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1726
4부 110화(1726화)
19.
빈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는 곤란했다. 잠시 허리도 펴고 바람도 쐴 겸 해서 내 처소인 함화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전에 이야기했듯, 태자로 책봉되고 나서도 내 처소는 아직 동궁이 아니라 함화당에 두고 있다. 빈전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달만 더 견디면 끝난다. 조금만 참아라.”
“예, 폐하.”
국상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황실 예식은 예전 법도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총호사(總護使)인 좌참정대신의 통솔하에 진행되는 국상을 치르는 기간도 예전처럼 다섯 달이다. 물론 여기에는 물리적인 제한도 있다. 국상 때 설치되는 세 도감, 국장도감(國葬都監)과 빈전도감(殯殿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 그중에서도 산릉도감이 하는 일이 마무리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산릉도감은 지관을 동원해 능의 부지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목재ㆍ석재ㆍ석회 등 온갖 자재를 조달하고 공사까지 담당한다. 그러므로 공사 기간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 산릉도감이 맡은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기간은 줄어들 수가 없다. 자재 운반이나 가공 같은 힘이 많이 드는 노역에 예전에는 없었던 중장비가 일부 사용되지만, 공사 기간은 예전과 같다. 임금의 무덤을 만드는 중대한 공사에서 공기 며칠 줄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기를 줄인다고 수를 쓰다가 부실공사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늦어지는 게 낫다. 만약 황릉 공사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작업을 부실하게 진행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관계자 전원이 참수형을 당하고도 남으니까 말이다.
도굴? 그야 당연히 처형이다. 남의 무덤을 파헤친 죄는 어떻게 변명해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도굴을 저지르는 묘구(墓寇)가 간혹 나온다. 대개는 안에 매장된 시신을 훔쳐다가 돌려주는 대신 돈을 요구하지만, 부장품을 노리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그 탓으로 일어난 대한 역사상 최악의 도굴 사건이 지난 원평 27년(1809)에 벌어진 원릉(元陵) 도굴 미수 사건이다. 능에 묻힌 인선황후, 즉 성친왕의 첫 왕비였던 강씨가 가지고 묻힌, 내가 선물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노린 도둑놈들이 원릉에 손을 댔었다.
물론 백주에 황릉을 파헤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자들은 원릉 권역 바깥에서 무덤까지 모래 굴을 파서 접근했다. 그렇게 파고들어 간 갱도가 관과 관곽(棺槨)을 둘러싼 회벽에 막 닿았을 때 들통이 나서 붙잡혔다. 감히 황릉을 파헤치다가 잡힌 도둑들이 무사할 수 있을 리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조부는 스무 명에 달하는 일당을 전원 거열형에 처해서 한강 백사장에 매달았고, 백여 명이 넘는 그 일가를 모조리 북변으로 유배했다.
능을 관리하던 능참봉과 수릉군(守陵軍)은 물론이고 소재지 수령인 양주목사까지 해우도로 유배되어 죽을 때까지 해우 밀렵을 막는 감시원 노릇을 하게 됐다. 그나마 가족을 연루시키지 않은 게 일말의 자비였다. 유례가 없는 불상사에 대신들도 여럿 사직했다.
극히 최근에 이런 사건이 있었으니, 그 이후 처음 축조하는 황릉인 조부의 무덤을 적당히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산릉도감에서는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공기 단축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죄인이 또 나오더라도 절대로 성공할 수 없도록, 재궁(梓宮)을 덮는 석회의 두께를 그전의 세 배로 만든다고 하였지. 그 정도라면 화약을 천근쯤 들고 가서 터트리지 않는 한 깨지지 않을 것이야.”
조선 초기에는 임금의 관을 석실에 모셨다. 하지만 세조 이후로 수고를 줄이고 시신이 잘 썩도록 만든다는 이유로 모래와 자갈을 섞은 회반죽을 채워 묘실을 봉인하도록 바뀌었다. 그 두꺼운 회벽을 깨야만 무덤을 도굴할 수 있다.
“그게 끝나고 국상이 끝나면 너도 동궁으로 옮겨야지. 그리고 장차 보위에 오를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거다.”
“예, 아바마마.”
원론적으로는 분명 맞는 이야기이므로 반박할 수가 없다. 태자 자리에 있는 사람이 평생 해야 할 일이 보위에 오를 준비인 게 사실이니까.
“그 뒤에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하는지 물었느냐.”
“예.”
“너도 대충은 짐작할 거다. 누벨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너를 통해 재안한 영토 매각 제안부터 처리하고자 한다. 멕시코도, 동북변도 다 말이다. 그리고 나면 대행태황 폐하께서 서반아 국왕에게 제안하신 영토 거래 건을 마무리해야지. 이것도 네가 시작한 일이었지?”
멕시코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대신 괌을 비롯한 마리아나 제도를 스페인에게 사들이자는 계획, 내가 미주에 순행을 나가기 전에 조부에게 제안했던 계획 맞다. 그리고 조부는 내가 미주로 떠난 뒤에 내 제안에 따라 스페인에 특사를 보냈다. 조부가 스페인 국왕인 호세 페르난도 2세에게 제안한 거래 금액은 50만 달러였다. 그리 크지도 않고 자원도 없는 섬들의 값이라고 생각하면 딱히 적은 돈은 아니었다. 내가 제안한 것처럼, 우리가 멕시코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일종의 외교적 위자료인 셈이다.
지금 시점에서 따지자면 굳이 스페인에 위자료를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옛날 펠리페 2세가 내게 베푼 호의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몇 푼 안 되는 위자료라도 챙겨주고 싶은 거고. 다만 펠리페 2세를 생각할 때마다 쓴웃음이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펠리페 2세한테 입은 은혜’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면 스페인과 싸워서 등쳐먹기를 망설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내가 계미남변으로 스페인 영토를 빼앗지 않았다고 해서 스페인인 계속 열강 자리에 있지는 못했을 거다. 원래 역사에서처럼 쇠락해서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았겠지. 그렇다고 내가 한 일이 배은망덕이 아니게 되지는 않지만, 뭐….. 그 이야기는 그만 관두자.
“그 외에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온지요.”
“음, 뭐. 지금 굳이 다 말할 필요 있겠느냐. 국상이 끝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추진할 수도 없고 논의를 시작할 수도 없는데, 분란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국상이나 끝나고 난뒤에 다 일러주마.”
갑자기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품고 있던 기대감은 확 사라지고 불안감이 곧바로 화산처럼 치솟았다. 아니, 이 자식은 대체 무슨 황당한 계획을 세워 놓았기에 자기가 그걸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조정에서 분란이 일어날 걱정을 한단 말인가.
“폐하, 혹시….폐하께서…..”
설마 양위 선언이라도 할 생각인가. 국상이 끝나자마자 나는 휴식할 사이도 없이 광화문, 아니 강녕전 앞에 엎드려 석고대죄부터 해야 하는 건가. 중전의 술책이 먹힌 게 아닌가 싶었다. 조정 중신들, 재야의 거유들이 내게 물려와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경계심을 느낀 태황이 그동안 나를 너무 총애했다는 생각에, 잠시 고삐를 당길 목적으로 양위를 선언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태자 책봉을 서둘렀다고 해서 곧바로 보위까지 물려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이를 서두른다면 그게 누구 잎에서 나왔든 그건 역모가 된다. 임금 자신이 양위를 언급하더라도 절대 동조해서는 안 된다. 동조하면 그냥 죽는다. 갑자기 장조 시절 생각이 났다. 우울해진 내가 기분전환삼아 양위쇼를 벌였었지 아마, 하지만…..내가 똑같은 꼴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급격하게 기분이 더러워졌다. 아, 젠장. 돌바닥에 무릎 꿇으면 아픈데.
이런 불안감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낼 만큼 내가 미숙하지는 않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든 겉으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태황이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무슨 일을 계획하건, 그건 이 나라를 위한 일이고 너를 위한 일이지 네게 해가 될 만한 일은 아니다. 너는 내 뒤를 이어 이 대한의 보위에 오를 태자가 아니냐? 네 자리는 확고할 것이고, 누구도 위협하지 못할 거다. 그것 하나는 안심하거라.”
“예, 아바마마.”
양위하는 척 나를 괴롭히는 쇼 따위는 벌이지 않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덕분에 어느 정도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기에 저러는 거지?
“아, 그래도 네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일에 관해서는 미리 얘기해주는 게 맞겠지.”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그래, 이제 본론이 나오는구나. 잠시 깊게 숨을 들이쉬고 들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정말 예상도 못 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표정의 동요를 숨길 수가 없었다.
20.
내 공부방인 집경당에서 나와 마주 앉은 데이비 크로켓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내게 박수를 보냈다. 마치 자기 일이라고 되는 것처럼 아주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어허, 전하께서는 임금 폐하께 우수한 외교관으로 확실히 인정받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제가 이런 날이 올 줄 다 알고 있었지요. 뉴올리언스에서 뵈었을 때부터 다 알아봤습니다.”
“축하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소.”
데이비 크로켓은 제물포에 머물다가 나보다 이틀 뒤에 입경했다. 태황이 상중이기는 해도 외교 업무를 비롯한 꼭 필요한 국사는 처리하고 있기에 별다른 탈 없이 태황에게 신임장을 봉정하고 특임대사 겸 초대 주한 미국공사로 취임했다. 당연히 위스키도 선물했다.
신임장 봉정 이후에 정식으로 문상도 하고 – 본래는 조문사절로 온 게 아니지만, 서신을 보내 조문 사절을 새로 보내라고 하기에는 미국이 너무 멀다 – 도성 안팎을 다니며 친분도 쌓고 있다. 우리가 예상했듯이, 역시나 사대부들에게 괘 괜찮은 평을 받고 있다고 김유근이 와서 일러주었다. 본인도 자기가 거둔 성과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지난번에 내 태자 책봉을 축하하러 왔을 때는 자기가 그동안 만난 십여 명이나 되는 고관대작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자랑했었다.
“임금 폐하께서는 전하께서 포트 샤를과 뉴올리언스, 멕시코시티에서 거두신 높은 성과를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러니 전하의 뛰어난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을 계속 활용하고 싶으신 게 당연하지요.”
“그래는 그렇게 생각하시오?”
“물론이지요, 전하.”
나도 데이비 크로켓처럼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국상이 끝나고 봄이 오면 북방에 사신으로 다녀오라는 태황의 제안은 도저히 쉽게 들어 넘길 게 아니었다.
“제게 건주 양국에 사신….으로 갔다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바마마?”
“그렇다, 태자야.”
대체 이 자식 때문에 내가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란 게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난다. 아까 혹시 이놈이 양위 선언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때는 양위 쇼가 원래 역사에서나, 이쪽 세계에서나 종종 있었던 일이기에 이 정도로 놀라진 않았다. 그런데 이건 정말이지…..
“아바마마. 이제껏 태자가 외국에 사자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소자가…..”
“생각해보거라. 중종께서 심양회맹을 맺은 지 120여 년이 다 되었다. 그 이전에 장조께서 건주 태조와 처음 인연을 맺으신 시기를 생각하면 백여 년이 더 올라간다.”
그거야 내가 태황보다 더 잘 알지. 하지만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용히 듣기만 했다.
“2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주 양국에서는 외가 쪽 선조인 장조 폐하의 능을 참배한다는 명분으로 태자들이 우리 한양에 다녀가는 관습을 유지해 왔다. 이를 통해 건주 양국과 우리 사이의 친분을 굳게 다져왔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다.”
태황은 2백 년이 넘는 일방적인 방문 때문에 건주 양국의 불만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양회맹은 분명히 세 나라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건주 양국의 시각에서 보면 확실히 불평등했다. 물론 이는 우리 대한이 건주 양국보다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 양국의 태자를 우리 도성에 불러들여 손님으로 대접하는 건 사 실상 저들이 우리한테 입조하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거부감을 살 만한 일이었다.
중종 시절에도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동안 해오던 바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당장 후송을 견제해야 하니 고삐를 느슨히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청나라 황제와 후금 대칸이 모두 몇 대 안 떨어진 내 후손들이었다. 내 후손들이 나를 찾아오는 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이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할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혼맥도 새로 맺었고.
하지만 태황에게는 건주 양국이 수백 년 전에 인연을 맺었을 뿐인 상대다. 그렇다 보니 저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소원해진 사이를 호전시키고자 이런 조치도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싶다.
“건주 양국이 제대로 쓴 전기(戰記)를 우리한테 보내지 않게 된 지도 이미 수십 년이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면 태자들이 방문하는 관습도 사라질 게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도 한 번쯤 답방을 보내서 저들이 우리와 동등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확신을 줄 때다.”
이번에는 그래도 양국 황태자들이 조문하러 왔고, 인사도 나눴다. 감사의 의미로 답방을 보내야 한다는 태황의 말이 크게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알…..겠사옵니다.”
“저는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인접국과의 관계를 계속 원활한 상태로 유지하려면 양국 모두 어느 정도 양보가 필요하지요. 제가 전에 폐하를 뵈었을 때 강조해서 드린 말씀이기도 합니다.”
데이비 크로켓은 미국과 누벨 프랑스가 정확하게 어떤 관계냐고 태황이 질문했더니 ‘대한 본국과 건주 양국 같은 관계’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는 노력에 관해 설명했다.
“우리 합중국과 누벨 프랑스 제국은 서로 대사를 파견하여 외교관계를 가장 높은 단계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상대라고 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죠. 대한도 건주 양국을 그렇게 가깝게 두려면 동등한 수준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그대의 말이 틀리지 않기는 하오.”
과연 태황이 데이비 크로켓의 조언을 듣고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부터 하던 생각일 수도 있으니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퍼뜨리지 말아 주시오. 밖으로 나가면 괜히 필요 없는 논란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물론입니다, 전하. 전하께 관련된 일을 어찌 전하의 허락도 없이 남들에게 떠들겠습니까? 안심하십시오.”
다행히 데이비 크로켓은 입이 무거운 신사였다. 그래서 그로 인하여 조야가 발칵 뒤집힐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김유근이나 불러들여서 다시 의논해 봐야지. 사실 정치적인 의미와는 별개로 건주 양국 방문 자체는 나로서는 하고 싶은 일이긴 하다. 내가 만든 세상이지만 어떻게 바뀌었는지 직접 본 적이 없다. 국내에서 지나친 논란만 되지 않는다면 한번 가보고 싶다.
그나저나 이 방문 계획이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을 걸 생각하니, 태황 스스로도 ‘너무 큰 논란이 될 것 같아서’ 미리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계획들은 대체 어느 수준일지 모르겠다. 공포감에 심장이 오그라들려고 한다.