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10
4부 094화(1710화)
10.
파인애플 피자가 올라온 식탁을 처음 보고는 나를 골탕 먹이려는 이보열의 심술이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접었다. 이보열이 내 입맛을 알 리 없지 않은가. 이런 건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법이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끝내고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온 이보열에게 최대한 듣기 좋게 돌려서 물어보았다. 아침 식탁의 그 피자는 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오게 된 거냐고.
“저하께서 어제 과음은 하지 않으셨으나, 술을 드시기는 드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술을 마신 다음 날 먹으면 좋은 음식을 올렸을 뿐이옵니다. 달고 짜고 구수하며 느끼한 것이 술 때문에 상한 속을 다스리기에는 아주 좋습니다.”
네게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온 이보열은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오늘 아침 식단에 관해 설명했다. 역시나 하와이에서는 해장으로 피자를 먹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피자 재료 중에서 하와이에서 생산되지 않는 건 밀가루밖에 없다. 하지만 밀가루 정도야 미주에서 가져오면 그만이고, 평소에는 쌀가루 반죽을 쓴다고 한다. 나눈 아주 귀한 손님인지라 특별히 순 밀가루로 만든 피자를 올린 것이고.
그 외에 교명 – 토핑을 여기서는 고명이라고 한다 – 으로 얹는 채소, 토마토, 고기, 해물, 치즈 같은 건 전부 자급할 수 있다. 치즈는 젖소에서 짠 우유 대신 물소 젖을 써서 만든다. 하와이에는 젖소가 없다.
“술 때문에 속이 불편한 다음 날 피자를 접시 째로 들고 뜯으면 아주 속이 편안해집니다. 저희 하와국에서는 백 년도 훨씬 전부터 술 마신 다음 날은 피자를 먹고 있습니다.”
백 년이 넘는 전통이라는 대목이야 적당히 걸러 들을 일이고, 내가 궁금한 건 하와이에서 이걸 먹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보열의 대답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제 선조이신 강녕왕께서 하와국에 처음 피자를 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모여든 백성들이 ‘이 납작하고 괴이한 음식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여자들이 입는 치마를 땅바닥에 펼쳐 놓듯이 납작하게 만든 음식이다’라고 하시면서 ‘피자(?姿)’라고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원인은 그쪽에 있었나. 하기야 ‘유주전’보다야 ‘피자’ 쪽이 더 발음하기 편하기는 했겠지. 강녕왕은 본국에 있을 때도 피자를 좋아하긴 했다. 물론 판으로 들고 뜯지는 않고 썰어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지만 말이다. 그게 하와국에 와서는 다시 손에 들고 뜯는 본래의 모습 쪽으로 회귀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치마 피(?)’자에 ‘맵시 자(姿)’자로 피자의 어원을 설명하다니, 여자 좋아하는 호색한 강녕왕다운 설명이로구나. 졸지에 민간어원 하나 생겨버렸다. 애초에 피자에 제대로 된 한자 이름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무 의미 없는 일이기는 한데.
“그럼 남만시와 봉리를 얹는 것은? 이것도 강녕왕이 시작하였나?”
“그건 소인도 잘 모릅니다. 그저 피자를 맛있게 만들겠다고 이것저것 고명으로 얹다보다 보니 나온 물건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남만시는 토마토, 봉리(鳳梨)는 파인애플을 뜻하는 한자 명칭이다. ‘봉황을 닮은 배’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들었다. 아직 본국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을 만큼 귀한 과일인데 용케 이름은 그리 대단하게 붙었다. 바나나는 동남아시아에 원래 있던 식물이니 비교적 쉽게 재배도 되고 본국에 들어가기도 했다. 필리핀 정도라면 충분히 재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하와이까지밖에 안 퍼졌다. 혹시 재배하기가 좀 까다로운가?
옛날에 할아버지께 감자나 고구마, 고추나 토마토 심는 법까지는 배웠어도 파인애플 심는 법은 안 배웠으니 나야 알 수가 있나. 왜 안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필리핀에 땅 마련해서 파인애플 농장 차리면 그것도 사업으로 괜찮겠다.
“알겠다. 가보도록 하라.”
“예, 저하. 그럼 곧 점심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더 신통한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아서 그만 내보냈다. 그런데 이보열이 내가 한 질문의 의도를 엉뚱하게 해석한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보열이 내 뜻을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배에 오르기 전에 받은 점심상에 또 파인애플 피자가 올라와 있는 걸 봤을 때였다.
‘심지어 파인애플밖에 눈에 안 보여……’
분명 아침에는 고기라든가, 해물 같은 다른 토핑들 사이에 적당히 놓여 있던 파인애플이 이번에는 자기 혼자서 피자를 독점하고 있었다. 잘 구워진 밀가루 반죽 위에 펼쳐진 드넓은 황금빛 들판을 보면서, 이 밥상을 엎어버릴까 말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11.
결과적으로 밥상을 엎지는 않았다. 점심상에 ‘그 피자’만 있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다른 요리도 얼마든지 올라왔다.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생선, 삶은 바다거북알, 신선한 채소와 과일, 먹음직한 갈색으로 구워진 귀서(貴鼠, 꾸이) 통구이 등등.
점심이라 그런지 꼬치에 꿰어 구운 기러기나 멧돼지 통구이, 푹 삶은 고래 고기 같은 어제 술자리에서 먹은 음식들보다는 더 담백하고 가벼운 편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편안히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이었다. 권씨와 후궁들은 머리에 사지까지 전부 그대로 붙은 귀서 통구이를 보고 기겁했으니까.
“이…..이것은 쥐 아니옵니까?”
“초대 술루국왕이 대삼주에서 이 쥐를 들여온 이래 남방의 백성들이 즐겨 먹게 되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막상 보니 먹기가 좀……”
이런 반응도 당연하다. 본국이나 미주에서 ‘쥐고기’인 귀서를 먹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혹시 대기근으로 굶어 죽을 지경에 몰리기라도 하면 쥐라도 가리지 않고 먹겠지만, 이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아무리 가난해도 귀서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귀서를 자연스럽게 먹는 지역은 하와이 이외에는 대남도와 누손주(필리핀) 정도다. 부엌 구석에 우리를 만들어 키우다가 생각날 때 한 마리씩 꺼내서 요리한다.
“보기에는 이래도 맛은 괜찮다고 하오. 그러니 양념장을 잘 찍어서 맛들 보시구려.”
벌레는 좀 그렇지만 귀서 정도라면 못 먹을 거 없다. 토핑이 파인애플 ‘밖에’ 없는 피자에 비하면 꾸이 통구이 정도는 천하의 진미 아니겠는가. 하지만 네 사람은 이 문제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즉, 음식에 관한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반대편으로 치달았다.
“쥐고기보다는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여기 피자 쪽이 훨씬 좋겠사옵니다. 달콤한 맛이라 입에도 즐거워 좋사옵니다.”
“소첩도 남만시와 봉리를 얹은 피자 쪽이 더 좋사옵니다.”
“…….”
그렇게 세 끼에 걸쳐 진수성천을 대접받고 나서야 다시 동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보열을 비롯한 와가촌 관민들에게 성대한 배웅을 받으며 항구를 떠나려니 여러 가지 기분이 머리를 교차했다.
‘이제 또 언제 여기 다시 오려나.’
여기 얽힌 추억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새 기억이 또 쌓였다. 과연 다음에는 누구하고 같이 오게 될까. 그리고 무슨 일을 경험하게 될까.
“떠나기가 아쉬우신 모양입니다, 저하.”
그리고 또 오해를 샀다. 뱃전에 기대서 해안을 바라보는 내 표정을 본 데이비 크로켓이, 내가 와가촌을 떠나는 걸 아쉬워한다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다가와서는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또 오시면 되잖습니까? 일단 한양에 가서 임금 폐하께 귀국 보고를 올리신 뒤에 여행 허가를 받아 다시 하와이에 오시면 되지요. 당장 내년에라도 오실 수 있을 겁니다.”
“그대는 우리 대한이 어떤 나라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구려.”
이번에 귀국하면 내 평생 해외여행은 다시없을 거다. 중종 때 한 일을 돌이켜보면 아마 북구주 정도는 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 멀리는 못 갈걸. 대남도도 못 갈 것 같은데. 그래, 겨우 몇 달 동안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겠지. 더구나 데이비 크로켓은 전문 외교관도 아니지 않은가. 바르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타인에 대한 이해는 도리어 좀 더딜 수 있다.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도덕적인 모습을 기대한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귀공은 간밤에는 토인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신 것 같던데.”
“음….본국에서 가져온 비장의 켄터키 버번위스키 덕분이긴 합니다.”
데이비 크로켓이 특별히 가져온 개인 사물이 다섯 상자나 되는 켄터키 버번 위스키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최신 위스키라는데, 정말 맛이 좋다면서 저 많은 양을 가지고 왔다. 우리 일행 중 주요 인사들은 이미 맛을 보고 호평하고 있다. 어젯밤 연회에서도 여섯 병을 들고 내렸다. 그리고 토인들에게 무척 인기가 좋았다.
“다들 아쉬워하던데, 더 마시고 싶어 하더구먼.”
“두고두고 마셔야 하는데 어찌 하룻밤에 다 마시겠습니까. 한양에 도착하면 임금 폐하와 태자 전하게도 한 잔씩 올려야 하니, 넉넉히 남겨둬야지요.”
“한양에서도 미국에 술 정도는 주문할 수 있소. 너무 끙끙거리며 아끼지 마시구려.”
미국 상선들이 제물포와 미주 사이를 왕래하고 있잖은가. 위스키쯤이야 그편에 주문하면 된다. 물론 수수료가 붙겠지만 그거야 필요한 사람이 감수해야 할 일이다.
12.
137년 만에 하와도 북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그 풍광을 즐겼다. 137년 전에 이 해안을 처음 지나갔을 때는 언제 적대하는 자들이 나타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움직였었다. 무력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쓸 준비는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정말 평화롭게,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즐기며 움직일 수 있었다. 마을과 배들을 지나칠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원주민들이 뒤늦게 내 정체를 알고 급히 엎드리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들이 예를 아는 듯합니다, 외숙부님.”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와가촌에서도 하선하지 않았던 김유근이지만 갑판에는 나왔다. 그도 과거에 미주에서 2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고, 귀국한 때 하와이에 들러 쉬어간 경험이 있는지라 그리운 감정이 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는…..홀랄루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아도로 가서 호놀루루에 들러 쉬다가 갔지요.”
호놀루루(好?淚樓, 노롤룰루)는 오아공이 건설한 민간용 항구다. 하와이에 주둔한 우리 함대의 본거지인 진주만 바로 옆에 있다 보니 그 영향을 크게 받아서 아주 번성하는 항구가 되었다. 교역선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색주가가 번창하는 그런 항구다.
“금상께서 즉위하신 지 5년째 되던 해에 군율이 흐트러지는 원인이라 하시며 진부만 안에 있는 색주가를 몽땅 내몰게 하셨습니다. 오와공이 이를 전부 호놀루루로 옮기면서 수졸들이 유흥을 즐기러 가는 곳도 호놀루루가 되었고, 상선들도 그쪽을 찾게 되었지요.”
“폐하께서 합당한 조치를 명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부대 영내에 여자까지 갖춘 술집이 있는 게 되려 정상이 아니지. 다만 중종 시절엔 아직 하와이가 충분히 발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좀 허술하고 너그럽게 대처한 부분이 있다. 웬만한 건 눈 감고 넘어가 줬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날이야기다. 그러니 조부가 만사를 빡빡하게 처리하면서 기강을 확립해도 나쁠 게 없다. 어차피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마우도와 하와도 사이에 놓여 있는 ‘마우해협’까지는 과거 137년 전에 지나가 본 뱃길을 그대로 갔다. 해협을 앞둔 곳에 있는 하위 고을에 도착하자 다시 남으로 돌았다. 여기부터 하와도 서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성친왕 때는 이쪽 해안은 내가 탄 동현이 아니라 보조함으로 따라온 상춘이 탐색했었다. 그러고 보니 카우이 놈이 그 배를 타고 돌면서 또 사기를 쳤었지. 하와도를 다스리는 진짜 여왕이었던 케이케….뭔가 그 여왕을 일개 추장이라고 주장하며 항복했다고 보고했던가.
이종이 쓴 하와국사를 보니, 여왕은 그저 낯선 배를 보고 산중으로 피난했을 뿐이었다. 그걸 가지고 통역이었던 카우이가 허풍을 쳤는데 우리 모두 그 말을 믿었던 것뿐이다. 정말 생각할수록 약이 오르는 일이다. 하와국사에 적힌 그 뒷이야기를 보면, 여왕은 가지 군사들이 내가 두고 간 우리 군사들을 기용한 마우이군에게 연패하자 그 주군인 쿠아후이아에게 양위하고 남쪽으로 떠났다. 허나 그 자리는 이미 언급했듯이 쿠아후이아를 암살한 마우이가 차지했다.
다만 마우이는 여왕을 해치지는 않았다. 아직 여왕에게 충성하는 하와도 백성들의 민심을 고려했는지, 여왕이 저주하는 남쪽 마을에 작은 궁전을 지어주고 여왕이 예전처럼 호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식량과 의복도 넉넉히 제공해주었다. 그 대우를 죽을 때까지 계속했다.
“현명한 행동이지, 자기를 직접 홀대한 사람도 아닌 여왕을 박대하거나 죽였으면 분명히 장명왕(?明王) – 마우이의 시호 – 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이 줄을 이었을 테니.”
박규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앞에 다가오는 하와국의 수도, 홀룰라를 바라보았다. 옛날 그 케아 뭐시기라는 여왕시절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수도다. 항구에는 수십 척이나 되는 범선과 기선, 하와이 전통 선박인 쌍동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쌍동선 중에는 거의 범선만큼 큰 배들도 있었다.
성친왕 때 본 쌍동선들은 그저 섬 사이를 왕복하는 데 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배들을 보니 저 정도라면 태평양 횡단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와국 전사들은 저러 배를 타고 남양(南洋)으로 노예사냥을 나간다는 말이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드니 산비탈 위에 자리한 왕궁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금빛 기와지붕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궁전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보아하니 하나뿐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성채 세 개가 차례로 막고 있었다. 하와국 왕실이 과거에 피로써 겪은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