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19
4부 103화(1719화)
2.
오늘은 8월 10일, 양력으로 9월 7일이다. 내가 미주로 출발한 날이 2년 전의 8월 26일, 양력 10월 16일이었으니까 정확히 691일 만에 제물포에 돌아온 셈이다. 기관이 터질 위험을 무릅쓰고 전력을 다해 달린 덕분에 귀환하는 일정이 좀 더 짧아졌다.
“하와진에서 출발한 날이 양력으로 8월 10일이었는데 오늘은 국력으로 8월 10일이군요. 이것도 퍽 재미있는 유연입니다, 저하.”
디에고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딱히 응하고 싶지 않아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2년 만에 돌아온 제물포는 여전히 번성하는 항구였다. 부두에는 창고 건물이 늘었고 전에 본 적이 없는 배들도 여러 척이나 닻을 내리고 있었다. 항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국상을 치르는 기간임에도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자기 일에 바빴다.
다만 관아에는 국상을 치르고 있음을 알리는 흰 기를 게양해 놓았다. 덕분에 지금 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흰 기가 걸린 건 입국관리소에 세관, 검역소 역할까지 겸하는 해관(海關)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귀국을 축하하는 성대한 환영 같은 건 없었다. 상황도 상황이고, 환영식을 치를 시간 여유도 없었다. 환영받고 싶으면 미리 연락을 보내고 나는 천천히 와야 하는데, 지금 일부러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신분이 신분이니 특혜는 있었다. 내가 직접 해관에 들어가서 검역이나 짐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어떤 해관리가 감히 황태손에게, 아니 이제 곧 황태자가 될 사람에게 일반 백성들처럼 입국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하겠는가. 내가 하선하는 대신 해관장이 몸소 해관 소속 관리선을 타고 달려왔다. 그리고 내가 있는 선실로 들어와서 무릎을 꿇었다.
“저하께서 무사히 순행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지금 나라에 너무도 슬픈 이 ㄹ이 발생하여 차마 그 기쁨을 표현하지 못함에…..”
“알았으니 그만두라.”
임금은 부황이 숨을 거두면 며칠 안에 간략한 즉위식을 치르고 보위에 오른다. 이를 사위(嗣位)라고 한다. 당연히 호칭도 전하에서 폐하로 올라간다. 그렇다고 태손의 호칭도 자동으로 승격되는 건 아니다. 태자 책봉을 정식으로 받아야 내 호칭도 전하로 올라간다. 그래서 하와국에서도, 여기 와서도 나는 여전히 저하다.
해관장은 파리한 내 얼굴을 보고 겁을 먹었는지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서 용무를 끝내고 싶은 듯, 쩔쩔매며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어서 상륙하십시오, 태손 저하. 제물포역에 이미 전갈을 보내두었습니다.”
“고맙다. 국상을 맞아 바쁠 터인데 그대들도 수고가 많다.”
정중하게 인사를 받고 나서 갑판 위로 올라왔다. 오와도를 떠나기 전 급히 조달한 상복을 입고 거룻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것도 새옹지마로구나 싶었다. 내가 처음에 생각한 대로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출발했으면 상복을 마련할 틈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옷을 짓는 거야 솜씨 있는 상궁들이 동행했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상복을 지을 만한 천이 배에 없었다. 나는 이 문제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송 내관이 급히 나가서 진영 내부를 샅샅이 뒤져서 나와 권씨, 세 후궁이 입을 상복 지을 천을 구해왔다.
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김유근은 상관없었다고, 만약 그랬으면 자기 상복을 뜯어 맞춰 다시 지으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나 한 사람분밖에 안 되었을 테니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었으리라. 어쨌든 상복도 챙겨있었으니 다른 준비는 필요 없이 상륙함 하면 된다. 나 말고도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거룻배를 기다렸지만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선 권씨와 뒤에 선 세 후궁도 상복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소식을 접한 직후에는 그토록 뜨겁게 흐르던 눈물은 이제 말랐다. 조부가 친 혈육이 아니어서는 아니다. 7년 동안 나를 세심하게 살펴준 조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따지자면 의붓할아버지이긴 하지만, 나를 그렇게나 아껴주시던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태평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 앞에 쌓인 다른 고민이 너무도 많았다. 이 나라의 운명이, 내 목숨이 그 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어찌 눈물이나 흘리고 있겠는가. 눈물은 첫날만 흘리면 족했다.
‘과연 태자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고 있을까, 태자비는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을까, 조정 중신들의 여론은 어느 쪽일까, 이 틈을 노려서 뭔가 일을 꾸미는 자들이 있는 건 아닐까….’
김유근과 김정희와 셋이 마주 앉아서 몇 번이나 토론했다. 어차피 아무 연락도 받을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의논할 시간만은 넘치고도 넘쳤다. 다른 스승이나 문관들은 부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논의한 대비책까지 태자와 태자비 쪽으로 새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 내 스승들은 모두 조부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다. 친조부파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방탕한 태자, 아니 이제는 이쪽도 호칭을 바꿔야지, 태황의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던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조부가 없지 않은가. 조부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납작 엎드려 있던 태황이다. 하지만 이제 조부는 세상에 없다. 저 노는데 환장한 태황의 고삐를 붙잡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조모? 조모는 성격이 너무 부드러우며 인자해서 태황을 억제하지 못한다. 태황이 천하에 빌어먹을 불효자라면 야 또 모르겠지만, 신나게 놀아나는 것과 별개로 부모에게 갖추어야 할 예는 소홀하지 않았다. 그 탓에 태황을 보는 조모는 늘 이런 식이었다.
‘우리 태자가 심성은 참 착한데 아직 철이 좀 덜 들어서…..’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아들 사랑이다. 손위 아들을 둘이나 잃은 연후에야 겨우 얻은 막내다 보니 조모는 늘 태자에게 부드러웠다. 조부가 너무 자식에게 엄하다 보니 되레 역으로 더 부드럽게 대한 까닭도 있으니라.
우리 일행에 있는 스승들, 문관들도 이런 상황을 뻔히 안다. 그런데 이들이 태황 쪽으로 줄을 바꿔 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못 한다. 나로서는 언제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태도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겪은 격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낯빛은 초췌해지고 얼굴은 살이 빠져 핼쑥해진 상태다. 이런 나를 두고 조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알겠다.”
부두에 내려서니 그쪽에도 연락이 갔는지 인천부윤 이하 관원들이 또 납작 엎드려서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는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열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또 중언부언 내놓았다.
“그대들의 성의는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빨리 입궐해야 하니 후일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만나보도록 하자.”
“소, 송구하옵니다, 저하.”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랐다. 증기차가 많이 퍼지긴 했어도 소음과 매연, 진동 때문에 고급스러운 교통수단으로 여겨지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직 마차가 의외로 많다. 산업용이나 상업용 차량 말고 대갓집의 자가용으로는 여전히 다 마차를 쓴다고 보면 된다. 물론 말들이 싸대는 막대한 말똥을 처리하는 데 비용과 수고가 제법 많이 든다. 초전으로 보내 초석을 만드는 데 대부분 쓰기는 하지만 수고로운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내연기관차나 전기차가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다.
얼마 안 가서 제물포역에 닿았다. 역 안으로 들어가니 승강장에는 이미 특별열차가 출발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황실 전용차는 아니지만 가장 고급인 갑호차(甲號車)였다. 아까 해관장이 역에 연락했다더니, 그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준비한 모양이다. 여기서도 역장 이하 역원들이 역 정문 앞 돌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치름 요식행사가 또 지나갔다.
객차 안에 들어가 객실의 문을 닫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기차가 한 번도 서지 않고 달려 곧바로 노량진에 닿을 때까지, 그렇게 아무도 들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3.
노량진에서 기차를 내리고, 다시 마차를 타고 나루로 내려갔다. 앞서 말한 완목신호기가 한참 전에 내가 왔다는 사실을 한양까지 알렸으므로, 어도선이 이미 강변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중종 때도 그랬지만, 어도선은 늘 바로 운항할 수 있을 만큼 기관에 불을 때 둔다. 강을 건너가서 배에서 내리자 또 한 무리의 관원들이 국상때 관원들이 입는 상복인 쇠복(衰服)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만나는 네 번째 환영 행렬인 셈이다. 환영받는 상황이라기는 좀 애매하지만.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저하. 완전히 얼굴이 반쪽이 되셨으니, 그동안 저하께서 심신 양면으로 겪으신 고초를 짐작할 만합니다.”
맨 앞에서 내게 인사를 올린 이는 외조부 김조순이었다. 뜻밖의 인물이 나와 있어서 잠시 놀랐다. 조정에서 환영이 나올 줄은 알았지만, 당연히 그보다는 한참 급이 낮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어찌 외조부님께서 이런 자리까지……”
당황스러웠다. 국상이 끝나려면 아직 석 달은 남았다. 김조순은 고인인 조부의 사돈이자 측근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빈전을 지키는 이들 중에 끼어있어야 마땅하다. 우리 조정에서 장동 김문이 가진 정치적 위상을 감안하더라도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 있다는 건…. 새 태황의 측근으로서 김조순이 자리 잡지 못했다는 뜻이 될 수 있었다. 새 태자비, 아니 중전의 친정이 지난 2년 동안 위세를 올렸으며 김조순은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의미 말이다.
“혹시…..부황께서 외조부님께……”
곤란하다. 내 외가인 장동 김문이 그동안 유지하던 위세를 잃는다면 내 지위가 흔들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태자비가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없애려고 들 대상이 내 뒷배인 장동 김문일 테니까. 하지만 김조순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리고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챘는지 부드럽게 속삭였다.
“저하. 저는 폐하의 명을 받고 나온 것입니다. 폐하께서 보고를 듣고 신을 불러 손을 잡고 당부하시길, 객지에서 2년이나 보내고 오신 저하를 혈육이 아닌 이의 손에 맡길 수 없으니 이 늙은이가 나가 맞이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김조순을 밑으로 떨어트린 게 아니라 내게 베푼 진짜 배려인가.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다. 하기야 예전부터 태자는, 아니 태황은 날 묘하게 배려하는 언동이 잦았다. 그랬던 옛일을 생각하면 오랫동안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을 환영할 사람으로 이전 장인을 택하는 게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았다.
“사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직접 나루에 나가는 게 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올 수 없다고 분부하시면서 이 늙은이를 대신 보내셨으니, 저하께서는 부디 서운하다 생각지 마시고 그 깊으신 뜻을 알아주소서.”
내 추측을 뒷받침하려는 듯, 김조순은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조리 들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태황, 부황이 나를 아주 신경 쓰고 있으며 최대한으로 배려하고 있다고. 그 뜻은 명확했다. 다음 태자는 나다. 권력이 이복동생들에게 넘어갈 염려는 없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지금이 국상 중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달되지는 않았을 거다. 피로를 풀고 짐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하루 정도는 인천에서 묵고 내일 아침이나 되어서여 한양에 왔을 거다. 그동안 둘째 외숙 김원근이나 셋째 외숙 김좌근이 달려와서 상황을 전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행의 행색을 정비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당연히 외조부 쪽에서 보낸 이를 만나 조정 사정을 듣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다. 아마 이 자리는 김조순으로서도 내가 태황을 만나기 전에 나를 만나서 지금 상황을 전할 유일한 기회였을 거다. 더구나 남들 몰래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그러니 그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완곡한 표현으로 지금 상황을 전달한 거다.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김조순이 준비해온 황실 마차에 올랐다. 이번에도 나 혼자만 타도록 준비된 마차였다.
4.
조부는 세 궁궐을 3년 주기로 옮겨 다니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올해는 경복궁에서 지내는 3년째다. 당연히 조부는 침전인 강녕전에서 눈을 감았고, 빈번(殯殿)도 조부가 새로 지은 전각인 태원전(泰元殿)에 차려져 있었다. 태원전은 대궐 서북쪽 모퉁이에 있어서 광화문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래서 대궐 서문인 영추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영추문에서 태원전까지는 내 걸음으로는 5분이면 충분했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내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궁인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비키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들 나와 내 앞에서 줄달음치는 송 내관을 보자마자 당장 옆으로 비켜나서 허리를 숙였으니까.
“할바마마! 소손이 왔습니다!”
태원전의 출입문인 건숙문(建肅門)을 들어서면서 크게 외쳤다. 그 순간 그동안 메말랐던 눈물샘이 다시 수도꼭지를 열었는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속보였던 내 걸음도 줄달음질로 바뀌었다.
“할바마마!”
내 외침을 들은 이들은 서둘러 길을 비켜주었다. 덕분에 나는 발을 멈출 필요 없이 안으로 들어가 조부의 위패 앞에 엎드릴 수 있었다.
“할바마마, 어찌 소손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주지 않으셨사옵니까. 할바마마께서 떠나시는 길에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하였으니, 이 큰 죄를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구슬 같은 눈물이 연달아 바닥을 적셨다. 슬픔, 아쉬움, 안도감 등 온갖 감정이 휘몰아쳐 뒤섞인 눈물이었다. 적어도 억지로 짜낸 건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곡소리와 눈물 훔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지금 여기 누가 있는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아마 다들 자기 나름대로 조부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들 있으니라. 그리고 나서서 나를 위로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이고.
그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낌새가 느껴졌다. 지금 대궐 안에서 이렇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이는 하나밖에 없다. 내가 고개를 들자 예상한 사람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고생이 많았구나, 태자야.”
“…..아바마마.”
태자가, 아니 새 태황이 내 눈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그 얼굴에는 피로와 더불어 나를 반가워하는 감정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또 그 밑바닥에는 안도하는 기색도 희미하게 엿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