바깥출입도 잘 안 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미주의 광대한 산과 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하지만 저하께서 계시지 않으니 그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고 쓸쓸하기만 하였습니다! 이제라도 저하께서 오셨으니 너무나 기쁠 따름입니다.”
“소녀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소첩 역시 그렇습니다.”
세 사람 모두 얼굴을 붉히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사실 내가 없는 동안에 한 사람쯤은 다른 데 한눈을 팔수도 있다고, 그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런 기미는 없었다. 기우였구나 싶어서 괜히 미안해졌다.
“나도 그대들이 그리웠소. 이제 다시 해우했으니 전처럼 편안히 지내도록 합시다.”
“예, 저하!”
후궁들이 이러는 동안 권씨는 한쪽에 서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승리자의 미소를 가득 띠고 말이다. 하기야 그동안 우리가 보낸 많은 밤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태도이리라. 이 세 사람은 나와 초야도 못 치른 상태니까. 지선성에 복귀했다고 용무가 다 끝난 건 아니다. 회담 준비에 바빠 미처 방문하지 못했던 주요 고을들을 찾아가 위무하고, 한인과 토인 유지들을 모아 잔치를 베푸는 등 태손으로서 할 일을 했다. 근 두 달 동안 이렇게 보내고 나서야 겨우 서쪽으로 떠날 수 있었다.
“저하, 성군이 되시옵소서!”
“꼭 다시 와주세요!”
“다음 태손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겠사옵니다.”
이런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지선성을 떠났다. 함께 미주에 도착한 250여 명 중에 잡다한 사정으로 불귀의 객이 된 여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모두 승선하고 있었다. 이제 내 관점에서 두 번째로 멀어져가는 미주를 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던 상희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발전하고 달라진 미주 풍경은 뿌듯했다. 슬픔과 기쁨, 양자가 오묘하게 교차하는 미주 순행이었다.
“우리가 이 배를 타고 미주에 닿은 게 1년하고도 반 전….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구려. 또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겠지.”
“물론이옵니다, 저하.”
누벨 프랑스와 멕시코를 거치면서 유럽물이 들었는지, 권씨가 스스럼없이 내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동안 내 키가 좀 더 자라서 이제는 권씨와도 별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기댈만한 모양이다.
‘태자도 이렇게 서양풍 애호가가 됐으려나.’
모를 일이지. 어쨌든 여기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니 마음껏 기대게 놓아두었다. 본국에서는 사방에서 눈치가 보여 절대 못 할 일이니까 말이다.
“저하! 곰새끼가 날뜁니다!”
“또냐?”
기껏 좋은 기분에 빠져 있는데 맹수동이 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젠장, 분위기 꽤 괜찮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