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14
4부 098화(1714화)
16.
만찬 상이 푸짐한 것은 예상한 바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쌀밥이다. 무지막지한 양의 흰쌀밥이 함지박만큼 큰 그릇에 담겨 군데군데 놓였다. 각자 먹을 만큼 알아서 퍼서 먹으라는 건지, 내 얼굴만큼 큰 밥주걱이 꼭대기에 꽂혀 있었다. 그다음은 다양한 전통 요리가 보였다. 예전에 성친왕 때 와서 많이 먹어봤던 하와이 전통 요리, ‘칼루아 푸아’가 가장 많았다. 구덩이에다가 불에 달군 돌을 채운 뒤 그 위에 돼지를 통으로 넣고 바나나 잎으로 덮어 하루를 푹 구운 오븐구이 같은 요리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들이 눈앞을 채웠다. 의순공주를 시집보낼 때 딸려 보낸 숙수들이 전파한 우리 궁중요리에다 그 영향을 받아서 변화한 하와이 전통 요리들은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와가촌에서 나를 당황하게 했었던 파인애플 피자 역시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와가촌에서 나한테 낸 피자가 겨우 접시 정도 크기였던 데 반해서 하민상이 대접한 피자는 솥뚜껑만큼 컸다. 그것도 중대급 군사들이 밥을 짓는 데 쓰는 커다란 가마솥 뚜껑만 했다.
물론 이보열이라는 그 망할 놈이 내게 두 번째로 대접했던 피자처럼 파인애플만 빽빽하게 놓이지는 않았다. 파인애플은 적당히 뿌리기만 했고, 하와이 토종 산새가 통째 놓여 있었다. 그런데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요리가 있었다. 파인애플과 새를 얹은 피자 따위와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엄청난 음식이었다. 마치 거대한 전골 요리처럼 식탁 한가운데서 부글부글 끓는 그 요리에서 눈을 돌리지도 못하고 옆에 앉은 하민상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저 괴이한 음식은 무엇이오?’
“해귀탕입니다. 저하. 귀하신 분이 오셨으니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귀탕(海龜湯), 문자 그대로 바다거북 수프였다. 그것도 보통 솥에다 담지 않고 커다란 거북이 등껍질에 담아놓았다. 그러니까 거북이 껍질로 만든 솥에다가 거북이 고기와 내장, 채소와 양념을 넣어 탕을 끓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 정말이지 귀한 음식이기는 하다. 거북이는 대한에서도 장수를 의미하는 영물이지만 하와이를 포함한 폴리네시아 문화권에서도 아주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폴리네시아에서 바다거북은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는 영물이다. 원주민들은 바다 항해에서 바다거북이 헤엄치는 방향을 보고 섬을 찾아가기도 한다. 특히 귀한 존재인 푸른 바다거북은 바다의 신이자 죽음의 신 카날로아가 보내준 영물이다.
푸른 바다거북은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제물로 바치거나 장례식에서 망자의 혼을 위로해 편안히 떠나도록 하는 귀한 동물이다. 이토록 성스럽고 고귀한 짐승이니 일반인들은 함부로 잡지도 못하는 게 거북이다. 거북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공들과 같은 고위 귀족들, 신분 높은 사제들, 위대한 전사들뿐이다. 그래서 이런 고급 음식이 와가촌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거다.
성친왕 시절에도 거북이 요리를 대접받은 적이 있었으니 그 의미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이것이 하필이면 거북이 껍질로 만든 솥에서 끓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우리상인들이 공급한 철제 가마솥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왜 이런 걸 쓰지?
“그런데 이 솥은 뭐요? 바다거북의 껍질로 만든 건 아닌 것 같소만…..”
“맞게 보셨습니다, 저하. 거북섬에서 들여온 겁니다.”
거북섬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말한다. 중종 시절에 안용복을 보내 거북이를 잡아 오게 한 기억이 난다. 안용복이 잡아다가 홍제원에 갖다 둔 그 거북이들은 놀랍게도 아직 세 마리가 살아있다. 심심해서 나들이 삼아 홍제원에 갔다가 그놈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중종 때 본 코끼리처럼 과장된 속설이 퍼진 것도 아니었다. 등껍질 형태와 그 위에 있는 자국 모양을 보면 중종 때 안용복이 잡아 온 갈라파고스 땅거북이들이 분명했다. 아마 이번 순행을 마치고 돌아가도 여전히 살아있으리라. 그러면 최소한 130년씩은 산건가.
그때 나는 거북이는 잡아 왔어도 갈라파고스를 우리 영토로 넣지는 않았다. 우리 땅에서 너무 멀어서 관리하기도 어렵고, 스페인 측과의 충돌도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에서 코앞에 있다. 우리가 그쪽에 거점을 만든다면 남아메리카를 지배하는 스페인 당국과 불필요한 긴장 상태를 유발할 우려가 컸다. 그래서 일단은 그대로 무주지로 놓아두었다.
방치된 갈라파고스는 밀수꾼이나 해적들의 거점이 되었다. 스페인 당국은 이들을 제대로 단속할 역량이 없어 그대로 방치했는데, 그러지 이 도적놈들이 간덩이가 부었다. 스페인령 남미 연안에서 약탈과 밀수를 벌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배까지 털기 시작했던 거다. 미주에서 본국으로 오는 상선은 해류를 이용하느라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이 배들은 갖가지 값비싼 상품은 무론이고 종종 미주에서 채굴한 금괴까지 나른다. 해적들에게는 입맛 당기는 먹잇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놈들 때문에 동부통제영 소속 함선들은 수시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리고 선박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놈들을 뒤쫓아 갈라파고스까지 갔지만 해적선을 붙잡는 데 성공하는 날은 별로 없었다. 놈들이 도망쳤다가 우리 전선이 귀환하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선이가 그만 울화통이 터졌다. 전선 14척에 장병 4천 명을 투입한 원정으로 갈라파고스에 있던 해적들을 싹싹 쓸어냈다. 그리고 선포했다.
‘거북섬은 중종께서 신묘한 예지로 점지하신 섬이기도 하고, 영물이 떼 지어 사는 곳이니 가히 군사를 두어 지킬 만한 땅이요. 그런 땅에 도적이 숨어들게 놓아두어야겠소? 서반아가 항의한다면 자기네 코앞에서 해적이 설쳐도 잡지 못한 잘못을 먼저 꾸짖도록 하시오!’
선이는 내정은 제법 괜찮게 처리하면서도 대외적인 사안에서는 결단을 잘 내리지 못했다. 이 갈라파고스 토벌은 사실상 선이가 나라 밖에서 과감하게 행동한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선이가 결단을 망설인 다른 사건들과 이 사건 사이의 차이는 명확했다. 다른 사건들이야 다 그 나라에서 자기들끼리 벌인 일이라서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영향이 없으니 깊게 고민할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해적들은 우리 백성들한테 직접 피해를 주었다. 경우가 다르다.
선이는 붙잡은 해적들을 모조리 교수형에 처했고, 해적들이 만들어놓은 이런저런 시설은 몽땅 태워버렸다. 그리고 이번 토벌을 기념하여 이 섬은 태황의 영토라고 선언하는 비석을 세웠다. 섬의 이름도 ‘영귀제도(英龜諸島)’라고 새로 지어 붙였다.
스페인과의 충돌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지만 이게 시기가 참 좋았다. 마침 미국이 한창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라, 스페인도 거기 끼어들어 영국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 판이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는 갈라파고스 따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난 뒤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혁명이 터졌다. 그리고 잇달아 터진 반란으로 스페인은 남아메리카 식민지를 아예 잃었다.
남아메리카를 상실한 스페인이 갈라파고스 따위를 두고 우리한테 항의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이 문제로 우리를 물고 늘어질 만한 상대가 있다고 하면 남아메리카에서 새로 독립한 나라 중 하나일 텐데, 과연 그럴 상대가 있을까.
지금 에콰도르를 포함하는 남아메리카 북부는 콜롬비아공화국이 다스리고 있다. 그놈들이 내정을 안정시키고 제대로 세력을 다지면 그때 가서 갈라파고스에 욕심을 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조용하다. 누벨 오를레앙에서 그쪽 대사를 만났을 때도 그 문제로 별말은 없었다.
페루나 칠레는 가능성이 더 떨어진다. 한참 남쪽 아닌가. 자기네 땅 관리도 벅찰 놈들이 갈라파고스까지 올라오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도 우리와 전쟁을 각오하고. 콜롬비아공화국은 탐낼 수 있을 거다. 갈라파고스는 통상적인 상선 항로가 지나가는 곳은 아니지만, 고래잡이를 포함하는 어업 거점으로 쓰기에는 꽤 좋은 곳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직 별다른 말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내부 정리가 바쁘다는 이야기지.
하지만 본국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 보니 우리도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건 마찬가지다. 수비대를 상주시키기에도 너무 멀어서 가끔 동부통제영에서 순시선이나 보낼 정도다. 사실 이젠 해적도 없어서 더 느슨해졌다.
하와국왕이 거북이를 잡으러 거북섬 – 여전히 세간에서는 거북섬이라는 간단한 이름이 더 많이 쓰인다 – 에 갈 수 있는 건 황실에서 하와국왕에게 거북섬 관리 임무를 위탁하고 그에 대한 보수로 거북이를 잡을 권리를 하사했기 때문이다. 조부가 내린 명이라고 들었다.
하와국왕은 이 권리에 따라 매년 전사들을 한 차례씩 갈라파고스에 보내서 그해 분량의 거북이를 수확해오곤 한다. 이 솥이 된 껍질도 그렇게 얻었으리라.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왜 조리에 쓰는 도구가 하필 갈라파고스 땅거북의 등딱지라는 말인가. 신성한 동물로 조리도구 따위를 만들어도 되는 건가?
내 의문을 조심스럽게 표했다. 그러자 하민상이 여상스러운 태도로 답했다.
“저하. 바다의 신에게 축복받은 신성한 거북은 바다거북뿐입니다. 뭍에 사는 거북은 전혀 신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껍질로 솥을 만들 건 요강을 만들 건 상관없는 것이지요.”
….저 녀석이 하도 점잖게 굴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왕족이고, 아무리 유교적인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해도 하민상 역시 하와인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자라던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거, 깜박 잊었다.
17.
만찬 자리는 얼마 안 가서 술자리로 바뀌었다. 하와인들이 독한 술에 사족을 못 쓰는 건 마우이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데다, 손님으로 온 우리 본국인들이나 동행해서 온 미국인들이나 죄다 술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와국 왕실 여자들도 술을 마셨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좀 순한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앞에 오는 술잔을 사양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주변을 살피니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나와 권씨와 세 후궁, 그리고 김유근밖에 없었다. 하민상도 김유근이 미리 사정을 밝히고 양해를 구하자 술을 권하지 않았다.
사실 김유근에게 술을 권할 정신도 없었다. 하민상은 데이비 크로켓이 따라주는 위스키에 반해서 연신 목구멍으로 들이키고 있었으니까.
“정말 좋은데! 그동안 우리나라에 찾아온 미국인들이 가져온 술보다 훨씬 좋소. 그놈들이 가져온 술은 여기 비하면 맹물인데!”
전에도 언급했지만, 하와국에는 미국 배들이 많이 찾아든다. 대동양 항로를 오가며 짐을 나르는 상선들이 가장 많지만, 개종에는 포경선도 있다. 낸터킷이나 뉴베드퍼드에서 출항해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향유고래를 쫓는 바로 그놈들 말이다. 그런 배들이 싣고 다니는 술은 싸구려 럼주나 맥주가 고작이다. 위스키 같은 건 간부들이 개인용으로 몇 병 가지고 있을 뿐일 테고, 그나마도 데이비 크로켓이 가져온 것만큼 품질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니 하민상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다.
“임금 폐하께 허락만 받으면 여기 홀랄루에서 영사관을 열겁니다. 그대는 부디 전하께서 많은 배려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두 나라의 이익을 위해 서로 좋은 일이니까요.”
데이비 크로켓은 연신 비위를 맞추며 술을 따라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이 얼마나 잘 맞는지, 접대가 아니라 술친구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잘 알겠소. 앞으로도 하와국에 오는 미국 배들에게 충분한 배려를 베풀 테니, 그대는 염려하지 마시오.”
나도 술에 취했으면 그저 좋은 얘기구나 하고 넘겨을 대화다. 하지만 거슬렸다. 하와이에 오는 그 많은 ‘미국 배들’ 중 상당수가 포경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나처럼 맨 정신인 김유근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친 김유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민상에게 말을 건넸다.
“전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태황께서 타국 고래잡이배의 기항을 금지하고 있음을 알고 계시는지요.”
하와이에 기지를 두고 정식으로 조업하는 포경선은 내수사 소속이거나 하와이 왕공들이 소유한 배들뿐이다. 이들은 항구에서 사흘거리 내에서 활동하면서 고래를 잡아 기름을 뽑고 고기를 잘라냈다. 그 외의 외국 포경선은 조업도, 기항도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 포경선, 특히 미국 포경선이 기항하고 있다. 그 문제는 본국에서도 알고 있다. 하와국에서도 본국에서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기항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이런 명분을 내세워서 말이다.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물과 식량이 다 떨어졌다면 애처롭게 구원을 청하는 이들을 어지 매몰차게 쫓아내겠소? 저들이 바다에서 기갈에 시달려 죽도록 내모는 게 어찌 예(禮)며 또 인(仁)이겠소? 마땅히 은덕을 베푸는 것이 의(義)가 아니겠소?”
야만족이 유학을 배우면 이렇게 논리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김유근으로서도 이런 말을 듣고 그건 아니라고 확 무지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항구에 들어와 물과 식량을 얻은 외국 포경선들은 모두 남쪽으로 갔소이다.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도 우리 관리들이 잘 설득하여 남쪽으로 가게 했소이다. 폐하의 바다인 북쪽으로는 절대 가지 못하게 했으니, 안심하시오.”
덩치가 산처럼 큰 하와이 관리들이 포경선 갑판에 올라 팔짱을 끼고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광경을 생각하니 뭔가 웃음이 난다. 그것참, 볼만한 광경이겠지. 하지만 그 외양과는 별개로 그 ‘설득’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을 것도 분명하다. 그놈들이 항구를 벗어나 시야 밖으로 나간 뒤에 어느 쪽으로 갔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민상이라고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문제는 하민상의 논리가 문제가 없다는 거다. 물과 식량이 떨어진 배는 조난선이다. 이를 구조하지 않는 건 문명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거다. 결국 이 문제는 간단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과연 이를 어찌 해결할 것인가. 나로서도 어려운 문제다. 공연히 기분이 씁쓸해져서 나도 술잔을 들었다. 약한 걸로 몇 잔만 마시면 기분이 좀 좋아지겠지.
18.
밤늦게까지 이어진 잔치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다. 하민상처럼 퍼마시지는 않았지만 좀 마시긴 마셔서 인지 기분이 알딸딸했다. 내가 미신 술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독했다.
“저하, 침소로 모시겠나이다.”
옆에서 부축하는 이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송 내관의 목소리가 아니다. 젊은 여자 목소리다. 그러고 보니 왼쪽 겨드랑이에 부드러운 살이 닿았다. 이게 누구더라. 아, 권씨가 아니네? 늘 내 옆자리를 차지하던 권씨가 오늘따라 다른 이로 바뀌었어?
비로소 고래를 돌려 의식하니 최씨가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내 팔을 자기 어깨에 얹고 있다. 나를 시중들 내관과 상궁들이 엄연히 있는데도 직접 나서서 이렇게 움직이다니, 무슨 생각인지 모를 수가 없다. 내 한쪽 입가가 올라갔다.
“오늘은 그대와 함께 자겠다. 그대 처소로 들도록 하지.”
“…..! 네, 네! 모시겠습니다!”
최씨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떠올랐다. 혼인한 지 거의 2년 만에 초야를 치르게 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으리라. 참 미안하네. 비틀거리던 다리에 힘을 주고, 최씨의 어깨에 얹고만 있던 팔에도 힘을 주어 끌어안고서 함께 최씨의 침소로 걸어갔다. 하와국에 도착하면 외조모를 위한 독수공방을 끝내기로 이미 마음먹기도 했으니, 오늘 밤은 최씨를 위해 보내는 밤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